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중곤 남산르네상스 추진반장 ‘서울의 대표경관 남산’

[권지원 기자의 공원녹지행정 탐방]서울특별시 푸른도시국을 가다⑥
라펜트l권지원 기자l기사입력2011-08-14

서울의 중심이자 대표적인 자연경관요소는 어디일까? 서울시민의 약 20%가 이것의 자연경관으로서의 대표성을 인정(2005년 조사결과)하고 있는 이곳은, 한강과 도심을 연결하는 중심고리로서 중요 생태축이 되는 장소이기도 하다. 바로 남산이다.

 

장소가 가진 지형적, 역사적 성격이 배경이 되어 남산은 서울의 대표적인 상징공간이 되었다. 서울시 푸른도시국의 4개과와 더불어 하나의 독립적 조직으로 '남산르네상스 추진반'이 운영되는 것도 이와 무관하지 않을 것이다.

 

푸른도시국 탐방의 마지막 시간으로 남산르네상스 추진반의 정중곤 반장을 만나 자세한 사업내용을 듣고 왔다.



정중곤 반장


 

[인터뷰]정중곤 남산르네상스 추진반장


남산르네상스 추진반의 분장업무는?

우리 조직은 크게 시설계획팀과 조경계획팀으로 구성되어 있다. 시설계획팀은 총 4명이 배치되어 르네상스 사업의 총괄과 예장자락 재정비 사업, 곤돌라 리프트 설치 사업, 블로그 관리 등의 업무를 수행한다. 2명이 배속된 조경계획팀은 회현자락 재정비 사업, 한남보도육교 설치 사업, 서울성곽 복원 등을 맡아 시행하고 있다. 그중 토목직이 4, 녹지직이 1, 기능직이 1명으로 배치되어 있다.

 

역사경관으로서 남산이 중요한 가치를 갖는 이유는?

남산의 본래 이름은 인경산이었으나, 조선왕조가 건국되면서 태조 이성계가 1394년 도읍을 한양으로 옮기고, 북악 기슭에 경복궁을 건립하고 바라볼 때 남쪽으로 솟아있는 산이라 하여 자연스럽게 붙여진 이름이다.

 

남산은 역사적으로 서울의 형국을 구성하던 내사산(남산, 인왕산, 북악, 낙산)의 하나이며, 풍수지리상 안산 겸 주작에 해당하는 매우 중요한 산이다.

내사산 중에서 남산을 제외한 다른 세 산은 모두 석산에다 경사가 급한데 반해 남산은 비교적 완만하고, 주위가 숲으로 둘러싸여 있어 사계절의 경관이 아름답기 때문에 시민들에게 친근한 이미지를 주고 있다.

따라서 남산에는 등반유람하는 사람이 끊이지 않으며, 산간계곡의 그윽한 곳을 찾아 선계청유(仙界淸遊)를 즐기기도 하지만, 때로는 산정에 올라 도성의 전경은 물론 서남방으로 유유히 흘러가는 한강의 물결을 굽어보기도 하였다.

 

1892년 경부터 일본인들은 이곳에 황대신궁(皇大神宮) 건립을 계획하였으며, 청일전쟁에서승리하자 1897년에 1㏊의 토지를 빌려 화성대공원(和城臺公園)을 조성하고, 1898년 공원 안에 남산대신궁(후에 경성신사)을 설치하면서 남산을 훼손하기 시작하였다.

 

일본은 1905년 통감부청사를 남산 중턱(서울애니메이션센터 일대)에 건립하고, 1906년 초 경성이사청을 설립하여 그해 경성이사청 고시로남산 북면 일대 중 장충단, 체신국, 일본군사령부, 통감부의 각 소속지, 화성대 일본공원 및 민유지를 제외한 나머지 지역 전부를 경성공원이라 하고, 향후 경성관리청이 이를 관리하며 수목의 훼손, 토석 및 지초(芝草)채취, 조수의 보호 등 행위를 엄금한다.” 라는 이른바 경성공원 규칙을 발표하였다.

