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경명사특강]서원우 박사의 나무와 문학[제11회]

시시(詩詩)한 나무이야기 ⑪
라펜트l강진솔 기자l기사입력2011-12-30

21. 십일월의 숲은 조락(凋落)과 비움의 미학

맑은 서리에 취했던 단풍의 향연도 어느덧 시들은 낙엽이 되어 대지(大地)로 회귀하는 만추(晩秋)의 숲은 마음을 텅 비워가는 대자연의 의연한 자태이다. 이는 마치 나무가 현재의 자기 위치에서 분수를 지켜 만족 할 줄을 알면 욕되지 않음(知足不辱)을 알기에 겨울을 나기 위해서는 아낌없이 주고 떠나는 자연회귀와 무소유의 섭리를 다시 생각하게 하는 뜻 깊은 조락의 계절이라 할 수 있다.

 

그렇게 곱던 단풍이 시들어 떨어지는 늦가을의 정취를 그저 아쉽고 공허한 감상으로 치우치기엔 그 의미가 너무 심오함을 나무와 숲에서 감지 할 수 있다. 즉 나무는 조락으로 비로소 그 본연의 골격인 개골미(皆骨美)가 들어나며 그로 인해 텅 빈 숲은 밝은 햇살로 가득 채워지고 맑은 바람으로 소통하는 자연의 소중한 자산(資産)으로 가득 채워진다. 생물학적으로도 조락은 더 이상 광합성작용을 지속 할 수 없는 본능적 기작(機作)이기도 하지만 또한 만유인력의 법칙과 종교의 심오한 가르침을 말없이 보여주는 미학의 표상이라 할 수 있다.

 

그러므로 십일월의 조락은 빈손으로 자연회기하며 숲을 텅 비움으로서 다음해에 더욱 많은 삼라만상으로 채워지는 소생의 큰 밑거름이 되기에 심미성과 유현미를 느끼게 한다. 이는 물고기를 모으려면 먼저 물을 소통시키고, 새를 모으려면 먼저 나무를 심는다.’는 원대한 의미의 이치를 되새기며 재음미하는 뜻에서 산림청에서는 그간 매년 십일월 첫째 토요일을 육림의 날로 정하고 봄에 심고 가꾸었던 숲을 돌보아 위대한 소생을 위한 유지관리의 날로 정하여 시행하고 있다.

 

더욱이 금년은 유엔이 정한 세계 산림의 해이며 또한 경남 창원시와 산림청이 주관하는 유엔 사막화 방지협약10차 당사국 총회가 지난달 경남 창원시에서 개최되어 큰 성과를 거두었다고 한다. 이때 표방했던 대지에 대한 사랑, 생명으로 보답하는 대지(Care for land, Land for life)’라는 메시지를 조락의 텅 빈 숲에서 다시 되새겨 본다.




구름이 엷게 깔린 지리산의 노고단(1506m)정상주변에서 바라본 섬진강변의 늦가을 정취(사진 상)와 노고단 정상주변의 진달래와 철쭉군락은 이미 조락으로 텅 비운 정경(사진 하).




노고단 정상에 오르는 길목에 오랜 세월의 풍상풍우를 감내하고 굳건히 서 있는 구상나무(사진 )와 미역줄나무, 신갈나무군락은 이미 조락으로 마음을 비운 듯 대피소를 품어 안은 정경(사진 하)







 



22.
동짓달과 향촌의 잃어버린 풍경

오동잎은 이미 지고 뒷동산 숲엔 가랑잎이 소복이 쌓이는 음력 십일월의 향촌은 대설과 동지가 드는 본격적인 중 겨울의 을씨년스런 정취이다. 가을에 풍성한 듯 거두었던 곡식도 환곡(還穀)과 조세(租稅)내고 소작료(小作料)까지 갚고 나면 다음해 춘궁기까지 버티기가 빠듯하기에 내핍과 농한기의 긴긴 겨울밤에 아낙들은 길쌈으로 남정들은 볏짚가공으로 농사와 일용품 생산에 영일이 없었던 향촌의 정경이다.

 

그래서 농가월령가의 ‘… 등잔불 긴긴 밤에 길쌈을 힘써 하소 / 베틀 곁에 물레 놓고 틀고 타고 잣고 짜네 / 자란 아이 글 배우고 어린아이 노는 소리 / 여러 소리 재잘 이니 집안의 재미로다 / 늙은이 일 없으니 돗자리나 매어 보세…’라고 읊고 있다. 이는 여인들의 섬섬옥수 길쌈 솜씨가 오늘날 세계적인 섬유산업의 원초가 되었으며, 특히 우리의 주곡농업인 벼농사의 부산물 볏짚은 농가의 지붕을 비롯하여 새끼, 짚신, 가마니, 멍석, 둥구미, 삼태기 등의 볏짚수공예(藁草手工藝)가 과거 농촌의 소박하고 친환경적 자원순환의 볏짚미학으로 오늘날 매년 세계를 제패하는 각종 기능올림픽기예의 원동력이라 할 수 있다.

 

1900년대 초 영국의 세계적인 여류 탐험가 비숍여사가 한강에서 남한강을 거슬러 한국의 내륙중심부 깊숙이 탐승(探勝)한 소감은 가장 한국적인 풍광으로 기승전결의 운율적인 산의 능선과 그 아래 옹기종기 모여 있는 취락의 형태가 가장 인상적이었다고 한다. 특히 늦가을 뒷동산에 익어가는 빨간 감나무를 배경으로 하고 연노란 이영으로 이은 농가 지붕의 형태, , 색채, 그리고 질감은 그의 뇌리에서 지울 수 없는 향촌의 백미였다고 전한 신문기사를 읽은 적이 있다. 

 

그렇다 이제 4대강 사업이 완료되어 가는 시점에 한강에서 남한강을 거슬러 동강에 이르듯이 내륙 깊숙이 향촌의 잃어버린 풍경을 되찾는다면 가장 한국적인 것이 가장 세계적인 문화유산으로 자리매김 할 수 있는 진정한 4대강 유역의 살아있는 자연사박물관이 될 것이다.




고향 뒷동산 감나무엔 노모가 내다 건 홍등처럼 감이 익어가며 자녀를 기다리다 못해 까치가 대신하여 기다리고, 텅 빈 들녘은 다시 봄이 올 때까지 석탑이 지키고 있는 만추의 정경(사진 : 충북 괴산군 장연면 송덕리)






강진솔 기자  ·  라펜트
다른기사 보기
lafent@lafent.com

네티즌 공감 (0)

의견쓰기

가장많이본뉴스최근주요뉴스

  • 전체
  • 종합일반
  • 동정일정
  • 교육문화예술

인기통합정보

  • 기획연재
  • 설계공모프로젝트
  • 인터뷰취재

커뮤니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