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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afent Garden Home>정원예술문화>조재은 수필_작품세계>

 

작성일 : 2012.03.19

 

조회 : 3529



                                         어린 왕자 패러디 Ⅱ


                                                          부메랑

                                                                       글 _ 조재은
 


어린 왕자를 다시 만난 것은 오월의 끝 무렵이었습니다.
들을 가로지르는 바람은 부드러웠고 공기는 달콤했습니다. 라일락과 아카시아는 해가 져서 꽃이 잘 보이지 않지만, 달콤한 향기 때문에 어디 있는지 알 수 있지요. 아카시아 꽃의 여린 단 맛을 맛보려고 꽃송이를 하나 땄습니다.
 그 때 나무 사이로, 그루터기에 앉아 땅을 내려다보고 있는 어린 왕자를 보았습니다. 그 아이는 말을 하고 있을 때에도 고요함을 느끼게 하는 목소리와, 어떤 불순한 것도 순수함으로 바꿀 수 있는 따뜻한 가슴을 가진 보석 같은 아이지요.
“안녕?”
 반가움에 큰 소리로 인사하던 나는 그 자리에 서서 더 이상 말을 잇지 못했습니다. 어린 왕자는 땅을 보며 울고 있었습니다. 자주 슬퍼하고 가끔 눈물을 글썽이기는 하지만 서럽게 우는 것은 처음 봅니다. 숲은 5월이기는 하지만 해가 지면 서늘한데 코트도 입고 있지 않았습니다. 어린 왕자가 처음에 어떤 모습으로 왔는지 기억하시지요. 땅에 끌리는 푸른색에 어깨에는 작은 노란별을 달고, 부드러운 가죽 장화를 신고, 우리에게 처음으로 별들의 맑은 웃음소리를 듣게 해 주었지요.
 그의 밝고 온화한 얼굴은 슬픔의 그늘로 얼룩져 있었습니다.
 “사람들은 언제나 다 같은 모양을 하고 한 무리 속에 들어가야 되는 거야?”
 어린 왕자는 항상 질문으로 얘기를 시작하지요. 그에 비해 나는 호기심이 줄어들고 의문보다는 답을 갖고 있는 견고한 상자 속에 생각을 가둔 어른이기에 그의 질문에 항상 당황합니다.
 “누구를 만났는데•••, 어디 갔었어•••.”
 그를 만나서 얘기를 하면 이상하게 자꾸 변명이나 설명을 하게 되어 질문으로 답을 바꾸었지요.
 “나는 길들인 게 여우와 장미밖에 없어. 그래서 친구와 서로 길들인 관계를 갖고 싶었어. ‘열린 학교’라고 쓰여진 잘 꾸며진 초등학교를 갔었는데••• ‘열린 학교’는 교문만 열어놓은 학교야?”
 “그게 아니고 교육을 열린 마음으로•••”
 마음이란 말이 나오자 어린 왕자는 괴로운 얼굴이 되었습니다.
 “참 많은 아이들이 운동장에서 놀고 있었어. 그렇게 많은 아이들을 보니까 나는 가슴이 막 뛰었어. 별에는 내 또래가 없잖아. 그리고 혹성을 여행하면서도 노는 아이들을 만난 적이 없기 때문에 그 곳으로 뛰어갔어. 그런데 아이들이 나를 보더니 손가락질을 하며 웃기 시작했어. 나는 왜 그러는지 잘 몰랐어.
 그 아이들은 얼굴은 달랐는데 차림새들은 거의 비슷했어. 그믐달 같기도 하고, 부메랑처럼 생기기도 한 표시의 운동화를 신고 청바지는 삼각형 표시 속에 ‘Guess’라고 이름을 넣은 바지들을 입었어. 어디서 본 것 같았는데 생각해 보니까 사막에서 비행사 아저씨를 만났을 때, 고장 난 비행기를 고치면서 세워 놓은 삼각대와 닮았어. Guess, 무엇을 추측해보라는 건지 그것을 아이들과 함께 얘기해 보고 싶었어.
