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기행] 왕의 시선으로 바라본 창덕궁 후원(2)

아름다움이 조선 정원 중 으뜸
라펜트l전지은 기자l기사입력2015-10-20

조선 정원 중 으뜸이라 칭할만한 창덕궁 후원. 해외 인사가 한국에 방문하면 꼭 들르는 곳이 창덕궁 후원과 가구박물관이라 한다. 자연과의 조화로운 배치가 탁월하다는 점에서 1997년 유네스코 세계유산으로 등록되기도 했다. 그만큼 세계에 내놓아도 손색 없는 정원이라는 뜻 아닐까?


왕들의 휴식처로 사용되던 후원은 300년이 넘은 거목과 연못, 정자 등 조원시설이 자연과 조화를 이루도록 함으로써 조경사, 건축사적 측면에서 귀중한 가치를 지니고 있다. 후원은 태종 5년(1405) 창덕궁을 창건할 때 조성됐으며, 창경궁과도 통한다. 창덕궁 후원은 우리나라의 대표적인 전통조경시설로서 자연적인 지형에 꽃과 나무를 심고 못을 파서 아름답고 조화롭게 건물을 배치했다.


지난 번 부용지와 주합루 답사에 이어 다시 찾은 창덕궁. 이번에는 이원호 문화재청 국립문화재연구소 학예연구사와 유기석 조선왕릉관리소 주무관의 배려로 후원의 구석구석을 살펴볼 수 있었다.


사진으로나마 후원의 깊은 매력 속으로 들어가보자.





낙선재는 세 채의 집이 연결되어 있다. 낙선재는 조선 24대 임즘 헌종의 서재 겸 사랑채였고, 그 옆의 석복헌은 경빈의 처소였으며, 수강재는 대왕대비 순원왕후가 살았다. 단청을 하지 않은 모습에서 헌종의 검소한 성품을 엿볼 수 있다.



낙선재 후원은 화계로 조성됐으며 관목이 식재됐다. 괴석과 연꽃을 놓았을 석연지가 자리하고 있다.







부용지와 주합루



부용정



취병


주합루에서 내려다 봤을 때 부용지의 직선을 부드럽게 보이도록 취병을 두었다.


숙종이 지은 애련지와 애련정. 애련지는 '연꽃이 피는 연못'이라는 뜻이며 애련정은 북쪽에 간결하게 자리하고 있다.



'불로문'을 지나면 왼쪽에 애련지와 애련정이 위치하고 있다.



애련정에서 바라본 애련지의 모습. 애련지는 섬이 없는 방지로, 사방을 장대석으로 쌓아올렸다. 물은 흘러내리는 도랑물이 물길을 따라 폭포수처럼 떨어지게 만들었다. 원래는 연못 옆에 어수당이라는 건물이 있었으나 지금은 남아 있지 않다.



반대편에서 바라본 애련정과 애련지



구불구불한 못 위에 승재정이 고개를 내밀고 있다. 연못의 이름은 반도지.



길을 걷다보면 관람정이 보인다.



관람정은 부채꼴 모양으로 독특한 형태를 하고 있다. 



관람정에서 바라본 반도지의 모습.



관람정의 현판(왼쪽 위)은 파초 모양을 하고 있다. 파초는 자강불식의 의미를 지니고 있다.



존덕정은 후원 안에서 가장 늦게 지금의 모습을 갖춘 곳이며, 연지는 원래 두 네모꼴과 둥근 한 개의 연못으로 나누어졌다가 일제강점기에 하나의 곡선형으로 바뀌었다.



존덕정 안 북쪽 벽에는 '세상의 모든 시내는 달을 품고 있지만 하늘에 떠 있는 달은 유일하니, 그 달은 곧 임금인 나이고 시내는 곧 너희 신하들이다. 따라서 시내가 달을 따르는 것이 우주의 이치'라는 정조의 글귀가 쓰여있다.



폄우사는 왕세자가 독서하며 심신을 수련하던 곳이다. 존덕정 서쪽에 위치하며 '폄우'란 '어리석음을 고친다'는 뜻이다. 동궐도에는 'ㄱ'자 모양으로 그려져 있으나 현재는 '一'자 모양으로 변형됐다.



폄우사와 앞 뜰



폄우사 쪽에서 바라본 승재정의 모습





옥류천으로 가는 길. 후원 북쪽 깊은 골짜기에 흐르는 시내를 옥류천이라 한다.



취한정



후원 깊은 곳에서 물이 흘러나오는 길


1636년, 거대한 바위를 다듬어 그 위에 홈을 파서 휘도는 물길을 끌어들였고 작은 폭포로 떨어져 옥류천이 시작된다. 때로 흐르는 물 위에 술잔을 띄우고 시를 짓는 유상곡수연이 벌어지기도 했다.



바위에 새겨진 '玉流川'은 인조의 친필이고, 오언절구 시는 일대의 경치를 읊은 숙종의 작품이다.



소요정




청의정은 작은 논을 끼고 있으며 볏짚으로 지붕을 덮은 궁궐 내 유일한 초가집이다. 임금은 백성들에게 농사의 소중함을 일깨워주기 위해 수확 후 볏집으로 정자의 지붕 이엉을 이었다. 



태극정은 다른 정자들과 달리 높은 장대석 기단 위에 지어졌다.


농산정(위)은 '산으로 둘러 싸여 있다'는 뜻으로 방, 마루, 부엌이 있는 살림집 형태이다. 아래 사진은 농산정에서 태극정을 바라본 모습.



연경당은 1828년 효명세자가 아버지인 순조에게 진작례를 올리기 위해 건립했으나 지금 모습과는 상당히 다르다. 현재의 연경당은 1865년 고종이 새롭게 건립한 모습이다. 사대부 살림집의 제도를 본떠 왕의 사랑채와 왕비의 안채를 중심으로 이루졌다.



노비가 살던 곳



마구간



사랑채. 남자들이 기거하는 곳이다.



안채로 가는 문(위), 사랑채 앞의 수석(아래)



안채. 여자들이 기거하는 곳이다.



사랑채와 안채 사이의 쪽문으로 여인들이 음식을 날랐다(왼쪽), 부엌의 모습(오른쪽)





원래는 금천이 흐르던 곳이었으나 궐내 바깥의 천을 메우고 사유지로 팔았다.



이 향나무는 나이가 750년 된 것으로 추정되며 높이 5.6m, 뿌리부분 둘레는 5.9m이다. 향나무의 목재는 강한 향기를 지니고 있어 제사 때 향을 피우는 재료로 사용된다. 동쪽에 선원전이 있어 역대 임금을 위한 제례공간이 있어 향나무가 심겨졌다. 동궐도에서도 향나무의 모습을 볼 수 있다.



태풍을 맞은 향나무를 지탱하기 위해 인위적으로 지주목을 세웠으며, 지주목에는 와이어가 달려 잔가지들을 지탱한다.

글·사진 _ 전지은 기자  ·  라펜트
다른기사 보기
jj870904@nate.com

네티즌 공감 (0)

의견쓰기

가장많이본뉴스최근주요뉴스

  • 전체
  • 종합일반
  • 동정일정
  • 교육문화예술

인기통합정보

  • 기획연재
  • 설계공모프로젝트
  • 인터뷰취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