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늘이 넓은 곳

조재은 수필산책_2회
라펜트l조재은 작가, 나창호 기자l기사입력2013-02-13


안주의 안온이 변화를 갈망하는 떠남을 막는다.

두 마음은 줄의 한 끝씩을 잡고 서로 놓지 않는다. 가운데 금을 긋고, 한 쪽이 그 선을 넘어가면, 다른 쪽이 다시 잡아당긴다. 그 당김이 팽팽하여 끊어 질 것 같은 무렵, 남편이 대학에서 안식년을 얻었다.

 

떠난다는 것은 생활을 정리하는 시간을 가질 수 있어 자신을 뒤돌아보게 된다. 준비부터 여행의 시작이기 때문에 떠남을 조용히 준비할 수 있다면, 그 사람은 하루하루를 열심히 살아 낸 사람이다.

 

오래 전부터 계획된 일인데도 떠나는 준비는 무질서하고 힘들었다. 갑자기 발병한 목 디스크 때문에 고개를 숙일 수도 없고 무거운 것을 들 수도 없다. 성경에서 교만한자를 목이 곧은 백성이라고 칭한다. 밑을 내려다 볼 수 없을 정도로 목에 통증이 올 때면, 잉태된 나의 교만과 남을 나보다 귀하게 여기지 않은 이기심이 떠오른다.

 

짐을 싸며 또 한 번, 물질에 대한 애착과 미련에서 자기를 다스린다는 것이 참으로 힘들다는 것을 느꼈다. 짐을 줄이기 위해 작은 가방에 싸기 시작했는데, 집에 있는 가방으로는 필요한 물건들을 다 넣을 수가 없었다. 드디어 공항에서 볼 때마다 흉보던 이민 가방을 샀다.

 

지금은 필수품이라고 생각하는 것이 환경이 다른 곳에 가면 필요없게 될 것을 예측하지 못한 채, 아홉 개의 가방 속에는 일 년 동안 짊어지고 있어야 할 세상의 백팔 번뇌가 모두 들어 있는 듯 했다.

 

평생에 한번, 속탈하는 마음으로 공항에 여권과 비행기표, 지갑만 들고 떠나는 여행을 해야겠다고 다짐했다. 필요한 것이 있다면 공항 면세점에서 해결하고 조금은 허전한 채로 떠나는 여행은 상상하는 것만으로도 몸이 가벼워지는 듯했다.

 

가는 곳은 아이오와이다. 인디언 말로아름다운 곳이란 뜻이다. 나는 아름다운 곳을 향해 떠나는데, 미국을 아는 많은 사람들은 대학과 옥수수 밭뿐이고, 볼 것과 즐길 것이 없는 곳에 왜 가느냐고 말린다. 즐긴다는 말속에는 도시 문화와 향락이 포함된 뜻일 게다. 아름다운 곳이 황량한 곳으로 느껴질 즈음, 아이오와에서 학위를 하고온 교수가볼 것은 없는데 사방이 평원이기 때문에 그곳은 하늘이 넓어요라고 말한다. 하늘이 넓은 곳이란 말에 가슴이 펴지고 동공이 열리는 듯하여 하늘의 맑음과 푸름에 젖고 싶은 생각이 들었다.

 

아파트 베란다에서는 북두칠성을 네 개밖에 볼 수 없다. 건너 편 건물에 가려서 항상 조각난 하늘만 보아야 하기 때문이다. 그 곳에서는 온전한 별 자리를 볼 수 있을 것 같다. 의자에 거꾸로 매달려 있는 카시오페이아 별자리를 보며 에티오피아 왕비가 영화로운 자리에서 잘못 누린 허영과 자만에 대한 형벌을 생각할 것이고, 별똥별이 떨어지면 마음 속 소원을 빌어 꽉 차 있는 욕망의 가슴을 비울 것이다.

 

항상 무채색 같은 나의 글에 고개를 돌리곤 했는데, 사방에서 하늘이 보이면 마음과 손을 푸르게 물들여 하늘이 담긴 수필 한 편 쓰기를 염원했다. 그곳 평원의 이슬도 푸른빛을 담고 있을까를 생각하며 마종기의이슬의 눈을 떠올렸다. 맑고 찬 이슬의 눈을 며칠이고 보면서 시 한편 건지고, 이유없는 목마름도 해결하기를 간절히 바라는 시인의 마음을 닮기로 했다. 커다란 변화나 성장을 기대하지 말고 하늘이 넓은 곳, 햇빛 아래 서서 여행자의 허허로운 마음과 방랑자의 자유를 가슴에 풀기로 했다.

 

가장 좋은 여행지는 이야기가 있는 곳이다.

문화 유적이 있는 곳은 옛 이야기를 들려주고, 좋은 예술작품은 느낌으로 얘기한다. 풍경이 좋은 곳에서는 자연이 보여주는 모습에 감동한다. 어느 때는 여행지에서 만난 좋은 사람과의 대화가 기념품이나 사진보다 더 큰 추억이 된다.

 

이번 여행에서는 이제껏 내가 나에게 들려주지 못했던 얘기를 들으며, 감춰진 모습도 만날 수 있다면 어느 곳보다 좋은 장소가 되리라.

나를 만나는 순간, 어떤 만남보다 설레는 그 순간이 기다려진다.
연재필자 _ 조재은 작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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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_ 나창호 기자  ·  라펜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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