 나는 제일 신나게 소리치며 놀던 아이에게 다가가서 같이 놀자고 했어. 그 아이는 나를 아래위로 보더니 함께 놀려면 부메랑 그림의 운동화를 신고 오래. 나는 운동화도 없지만 내 장화는 오래 신어서 편하기 때문에 뛸 수도 있고, 공차기도 할 수 있거든. 코트만 벗고 이대로 함께 놀면 안 되냐고 물으니까, 떠들썩하던 아이들이 갑자기 조용해지면서 나한테서 한 걸음 물러나서 이상한 눈으로 쳐다봤어.
 그 때 나는 추워지는 것 같았어. 북극 위를 지날 때 느끼는 한기 같은 게 가슴을 스쳤는데 얼굴에서는 땀이 났어. 힘들었지만 다시 말을 꺼냈어. 내가 어느 별에서 왔는지 맞추어 볼래? 하고. 아이들은 별이란 말에 두 걸음 뒤로 갔어. 아이들에 빙 둘러싸인 내 모습은 원점과 원둘레 같았는데, 아이들은 점점 원점에서 멀어지는 거야. 원은 커지면서 흩어지기 시작했어.
 나는 아이들을 잡고 싶었어. 그런데 내 팔이 친구들에게는 닿지를 못했어. 자리를 옮기면 어느 한 아이를 붙잡겠는데 움직일 수가 없었어. 꿈에서 너무 무서우면 꼼짝 못하는 것 알지? 그 때하고 비슷했어. 내 별의 장미가 바람이 심하다고 고깔을 씌워 달라던 날, 사실 나도 무서운 꿈을 꾸었거든•••.”
 평상시 뽀얗고 분홍빛 돌던 뺨은 양의 그림을 그려준 도화지처럼 하얗게 되었습니다. 어린 왕자는 파들파들 작은 입술을 떨면서 얘기를 계속했습니다.
 “그 아이들은 내 말을 듣자 나를 운동장 한 가운데 남겨 두고 모두 다른 곳으로 가 버렸어. 몇 몇 아이들은 운동장 모래를 나한테 뿌리기도 했어. 나는 화산을 청소할 때도, 소혹성 여행도 혼자 했기 때문에 혼자 사는 게 슬픈지 몰랐어. 그런데 운동장 한 가운데 나만 남겨졌을 때는•••.”
 어린 왕자는 울음을 참느라고 얼굴이 빨개졌습니다. 그 아이들과 놀려면 별 달린 코트는 왠지 안 어울릴 것 같아 운동장 구석에 벗어놓고 그냥 온 것은 나중에 설명해 주었습니다.
 “햇빛 아래 혼자 어쩔 줄 모르고 있는데 어디서 피아노 소리가 났어. 모차르트의 미뉴에트를 치고 있는 아이와는 길들여 질 수 있을 것 같아서 까만 피아노가 있는 교실 창문으로 갔어. 그 아이는 피아노는 치는데 그 곡이 모차르트라는 것을 전혀 마음에 두고 있지 않았어. 선생님이 가르치는 곡을 칠뿐이었어. 음악 시간에 악기를 하나씩 연주하도록 학교 규칙이 되어있대. 선생님이 나가자 아이는 옆의 아이에게 지겹다고 했어. 나는 모차르트를 들을 때는 노을을 안 봐도 되거든.”
 어린 왕자는 자신의 장화에 붙은 민들레 씨를 한참 보더니 입으로 불어 멀리 날렸습니다.
 “아무도 너한테 말 거는 아이가 없었니?”
 대답은 일부러 하지 않는 것 같았습니다.
 “옆 반에서는 그림을 그리고 있었어. 자연에 대한 것을 그리라고 했나봐. 아이들은 화병에 꽂은 꽃, 나무, 새들을 그렸는데 아무도 하늘을 그린 아이가 없었어. 하늘을 볼 수 없는 아이들하고는 할 얘기가 없어.
 별을 볼 수 없는 아이에게 내 별에 대한 얘기를 어떻게 해. 하늘은 세상에서 제일 큰 그림이야. 구름이 만드는 그림보다 더 아름다운 그림 봤어?”
 어린 왕자의 긴 말이 끝났을 때는 숲 속에 어둠이 깔리기 시작했습니다.
 빨간 안감의 푸른 코트를 찾으려고 학교 운동장에 간다는 어린 왕자와 작별을 하면서 그가 운동장에 갔을 때는 아무도 없기를 바랐습니다.
 빈 운동장의 적막이 많은 아이들 속의 고독보다 그의 가슴을 덜 아프게 할 것 같으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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