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름다운 조경, ‘혼합식재’

그림 그리는 조경가_6회
라펜트l정정수 소장l기사입력2013-07-09

세상이 점점 더 다양해 지다보니 인위적인 재료로 인위적으로 만들어진 제품들도 넘쳐난다. 하지만 그들 속에서도 아름다운 것을 발견하게 된다. 아름답다는 필요조건을 충족한다면 명품의 반열에 설 수 있게 되는 것은 분명하다. 그 충족조건이란 다음과 같다.

 

첫째, 기능에 충실한 디자인이다.

둘째, 재료의 선택이 기능에 합당하다(좋은 재료라 새것과 헌것의 차이가 크지 않다).

셋째, 디테일하다.

 

그 이외에 몇 가지가 있지만 누구나 쉽게 접근하기 어려운 중요한 것 하나를 이야기 하고자 한다.

 

능수버들ㆍ주목ㆍ단풍나무, 그 아래 돌 틈에 부처꽃과 붓꽃이, 또 그 아래 물속에는 부들과 노랑어리연꽃이 식재되어 있다. 이정도의 혼합식재는 간단한 예이다(벽초지, 2003).

 

혼합식재(混合植栽)

조경자재로 쓰일 나무나 지피식물 등을 생산하기 위해서는 두 종류 이상을 섞어서 심지않지만, 조경공간 연출을 위해서는 혼합식재가 불가피하며 이미 많은 종류들이 함께 식재되어지고 있다.

 

그러나 이러한 식재 방법에혼합이란 단어를 적용하기에는 다소 불편한 점이 있고, 같은 장소에 따로 심겨 있다고 한다면 맞는 말이 될 것 같다.

 

많은 종류가 한 장소에 식재된 것과 혼합식재를 구분한다면 이해는 쉬울 수 있지만 혼합식재라는 말이 생소한 사람들에게는 더욱 쉽지 않은 일이다. 예를 들어 식물원에 1,000종 이상이 식재되어 있다거나 그 이상의 식물이 식재되어 있다고 해서 혼합식재 되었다고 볼 수는 없다.

 

조금은 다른 이야기일지는 모르겠지만, 요즈음은 건강한 식자재의 공급을 위해 2~3종류로 섞어 심거나 잡초를 방치하는 등 혼합식재의 필요성이 이미 검증되어졌고, 유기농을 실천하려는 이들은 자신들의 농법에 적극 반영하고 있는 추세이다.

 

물론 방치와 식재는 차이가 있다. 잡초를 방치하는 것까지 혼합식재로 본다는 뜻이 아니므로 오해가 없기를 바란다. 원예종으로 만들어진 모든 지피식물들이 인간이 선택하기 전에는 잡초였다는 사실을 간과해서는 안 된다.

 

아프리카에 있는 마사이마라초원을 누비며 함께 살아가는 야생동물들과 무리마다 동물원에 갇혀있는 동물을 비교하며 혼합식재를 이해해보자.

 

식물도 혼자 있어 아름다운 것과 무리지어 있어 아름다운 것이 따로 있다. , 임팔라ㆍ누ㆍ영양과 같이 셀 수조차 없이 많은 수백 마리가 함께 할 때 자기다운 것처럼 식물도 무리지어 있을 때 아름다운 것이 있는가 하면, 사자와 치타처럼 몇 마리만 있을 때 아름다운 것 같은 그런 식물도 있다. 또 코끼리와 하이에나처럼 십여 마리씩 무리지어 다니는 종류처럼 식물도 그렇게 심어졌을 때 아름다운 것이 있다.

 

꼭 이야기하고 싶은 것이 악어와 악어새처럼 한 뿌리 옆에 함께 식재했을 때 그 가치가 상승하는 식물도 있다(기생보다는 공생을 말함)는 점이다.

 


조형물을 기준으로 계류를 따라 혼합 식재된 모습을 방향에 따라 다르게 잡은 사진이다. 큰 나무 밑은 말채나무, 주목, 취홍화, 원추리, 프록스, 붓꽃 등을 거칠게 식재한 듯 야생성을 더했으며, 비교적 노출된 계류 쪽은 아주 낮은 공작단풍, 유카, 노랑꽃창포, 부채붓꽃, 할미꽃, 무늬둥글레, 은꿩의다리, 매발톱 등을 정리된 듯 식재해서 관람자의 시야를 확보하게 했다(벽초지, 2003).
 

