머물고 싶은 집

조재은의 수필산책_1
라펜트l조재은 작가, 나창호 기자l기사입력2013-01-01


 

집은 단순한 조형물이 아니다. 한 사람의 역사가 살아 있고 추억이 쌓이는 곳이다. 집은 돌과 흙, 콘크리트의 무기물이 쌓여, 감정이 있고 관계가 형성되는 생명의 공간을 생성해 낸다. 지금처럼 도시에 아파트가 겹겹이 지어지기 이전, 우리들의 집은 자연과 만날 수 있고 이웃과 정을 키우며 사는 나눔의 장소였다.

 

어린 시절, 마당이 있는 집에서 봄에는 꽃씨를 뿌렸다. 씨를 뿌리면 자연스레 기도하는 마음이 된다. 뿌려진 씨가 싹을 틔워 꽃을 잘 피우게 해 달라고 기원을 했다. 집은 신과 사람과 자연이 합일되는 곳이었다.

 

여름에는 마당에 등상을 내놓고 누워서 모기를 쫓으며 별을 보았다. 할머니가 들려주는 옛날 이야기는 많이 들어 외울 정도가 됐지만 들을 때마다 달라지는 밤하늘은 끊임없는 상상을 키워 문학의 터전이 되었다.

 

가을에는 온 식구가 누렇게 바랜 창호지를 뜯어내고 하얀 새 것으로 바꾸어 주었다. 새로 바른 창호지는 갓 빻은 떡살을 볼 때처럼 마음이 뿌듯하고 풍요로워진다. 손잡이 근처 한 곳에 작은 단풍잎을 넣어 덧붙이면 계절은 방안으로 들어온다. 색 고운 낙엽을 고르는 것은 가을의 선문이었다. 집에서 계절의 변화를 느꼈다.

 

겨울 아침, 밤새 내린 눈을 쓰는 소리를 들으면 추위가 더 느껴지는 것 같아 이불을 끌어당겨 덮곤 했다. 잎이 떨어진 나무에 쌓인 눈과 씨를 떨구고 황량해진 꽃밭을 보며 집 한 귀퉁이에서 일어나고 있는 순환의 역사를 본다.

 

가끔 어릴 때 살던 옛집에 가 볼 때가 있다. 골목 어귀에서 집 대문이 보이기 시작하면 마당과 뒤뜰이 함께 떠오르고 그곳에서 흙과 함께 하던 놀이들이 한꺼번에 보이는 듯 하여 미소짓곤 한다. 가끔은 꿈속에서 지평선 위로 집 한 채가 떠오르듯 둥실 솟아오를 때도 있다.

 

지금 내가 사는 아파트는 어떤 모습인가.

핵가족에 맞춰 주거공간은 좁아졌고, 자연과 함께하는 생활은 여행을 하기 전에는 접하기 힘들다. 우리 아이들은 사계절을 집에서는 느끼지 못한다. 항상 비슷한 온도를 유지하는 아파트에서는 몸으로 기온의 변화를 느끼지 못해 아침이면 방송을 통해 일기예보를 확인하고 옷차림을 결정한다. 네모난 공간에서 모난 사고방식 속에 담도 없는 이웃의 현관 문은 항상 닫혀 있다. 집에 대한 추억이라곤 없다. 아파트에서 태어난 아이들에게 진정한 의미의 고향은 없고, 성장한 후에도 자신이 자라던 곳을 그리워하지 않는다. 다시 이사 간 아파트와 별 차이가 없기 때문이다. 사람들은 개성을 찾을 수 없는 아파트 공간이지만 조금이라도 획일적인 것에서 벗어난 자신만의 차별화 된 공간을 갖고자 내부를 개조하고 꾸민다.

 

얼마 전 친구가 두 달에 걸쳐 아파트 인테리어 공사를 마치고 친지 몇 사람을 초대했다. 벽은 흰색, 가구는 검은색과 메탈 계통의 회색으로 꾸며 놓았다. 처음 들어 갈 때는 세련된 분위기와 간결함에 모두 작은 함성을 질렀다. 그런데 시간이 지날수록 무엇인가 불편한 느낌이 들었다. 앉은 의자도 푹신하고 음식도 맛있고 대화도 문화중심 인 유익한 화제였는데 빨리 일어나고 싶은 생각만 들었다. 밖으로 나오자휴우하고 긴 숨을 내쉬었다. 나만 빨리 나오고 싶었던 게 아니었다. 몇 사람이 같은 생각이었다. 친구의 아파트는 사람의 숨결이 느껴지지 않았다. 정장차림으로 낮아 굳은 얼굴로 허리를 펴고 차렷 자세로 있어야 될 것 같았다. 그곳에는 사람의 온기가 없었다.

