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속가능한 도시농업의 조건 ‘공동체와 문화’

[서평]시애틀의 도시농업 이야기 - 공동체와 텃밭, 그리고 지속가능 도시
라펜트l나창호 기자l기사입력2013-06-08


『시애틀의 도시농업 이야기 - 공동체와 텃밭, 그리고 지속가능 도시』

지은이_ 제프리 호우, 줄리에 존슨, 로라 로손

옮긴이_ 이강오 외

펴낸곳_ 도서출판 조경, 2013

 

2012년 도시농업법 제정 이후 도시농업은 추진력을 얻었다. 그러나 도시농업이 보유한 연료계기판의 눈금은 이제 한 칸을 채웠을 뿐이다. 전통 농경생활의 향수와 그 연장으로 도시농업의 의미를 말하는 사람도 있지만, 도시농업은도시에서 벗어날 수 없고, 벗어나서도 안된다.

그래서 도시농업과 농업은 비슷해 보이지만 같지 않다. 잘 알듯이 도시농업은 식량확보, 환경개선, 공동체회복을 통한 도시문제의 처방전을 보여주고 있다. 그 가치를 한껏높이고, 무엇보다지속가능성을 확보하는 것이 우리의 짧은 도시농업 역사 앞에 놓여진 과제이다.

 

역사가 토마스 바셋은커뮤니티 가든(Community Garden)은 사회·경제적 위기에 문화적 시스템을 유지하는 전략이라고 하나의 실마리를 던져준다. 전쟁이나 경제적 침체기 혹은 사회불안 기간 중에 사람들은 그들의 노력으로 낡고 황량한 토지가 생산적인 공간으로 변화하는 것을 보면서 만족을 찾는다는 것이다. 역설적이지만 결핍이 있어야 커뮤니티 가든도 생명력을 갖고 유지될 수 있다. 그 점에서 도시농업이 호출되고 있는 이유를액티비티에서 찾은 이병언 교수(충북대 건축학과)의 주장은 오늘의 사회문제를 들추어 보게 한다. 그는도시농업은 나 혼자 느끼는 심미적인 가치가 아니라 도시에서 지금껏 경험하지 못한 커뮤니티의 가능성을 열어주기 때문에 각광을 받고 있다.”, 도시민의 새로운 활동영역으로서 도시농업 현상을 보았다.

도시농업법도 도시농업을취미, 여가, 학습을 위해 재배하는 행위로 정의했다. 시작은 공동체이자 문화로서의 접근이다.

 

최근 발간된 『시애틀의 도시농업 이야기 공동체와 텃밭, 그리고 지속가능 도시』에 주목하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시애틀의 대표적인 도시농업 모델 ‘P-패치 커뮤니티가든 프로그램이하 P-패치이 공동체운동과 결합된 운영방식을 취했기 때문이다. 여기서 P-패치란 시애틀에서 독특하게 발전해 온 커뮤니티 가든 프로그램으로 피가르도 씨의 농장에서 처음 시작하여 P-패치라는 이름을 갖게 됐다. 현재 P-패치 프로그램은 시애틀 마을공동체국에서 공동체, 청소년, 마켓가든의 조성과 유지관리를 맡고 있다.

 

무엇보다 이 저작이 미국의 조경분야에서 나왔다는 점에서 시사하는 바가 크다. 미국조경재단 후원 아래 워싱턴대학의 조경설계학과와 어바나-캠페인에 있는 일리노이대학의 조경설계학과의 협력으로 추진됐다.

 

종과 횡으로 짜여진 책 구성도 인상적이다. 1부는 시대적 흐름과 인과관계를 중점적으로 소개해 공동체텃밭의 태동배경과 조성과정을 간접체험하게 한다. 2부에서 소개된 P-패치 6개소 사례분석은 성격이 다른 대상지와 주변환경에 따라 공동체텃밭이 각각 어떠한 성격으로 조성되고 변모해 나가는지 일목요연하게 보여준다. 공동체텃밭의 조성, 유지관리, 프로그램과사회, 경제, 환경적차원으로 밀접하게 연관된 실증적 사례들이 씨줄과 날줄처럼 엮임으로써 도서의 가치를 높였다.