동물원에 아무리 좋은 환경을 만들어 준다고 해도 가두어 놓는 기능으로도 동물들에게 좋은 환경이 주어질 수는 없듯이, 식물원도 마찬가지이기 때문에 가두어 키우는 것 같은 식물원도 있다고 생각한다.

 

종류별로 각각의 우리 속에 가둔(보호?) 동물원과 같이 식물원과 식물관련 연구소에서도 2mx5m 정도 크기의 밭을 연이어 만들어 놓고는 각각의 밭에 다른 종류의 식물을 심고 각각의 이름표를 붙인 것을 발견할 수 있다. 이처럼 농부가 채소밭 만들 듯 조성한 이유가교육또는연구를 위해서 라고 하겠지만, 그 형태는 초라하기 이를 데 없다.

 

살아있는 생명체를 공부하고 연구하는데 병원에 누워있는 환자와 같은 상태를 만들어 놓고 연구한다는 것에 이해가 되지 않는 부분도 많다. 심하게는 해부학교실에서 시체를 해부하는 것 같은 현장을 보여주기도 한다.

 

교육과 연구는 교목ㆍ관목ㆍ지피 뿐 아니라 각종 식물들이 야생동물처럼 함께 자라고, 더불어 만들어지는 물과 습지, 바위와 자갈, 영양 가득한 부엽토 등이 있는 환경까지 보여주어야 한다. 나아가 지렁이는 물론, 보이지 않는 미생물이 함께 살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 놓고 그것으로 교육과 연구를 해야 하지 않을까?

 

물을 좋아하거나 싫어하는 식물, 또는 빛을 좋아하거나 꺼리는 식물을 함께 심을 수 없다. 꽃이 피는 시기ㆍ색ㆍ크기 등이 조화를 이루어야 한다면, 자연을 공부하는데 더 많은 시행착오와 연구가 필요할 것이다.

 

몇 개의 악기로 연주되는 것보다는 모든 악기가 총 출동된 오케스트라를 지휘하는 컨덕트(Conduct)에 비유가 될까?  아니, 분명 그 이상이다.

 

그러면 자연스러운 것은 들과 산에서 보면 되지, 왜 굳이 만들려 할까? 들과 산이라는 자연과 그 사이를 떼고 사람이 만들어 놓은 인위를 당연히 구분 지어야 하겠지만, 이렇게 구분 짓는 흑백논리는 중요하지 않다고 본다. 대부분의 많은 답이 흑과 백 그 사이의 회색 속에서 찾을 수 있기 때문이다.

 

동물원 철창에 가둬진 동물과 야생동물 사이에는 철장 쪽에 더 가까운 「사파리」라는 공간이 만들어져 있는 것과 같이 식물원이라는 인위와 들과 산이라는 자연 사이에 조금 더 자연에 가까운 '식물 사파리'를 만드는 것이 혼합식재라고 생각한다.

 


혼합식재의 모범이라 할 수 있다. 금년 6월 중순에 완성된 정원의 일부분으로 배롱나무 밑에 족두리(풍접초), 델피니움, 스타치스, 붓꽃, 은쑥, 하늘용담과 그늘이 가장 깊은 곳에 산마늘, 빛이 많은 곳에 사계 패랭이를 심고 그 속에는 봄에 꽃피는 추식구근들이 함께 있다. 바위틈에는 새덤류로 단풍새덤, 다람쥐꼬리, 노랑블루솔, 백두산기린초, 큰꿩의비름 등 이 사진 속에만 20여종의 숙근초가 혼합식재 되어 있는 공간이다(보령 E씨댁, 2013).

 

식물우산

대부분의 식물은 동물에 비해 서로가 적대시하기보다는 서로에게 친화적이다. 따라서 동물원 사파리가 야생 환경보다 철장에 가깝지만 식물에게는 자연에 가까운 사파리, 즉 식생환경를 만들어 줄 수 있다.

 

‘핵우산’이란 말은 들어 봤어도식물우산은 생소할 것이다. 이 단어는 식물의 생태에서 발견한 것으로 식물들이 가족이나 친척들끼리는 함께 모여서 우산의 형태를 유지하며 외부 적의 침입을 막고 친척들끼리는 서로 양보하며 만들어낸 형태라서 그 설명이 적당하다고 생각되어, 필자가 만들어 쓰는 단어이다.

