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프리카 목각예술에서 포스트모더니즘을 보다

Gallery in my memory
라펜트l이성낙 명예총장l기사입력2013-03-23

뉴욕에 가면 반드시 들르는 곳이 있다. 뉴욕현대미술관(MOMA), 구겐하임미술관(Guggenheim Museum) 그리고 메트로폴리탄박물관(Metropolitan Museum)이 바로 그곳이다.

 

구겐하임에서 기획·전시하는 현대 미술 거장들의 특별기획전은 늘 찾는 이의 발걸음을 재촉하고, MOMA는 현대 미술품의집합지와도 같아 현대 미술 애호가들을 끌어들인다.

 

반면 메트로폴리탄박물관에서는 민속적 역사성을 중시해 세계 각국, 각 대륙의 문화 예술품을 한자리에서 볼 수 있다. ··북 미주 대륙을 아우르는 다양한 예술품과 오세아니아 국가들의 예술품을 위시해 세계 도처의 예술품을 한자리에서 비교하며 감상할수 있는 곳이기에 빼놓을 수 없는 곳이다. 특히 아프리카관에 전시된 엄청난 양의 수집품을 보는 것은 결코 놓칠 수 없는 기쁨이다. 아프리카 예술이 현대 예술에 끼친 발자취를 엿볼 수 있기에 더욱 그렇다.

 

오래전에 메트로폴리탄박물관의 아프리카관에서 각양각색의 조형물을 보고 흥분된 마음으로 박물관을 나와 길을 거닐다 근처에 있는 작은 갤러리를 발견했다.

 

아프리카 목각 예술품만을 취급하는 전문 갤러리였다. 안으로 들어가니 아프리카 대륙의 각 지역을 대표하는 크고 작은 목각 마스크를 전시하고 있었다. 그 중 혀를 쑥 내민 얼굴에 몸 여기저기 쇠못이 박혀 있는 전신형 조형물이 가장 눈에 띄었다. 몸통은 쇠줄로 묶여 있었다. 그리고 크고 작은 밤송이 모양의 덩어리가 상체에 매달려 있는가 하면 배꼽 자리에는 직사각형의 유리조각을 부착했다. 아프리카 특유의 그 목각 예술품을 보는 순간, 포스트모더니즘 작품을 목격한 것 같은 착각을 일으킬 정도였다. 요컨대 그 목각 예술품에서 현대성을 본 것이다. 게다가 분명 아프리카 사람들의의료 행위와 무관하지 않은 조형물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필자가 그 예술품을 품에 안고 귀국길에 오른 것은 두말할 필요도 없다.

 


아프리카 목각. 높이 45cm, 넓이 21cm, 두께 16cm, 출처 _ Ghana

 

필자는 그 작품을 보며 종종 이런 생각을 하곤 한다: 환자가 진단을 받기 위해 의사 앞에 어정쩡한 표정으로 서 있다. 그러곤 의사에게 온몸 구석구석에 송곳으로 찌르는 듯한 고통을 느낀다고 호소한다. 의사가 먼저 혀를 살펴보자고 하자 환자는 혀를 쑥 내밀어 보인다. 이어 의사는 환자의 복부도 살펴본다. ‘유리조각을 통해 몸통 안을 본다. 이를테면 오늘날의 내시경 검사와 진배없는 검사다. 그러더니 내장에는 아무런 이상이 없다고 진단한다. 그러나 환자는 열이 나고 편히 누워 잠도 잘 수 없다고 호소한다. 그러자 의사는 통증이 있는 부위를 자세히 살펴본다. 상체 곳곳에서 종창

腫脹이 보인다. 세균에 감염된 종기furuncle. 그래서 환자가 고열을 동반한 통증을 호소한 것 같다. 의사는 환자의 고통은 세균에 이차 감염된 종기 때문이라고 최종 진단한다. 그렇다면 치료는 어떻게 했을까? 그곳에도 1950~1960년대의 우리나라처럼 종기에 잘 듣는 가정상비약 중 하나인 고약膏藥이 있었을까?

 

하루는 영국 런던의 한 서점에서 아프리카 예술 관련 서적을 뒤적거리는데치료하는 의식(Therapeutic Ritual)”이라는 제하의 그림이 눈에 번쩍 들어왔다.(Art of Africa, Harry N. Abrams, Inc, New York, 1993, p.527) 아프리카의 한 마을 마당에서 병고에 시달리는 환자가 부인의 부축을 받으며 머리를 간신히 지탱한 채 돗자리 같은 깔개 위에 힘없이 누워 있었다. 마을 사람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무속인 남녀 한 쌍이 악귀를 몰아내는 의식을 치르고 있다. 그런데 그 굿자리 한가운데 작은 조형물이 보였다. 바로 필자가 뉴욕에서 구입한 것과 유사한 조형물이었다. 그렇다면 그 조형물은 아마도 아프리카 무속인이 환자를 영적으로 치유할 때 쓰던의료 기기였을지도 모른다.

 

요즘도 그 조형물을 볼 때면 참으로 훌륭한 포스트모더니즘 작품으로 손색이 없다는 생각이 들곤 한다.

 


아프리카 한 마을 마당에서 무속인이 병자의 병마(病魔)를 몰아내고 있다

 

연재필자 _ 이성낙 명예총장  ·  가천의과학대학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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