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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afent Garden Home>정원예술문화>장태현 스케치기행_작품세계>

 

작성일 : 2011.08.19

 

조회 : 3498


                         우리 민족이 숨 쉬는 곳 연변


길림성의 성도省都장춘시長春市
 
의문으로부터시작된 첫만남


그동안 중국을 다섯차례나 방문하게된 동기는 1992년도 세계조경가총회IFLA를 서울에서 개최하게 됨에 따라 이를 위한 사전 준비 과정에 있었다.

1989년도 1월 중국의 길림성 원림학회와 한국 조경연합회가 자매결연을 맺게 됨을 계기로 하여 연길시 모아산延吉市帽 兒山자연공원 조성계획 의뢰에 대한 현장답사겸 1992년 서울총회에 중국의 참여와 북한의 참여 가능성을 모색하기 위한 방문으로부터 시작된다. 1990년도 8월 6일 처음 북경 공항 광장에 오성기五星旗에 대한 낯설은 긴장감과 호기심으로부터 시작된 질문은 처음 만난 연변 조선족 안내인과의 장춘행 비행기 안에서도 이어지고 있었고 오늘날까지 계속되고 있다.

50여년 동안 단절되었던 그 숱한 이야기들은 결국 우리들을 하나의 공동체로 묶어 가는 과정이었고 우리민족이 모여산다는 연변延邊자치주의 성도省都장춘시는 그들의 50년 과정을 확인할 수 있는 장소의 첫 발자국이었다. 공항에서부터 도심에 이르기까지 회색빛의 도시경관은 한마디로 충격의 시작이었고 상상할 수 없었던 그들의 과거에서 오늘의 현실은 찾을 수 없었다. 2일간에 걸친 길림성 원림학회 임원들의 극진한 접대와 안내가 있었지만 사회주의 실패가 그대로 증명되는 정체된 역사현장들이었음을 보여주고 있었다.

인구 2백만의 삼림 휴양도시로서 2백여년의 역사를 간직하고 있고 길림성의 경제, 문화, 교통의 중심으로 방사선형의 광대한 면적에는 각종 공원, 녹지 등이 확보되어 있었으나 사회주의 국가 나름의 복지시설의 나열이었지 오늘의 우리가 생각하는 도시생활의 질적 환경은 아니었다.

공공녹지 면적도 6㎡인, 녹지율은 중국에서 두 번째로 높은 33.6%로서 생태적인 도시건설을 목표로 하고 있다는 설명이었으나 만주국의 수도였던 역사적 건물의 흔적만 퇴색한채 남아있었고, 중공업 도시로서의 무수한 굴뚝 연기는 회색빛의 음산함과 어우러져 도시에 대한 첫인상을 흐리게 하고 있었다.

수양버들과 백양나무 등의 가로수 터널만 도시역사의 흐름을 가늠할 수 있었을 뿐 조금만 눈여겨 살펴보면 도시의 기반시설이 너무도 열악함을 발견하게 된다. 칸막이도 없이 구멍만 뚫린 공중 화장실에서의 지옥과 천당을 오갔던 시간, 노인공원에서의 우악스러웠던 철조망시설, 황폐하다시피한 동·식물원의 관리 등은 그들의 푸짐한 음식·음주 문화와 비교되어 충격적이고 연속적인 의문의 첫 방문으로부터 시작되었다. 위의 그림은 장춘시 노동공원 안의 호수풍경으로 그들 전통문화의 유산을 오늘의 표현으로 보여 주고 있다.


장춘에서 만난 두 사람

그 후도 몇 번인가 오가면서 지나쳤던 장춘이었으나 오늘날까지도 지워지지 않은 이러한 어두운 인상은 그곳에서 만난 조선족 동포 두 사람의 영향 때문이 아닌가 생각하게된다.

그중에 한 사람은 첫해 방문때 만났던 조선족 노인으로서, 해방이후 사회 혼란기에 사상적 갈등으로 서울을 등지고 만주로 넘어 왔다는 권씨성을 가진 분으로 어느 음산한 분위기의 주택가 식당에서였다.

장춘에 도착한지 이틀밖에 안되었지만 끼니때 마다 중국인 특유의 극진한 대접에 속이 불편하여지자 일행 모두 한국식 저녁 끼니를 찾기로 하였다. 조선족이 모여 산다는 곳을 수소문해서 2시간만에 찾았으나 날도 저물어 낯선곳을 우선 피하고 싶은 심정이었고 한글 간판이 그나마도 반가워 들어가긴 했어도 선뜻 내키지 않는 10여평 남짓한 허술한 식당이었다. 주인 권씨노인은 고향이 강원도로서 부인과 10여년전에 사별한 후 혼자서 식당을 꾸려나간다 했다. 행색이 남루했던지 가능한 우리 일행과의 대화에 선뜻 응하고 싶지 않은 표정이었으나 담배인사로부터 시작된 과거 이야기는 퍽 의식있는 표현으로 2세 교육의 걱정으로부터 시작되었다. 젊었을 때에는 서울에서 공부를 했다면서 정확한 표준어를 사용하였고 향수어린 감정으로 서울의 발전상과 올림픽 개최를 칭찬하기도 하였지만 그의 표정에서는 옹색하고 찌들은 식당 분위기를 지울 수가 없었다.

좁은 원형식탁에 낯익은 김치, 콩나물, 보신육류를 내 놓았으나 시각효과만 있었지 이미 우리 음식이 아니었다. 그나마 벽에는 남쪽 젊은 여성의 열띤 자세가 담긴 북쪽 달력이 권노인의 젊은 날을 보는 듯 하여 착잡한 심정으로 그곳을 나와야만 했었다.


어제까지의 연변延邊

그들의 성도省都가 이러할진데 장춘에서 처음 연길공항에 도착하였을 때에는 공항이라기 보다는 변두리 역보다 못하였었다. 절차도 없이 공항 밖으로 나와 잡초 투성이의 광장에 마중나온 동포들의 남루한 색을 대하자니 먼 이국땅에서의 반가움보다는 형언할 수 없는 슬픔으로 맞이해야만 했었다. 영화속에서나 나올법한 낡은 48인승 쌍발 프로펠러기를 호기심속에서 내렸으나 시내까지의 비참한 풍경은 60년대초 한국의 모습을 찍기 위한 영화 세트장으로 들어서는 기분이었다.

그래도 그때에는 무어라 형언할 수 없는 짙은 인간적 향기로 우리를 끌리게 하였고 우리 한국인에게서 느낄 수 없었던 ‘공동체적 삶’의 미덕이 지친 우리들 주변을 지켜주고 있었다. 비록 도시환경은 장춘보다도 못하였고 시내에서의 인상은 온통 먼지 투성이었지만 설레이는 마음으로 동포들과의 지냄은 푸근함 속의 즐거운 나날들이었다. 자치주 주정부 당위원회 청사로서 시내 중심가에 자리잡고 있었고 이러한 자치주는 1952년 9월 3일에 건립되어 중국에서 조선족이 제일 많이 모여 사는곳이라 했다. 길림성 총면적의 1/4을 차지하는 42,700㎢에 주로 한족漢族과 만족滿族 등 19개 민족과 어우러져 살면서 총 인구 2백만중 조선족은 81만 5천명으로 40%를 조금 넘고 있었다.

이들 자치주에는 연길, 도문, 돈화, 용정, 훈춘 등의 5개 시와 안도, 화룡, 왕청 등의 3개 현懸이 있으며 도합 17개의 진鎭으로 구성되어 있다고 대견스런 모습으로 그들은 자랑하고 있었다.

<길따라 터를 찾아>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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