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경가가 할 수 있는 일, 해야 하는 일"

[인터뷰] 박명권 그룹한어소시에이트 대표
라펜트l나창호 기자, 이형주 기자l기사입력2013-07-11

외부공간을 마주하는 조경가에게 클라이언트의 이해는 중요하다클라이언트는 대개 공공기관, 건설사 등 발주처와 건축주들이다. 최근 박명권 대표(그룹한 어소시에이트)는 색다른 클라이언트를 위한 설계를 진행했다. 바로 위안부 할머니였다.

 

전쟁과 여성인권박물관은 비용을 받고 진행했던 설계가 아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박 대표는 마음에 들 때까지 설계안을 세 번이나 새로고침 하였다. 왜 그토록 그는 외부공간 설계에 열정을 쏟게 된 것일까?

 

특별했던 클라이언트에 대한 배려, 그리고 역사인식에 대한 조경가의 소리없는 발언이라는 것이 박명권 대표의 생각이다.

 

그 진심이 통하였는지, 위안부 할머니는 나에 살던 고향은…’으로 시작하는 고향의 봄을 회상했고, 검정색 매끈한 자갈에서 바다를 보았다. 이심전심이었다.

 

라펜트는 전쟁과 여성인권박물관 설계를 담당했던 박명권 대표와 만나, 각 공간 속 숨은 의미를 하나씩 찾아보았다.

 


 

설계과정?

책임디자이너로서 전쟁과 여성인권박물관'을 여러 차례 방문해 조사를 진행했다. 초기작업으로 윤미향 상임대표(()한국정신대문제대책협의회)와 만나 이 곳의 장소성과 역사성, 외부공간에서 발생되는 불편함을 들었었다. 동시에 위안부 할머니의 궤적을 추적하며, 건축적 맥락까지 낱낱이 살펴보는 작업도 병행했다. 부지는 넓지 않았지만, 한달 가까이 고민한 것 같다. 그 과정 속에서 설계안도 세 번이나 바꾸었다.

 

  정원의 콘셉트는 기억, 추모, 치유이다. 이 세 가지 단계적 개념이 공간을 지배하는 중요한 배경이 되었다.

 


 

 

기억

어릴 적 할머니들의 고향 추억을 아스라이 보여주기 위한 장치로 살구나무와 진달래를 심어 아련한 기억을 들추어 낸다.

 


큰 창 너머로 보이는 살구나무와 진달래

 

추모

건축가는 이미 돌아가신 위안부 할머니를 추모하며, 외벽을 검정색으로 만들었다. 그것과 연결되는 공간에 흰색 수피의 자작나무를 배식해, 차분함과 경건함을 표현하고 있다.

거친 호박돌 사이에는 야생화가 식재되어 있다. 돌틈사이로 피어오르는 야생화는 할머니들의 질곡의 삶을 상징한다.

저고리의 곡선과 형태를 재현한 목재데크와 잔디마당은 추모를 상징하는 중요한 매개체이다.

 

 



 

치유

검정 자갈은 바닷가 파도에 씻겨나가는 이미지를 연상시키기 위해 배려한 장치이다. 좋지 않았던 기억들이 깨끗이 씻기길 바라는 마음으로 구상했다.

박명권 대표는 할머니의 건강을 생각해 편백나무를 어렵게 공수해 왔다. 편백나무는 다량의 피톤치드를 발생시켜 산림욕으로 활용도가 높다. 정원에서 피는 라벤더도 향을 통해 심신을 안정시키는 중요한 힐링정원 요소이다.

 



 

국내 최대 조경설계사무소 대표인데, 손수 설계를 맡은 이유가 있는지?

학생운동 세대라 그런지, 위안부 할머니를 둘러싼 일본의 아베 총리, 하시모토 오사카 시장의 망언을 접할 당시, 피가 끓어오르는 기분이었다. 직접 정치활동 전면에 나설 수 있는 것도 아니다. 그래서 내가 할 수 있는 조경설계를 통해 위안부의 아픈 역사를 조금이나마 치유해야겠다는 생각으로 작업에 몰두하며 박차를 가했다.

 

모든 것이 기부로 이루어졌다. 재정적인 부담은 없었나?

사실 큰 규모의 사업이 아니라면, 업체로서는 자재비보다는 인건비가 부담이다. 하지만 모든 인력이 나눔봉사자로 이루어졌다. 봉사자의 실천이 전제되었기 때문에 비용상 부담이 크지 않았다는 것이다.

 

조경분야에 있는 교수님과 대학생, 그리고 업체 관계자와 그 가족들까지 모두가 하나로 힘을 모았다. 30~40명이 줄을 서서 엄청난 분량의 호박돌을 줄을 서서 나르는 진풍경도 연출되었다.