 

식물들도 가족이나 친척을 인식하는 것으로 보이는데 친척이 아니면 공격한다. 즉 토양의 영양소 흡수를 위해 뿌리로 공격하며, 독소도 내뿜는다. 이 독은 사람에게는 향이 되는 것이 대부분이다. 식물은 흙 밖에서도 방해요소를 만들어낸다.

 

하지만 이렇게 공격당한 식물은 죽었을까? 그렇지 않다. 당하는 식물 또한 가만히 있지 않기 때문이다. 혼합식재를 하면 식물들이 자라는데 불편하다고 생각하는 사람들도 많겠지만 대개의 경우는 식물들에게 더 좋은 환경이 만들어지게 된다. 도로변에 줄 맞추고 경계 지워 다른 색의 식물을 식재해 놓은 것은 혼합식재가 아니고 한 장소에 함께 심어진 것이다.

 

이것은 축구경기가 시작되기 전에 양편으로 갈라서서 경기가 시작되기를 기다리는 모습과 같은 것이고, 혼합식재란 경기가 한 참 진행되고 있는 상태에서 선수들이 양측진영의 구분 없이 뒤섞여 있는 모습을 생각하면 식물에서도 그 역동성을 느낄 수 있을 것으로 본다.

 


아파트단지 내 특화조경으로 된 초심원 주변으로 크고 작은 나무들이 혼합 식재된 모습을 볼 수 있다. 트랙이 있는 왼쪽 중앙의 두 그루의 나무는 다른 조경회사에서 식재한 것으로 식재 방법이 익숙하게 정돈돼 있다. 나무와 돌ㆍ지피들이 혼합 식재된 공간을 동물들이 제일 먼저 알고 찾아온다. 완공 전 작업과정에서 찍은 것으로, 오른쪽 사진 왼쪽 중간쯤에 다람쥐가 보인다(래미안금광, 2007).

 

이렇듯 섞임과 친척들의 영역을 확보하려는 식물우산의 형태들을 이해할 수 있다면 혼합식재에 의한 진정한 생태조경이 만들어지게 된다. 식물이 아닌 열대어종을 예로 들어보자.

 

멸종위기에 처한 열대어종의 보호를 위해 세계 제일의 해양박물관에서는 전문가는 물론 현대적 장비가 갖추어진 배를 이용해 이 어종을 모셔오려 했으나 번번이 실패를 거듭했다. 연구진이 부두의 술집에서 한탄하는 데, 이들의 이야기를 들은 늙은 어부가 이렇게 제안을 했다고 한다.

 

“그 물고기의 적이 되는 문어를 함께 넣어 가져와라, 그러면 잡히지 않은 것은 모두 살아서 온다.”

 

결국 이 방법으로 성공했다. 서로의 관계에서 만들어지는 적당한 스트레스가 이들을 강하게 만든 것이다.

 

이러한 결과를 볼 때, 경험이 지식의 위에 있는 것이다. 경험이 지식에 우선하는 것 임에도 지식인 그들도 자신이 경험자가 될 만큼 늙기 전에는 깨닫지 못한다. 더불어 사는 것이 모두가 살 수 있는 것임을 자연은 가르쳐준다. 그런데 감히, 사람이 자연을 보호하겠다고?

 


참억새, 부처꽃, 부채붓꽃, 당귀, 술패랭이 등이 혼합 식재된 습지 식물을 배경으로 여우장갑이라 불리는 디지털리스가 자태를 뽐내며 루피넌스와 붓꽃은 풍성한 씨앗을 맺고 있다. 씨앗의 대부분은 캐나다 벤쿠버에서 구해와 농가에 재배를 의탁해 이식했다(벽초지, 2003).

 


캐나다 부차드가든의 한 부분이다. 여러종류의 지피가 식재돼 있지만 혼합식재라고는 할 수 없. △몇년을 두고 볼 자연스런 조경과 관람객에게 빠른 감동전달을 위해 화려함을 유지하며 계속 바꿔심는 조경처럼 목적에 맞는 식재방법 선택이 필요하다.(사진_윤혜경)

 

 


연재필자 _ 정정수 소장  ·  환경조경연구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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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afent@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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