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택건설기준 개정, 아동인권 침해 논란

국가인권위원회 "놀이시설 설치축소, 헌법 기본권과 상충"
라펜트l나창호 기자l기사입력2012-11-29

"주택건설기준법 개정으로 어린이놀이시설 설치가 축소되거나 사라질 위기에 처했다. 어린이들은 '어른의 종속물'인가? 마땅히 뛰어놀아야 할 장소가 사라지거나 방치돼 어린이 인권침해 논란을 야기시키고 있다."
 

국가인권위원회가 지난 2010년 발행한 아동인권상황 실태조사에서 아동이 필요하다고 느끼는 인권 1위가휴식과 여가를 즐기고 놀 인권(42.1%)’으로 조사됐다. 2순위와 3순위는 모두 친구들과 자유롭게 모임을 갖고 활동할 인권(20.4%), (17.2%)으로 나타났다.

하지만 최근 어린이놀이시설 설치근거를 삭제하는주택건설기준 등에 관한 규정 개정안(이하 주택건설기준 개정안)’과 이미 의무규정을 삭제한아동복지법 시행규칙을 보면 어린이의 생각과 인권은 어디에서도 찾을 수 없다. 놀이터의 주인이자, 독립적인 인격체인 어린이의 인권이 무시된채 추진하는 정부기관의 탁상행정이라는 지적도 제기되고 있다. 결국 갈 곳 잃고 고통을 겪는 것은, '어른의 종속물'로 인식되는 어린이 몫이 되고 있다.

 

놀이시설 설치 주민자율? 어린이 인권은 무시?

국토해양부가 입법예고 했던주택건설기준 등에 관한 규정 개정안(이하 주택건설기준 개정안)’은 어린이놀이시설을 주민공동시설에 포함시킴으로써 현행기준으로 규정된 설치면적을 폐지하게 되어있다. 주택건설기준 개정으로 어린이놀이터가경로당, 어린이집, 주민운동시설과 함께 주민공동시설로 포함되어, 설치 총량면적에 따라 주민자율로 설치되는 것이다. 어린이놀이시설이 주민과 건설사, 공공기관의 취사선택에 따라 설치여부와 규모가 정해진다는 뜻이다.

 

하지만 관련 전문가는 '주민자율이 반드시 공공의 이익에 부합된다고 볼 수 없다'고 말한다. 일반적으로 공동주택에서 주민들의 합의를 도출하는 자리가 '입주자 대표회의'이다. 그러나 그곳에 참여하는 구성원은 주부와 노년층 인구가 과반수를 차지한다. 어린이가 그 속에 참여하여 발언권을 얻기란 사실상 불가능에 가깝다. 전문가는 "유교문화권인 우리나라의 특성상 노년층 생각이 주민자율 의견으로 도출되는 비중이 높다고 했을 때, 어른 위주의 시설이 늘게 되고, 어린이놀이시설의 설 곳은 줄 수 밖에 없는 구조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주민자율에 앞서 최소한의 공익 기준선을 설정해야 하는 이유가 바로 그것이며, '어린이놀이시설 설치기준 의무화'가 바로 최소한의 공익에 해당한다는 것이다.

 

놀이시설 설치축소는 헌법 '행복추구권' 위배소지

무엇보다 어린이놀이시설 설치축소 개연성이 강한 이번 개정안이 통과될 경우, 아동의 권리보장 측면에서 문제의 소지가 크다.

 

국가인권위원회 관계자는어린이놀이시설 설치의 의무기준이 아동관련 국내법상 명시되지 않았기 때문에 법률적 인용기준이 될 수 없다. 하지만 주택건설기준 개정으로 어린이놀이시설 설치가 줄어들 명확한 개연성이 존재한다면 이는 헌법에 명시된행복추구권보장과 상충될 수 있다면서 어린이놀이시설 설치축소가 기본권 침해로 이어질 수 있음을 시사했다.

 

대한민국 헌법 제10조는 행복추구권을 '모든 국민은 인간으로서의 존엄과 가치를 가지며, 행복을 추구할 권리가 있다’고 천명하였고, 국민모두가 쾌적한 환경 속에서 살 권리, 행복한 사회, 경제적 생활을 할 권리가 있음을 명시하고 있다.

 

비단 대한민국 헌법이 아니더라도 우리나라가 1991 12 20일 비준한아동의 권리에 관한 국제협약(이하 아동권리협약)’에서도 놀 권리’는 어린이가 보장받아야 할 중요한 가치 중 하나라고 말한다. 아동권리협약 제31의‘아동은 적절한 시간과 공간 내에서 놀 수 있는 권리가 보장되어야 한다.’는 조문에서 사실을 확인할 수 있다.

 

이같은 아동권리협약을 준거로 보건복지부가 2000 4월 전면개정한아동복지법도 아동전용시설 중 하나로 어린이놀이터를 규정하고 있다. 52 1항은국가와 지자체는 아동이 항상 이용할 수 있는 아동전용시설을 설치하도록 노력해야 한다라고 했다.