 

일례로 6개 사례지 중 도시공원 속에 있는매그너슨 공동체텃밭’은 우리나라 도시공원 내 도시농업 시설 설치 논의를 떠오르게 한다.

이 텃밭은 공원의 다른 시설들과 잘 조화되었기에 농사일을 하며 야외원형극장의 각종 공연 프로그램을 즐길 수도 있다. 인근에는 대형 주차장이 있어 도시농부는 차와 오토바이 이동이 매우 쉽다. 공동체텃밭 주변의 자생식물 군락은 경관미를 연출하는 동시에 전체적인 프레임 역할을 한다. 편안한 사색을 즐길 수 있는 인근 고요의 정원도 공동체텃밭을 부각시키는 요소이다.

조경설계사무소, 공원휴양국, 공원 커뮤니티센터, 그리고 지역 주민의 원활한 의사소통은 물론 필수였다. 매그너슨 공동체텃밭은 도시공원 내의 도시농업 시설은 조성과 관리를 위해 긴 호흡과 준비로 공간 전체적인 맥락과 이용을 숙고했으며, 도시공원에 텃밭이 들어오면, 공원 역시 변해야 한다는 것을 보여주었다.

참고로 지난 4 29일 기존 도시공원을 도시농업 용도로 활용하거나, 전용 공원을 설치할 수 있는도시공원 및 녹지 등에 관한 법률 개정안이 국회 본회의에서 통과되었다. 앞으로 도시공원 내 도시농업시설을 설치할 수 있게 된 것.

 

물론 대상지 확보, 공공용지의 사유화, 반달리즘, 작물 절도 등 텃밭조성과 운영상 어려움을 P-패치도 경험했다. 한국도 이들 중 몇 가지가 쟁점화 되었지만, 아직 표면화되지 않은 내용도 있다. 이중에서공공용지, 텃밭사유화인식문제에 대한 P-패치의 해법이 흥미롭다. P-패치의 토지소유는 공동체그룹, 비영리단체, 토지신탁의 협조로 이루어진다. 안정적인 운영을 위한 궁극의 선택이었다. 공공참여 프로그램도 빠져선 안 된다. 텃밭의 코디네이터와 구성원이 그 속에서교육프로그램, 워크숍, 투어, 특별이벤트를 열어 폭넓은 범위의 주민참여를 이끌고 있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인터베이 P-패치는토요일 수프의 날과 연어 바베큐를 하고, 브래드너 텃밭공원은 7 4일 독립기념일 불꽃놀이 파티, 할로윈 파티, 그리고 새해 불놀이를 개최한다. P-패치 코디네이터는 더 넓은 지역사회가 행사를 인지하고 참여할 수 있게 도와주는 커뮤니티 촉매제이다.

 

텃밭을 대하는 우리의 인식은 어떨까? 한번은공유지에 꽃을 심는 것을 싫어할 사람은 없겠지만, 경작하는 도시농부의 채마밭을 곱지 않은 시선으로 보는 사람은 적지 않다.”는 전문가의 이야기를 전해들은 적이 있다.

차라리 쓰레기로 덮인 버려진 땅이었을 때 민원이 적었다는 하소연도 있었다. 이는 공동체텃밭을 합법적인 도시의 공공장소로 보는 시각이 결여되어 나타나는 현상이다.

중장년층, 노년층의 소일거리 정도로 치부하는 일반인도 있고, 텃밭을 가꾸는 20~30대 청년들도 좀처럼 보기가 어렵다. 공동체문화로서 도시농업이 아직 시민사회 깊숙한 곳까진 미치지 못했음을 보여준다.

 

그렇지만 시애틀의 텃밭에서 일어나는 공공참여 프로그램이 우리 정서에 낯설지는 않다. 전통농경사회의 공동체정신을 보여주는두레란 작업공동체도 사실 공동작업에만 국한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예컨대 집단으로 하는 농악도두레라하고, 여럿이 음식을 장만해 모여노는 것도두레라 불렀다. 일과 놀이를 아우르는 공동체정신의 총체를두레라 칭했다. 단순한 작물생산을 넘어 다함께 공유하는공동체문화를 선조들이 먼저 걸어온 셈이다.

