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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afent Garden Home>정원예술문화>장기오 대PD_작품세계>

 

작성일 : 2012.04.27

 

조회 : 2579




<작가의 4월 수필>

칼 마르크스의 제자들

장 기 오



이리저리 떠돌며 시간제 가정교사로 근근이 밥 빌어 먹던 학창시절, 나는 그의 집을 한 번 방문한 일이 있었다. 푸른 잔디가 깔린 정원을 지나 우리들이 사는 쪽방 서너 개를 합쳐놓은 듯 한 응접실에는 당시 보기 드문 텔레비전이 떡하니 놓여있었다. 식구 모두는 결코 목소리를 높이는 일이 없었으며 식모마저도 품위 있고 절도 있게 행동했다. 어른들은 넉넉하고 온화한 미소로 우리들을 맞았다. 기가 질린 우리들은 바짝 얼어 입도 한 번 벙긋 못하고 당시에 잘 먹어보지도 못했던 오렌지 주스만 말없이 마셨다. 그는 공부방을 따로 두었고 학교 선생님을 가정교사로 모셔놓고 부족한 공부를 하고 있었다. ‘이렇게 사는 사람들도 있구나.’ 내 자신이 더럽고 비루해 보였다. 내 손이 그 집 가구 어디에라도 닿으면 곧 더러워질 것 같아 함부로 만질 수도 없었다. 육중한 그 집 대문을 나와 서너 발자국 걸어 나왔을 때 비로소 나는 참담해져 고개를 들 수가 없었다. 집에 오는 내내 고개를 숙이며 우리들의 질 낮은 삶에 절망했다.     

 수십 년 후 그런 그가 돌아왔다. 외국에서 마르크스 경제학을 공부하고 좌파가 되어 돌아왔다. 한 번도 배고파 본 일도 없고, 억압받아 본 일도 없이 하고 싶은 공부 다 하고, 먹고 싶은 것 다 먹고 살아온 그가 가난한 프롤레타리아(proletariat)들을 해방시키겠다고 했다. 허긴 공산주의가 이 땅에 뿌리 내리던 그 옛날부터 골수 공산주의자들 모두가 지주의 아들이었다. 그들의 이론대로라면 그들은 가난한 백성들의 노동력을 착취해 부(富)를 축적하고 그 부를 바탕으로 공부해 공산주의자가 된 것이다. 그런 측면에서 본다면 그들이야말로 전형적인 착취계급이랄 수 있을 것이다.    

 그가 좌파정권이 들어서자 쾌 높은 자리에 올랐다. 이념이야 어찌되었던 간에 친구로서 축하해 줄 일이라며 몇몇 친구들이 점심자리를 마련했다. 나한테도 연락이 왔다. 나는 가고 싶지 않아 일단은 거절을 했지만 절친한 친구 몇 명이 그럴 필요까지 있느냐며 같이 참석해줄 것을 종용하는 바람에 그 자리에 끼게 되었다. 듣던 대로 그는 골수였다. 대북유화정책의 당위성을 설명하고 북한을 도와 통일을 이룩하는 일이야 말로 우리시대 사명이라는데 까지 비약했다. 지금도 ‘북한 퍼주기’에 대한 견해 차이는 상당하지만 그 때는 거부감이 더했다. 

 나는 그의 이야기를 듣고 속으로는 아니지만 겉으로는 고개를 끄덕거릴 만큼 유연하지가 못했다. 내가 강하게 부정을 했다. 지금도 결식아동이 수백만이고 서울역에 나가보면 노숙자들이 우글거린다. 우리사회내의 빈부부터 먼저 해결해야 한다고. 그리고 북한 동포는 도울 수 있을지언정 북한정권을 도와서는 안 된다고 했다. 그러자 그는 “자네, 빼앗길 게 많은 모양이지?” 하며 묘한 웃음을 흘렸다. 빼앗다니? 나는 섬뜩함에 입을 닫았다. 자기 것은 하나도 거론하지 않으면서, 수도 없이 이사(移徙) 다니며 간신히 마련한 집 한 채가 아니 꼬아 종부세 폭탄을 퍼붓고, 밤 잠 안자고 노력해 이룬 우리들의 오늘을 무시하는 그는 자기와 비슷하게 사는 것을 결코 용납할 수 없다는 표정이 역역했다. “아니, 너들이 그렇게 컸어.”하는 그의 이면을 읽었을 때 그는 껍데기 같아 보였다. 절실하지도, 진실하지도 않다고 생각했다. 그런 의식의 밑바닥엔 좋은 문벌로 태어나 구태여 세상일에 각고면려(刻苦勉勵)하지 않아도 되는 자의 오만함이 도사리고 있었다. 가진 것 많아 돈 걱정 않고 하고 싶은 공부 다 한 그는 프롤레타리아로 자처하고, 허겁지겁 밑바닥 삶을 살아온 우리들을 오히려 부르주아(bourgeois)로 매도하고 마음만 먹으면 얼마든지 빼앗을 수 있다고 생각하고 있는 듯 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자기한테 인사 청탁 같은 건 하지 말라고 못을 박았다. 결국은 그렇게 비쳤구나. 모두들 수치로 얼굴이 벌겋게 달아올랐다. 어색하게 끝이 났다. 밖에는 봄비가 오고 있었다. 갑자기 내린 비로 사람들은 황망히 오고갔다. 봄비만큼 내 마음도 차갑고 씁쓸했다. 

 사람은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 비록 성공했어도 그 도를 잃지 말아야(達不離道)하며 궁하면서도 의를 잃지 않아야 한다(窮不失義)고 했다. 그는 개선장군처럼 개선했지만 나는 그가 하나도 부럽지 않았다. 당시의 모든 좌파들이 그랬던 것처럼 그 역시 시야가 부족했고 자기들만이 우리 사회를 개혁해 나갈 수 있을 거라는 아주 편협한 사고를 가진 듯 했다. 그리고 자신들과 뜻을 같이하는 자들끼리만 몰려다니며 위화감을 조성했다. 그 이후 그는 나와 친하지도 않았기에 연락하지도 않았지만 나 역시 그에게 연락하지 않았다. 그러면서도 그는 여느 정치인과 다른 어떤 도덕적 행위로 대중들의 존경을 받았다는 이야기는 듣지 못했다. 
 고쉬 캐비아(gauche caviar)라는 말이 있다. 세계최고의 요리인 캐비아(상어 알)와 푸아그라(거위 간)를 즐기면서 입으로는 가난한 노동자, 농민들을 위해 투쟁한다는 ‘귀족적 좌파’들을 일컫는 말이다. 차라리 민중 속으로 들어가 같이 고통을 감내하고 견디는 실천적 민중 운동가들이 훨씬 더 순수하다. 자기는 선친으로부터 물러 받은 넉넉한 부(富)로 외국 나가 공부하고 부로주아 생활을 누리면서도 입으로는 민중을 있는 자로부터 해방시켜야 한다고 떠드는 그들이야말로 가면을 쓴 자들일 것이다. 

새가 좌우의 날개로 난다면서 우파가 있는 반면 좌파도 있어야 한다면, 모든 민중을 따뜻한 눈으로 편견 없이 대하고 자기를 낮추는 겸손하고 순수한 좌파들을 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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