 

실제 2002년 국가인권위원회가 교육과학기술부(당시 교육부) 학교생활규정()에 대해 제출한 의견서에도 아동권리협약 제31(놀 권리)를 근거로 학교 측에서 학생들의 여가활동에 관한 의무사항을 규정할 필요가 있다고 밝히며, 그 효력을 인정하고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보건복지부 아동복지정책과 관계자는 기자의 물음에국내법상(아동복지법) 어린이놀이시설 설치는 의무가 아니다라는 원론적 답변만 되풀이하며 아동의 놀 권리에 직접적 상관관계가 있는 "어린이놀이시설 설치기준이 아동복지법과 관계가 없다"며 잘라 말했다.

 

이에 대해 아동전문가는 "아동복지법 제2 2항은 '아동에 관한 모든 활동에 있어서 아동의 이익이 최우선적으로 고려되어야 한다'고 명문화 해 놓고 있다. 이처럼 어린이 권익과 복지의 최일선에 서야하는 보건복지부가 모르쇠로 일관하는 이유를 모르겠다"며 거꾸로 가는 아동복지행정을 질타했다.

 

일각에서는 어린이의 안전권 보장을 위해 '어린이놀이시설 안전관리법'을 제정하였으나, 놀이시설 개보수에 필요한 자금확보와 민원 등으로 난항을 겪자, 정부에서 이를 피하기 위해 꼼수를 부리는 것이 아니냐는 비판이 일고 있다.

 

관련 단체 "'법따로, 정책따로', 기준폐지는 어린이 간접살인"

관련 학계와 업계에서도 어린이놀이시설의 설치기준이 사라짐으로써 미래 세대에 대한 탄력적 수요에 맞추기 어려워질 것이라며, 주택건설기준 개정안을 반대하고 나섰다. ()한국조경학회, ()한국조경사회, ()환경조경자재산업협회, 한국공원시설업협동조합 등 각 단체는 국토해양부 주택건설공급과에 반대의견서를 제출한 상태이다.

 

단체 의견 역시 사회적 약자인 어린이에 대한 국가 복지정책 차원의 지원이 필요하다고 주장하고 있다. 어린이가 주차장에서 놀다가 교통사고로 상해를 당하는 사건이 빈번히 발생하고 있는 실정임에도 불구하고 이를 축소하는 것은 어린이에 대한 간접적 살인행위라는 것이다.

 

더욱이 OECD국가 중 출산율 최저라는 위기상황에서 어린이가 놀 수 있는 공간을 축소시키거나 폐지하는 것은 국가적 책무에 위배되는 사항이기 때문에 어린이놀이시설 설치의무조항은 존립시켜야 할 뿐만아니라 오히려 장려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업체관계자는 "이번 주택건설기준 개정안에는 주택단지 안 근린생활시설 설치면적의 상한을 폐지하는 것(안 제20)도 들어있다. 결국 어린이놀이시설 면적이 축소되거나 사라지게 되는 공간에 상업시설(당구장, 단란주점 포함) 등이 차지하는 제로섬이 되어 어른들의 욕심으로 어린이의 활동을 막아버리는 웃지못할 상황이 벌어지게 될 수 있다" '주민자율' 속 최소한의 공익적 장치로서 어린이놀이시설의 중요성을 재차 강조했다. 

 

이어 "앞으로 아동복지시설에 의무적으로 어린이놀이시설을 설치하도록 된 규정을 삭제해 논란을 일으키고 있는아동복지법 시행규칙 개정'을 포함한아동의 놀 권리침해논란은 앞으로 더욱 거세질 것"이라고 내다봤다.

 

휴게시설 기준도 폐지, 정부책임 회피?

뿐만아니라 이번주택건설기준 등에 관한 규정 개정안'에는 주택단지 안의 녹지에 설치되는 휴게시설의 수량과 방법에 대한 기준까지 폐지하고 있으며, 휴게시설 면적을 조경면적에 포함시켜 산정하도록 함으로써 문제 심각성을 키우고 있다.

 

관련 단체들은 이에 대해 '결과적으로 주택단지에 보편적 복지로서의 적정한 휴게시설 존치가 제한받을 것'이라며 강력하게 반발하고 나섰다. 벤치와 파고라, 분수같은 조경시설이 주택단지에서 줄어들거나 없어짐으로써 주민들의 삶의 질까지 위협하게 된다는 것이다.

 

단체 관계자는 "정부의 이같은 판단은 결국 주민자율이란 명분아래 휴게시설의 설치를 취소하거나 유보하겠다는 취지로 해석될 수 밖에 없다"고 성토했다. 마지막으로 "22년만에 주택건설기준이 전면개정을 실시했지만 오히려 주거트렌드와 배치하고 있어 실망스럽다"고 밝히며, 주택건설기준 개정안 수정과 조속한 조경분야 의견반영을 촉구하였다.


지난 26일 조경단체 관계자들은 '주택건설기준법 개정안'반대의견을 국토해양부에 직접 제출하였다. 

나창호 기자  ·  라펜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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