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역행(逆行)하는 한국 조경계

심우경 고려대학교 명예교수, 세계상상환경학회 회장
라펜트l심우경 명예교수l기사입력2017-01-04
역행(逆行)하는 한국 조경계




_심우경 고려대학교 명예교수
세계상상환경학회 회장


시작하며

가만히 있으면 중간은 한다는 말이 있다. 사람 위에 사람 있으니 괜히 아는 체 하다 망신당한다는 말일 것이다. 그런데 한국 조경계가 죽을상이니 평생을 조경계에서 최고의 직장생활((한국종합조경공사 7년, 전남대 조경학과 7년, 고려대 27년)을 하고 은퇴한 본인은 가만히 보고만 있을 수 없어 펜을 들었다. 아니 한국 조경계 소식통인 라펜트에 건의했다. 어려운 시기에 원로들의 지혜를 모아야 되지 않겠냐고. 교육계뿐만 아니라 공직사회. 업계에서 60~70년대는 예기치도 못했던 조경이라는 업종을 만나 잘 활동하다 퇴직한 원로들이 많으니 지혜를 들어보자고. 


조경학의 등장

조경은 사회의 필요와 요구로 등장한 근대 학문이고 업종이다. 조경 이전에는 조원(정원)이라는 분야가 인류의 탄생과 더불어 발전되면서 건물과 담장 사이의 공간을 실용, 장식, 상징적으로 가꾸는 업종이었다. 그러던 18세기 무렵 영국에서 풍부한 석탄 에너지를 이용하여 시작된 산업혁명으로 도시에 공장이 늘어남에 따라 일자리가 많이 생겼고 농촌 청소년들이 더 나은 삶을 위하여 일자리를 찾아 도시로 몰려들게 되었다. 도시는 한정된 땅에 갑자기 인구가 늘어나니 집을 짓고 도로를 건설하는 등 기간시설을 확충하느라 도시 안의 자연녹지가 사라지게 되어 열악한 환경에서 살아야 하는 산업일꾼들은 건강이 피폐해졌다. 따라서 공장주 입장에서는 일꾼들의 노동생산성이 떨어져 산업체 운영이 어려워지게 되었다.
  
당시만 해도 영국에는 왕족들만 출입이 허용된 하이드파크, 큐 가든, 켄싱톤 가든 등의 정원(royal parks)들만 있었는데 이들 정원은 서민들로서는 이용할 수 없는 그림의 떡이었다. 여기서 우리가 혼동하는 점은 하이드파크하면 이미 공원이라는 제도가 존재했던 것으로 착각한다는 점이다. 여기서 파크는 궁궐 주변의 수렵원(hunting park)에서 비롯된 용어이고, 큐 가든은 큐 궁(Kew Palace)의 수렵원이 19세기 식물원(botanic garden)으로 발전되며 붙여진 명칭이지 건물주변 정원의 의미가 아니다. 혹시 1,112,000㎡의 넓은 땅을 정원(큐 가든)이라 부르는 것에 다분히 저의가 있고 분명히 공원으로 분류해야 하는 것인데, 순천만정원도 이러한 저의는 모른 채 명명한 것은 아닌지 모르겠다.


큐 가든 내의 원래 큐 궁(Kew Palace) 후정과 전정(2016)

위생시설도 제대로 못갖춘 불결한 달동네에서 살아야 하는 일꾼들에게 주말이라도 자연 속에서 휴식을 취하고 재충전을 할 수 있는 방안으로 공원(public park)이라는 제도가 1843년에 추진되었다. 당시 영국 산업도시 버큰헤드(Birkenhead)에서 챠트워즈 (Chartworth) 정원사 팍스톤(Paxton)에 의뢰하여 시내에 쓸모없이 버려진 땅에 일반 시민들이 자유롭게 이용할 수 있는 공원녹지와 공원주변 고급주택가를 설계하게 하여 버큰헤드 파크를 1847년에 개장하였다. 인류 역사상 처음으로 도시공원이 등장하게 된 것이다.  