 

결국 중요한 것은 돈보다는 마음가짐이라는 생각이다. 봉사라는 가치있고 보람된 일을 해 본 사람은 안다. 기부업체 역시, 돈을 떠나서 사회적 나눔을 통해 보람을 느꼈을 것이라고 믿는다.

 

이번 프로젝트의 의미를 짚어본다면?

그동안 조경이 사회적인 기여에 대한 부분에서 활발하지 못했다. 어떻게 할 지 몰랐던 것이다. 환경조경나눔연구원(원장 임승빈)이 설립되며 이러한 물꼬를 터주고, 촉매제 역할을 하게 됐다.

 

그동안 조경분야는 사회적 봉사활동에 구심점이 없었다. 설계, 시공, 관리 회사가 각각 분산되어 있어서, 조경의 특징을 살린 하나의 대상지를 오롯이 만들기도 어려웠고, 지속적인 나눔 네트워크도 가동되지 못하였다.

 

그리고 마침내 녹색복지 차원의 조경의 공공성을 담보할 환경조경나눔연구원이 창립됐다. 이로 인해 조경분야의 다양한 구성원이 하나로 뭉쳐 사회공헌을 언제라도 할 수 있게 된 것이다. 평소 봉사와 사회활동에 관심이 많았기 때문에 환경조경나눔연구원의 창립이 누구보다 반가웠다.

 

조경기업이 어려운 시기를 보내고 있다고는 하지만 그럴수록 어려운 사람과 함께 나눔을 실천했을 때, 기업의 가치가 커지고 발전가능성도 높아진다고 생각한다. 기업도 실천과 용기가 필요하다.

 

끝으로 전하고 싶은 말은?

나눔은 행복이다. 내가 심은 나무, 내가 옮긴 돌이제 우리는 전쟁과평화여성인권박물관에 하나의 기억을 심었다. 우리 아이들도 조막손으로 모종삽을 들었다. 그 아이들이 자라고, 다시 이곳에 왔을 때 그들은 스스로 자랑스러워 하게 될 것이다.

 

녹색을 필요로하는 사람이라면 환경조경나눔연구원의 녹색나눔 신문고를 두드려 주길 바란다. 이 곳은 누구에게나 열려있다. 앞으로 이러한 나눔 프로젝트가 더욱 활발히 펼쳐지길 기대해 본다.

 

[환경조경나눔연구원 홈페이지 바로가기]

 


_ 나창호 기자  ·  라펜트
다른기사 보기
ch_19@hanmail.net
사진 _ 이형주 기자  ·  환경과조경
다른기사 보기
klam@chol.com

네티즌 공감 (2)

의견쓰기
gozip 보상없이 사회적기여 차원에서 설계를 맡아 봉사활동 지원자들과 함께 조경공간을 만들어낸 일은 참 멋있는 일이었던거 같습니다

다만, 이정원의 설계적 접근이 너무 과다했던것 같고 실물도 그다지 좋은것 같지는 않아 보입니다. ‘전쟁과 여성인권박물관’ 이란 역사적 공간이기 때문에 기억,추모,치유 등의 개념을 배재하기는 어렵지만 한두개의 조경재료로 역사의 기억과 추모 치유를 담아내기엔 너무 큰 개념이지 않나 싶습니다 그래서 결국
"틈사이로 피어오르는 야생화는 할머니들의 질곡의 삶을 상징한다.
저고리의 곡선과 형태를 재현한 목재데크와 잔디마당은 추모를 상징하는 중요한 매개체이다." 이런 말들은 끼워맞춘 말 이란 느낌뿐이며 실제로 저런상징의 모양과 디자인이 얼마만큼의 영감을 줄수 있는 공간인지는 의문입니다 조잡하다는 생각이 드네요
역사적인 공간이긴 하지만 이정원에서의 치유됨은 좀더 큰개념을 상징하는 각각의 요소가 아니라 전체적인 조경디자인적으로 완성된 정원이 즉 큰 개념은 가지고 있지 않더라고 그저 아름다운 공간이 되었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 많은 설계하는 사람이 컨셉에 얶매어 실제 보이는 공간을 놓쳐버리는 경우가 많은거 같아 아쉽네요
2013-07-13
rkwlajrwk 멋있어요!!
2013-07-11

가장많이본뉴스최근주요뉴스

  • 전체
  • 종합일반
  • 동정일정
  • 교육문화예술

인기통합정보

  • 기획연재
  • 설계공모프로젝트
  • 인터뷰취재

커뮤니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