 

남산 동쪽 계곡에 위치한 장충단 지역을장충단공원이라는 이름으로 경성부에서 관리한 것은 1919 6월부터였다. 경성부는 이곳에 벚나무 수 천 그루를 심고 광장연못어린이놀이터산책로교량 등을 설치하였다. 1928년에는 화성대공원에 설치하였던 경성신사를 확충하여 본전(本殿)을 개축하였고, 일본 불교의 전파가 시작되어 많은 일본식 사찰이 지어졌다.


남산의 동본원사(東本願寺)는 가장 규모가 컸던 것으로 1906년 건축할 때 남산의 큰 소나무 목재와 돌을 사용하였다고 한다. 1926년에는 장충단지역에 경희궁의 정전(正殿)이었던 숭정전(崇政殿)을 옮겨와 일본인들의 사찰(조계사 본당)로 사용하였다.

 

일제는 1940년 〈조선총독부고시〉를 통해 서울시내 총 140개에 달하는 공원을 결정했는데, 장충단공원은 제8, 남산공원은 제9호로 결정되었으며, 이때 우리 국민들에게 신성시되었던 종묘와 사직단까지도 공원으로 결정하여 민족혼 말살을 추진하였다.

 

1945년 당시 지도에 의하면 남산은 남대문용산한남동장충동 일대를 포함한 넓은 범위를차지하고 있었으며, 이때까지만 해도 삼각산 - 창덕궁 후원 - 종묘 - 남산 -한강의 녹지축이 연결되어 있었다. 그러나 이후 주택 건립이 시급하다는 이유로, 또는 학교 건립에 필요하다는 구실로 도시계획 절차에 따라 공식적으로 잠식하기도 했고, 대통령 특명이나 정부의 필요 또는 무허가로 남산을 잠식해 갔다.

 

1968 9월 남산공원관리사무소가 설치되면서 남산공원이 체계적으로 관리되기 시작하였다. 당시 남산공원의 총면적은 78 4,668(2,589,404)이며, 임야 713,397(2,354,210), 대지 65,486(216,104), 기타 5,785(19,090)으로 공원 구획은 남산공원, 한남공원, 장충공원으로 구분되었다.


한양공원


 

오늘의 남산의 모습을 갖추기까지 서울시에서 기울여왔던 노력?

서울의 상징인 남산이 일제의 고의적 훼손과 도시의 급격한 성장과정에서 무질서하게 개발되고 자연경관이 잠식되었다. 이에 공원구역 내 잠식시설을 이전하고 역사적 위상과 자연경관을 회복하는 등 남산을 제모습으로 가꾸어 시민들에게 되돌려 줌으로써 서울의 중심적인 역사문화휴식공간으로 되살리고자, 1990 8월「남산 제모습가꾸기사업」의 기본방향을 정하고 사업을 추진하기 시작하였다.

 

「남산 제모습가꾸기사업」으로 정부기관 21, 외인주택 52, 개인주택 16동 등 잠식시설 89동이 남산공원에서 사라졌다. 특히 1994 11 30일 오후 3시 남산 주공외인아파트 2동이 우리나라 최초로 발파 철거되었는데, 철거 당일 보광동한남동 일대에는 많은 구경꾼들이 인산인해를 이루기도 했다.「남산 제모습가꾸기사업」의 일환으로 중구 필동에 남산골 공원 및 한옥마을 조성, 외인주택단지 지역에 야외식물원 조성, 안전기획부 이적지에 공원 조성, 봉수대 복원 등 남산공원이 복원정비됨으로써 시민공원으로 탈바꿈하게 되었다.

 

남산 제모습찾기사업이 시행 초기 수도방위사령부 이전과 남산골 한옥마을 조성, 외인아파트 철거와 야외식물원 조성 등 국민적 관심과 성원 속에서 상당한 진척을 이루었으나 사업 추진에 따른 막대한 예산과 기존시설 이해 관계자들의 반발 등으로 인하여 계속 추진할 수 없었다. 아울러 남산공원 관리자들도 이용보다는 보호 위주의 공원관리 의식으로 인하여 소극적으로공원을 관리하게 되고 점차 시민들의 외면을 받기 시작할 즈음 남산 제모습찾기사업에 대한 평가와 반성이 일어나기 시작하였다.

