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거를 기억하고, 정체성을 유지하며, 미래를 향해 나아가는 도시재생

해방촌도시재생지원센터, ‘해방촌 마을 인문학’ 특강 개최
라펜트l전지은 기자l기사입력2019-09-27

손관승 작가

“과거를 기억하고, 정체성을 유지하며, 미래를 향해 나아가는 도시재생”

해방촌 마을 인문학 다섯 번째 이야기가 (前)MBC 베를린 특파원 손관승 작가의 ‘도시재생의 매력도시, 베를린’이라는 주제로 지난 20일(금) 해방촌 주민공동이용시설 2층에서 열렸다.

지역주민과 예술가를 중심으로 한 도시 전체의 뉴 베를린 프로젝트는 세계적으로 공간혁명과 라이프스타일을 주도하는 도시로 변모해가고 있다. 손관승 작가는 베를린을 죽어가던 ‘동력’을 ‘다시’ 얻고자 하는 도시재생의 원래 정신에 부합해 세계에서 가장 큰 규모의 도시재생 작업을 벌이고 있는 곳이라 소개했다.

그는 베를린의 도시재생을 ‘me’로 표현했다. “‘me’는 ‘나’를 지칭하는 단어이자 ‘Moving Energies’의 준말이기도 하다. ”me는 이동하는 에너지, 동력전달자로서 도시의 특별한 힘을 말한다. ‘나’라는 정체성과 창조적 기운은 도시재생뿐만 아니라 이 시대를 살아가는 많은 사람들의 화두이기도 하다”는 것.

베를린은 서울과 같이 도시 한복판에 슈프레강이 흐르고 있으며, 중앙에 위치한 베를린의 심장 미테(mitte) 지역과 포츠담광장을 중심으로 도시재생이 활성화돼있다. 미테는 강과 인접해 있으며 베를린 장벽이 세워졌던 지역으로, 2차 세계대전 이후 폭격으로 황폐화됐다가 재생으로 도시의 활력을 얻었다.

베를린 도시재생의 특징은 ‘과거를 기억하는 공간’이라는 점이다.

베를린 도시재생을 전체 총괄한 도시계획가 한스 슈팀만은 장벽 붕괴 이후 도시재생의 콘셉트를 ‘비판적 재건’으로 설정했다. 과거의 역사적 토대를 살려 역사적 흐름을 유지하며 현대를 재건한다는 방향이었다. 베를린은 세계대전 폭격으로 그라운드 제로가 된 도시이자, 장벽을 중심으로 양쪽, 특히 동베를린이 황폐화됐다는 특수성이 있었기에 다 부수고 도시를 새롭게 건설하는 것이 예산이 더 적게 드는 상황에서 미테와 포츠담광장 등 원도심지역의 파사드를 살리기로 결정한 것이다.

올해는 베를린장벽 붕괴 30주년이며, 장벽은 베를린을 상징하기도 한다. 이에 베를린 장벽의 일부를 남기고 재생한 것이 동쪽 장벽의 ‘east side gallery’다. 1316m의 장벽에 세계의 예술가들이 몰려와 그래피티를 했고, 이것은 뉴 베를린을 상징하는 세계 최장 오픈갤러리로 자리 잡았다. 냉전의 상징에서 혁신적 창의공간으로 변화한 것이다.

이밖에도 유대인 학살로 상징되는 홀로코스트, 그 중에서도 소외된 공산주의자, 동성애자, 여호와의 증인, 그리고 집시까지 아우르고 있다. ‘슈톨펜슈타인(stolpersteine, 기억의 돌)’은 수용소로 끌려간 사람들 중 집이 없는 사람들의 이름과 수용소 이름, 수용기간 등을 적어 바닥에 두고 기억하는 것이다.

손 작가는 “사람들은 상징을 찾고 싶어 하며, 과거에 없애던 것들 다시 찾는다. 이것이 과거의 것에 새로운 콘셉트를 불어넣은 ‘뉴트로(new+retro)’”라고 설명했다.


슈톨펜슈타인(stolpersteine, 기억의 돌) / wikipedia


타헬레스 How long is now / wikimedia

손 작가는 베를린이라는 도시를 한 마디로 정의한다면 ‘질문을 던지는 공간’이라고 말했다. 이것이 가장 잘 드러나는 것이 베를린 미테지역 예술가들의 공간 타헬레스에 그래피티된 ‘How long is now?’라는 예술가들의 질문이다.

베를린 미테지역의 브란덴부르크 문에서 박물관 섬까지의 unter den linden이 핵심거리로, 스토리와 예술이 모여 있다. 베를린 하면 궂은 날씨가 떠오르지만 ‘비가 내리는 날보다 박물관, 갤러리의 수가 더 많다’는 말이 있을 정도로 문화자산이 많다. 3개의 오페라하우스, 500개의 연극 극장, 175개의 박물관, 미술관 등이 위치해있다.