1847년 개장한 버큰헤드공원은 오늘날 봐도 손색없이 잘 설계된 공원이다(2015)

여기서 도시공원의 등장은 큰 의미를 가지는데, 도시화로 인해 열악한 환경에서 살아야 하는 서민들에게 휴식 공간제공, 쓸모없이 버려진 땅의 활용, 아름다운 공원주변에 고급주택을 조성하여 분양함으로써 공원건설비를 충당할 수 있는 점 등 1석3조의 효과를 얻었던 점이다. 마침 미국의 똑똑한 농부였던 옴스테드가 농업선진지 견학 차 영국 방문 중 버큰헤드공원에 들러 많은 시민들이 아름다운 공원에서 자유롭게 노니는 모습을 보고 감명을 받은 후 미국으로 돌아가 ‘영국에서 미국 농부의 견문기(Walks and Talks of  An American Farmer in England, 1850)’를 출간하고, 왕족공원이나 도시공원 제도가 없었던 미국에도 이 제도를 도입해야한다고 주장하며, 당대의 미국사회에 영향력이 큰 다우닝(Downing, A.J., 1815~1852)과 뜻을 함께하여 활발히 여론조성을 하며 뉴욕의회를 설득하였다. 

이런 주장을 뉴욕시가 받아들여 1857년 뉴욕에서 쓸모없이 방치된 돌산 100여만 평의 땅에 도시공원을 조성하기 위해 국제현상공모를 한 결과 41개작이 응모되었다. 여기서 옴스테드(Olmsted, F.L., 1822~1903)와 영국 출신 복스(Vaux, C., 1824~1895))가 출품한 ‘푸른 초원계획(Greensward Plan)’이 1등으로 당선됨에 따라 옴스테드는 공원조성공사 감리 책임을 맡게 되었고, 뉴욕시와 공문을 주고받는 과정에서 본인의 직함을 1858년 처음으로 조경가(landscape architect)라는 조어(造語)를 쓰기 시작했다. 이 직함의 의미는 종래 건물과 담장 사이 사적인 공간을 다루는 정원사(gardener)를 벗어나 공공성이 있는 넓은 부지에 자연을 재도입함으로써 산업시대 인간이 고향인 자연을 떠나 살아가고 있는(divorced from the nature) 현대인들에게 자연을 되찾아 주겠다(remarriage)는 철학을 가지고 ‘푸른 초원’이라는 설계제목을 붙여 자기를 경관(landscape)을 조성하는 전문가(architect)라고 칭한 것이다. 여기서 주목할 점은 조경가는 인간과 자연을 재결합시켜 인간의 본 고향을 되찾게 해주는 역할을 부여받았기 때문에 가장 숭고한 직업이고, 공원은 좋은 땅이 아니라 버큰헤드나 센트럴파크처럼 버려진 땅에 조성함으로써 국토를 효율적으로 이용한다는 점이다. 


바위산에 조성된 뉴욕 센트럴파크는 현대조경의 효시이며, 미국인들의 자부심이다(2014)

옴스테드는 뉴욕 중앙공원 설계가로 갑작스럽게 유명인사가 되었다. 당시 링컨 대통령은 옴스테드에게 부통령을 제의했으나 거절하고 평생 조경설계를 하면서 ‘미국조경의 아버지’로 추앙받고 있다. 1999년 ASLA 100주년 기념식이 보스톤 국제회의장에서 개최되었는데 옴스테드 기념우표를 발행함으로써 미국인들이 조경가 옴스테드를 얼마나 존경하는지 알 수 있었다. 한편, 옴스테드 조경설계사무소에 취업한 엘리어트(Charles Eliot)라는 청년이 조경에 심취해 열심히 일하다가 병환으로 38세(1897) 젊은 나이에 세상을 떠났는데 그의 부친이 당시 하버드대 총장으로 자식을 기리기 위해 1899년 하버드대 디자인대학원 조경학과를 개설하였다. 이어서 미국조경가협회(ASLA)도 창설되며 세상에 조경학이 등장하게 된 것이다. 
    

뉴욕 센트럴파크 150주년 기념 경제 분석 보고서; 자료 Central Park Conservancy 
2007년도에 3억5천9백만 달러의 경제활동과 3,780명의 정규직 일자리 창출

여기서 우리가 주목해야 할 점은 조경의 등장 배경과 조경학과 개설의 의미이다. 기존의 사적인 좁은 공간을 다루는 조원술에서 공공성이 있는 넓은 부지를 다루는 새로운 분야가 탄생된 것이다. 생태학은 1866년에 독일 학자 헤켈(Haeckel, EHPL, 1834~1919)이 ‘집(oikos)에 관한 연구(logo)’라는 조어에 등장했고, 도시계획 및 설계는 1924년 하버드대에 첫 개설됐음을 주지해야 한다. 이미 우리사회에서 생태학이나 도시계획에 대한 인식은 자리 잡고 있지만 조경이 표류하고 있는 이유 중 하나는 조경학과 교수들조차도 조경의 업역이나 역할을 제대로 인식하지 못하고 있으며 전문성이 부족한 이유일 것이다. 