신동헌 대표(도시농업포럼)는 도시농업이 지니는 최고의 가치가즐길 수 있는 락樂이라며, ‘가꾸는 즐거움, 소통하는 즐거움, 먹는 즐거움, 땀 흘리는 즐거움, 나누는 즐거움을 텃밭 DNA라고 했다. 구호로 외쳤던도시농업을 실천으로 전환하는 단추가 시민사회의 동의이다. 이는 공동체의 참여와 프로그램을 통한도시농업문화로 진화를 필요로 한다.

공유를 통한 문화로서 도시농업이지속가능성을 담보한다면, 그 속에서 전문가의 역할도 변화를 요구받게 된다. 그래서 이 책의 마지막 장에는 참여과정 속 주체 중 하나로 설계자와 전문가의 역할에 대한 제언을 담았다.

 

그동안 일반적인 디자인이 물리적 장소에 치중했다면, 참여가 전제된 커뮤니티 가든은 장소뿐만 아니라 사람과 그 속의 생활까지 관심을 가져야 한다는 것이다. 또 ‘쉽고 명료하게 말하고 지지해야 하며, 전문적, 재정적 네트워크를 끌어올 수 있어야 한다.’고 했다. 주민과 도시농부 등 이해관계의 상호작용은 필수이다. 이것은 비단 커뮤니티 가든에 국한되는 내용은 아니다. 주민참여가 따르는 마을만들기 사업 역시 동일한 역할을 전문가에게 요구하고 있다. 그러나 역자는우리나라의 조경분야는 지나치게 건축토목산업과 연계되어 본래의 자기위상을 잘 찾고 있지 못하는 것 같다.”고 서문에서 밝혔다.

산업적 성장도 중요하지만 그보다 더 중요한 것은 사회적 역할을 다해야 한다는 점이다. 최근 서울시를 중심으로 시민주도로 시행되는 골목길 가꾸기 등 마을만들기 사업 속 공공조경가의 활약과 태동하는 조경나눔 실천은 그래서 희망적이다.

 

마지막으로 번역된 책을 읽으면서 못내 불편했던 한 가지만 짚고 넘어가자. 역자는 커뮤니티 가든(Community Garden)을 공동체텃밭으로, 시티 가드너(City Gardener)를 도시농부로 해석했다. “책 내용상, 커뮤니티 가든은 일반정원과 다른 도시농업을 위한 공간으로 보아야 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혹자는 이러한 유형의 것을 커뮤니티 텃밭 또는, 공통체 정원으로도 부른다. ‘한국적상황이라는 특수성을 감안하더라도, 세계적으로 통용되는 커뮤니티 가든이라는 보편성을텃밭으로 규정하는 것에 대해서는 보다 많은 논의가 필요해 보인다. 안명준 사무국장(환경조경나눔연구원)의 지적처럼 개념어마다 뿌리가 다른 원형이 녹아있기 때문이다. 적어도 공유와 소통에 기반한 도시농업문화를 꿈꾼다면, 저마다 혼용하는 개념어의 파생이 불통을 낳는다는 점도 생각해 보아야 한다. 이것은 새로운 전환기를 맞고 있는 도시농업과 정원의 분기점과 합류지점을 지혜롭게 찾아가는 과정과도 맞닿아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시애틀의 도시농업 이야기-공동체와 텃밭, 그리고 지속가능 도시』는 지속가능한 도시농업에 새로운 영감을 불어넣고 있다. 그렇다고 이 책이 도시농부만을 대상으로 하진 않는다. 조경가, 건축가, NGO 그리고 행정가와 시민까지 공유가치의 중심에 있는 모든 주체가 속에 들어있다. 특히 조경가라면 지속가능한 도시만들기를 위해 시애틀 P-패치에 기여한 조경가의 역할 사례들을 찾아볼 것을 권하고 싶다.

_ 나창호 기자  ·  라펜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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