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0년 역사가 숨쉬는 日 최초 서양식 공원 ‘히비야공원’

한일 조경인 축구단, 히비야공원 답사 - 1
라펜트l전지은 기자l기사입력2016-11-09


1903년 일본 최초의 서양식 공원인 히비야공원(Hibiya Park, 日比谷公園)은 61,636.66㎡ 규모의 도심 속 공원이다. 공원 주변은 고층건물들이 에워싸고 있어 ‘도시의 오아시스’라 불린다. 공원은 도쿄도 건설국의 관할로 재단법인 도쿄도공원협회가 관리하고 있다.


지난 10월 28일, 한일 축구 친선경기를 위해 일본 도쿄로 원정을 떠났던 한일 조경인축구단원들은 도쿄 심장부에 있는 히비야공원을 찾았다.


공원 조성 당시 일본은 근대화시기로, 서양에서 ‘Public Garden’이라는 개념이 들어왔고 이를 公園(공원)이라고 번역해 도입했다. ‘Public Garden’은 산업혁명 이후 공업의 발달로 악화된 도시환경을 개선하기 위해 왕과 귀족의 사적인 정원을 시민들에게 개방한 것부터 시작됐다. 우에노(上野)나 아사쿠사(浅草), 시바(芝) 등지에 있었던 신사나 절의 부지를 공원으로 전용(轉用)하던 것에서 벗어나 도시계획으로 공원을 설치하려는 첫 번째 시도인 것이다.


히비야공원의 설계는 공모부터 실시 설계안 결정까지 여러 안이 엎치락 뒤치락하기도 했고, 정치적 이유 등 몇 가지 난제가 있어 공원조성까지 10년의 세월이 걸렸다고 한다.


이 일대는 에도시대 다이묘(영주)의 근거지였고, 메이지시대에 이르러서는 일본군 연병장으로 사용됐다. 2차 세계대전이 일어나자 나무를 벌채해 황폐화됐으며, 금속 회수 때문에 건축물은 모두 철거됐다. 전쟁이 끝난 뒤 공원을 복구해 1961년에 재개장했다.


한국 역사상으로도 히비야공원은 중요한 곳이다. 1919년 2월 8일 도쿄에서 유학중인 조선 학생들은 도쿄YMCA에서 ‘2.8독립선언서’를 낭독하고 집회를 가진 후, 2월 12일과 23일 도쿄의 중심부에 자리한 히비야공원에서 만세운동이 산발적으로 일어났기 때문이다. 2·8독립선언은 3·1운동을 일으키는 기폭제역할을 했다.





공원과 조금 떨어져있는 주차장에 버스를 주차하고 공원으로 한참을 걸었다. 시내 주차장은 주차요금이 비싸다고 한다. 10분당 700엔, 한화로 7000~8000원이다. 도심내에서는 걷기를 권장하는 것이다.


지난 2012년 도쿄를 찾은 박원순 서울시장이 빈틈없이 짜인 보도블록에 감탄하며 바닥에 쪼그려앉았던 일이 있다. 일본의 거리는 발에 걸리는 것 하나 없이 걷기에 편안하다. 심지어 수목보호대 마저도.




도쿄의 거리들은 지역주민들이 조합을 꾸려서 유지관리한다고 한다. 수목부터 바닥까지 거리를 깨끗하게 유지하도록 스스로 힘쓴다. 밤이 되면 건물에 아름다운 조명이 켜져 거리를 밝힌다. 모두 조합에 의해서 이루어지는 일들이다.




가는 길에 만난 독특한 모양의 자전거 보관소. 동전을 넣고 보관할 수 있다. 지붕이 없는 것이 특징.




큰 도로를 기점으로 오른쪽이 천왕이 살고 있는 황궁이고, 왼쪽이 가스미가세키(霞が関)로 한국의 광화문에 해당한다. 국토교통성, 환경성, 농림수산성 등 정부기관 대부분이 여기에 있다. 히비야공원은 왼쪽으로 난 횡단보도를 건너면 바로 있다.


이 근방의 가로수는 대부분 수양버들이 길게 팔을 늘어뜨리고 있다. 황궁 앞에는 해자가 있어 물이 흐른다. 그러나 가까운 지역인 긴자에서는 흐드러지는 수양버들에서 단정한 수종으로 바뀌고 있는 추세라 한다.