  
조경가와 정원사

서론을 길게 쓴 이유는 한국의 조경계가 조경 등장의 배경, 역할을 모른 체 밥벌이에 연연하는 것이 안타까워서이다. 요즘 정원이 크게 부각되고 있는데 정원(조원술)은 오래된 역사를 간직한 중요한 문화이다. 그러나 그 대상이 대부분 사적이고 예술적이며 규모가 협소하고 개인적 취향이 중요시되는 반면 조경은 공공성에 중점을 두고 인간과 자연을 재결합시키는 전문분야이기 때문에 차별되어야 한다. 각자의 직업관에 따라 정원사(gardener)가 되든 조경가(landscape architect)가 되어야 하지만 선진국에서 정원사는 실업계 고등학교나 2년제 전문대 출신의 영역이고, 조경가는 4년제 대학이나 대학원을 졸업한 뒤 자격증을 딴 사람이 주로 일하고 있다. 정원은 사적인 공간을 다루기 때문에 토지 소유주의 취향에 따라 예술성이 강조되므로 작품이라는 말을 사용하나 조경은 공공성에 중점을 두기 때문에 작품이라는 말을 써서는 안 되는 이유가 있는 것이다. 대학을 나온 사람들이 정원사를 하겠다는 것은 자기비하일 수 있고, 힘이 약한 층을 침범한다 할 수 있다. 기술 분야에 기능인(technician)이 있고 기술자(engineer)가 있듯이 정원사와 조경가는 상호 존중해 주며 자기 역할에 충실한 것이 공생의 길일 것이다. 

한 가지 더 따져 볼일은 18개 단체나 있는 조경계의 구심점이 되어 대정부 로비와 업역 확대에 앞장섬과 동시에 국제적으로도 인지도가 있는 실력자를 한국조경연합회 회장으로 추대하는 단합된 모습이 절실한데, 애매한 환경조경발전재단을 만들어 조경학회장이 겸임하는 것에 대해 본인은 10여 년 전부터 분리를 주장했다. 지금 조경계가 어려움을 당하고 있는 이때에 산적한 문제들을 슬기롭게 풀 수 있는 지혜를 모으고 해결방안을 강구해야 할 것이고, 어려울수록 남 핑계 대지 말고 전문가적 실력을 함양하며 단합해야 할 것이며, 앞을 보고 힘차게 뛰어나가야지 역행을 해서는 안 될 것이다.


마치며

조경의 업역은 지구 전체이다. 그러니 지구가 존재하는 한 조경가는 할 일이 많다. 그간 한국조경계는 건설업에서 하도급 받는 고질병이 정착됐는데 이제는 스스로 일을 만들고 창의적인 과제 발굴이 필요하다하겠다. 본인은 작년 우리나라 산의 1%에 해당하는 1억9천만평의 사찰림 보전을 위해 월정사에서 어렵게 국제심포지엄을 개최한 바 있는데, 조경계에서는 전혀 무관심이었으며, 한국조경학회는 소식도 알려주지 않은 폐쇄적 작태를 보였다. 사찰림 보전계획, 설계, 시공, 관리는 당연히 조경계의 몫인데 말이다.

즉, 조경가의 역할은 하나밖에 없는 지구를 보존(preservation), 보전(conservation), 개발(development)하는 일이며, 어지럽혀진 인공환경을 개선하여 삶의 질을 향상시키는 역할이다. 그래서 가장 숭고한 직업이고 ‘神의 代役者’라 칭한 것이다. 서구인들의 물질지상주의가 몰락해가며 새 질서가 등장하느라 국제경기가 혼란기에 처해 있지만 머지않아 안정을 되찾을 것이고, 어려운 시기일수록 본연의 일에 충실한 자세가 요구된다 하겠다.
_ 심우경 명예교수  ·  고려대학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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