 

집은 밖에서 돌아온 식구를 맞아들이는 곳이다. 피곤한 몸이 쉴 수 있고, 지친 신경을 풀어놓고, 닫혔던 마음이 열어 놓을 수 있는 곳이어야 한다.

 

어느 집에 들어가면 사람을 반기는 분위기가 있다. 밝고 안온하고, 가구는 번쩍이는 값비싼 외제 가구가 아니더라도 있어야 할 곳에 단아하게 있는 집. 이재의 목적으로 산 그림이 아니고 오랫동안 그 화가의 그림을 좋아하다 생활비를 아끼며 산 그림 한 폭과 손으로 만지고 싶고, 보고 있으면 끝없는 얘기를 걸어오는 조각 한 점이 있는 집. 각 코너는 은은한 향기를 맡을 수 있고 조용한 이야기가 있는 집. 그 집의 주인은 품위 있고 마음 따뜻한 사람일 것이다.

 

옷으로 사람의 변화를 주기는 쉽다. 색을 맞추고 스타일을 잘 고르면 어느 정도는 외모를 짧은 시간에 바꿀 수 있다. 그러나 내면에서 우러나오는 교양과 아름다움은 짧은 시간에 꾸며지지 않는다. 집도 이처럼 살고 있는 사람의 내면과 역사를 보여준다.

 

사업을 하는 친척이 집에 귀한 손님이 한 달간 머무를 일이 있다고 집을 꾸며야 한다며 커튼을 바꾸고 거실 소파를 바꾸었다. 해야 할 일은 한 두 가지로 끝나지 않았다. 소파에 양탄자 색이 어울리지 않고, 두 색을 맞추고 나니 식탁은 남의 것을 빌려온 듯 어색했다. 집의 가구와 물건들은 도미노 게임처럼 잇달아 영향을 미처 친척은 손님이 오기 사흘 전에는 완전히 지쳐 버렸다.

 

집은 한편의 오페라와 같다.

집에 있는 모든 것들은 서로 어우러져 화음이 이루어져야 한다. 한 두 사람이 노래만 잘 한다고 오페라가 성공하는 것은 아니다. 노래를 받쳐주는 오케스트라가 있어야 되고, 스토리가 펼쳐질 무대 장치와 그에 맞는 의상이 있어야 되는 것처럼, 경제적 능력만 있다고 품위 있는 집이 되는 것이 아니다.

 

집 주인의 철학이 보이고 삶의 잔잔한 행복이 느껴져 머물고 싶은 집. 사람과 자연과 예술이 어우러진 집을 그려본다.

 

조재은(수필가) 

출생지와 본적이 서울 종로구인 저자는 종각 지하철에서 밖으로 나오면 아직도 광화문을 어느 쪽으로 가는지 방향을 모른다. 이화여대 독문과를 다닐 때도 졸업을 해야 할지 고민을 했고 방송국에서 영화 프로를 맡아 방송 할 때는 영화 공부를 할까, 글을 쓸까 갈등을 했다.

성격검사를 해도 이성적인 면과 감성적인 면이 거의 비슷하게 나와 길을 헤매이는 것은 앞으로도 계속 될 것 같다.

 

모든 것에서 헤매던 어느 날, 어린 시절 어린이날 영화관 앞에 줄서 있는 어른 옆에 붙어 공짜로 영화를 본 기억이 났다. ‘천의 얼굴을 사나이란 영화였는데 그 영상은 지금도 지워지지 않는다. 방송을 위해 하루에 6편의 영화를 보고도 싫증이 나지 않는 자신을 보고 영화와 수필을 접목시켜 영화에세이<, 지금은 상영중>책을 썼고, 모든 것에 헤매는 자신과 주위 사람을 보며 수필을 썼다.

 

내가 아는 나는 착한 사람에게는 꼼짝 못하고 정확한 사람을 좋아하며 인간적인 순수한 사람 앞에서는 아무 말도 못한다. 운동하기 싫어하고 잠자는 시간을 아까워하며, 책 한 권을 손에 들면 조용해진다.

 

국민일보와 그 외 여러 신문과 잡지에 연재를 했다.

현대수필로 등단, 한국 문인협회, 한국수필학회, 국제펜클럽 한국 본부 회원이며, 구름카페문학상을 받았고 분당수필문학회 회장, 마당수필문학회 회장을 역임했고 현재는 『현대수필』주간이다.

 

작품집은 <하늘이 넓은 곳> <, 지금은 상영 중> <시선과 울림> 선집<새롭고 가장 오래된 주제>가 있다.

 

연재필자 _ 조재은 작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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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afent@naver.com
사진 _ 나창호 기자  ·  라펜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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