히비야 미츠케유적(日比谷見附跡)·신지이케(心字池)


히비야 미츠케(日比谷見附跡)는 파수꾼이 망을 보는 장소인 성(城)의 가장 바깥 성문으로 에도시대의 유적이다. 에도시대에 이 지역은 다이묘(영주)의 저택지역이었기에 에도성에 등성(登城)하기 위해서는 현재 히비야 교차로에 걸리는 위치에 있던 히비야 황궁의 일부이자 파수꾼이 경비하던 성의 가장 바깥 성문을 지나가야 했다. 이 돌담은 에도시대 초기에 축조됐다.

돌담 주위는 해자로 되어있었으나 그 일부를 신지이케(心字池)로 남겨두었다. 신지이케는 心자의 초서 모양으로 만들어진 일본 정원 연못을 일컫는다. 연못에는 쇠백로, 왜가리, 오리 등이 날아든다.

히비야공원을 설계한 혼타(本多静六) 박사는 독일유학을 했다고 한다. 그래서인지 조경에서 독일과 일본의 정원양식이 드러난다. 이곳은 일본풍이 강하다.





돌틈을 덩굴식물이 메우고 있다.





연못으로 안내하는 길

연못에 가까이 다가갈 수 있도록 판석이 놓여있다.


돌담 위에서 내려다본 풍경











연못을 바라볼 수 있도록 벤치가 늘어서 있다.



일본에서는 벤치에 앉아 식사를 하는 사람들이 많이 보인다. 일상인듯 자연스럽다.





‘이 수목의 이름은?’ 수목을 설명하는 안내판은 수형과 잎, 열매를 자세하게 설명하고 있다.


첫 번째화단(第一花壇)과 펠리컨분수

1903년 개원 당시의 모습을 간직한 화단인 첫 번째 화단은 히비야공원의 상징이다. 기하학적으로 디자인된 화단에서 서양식 정원의 모습을 발견할 수 있다. 이곳에 설치된 펠리컨 분수는 TV 드라마의 배경으로 등장하기도 한다.


첫 번째 화단으로 가는 길. 기둥 사이로 살짝 보인다.



덩굴의 나뭇가지가 기둥을 감싸고 있다.



공원의 시작을 볼 수 있는 안내판. 일본인들은 이곳에서 서양의 꽃을 즐겼다.





굉장히 잘 정돈된 느낌이다.


잔디광장 한 가운데 곧게 뻗은 수목이 군식되어 시선을 잡아끈다.



직사각형의 네 귀퉁이가 이러한 형식으로 잘려있다. 야트막한 언덕 중앙에도 정형식재가 되어 있다.

독특한 모양의 울타리

음수대의 모습

음수대 옆으로 난 계단을 올라가면 울타리 너머로 작은 음악당의 모습이 보인다. 마침 연주회가 열리고 있어 공원을 둘러보는 내내 음악과 함께 할 수 있었다. 작은 음악당을 이용하려면 6개월 전부터 히비야공원 서비스센터에 접수를 해야 할 만큼 인기다. 이용료는 하루에 22,200엔, 객석수는 1,000석이고 무료 콘서트만 가능하다.



한쪽에는 서양식 조각상이 반긴다.


첫 번째 화단 너머로 수령이 오래된 수목들이 가지를 뻗어 건물들을 차폐하고 있다.

생울타리 너머로 보이는 건물은 화장실이다.



펠리컨 모양의 분수. 1903년의 모습을 간직하고 있다.


구 히비야공원사무소

1910년 2월 히비야공원을 관리하기 위해 세운 구 히비야공원사무소는 현존하는 몇 안 되는 메이지시대 서양식 건축물이다. 1976년에 도쿄도공원자료관으로 사용하기 위해 내부를 일부 개조했으나 상당 부분 건축 초기의 독일 방갈로 양식을 그대로 유지하고 있다. 1990년 도쿄도유형문화재로 지정됐다.


방갈로(bungalow)는 인도의 벵골 지방 특유의 단층에 베란다가 달린 작은 목조 가옥을 가리켰는데, 인도가 식민지로 있을 당시에 현지의 서양인들 사이에 퍼지고, 얼마 후에는 이 양식이 영국 본토나 미국 서부에 건너가서 발달했다. 지붕의 물매가 완만하고 처마 끝이 많이 나온 주거용 건물로, 거실의 주위를 베란다로 둘러싼 것이 특징이다.


펠리컨 분수 너머에 구 히비야공원사무소가 보인다.




옆으로 돌아가보니 작은 테이블과 벤치들이 놓여있다. 저 멀리 사람들이 모여있는 곳은 흡연구역이다.





공원사무소 뒷편 건물은 카페인듯 조명과 테이블이 있다. 음악도 흘러나온다.



첫 번째 화단에서 만난 까마귀


글·사진 _ 전지은 기자  ·  라펜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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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j870904@nat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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