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경, 기능의 미학

그림 그리는 조경가_5회
라펜트l정정수 소장l기사입력2013-06-06

조경공간이나ㆍ건축ㆍ도구 등 인간이 만들거나 사용하는 자연물 모두에서 볼 수 있는 디자인의 궁극적인 목적이 아름답게 보이는 것에 있다고만 생각하는 것은, 모든 대상을 대하는 방법에 있어서 외형만으로 판단하는 우를 범하는 것이다.

 

기능이 형태에 우선한다는 원칙은 무시될 수 없다. 그래서 사용하는 데에 있어 불편함 없이 편리한 공학적 기능의 디자인이라는 기능을 우선적으로 충족한 후에 그 위에 아름다움이라는 미술적 기능의 디자인이 덧붙여지는 과정이 필요한 것이다.

 

레오나르도 다 빈치의 작품에서 드로잉을 바탕으로 나무라는 재료를 사용해 재현해 놓은 것들이 있는데 모두가 아름다운 형태를 가지고 있다. 그의 드로잉이 기능에 충실했기 때문이다.

 

무엇이든 이처럼 더 아름답게 만들 수 있는 안목은 미학적 디테일을 창출하게 한다. 기능 때문에 만들어지는 형태는 근본에 옷을 입히는 것과 같기에 닭과 달걀의 관계가 아니며, 기능을 뺀 디자인에는 많은 문제가 생기는 것이다.

 

기능이 형태에 우선한다

 


<사진1, 좌> 작은 건물이지만 건축물을 예로 드는 것은 조경인이 건축물을 이해하고 있어야 하는 것이 당연하기 때문이다. 적어도 건축의 외형만이라도 이해하지 못한다면 그것은 조경을 하는 것이 아닐뿐더러 식목일에 나무심기 하는 것이란 말도 과분하다. 건축인 또한 조경을 모른다면 그 일을 잘하겠는가? 모든 일은 2 3각과 같아서 혼자 잘 뛰면 넘어지는 것이 당연하다.

 

<사진2, 우> 기차역을 리모델링해서 만든 오르세 미술관은 인상파미술관이라고 불리기도 한다. 이곳에 소장된 고흐의 오베르 쉬르 우아즈성당이다. 성당의 형태가 외형으로 볼 때 정미소의 기능에 의한 형태와 비교해도 욕되지 않을 것이다. 고흐의 작품이라서 좋기도 하겠지만 초등학생들이 그려도 좋은 작품이 나올법한 형태이다.

 

시골길을 지나다 보면 마을마다 하나씩은 있었던 정미소라는 건물을 보게 된다. <사진1>은 전주 시내를 벗어나 17번 국도를 타고 남원방향으로 운행하다보면 볼 수 있는 정미소이다. 지날 때 마다 매우 아름답다(정미소라는 자기다움)는 생각에 가까이에서 관찰한 적이 몇 번이다.

 

이런 정미소의 형태는 정미소 내부에 쌀의 도정을 위한 기계의 형태가 한쪽 부분만 높다보니 지붕 위에 지붕을 덧붙인 형태를 만들게 했고, 도정과정에서 먼지처럼 날리는 많은 가루들을 밖으로 배출시켜야 하는 기능을 가진 또 다른 작은 지붕이 덧붙여진 형태를 만들게 했다. 

 

정미소의 벽은 하나의 사각형으로 지어졌지만 저장될 내용물의 분류를 위해 창고 같은 것이 덧붙어 지어지고 작은 지붕이 얹어져 있는 형태를 만들고 있다. 이렇듯 모든 정미소의 형태는 그 기능에 의해 만들어진 형태이므로 아름다운 모습으로 창의성이 발휘되어 지어진 것이다. 물론 이것을 지은 사람들이 공대 건축과하고는 전혀 무관한 사람들이었겠지만 훌륭한 건축인 이라고 생각한다.

 

그런데 지금은 어떨까? 커다란 창고를 하나 짓고는 그 안에 모든 기능을 넣어 놓는다. 이게 닭을 키우는 곳인지? 창고인지? 정미소인지? 모든 것이 똑같다보니 아름답지 못한 동네가 만들어진다.

 

이에 비해 오래 전 지어진 아름다운 정미소는 형태가 단순하지 않은 장점이 있다. 변화가 있다는 것인데, 이것은 변화만으로는 설명되거나 이해될 수 없는 것이어서 통일이라는 단어가 함께 조화를 이루어야만 한다. 변화와 통일은 미술인들조차도 평생을 갖고 살아야하는 커다란 화두이다.