이 예술의 핵심지역에는 ‘타헬레스(Kunsthaus Tacheles)’로 대표되는 예술가들의 활동지역이 있다. 타헬레스는 1908년 완공된 쇼핑몰이었으나 세계대전 이후 폐허되고 1990년에 철거 예정이었던 5층짜리 건물이다. 장벽 붕괴 이후 예술가들이 이곳을 점령하면서 그래피티로 예술활동을 시작해 도시재생으로 이어졌다. 타헬레스는 ‘자신의 주장이나 견해를 명확하게 말한다’라는 의미를 가진 유대어로, 예술가들은 사회문제를 직설적으로 표현했다. ‘너희는 건물을 가졌지만 쓰지 않고 있고, 우리는 돈이 없지만 작업실이 필요하다’라고 말하며 이곳에 자리잡았다.

손 작가는 “베를린은 함부로 답을 주지 않는다. 스스로 답을 찾도록 하는 도시로 세계의 극찬을 받는 반면 서울은 자꾸만 답을 주려고만 하지는 않은가?” 질문하기도 했다.

포츠담광장쪽에 있는 유대박물관(jewish museum) 또한 마찬가지다. 공간 자체를 서늘하게 비움으로써 베를린의 사라진 공간들을 표현하고 있다. 동선 또한 독특해 공간에 들어서면 끊임없는 질문을 받는 공간으로 대표된다.

베를린은 현대미술의 중심지로 각광받고 있으며, 아우구스트 거리의 현대미술 갤러리 ‘kw’와 ‘me’에서는 정기적으로 현대미술작품들이 전시되고 있다. 특히 me는 들어서자마다 카페를 만나볼 수 있는데, 현대미술은 어렵다는 인식을 깨기 위해 커피 한 잔 마시고 점차 현대미술과 친해지라는 의미를 담고 있다. 이밖에도 디자인과 예술 서점 ‘Do you read me?’, 벙커로 이용되던 곳을 사설미술관으로 바꾼 ‘Boros Collection’까지 다양한 현대미술을 만나볼 수 있다.


비키니 베를린(Bikini Berlin)


markthalle 9 / wikimedia

동베를린이 도시재생으로 활성화되면서 공동화현상이 발생한 서베를린을 활성화시키기 위한 노력들 중 대표되는 것이 혼합복합공간 ‘비키니 베를린(Bikini Berlin)’이다.

1960년대 말까지 왕성하게 패션산업을 이끌었으나 냉전시대를 거치며 방치된 ‘비키니 하우스(Bikini-Haus)’가 2010년부터 2014년까지 리모델링을 거쳐 새롭게 탄생한 것이다.

비키니 베를린의 가장 큰 특징은 ‘도시정글’이라는 것. 중앙에 동물원을 끼고 있어 창문너머로 자연과 동물들을 감상할 수 있다. 쇼핑은 물론 레스토랑, 워크플레이스, 극장, 전시, 호텔 등 다양한 라이프스타일 활동을 모아놓은 공간이며, 각종 의류, 디자인을 위한 팝업 스토어를 거의 무상으로 대여해주며 산업활동화에 기여하고 있다.

서베를린의 공동화현상, 현대적 슈퍼마켓의 등장으로 텅 빈 재래시장 또한 도시재생의 대상이 됐다. 상인, 지역운동가 등 다양한 이해관계자가 모여 활성화시킨 것이 ‘markthalle 9’이다. 겉모습은 과거의 모습 그대로 보존하고 내부는 현대적으로 리모델링했다. 사람들이 이곳을 찾는 이유는 매주 목요일 저녁이면 전세계의 패스트푸드를 다 만나볼 수 있기 때문이다. 음식혁명이 일어나는 곳 ‘markthalle 9’는 젠트리피케이션으로부터 지역주민을 보호한 성공사례로 꼽히기도 한다.

베를린 역시 젠트리피케이션을 막을 수는 없는데, 최대한 지역주민에 대한 권리를 보호하는 규제를 많이 두고 있다. 에어비앤비의 경우 집값의 폭등을 막기 위해 사람이 살고 있는 집의 방 하나를 대여하는 것은 가능하나 집 전체를 빌려주는 것은 규제하는 등 지역의 시민단체와 언론, 지자체 등이 함께 이야기하며 협의해나가고 있다.

손 작가는 ‘나는 베를린에 가방을 두고왔다’라는 가수 겸 여배우 마를렌느 디트리히의 말을 인용하며 “많은 이들이 베를린을 topophilia(장소애)로 꼽는 이유는, 단순히 사람을 위로하는 것에서 그치는 허무한 도시가 아닌 힘과 용기를 주는 도시이기 때문”이라며 ‘과거를 기억하고, 정체성을 유지하며, 미래를 향해 나아가는 도시’라는 베를린 도시재생 콘셉트에 대해 생각해보길 바란다고 전했다.



글·사진 _ 전지은 기자  ·  라펜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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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j870904@nat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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