 

그러다가 2004년 접근성 개선계획을 수립(남산공원의 실태분석 및 개선방향 연구, 시정개발원, 2004)하고, 2006 하반기부터 사업에 착수하여 남산오르미, 소파소월길 차도축소 등 남산을 서울의 대표관광지로 활용하기 위한 사업들이 진행되었다.

 

남산에 대한 시민들의 다양한 요구가 쏟아질 무렵 공원을 총괄하는 공원과(현 공원조성과)에서 처음 시작한 것은 산책로를 시민들에게 돌려주기 위하여 그동안 통행이 허용되던 남측순환로의 일반차량에 대한 통제를 시작하였다.

 

2005 5 1일부터 시작된 차량 통제와 더불어 14㎞ 구간의 철제휀스를 걷어내고 3.5㎞에 달하는 북측순환로를 탄성 소재로 포장하는 등 그동안 차량 위주의 공간을 하나 둘 보행자와 자연에게 돌려주기 위해 노력하였다.

 

그리고 동물원과 식물원 철거 후 녹지로 복원하는 한편, 관광객들이 즐겨찾는 남산 정상부 팔각광장을 전면 리모델링하였다. 또한 주요지구(회현장충한남지구)에 대한 재정비와 남산의 식생에 대한 정비계획 등의 수립을 추진하는 과정에서 보다 종합적이고 체계적인 사업의 추진을 위해 남산르네상스 사업으로 통합추진하게 되었다.

 

남산공원에 대한 종합적이고 체계적인 정비 방안을 마련하기 위해 2007년도 하반기부터 남산을 어떻게 할 것인가에 대한 계획을 수립하게 되었고, 과거와는 다른 관점에서 시작한 사업이 남산르네상스사업이다.

물론 사업의 성격별로 시행부서가 상이하여 구상부터 계획이 실행되기까지 부서간 적지 않은 갈등이 있었으나 1년이 넘는 기간 동안 토론과 협의를 통해 남산르네상스 마스터플랜을 완성하였다.


 
외인아파크 철거 전후
 

현재 진행 중이거나 계획하는 사업은 무엇인가?

역사성 증진, 경관적 가치 개선, 접근성 향상. 남산르네상스 사업은 이렇게 크게 3가지 방향에서 시행되고 있다.

역사성 증진 사업으로는 원형복원의 원칙을 고수하며 서울성관 복원 사업이 진행 중이다. 원형복원 구간은 0.77km이며, 171,900m2의 지형회복 작업도 병행하고 있다. 시민들의 편의를 제공하기위한 성곽 탐방로도 약 4km에 걸쳐 조성하고 있다. 더불어 사료조사와 원형 고증에 기초한 봉수대 복원(5개소)도 진행 중이다.

 

남산에서 시가지를, 시가지에서 남산을 바라 볼 수 있게 하기 위한 경관개선 작업도 진행되었다. 도시계획 및 경관계획과 연계해 남산 통경축 확보를 꾸준히 추진해 왔다. 소월길 보행환경 개선 사업을 통한 조망데크 설치와 회현고가 철거 등이 그것이다.

 

향후 남산 르네상스 사업은 시민들이 편안하게 걸음할 수 있는 남산이 될 수 있도록 접근성 향상에 노력을 기울일 계획이다.

 

2014년까지 약 450억의 예산을 들여 예장지구 재정비 사업이 진행될 예정이다. 재정비 사업에서는 남산과 예장지구를 연결(888m)하는 곤돌라리프트가 설치되어, 노약자와 장애인도 남산을 쉽게 찾을 수 있도록 할 방침이다. 더불어 대형버스 52대를 포함해 총 150대의 차량을 수용할 수 있는 지하 주차장도 건설할 계획이다.

 

한남동에서 남산야생화공원까지 이어지는 한남 보도육교 설치사업(연장 45m)도 현재 설계용역 중에 있다. 이 밖에 남산을 순환하는 전기차 운행, 공원 정비 및 편의시설 개선 등을 통해 시민들의 접근성을 보다 향상시키고자 한다.


회현자락 조감도

정리: 나창호 기자


권지원 기자  ·  라펜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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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jw6738@nat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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