 

조경은 물론 건물ㆍ의상ㆍ가구ㆍ소지품 등 눈에 보이는 모든 것이 변화와 통일이라는 문제를 해결해야만 되며, 이것이 어떻게 조화를 이루느냐에 따라서 조경공간 또한 그 가치가 달라지기 때문에 강제로라도 공감해야만 하는 과제이다. 이렇듯 변화와 통일이 조화를 이룬 정미소를 대상으로 그림을 그린다면 크게 고민하지 않아도 방향만 잘 잡는다면 좋은 작품이 만들어지게 된다.

 

<사진2> 18세기 후기 인상파 화가 고흐의 오베르성당이라는 작품이다. 건축가가 좋은 작품을 남겼겠지만 그림의 대상으로 그 성당을 선택한 고흐의 감각을 생각한다면 두 천재의 만남이 예사롭지 않다.

 

본 고는 아주 작은 건물을 가지고 이야기하고 있지만 고흐가 작은 성당을 선택했다고 해서 작품의 가치가 그 만큼 작은 것이 아니다. 이렇듯 조경인이 만드는 조경 공간 또한 작은 개인주택이든, 도심 속 자투리 공원이든 또는 몇 십만 평 이상의 식물원과 공원 등도 그것을 평가해 주는 눈을 가진 예술인들이 있다.

 

쉽게는 방송작가와 카메라 감독 그리고 광고 기획자 등도 이에 해당한다. 이들이 자신의 영상작품 속에서 아름다움을 담아낼 목적으로 조경공간을 선택한 것이라면 남다른 가치를 가진 곳이 분명하다. 이러한 선택된 공간을 만드는 사람이 그 생각을 삶의 가치를 경제에 겨냥하느냐, 명예에 겨냥하느냐에 따라 결과 역시 극명하게 다르게 나타난다.

 


사진은 조경인 황진익이 찍은 정미소 내부다. 사진에서 보이는 기능들이 정미소의 외부형태를 만들게했다.

 

기능은 형태에 우선하며

물질은 정신을 향한다.

 

사회가 그 시대가 요구하는 것에 맞게 던지는 단어들이 있다. ‘체험’, ‘스토리텔링’, ‘에코’, ‘웰빙’, ‘힐링등 듣기 좋은 단어가 만들어지면 기다렸다는 듯이 이러한 단어를 자신의 일에 관련짓고, 큰 제목에 넣어 대중의 관심을 유도한다.

 

도용(盜用)이라는 단어가 있다. 대부분이 도용이라는 단어를 빌려 쓰는 것으로 이해하고 있겠지만 盜用은 단어 그대로, 도둑질해서 쓰는 것을 말한다. 2005년경부터 체험이 대세인데, 모든 일에 바쁘고 시간이 부족하다는 현대의 삶이, 과정 없는 결과만을 체험하게 하고 있다.

 

모든 과정이 결과보다는 긴 시간을 필요로 하는 것인데, 그 모든 것을 체험을 제공하는 사람이 하고 있어서 주객이 바뀐 것은 물론, 떠먹여주는 밥을 먹는 것과 같이, 해서는 안 될 못된 체험을 제공하고 있다.

 

조경인이 완성도 높게 만들지 못한 애매한 조경공간이 체험의 공간으로 사용되기도 한다. 우습게도 건강을 위해 우유를 받아 마시는 사람보다 우유공급을 위해 새벽 일찍부터 뛰어다니는 우유배달원이 신체적으로는 더 건강 할 것이 분명하다.

 

그러면 식사를 하기 위해 벼농사를 지으라는 것이냐?” 라고 묻는다면 시쳇말로 '멘붕' 이다.  요즈음은 TV에서도 연예인들이 체험을 하고 정말 체험해야 할 사람들은 편안하게 앉거나, 심지어 누워서 화면을 통해 간접체험 만을 하게 만드는 것이 그 기능이 아니까? 생각해 본다.

 

스토리텔링이란 상대방에게 알리고자 하는 바를 재미있고 생생한 이야기로 설득력 있게 전달하는 행위이다. 이 속에는 현재성이 강조되며, 현장성을 회복하여 그 상황을 공유하며, 그에 따른 상호작용성이 있어야 한다. 또한 세계를 인식하는 근본방식이기도 하다. 

 

스토리텔링이 필요한 장소와 그 장소에서 행해지는 행사는 서사문화의 껍질을 표방했을 뿐, 그 성공의 잣대가 상업적이다 보니 심하게 왜곡되게 된다. 스토리텔링을 '뻥과 구라' 라고 농담을 한 후배의 말 속에 진담과 비판이 담겨 있음이 느껴진다.

 

지난 글에서 컨닝을 예로 든 것과 같이 도용과 벤치마킹 등의 결과는로댕-오뎅, 덴뿌라라는 결과를 가져오는데도 컨닝을 했기 때문에 정답일 것이라는 착각은 물론, 그 상당부분의 행위가 남의 것을 훔쳐 사용하고 있음을 부정할 수는 없는 것이다.

 

이러한 잘못된 훔침으로부터 유혹을 극복하는 방법은 자연의 가르침에 따라 배우고 깨달은 바대로의 창의(創意)에 의한 창작(創作)이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눈으로 인지 할 수 없는 새로운 것에 대해 확인이 되지 못하므로, 이해 또한 안되는 것이다.

 

신이 자연과 공감했다면자연만한 스승이 없다는 말과 같이 자연이 가장 큰 스승이다. 진정성에는예술ㆍ에코ㆍ웰빙ㆍ힐링등의 단어를 쓰지 않아도 높은 가치를 이해하는 이들에 의해, 가치를 인정받게 되는 요인들이 내포되어 있다. 이렇게 말하는 것은 필자가 미술을 했기 때문만은 아니다.

 

미술을 포함한 모든 예술은 눈으로 볼 수 없는 관념이나 감정을 눈과 귀 등 인간의 감각기관을 통해 확인 시켜주는 매개체를 만들어 대중에게 전달한다. 이 모든 예술에는 조경 또한 포함되는 것이 분명하다. 이렇게 만들어진 것들은 세계적 공통어가 되며, 미술ㆍ음악ㆍ건축 등 많은 분야가 외국어로 설명되지 않아도 이해되어지는 이유이다.

 

기능이 형태에 우선한다고 쓰고 있지만, 형태가 보이지 않는 기능에도 마음을 쓸 수 있는 차원 높은 사람이 조경 사회에도 필요한 때이다.

 


사진은 불교에서 사용하는 만(卍)자를 이용해 만든 가림막이다. 좌측 사진과 같은 만자는 "ㄱ"으로 시작하는 문양의 형태를 만든다. 그러나 이와 유사한 2차세계대전의 전범 나치의 심벌은 "ㄴ"으로 시작하는 문양이란 것을 비교해 보면, 뜻하는 바를 전하려는 "기능이 만든 형태"가 왜? 이렇게 만들어졌는지 확인이 될 줄 안다. 생산자가 올바로 제작했지만 시공자의 상식이 부족했던지 좌우를 뒤짚어 시공했다. 안타까운 것은 이 사진은 우리나라 최고의 사찰인 '불국사'에서 올 봄에 촬영된 점이다. 이 곳은 세계문화유산이며, 세계인이 찾는 곳이다. 시급히 시정되기를 희망한다.

 

대칭과 권력자들의 수평한 공간의 기능

 

움직이는 것은 대칭의 형태를 유지해야 만 균형을 이룬다. '새ㆍ네발달린 동물ㆍ물고기ㆍ곤충 등' 살아있는 것과, 인간의 편리를 위해 만들어진 '비행기ㆍ자동차' 또한 대칭의 형태로 균형이라는 기능을 유지하고 있다. 나무와 꽃을 포함해 성장하는 동식물들에게서는 피보나치수열에 의한 변화와 통일의 모습이 관찰된다. 정지한 듯 보이는 자연 속에서는 대칭의 형태를 찾기 쉽지 않다.

 

대칭이 움직이는 것의 전유물은 아니겠지만, 움직이는 기능을 위한 것임은 분명하다. 조경과 건축이 대칭된 형태가 된다면 그것은 어떠한 기능에 부합되는가를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건물이 가지는 역학적 기능이 조경에 적용되는 것은 토양안정을 위해 석재를 사용한 기반시설과 조경시설물들이 있겠지만, 건축에 비하면 그 비중은 매우 낮다. 건축은 규격화된 자재를 사용해 기하학적 형태로 만들어질 수밖에 없는 구조적 특성이 있기에 대칭의 문제를 심히 부정할 수는 없다.

 

이에 비해 자연석ㆍ수목ㆍ지피 등은 건축자재와 같이 규격화 할 수 없기 때문에 조경과 건축과의 차별을 요구하고 싶다.

 

조경과 건축은 수평위에 놓여있는 것이 일반적이다. 우리나라의 고궁을 포함해 동서양의 모든 궁의 조경공간은 수목이 식재되지 않은 공간으로 비워져 있거나 조경이 되어 있다고 해도 수평공간에서 크게 변화가 없다. 유럽의 대표적인 궁인 베르사유궁의 중심에는 조경공간이지만 사람의 키를 넘어서는 수목이 배치되어 있지 않다. 이것은 권력자가 침입자들의 공격을 허용하지 않겠다는 의지가 표명된 기능의 결과이다.

 

작은 것을 지향하는 일본은 인위적으로 정돈된 수목을 이용한 조경공간을 만들지만 권력자의 침소주변에는 적의 침임을 미리 알아내기 위한 하나의 방편으로 모래를 깔아 수평 공간을 만들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사진3> 아폴론의 샘. 정적인 공간의 변화를 위해 동적인 조형물을 배치한다. 그러나 조형물의 본질은 움직이지 않는 것이겠지만, 보는 이는 이러한 사실을 잊어버린 채 감상하게 된다.(사진: 조경생태시공 2011.봄호(홍광표))

 

변화를 요구하는 인간의 욕구는 이러한 수평 조경공간 속에서도 수직의 변화를 이끌어 낸다. 풍요와 안정이라는 감정을 느끼게 하는 수공간도 수평공간이므로 인위적으로 만든 분수를 이용해 수직한 형태를 찾아내게 되는 것이다.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시대의 조경은 타인의 접근을 제지하려는 조경과 많이 다르다. 조경공간을 이용할 대상을 배려하는 마음이 있다면 그 마음이 기능을 만든다.

 

3월 원고에서도 언급했지만, 연못에서는 연을 감상하기도 하지만 사진을 찍다보면 피사체를 선명하게, 가깝게 보여줄 수 있는 줌 렌즈가 필요하다. 그런데 줌렌즈가 없을 경우 직접 연 가까이 가야한다. 땅위에서야 문제가 되지 않겠지만 연이 물속에 있을 때는 많은 무리가 따르며, 이런 불편을 해결하기 위해 연못 중앙으로 관람객을 유도하는 데크를 만들게 되었다. 연못 중앙으로 유도하는 데크? 이런 것은 어디에도 있다!! 특별하지 않다는 말이다. 그러나 연꽃이 연못 전체에 번식되어 있지 않고, 연못 중앙에만 피어있는 연못을 찾아보기 힘들다면 다르지 않는가? 그리고 그곳으로 접근하는 데크가 수면과 같은 높이로 설치되어 있고 그나마 난간도 없다면 또 다르지 않은가? 이렇게 다른 것들이 만나고 있다면 달라도 많이 다른 것이 아닌가?

 


사진 4,5. 연꽃의 번식을 제한하는 시설과 데크와 물깊이에도 안전시설이 되어 있다. 물위를 걷는 것과도 같이 수생식물을 감상할 수 있는 새로운 경험을 갖게 한다.

 

재료가 갖는 기능

 

육식을 즐기는 서양인들이 만들어낸 서양화는 유화인데 반해 채식을 주로 하는 동양인들이 만들어낸 동양화는 수묵화이다. 음식이 성격을 만든다는 말처럼 극명하게 상반되는 것을 볼 수 있다.

 

유화는 어떠한 바탕 위에서도 그 위에 덧칠을 하면 없어지는 것처럼, 그 바탕이 흔적도 없다. 마네ㆍ모네ㆍ세잔ㆍ고흐ㆍ고갱 등 18C 인상파 화가들의 그림이 유화물감으로 두텁게 칠해져 있는 것을 보면 잘 이해가 될 것이다.

 

그런데 수묵화는 얇다. 먹물을 붓에 묻혀 화선지 위에 붓질을 하면 화선지위에 먹이 번지는 정도를 이용해 그림을 그린다. 이것은 매우 중요한 것으로 재료 자체가 그림을 그리게 하는 것이어서 덧칠을 허용하지 않는 편이다. 여기에 쓰인 글 정도로는 이해가 되지 않을 수도 있겠지만 더 설명하고 싶지는 않다. 왜냐하면 많은 비밀의 열쇠가 담겨 있기 때문에 여러분의 호기심이 발동하여, 스스로 탐구하기를 바라는 마음에서다.

 

동양에서 추구하는 사상과 일치하는 가르침은 사람이 모든 것을 해결하려 하지 말고 자연에 맡기는 것이다. 조경공간의 많은 부분을 자연이 만들고 키울 수 있는 공간으로 자연과 인간 서로가 배려하는 기능이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나 자신의 몸도 2009년부터 암과 함께 하고 있지만, 의사의 손이 아니라 자연의 손에 맡겨 현재까지 건강하게 일하고 있다. 내 몸에 생긴 문제는 내가 만든 것이기에 다른 누군가가 완벽하게 해결해 줄 수 없다고 생각하며, 가장 위대한 자연에 기대고 있다.
연재필자 _ 정정수 소장  ·  환경조경연구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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