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행자를 배려하는 따뜻한 담장을 보고 싶다

[조경명사특강] 임승빈 교수의 도시사용설명서_8회
라펜트l임승빈 명예교수l기사입력2013-08-04

가로를 공간적으로 한정하는 담장 디자인은 보행자의 쾌적성을 좌우하는 중요한 요소이다. 특히 학교, 아파트, 공공기관 등은 넓은 토지를 차지하기 때문에 담장 길이가 도시가로와 보행자에게 지대한 영향을 미친다. 

 


같은 덕수궁 담장인데 보행자에게 배타적인 담장()과 보행자에게 우호적인 담장()으로 성격이 구별된다. 화초박스()는 돌담의 지루함과 딱딱함을 줄이는 역할을 한다.

 

우리나라는 전통적으로 담장문화가 발달되어왔다. 서민들의 초가집, 사대부들의 한옥, 관가와 궁궐은 모두가 담장으로 둘러싸여 영역경계를 분명히 하고 있다.

 

이들 담장은 외부로부터의 침입을 막고 프라이버시를 보호하는 공통의 기능을 수행하지만, 이들 담장의 차폐정도는 초가집부터 한옥, 궁궐에 이를수록 높아지고 견고해진다. 이러한 폐쇄적 담장문화는 해방 후 도시구조가 서구화됨과 동시에 서구의 개방적 담장문화 영향을 받으면서 점차적으로 차폐성이 낮아지고 있다.

 


낙안읍성의 민가 담장_ 우리나라 도시에서는 전통적으로 건물을 둘러싸는 담장이 필수적 요소이다. 담장의 높이는 차폐정도를 결정하는데 이는 민가, 사대부집, 관아, 궁궐에 이를수록 높아지고 견고해진다.

 

주거지 골목에서의 높은 담장은 골목 경관을 답답하고 폐쇄적으로 만들어 쾌적한 보행환경을 만들기 어렵고 주민간의 소통도 더욱 어려워진다. 근래에는 골목길의 답답함을 해소하고자 신도시 주택에서 담장 높이를 제한하거나 투시성 담장을 권장하는 시책을 펴고 있다. 더 나아가 담장허물기 사업을 통해 동네 골목길의 주차문제까지 해결하는 사례가 늘고 있는데 이는 바람직한 노력이라 할 수 있다.

 


경기도 과천_ 신도시에서는 골목경관의 향상과 답답함을 줄이기 위하여 낮은 담장, 투시성 담장을 권장하고 있다.

 

독일, 미국 등 서구에서는 전정(前庭)을 시각적으로 개방하여 골목길의 녹시율이 높아지고 친근한 경관이 형성된다. 이들 나라에서는 일반적으로 주차장이 전정에 있으며, 전정보다 넓은 후정에 프라이버시가 있는 잔디밭, 연못 혹은 수영장이 있는  정원을 만드는 것이 보통이다.

다만 전정을 개방하는 정도에는 차이가 보인다. 독일의 경우 대부분 철제 펜스로 외부인의 출입을 제한하고 있으나, 미국의 경우에는 완전히 개방하는 것이 보통이다.

 




독일 베를린 교외의 주택담장_ 독일의 주택들은 철제 투시형 담장이 주를 이루고 있다. 철제 담장이 아예 없이 완전히 개방된 경우, 반대로 생울타리로 완전히 차폐하여  볼 수 없도록 하기도 하지만, 대부분의 경우 투시형 철제 펜스로 되어있다.

 


미국 블랙스버그 교외의 주택_ 도로에 면하는 곳은 담장 없이 완전하게 개방하였고(), 주택 후면에 프라이버시가 있는 후정을 조성하였다(). 독일과 마찬가지로 정원을 시각적으로 개방하고 있으며, 그 정도가 훨씬 높다.

 


미국 시애틀 교외의 주택_ 펜스 없이 앞마당이 완전 개방되어있다.

 

우리나라에서는 최근 관공서, 학교, 아파트 등의 담장을 개방하거나, 녹화하여 가로경관을 향상시키고 보행자의 쾌적성을 높이고 있음은 바람직한 일이다. 이들 공공기관은 가로에 접하는 길이가 길어 가로경관에 미치는 영향이 크므로 단순한 개방이 아니라 적극적으로 보행자를 배려하는 시설을 설치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서초동 KT 연구소_ 대지경계로부터 3미터 이상 후퇴하여 투시성 담장을 위치시켜 보행자에게 쾌적하고 친근한 가로환경을 제공하고 있다.

 


서울대학교 미술관 입구_ 대학 구내의 미술관을 인근 주민에게 개방하면서 담장을 없애고 녹지를 만들어 접근을 용이하게 하였으며 친근한 가로경관을 제공하고 있다. 지역사회에 기여하고 지역주민과 함께하는 대학의 바람직한 모습이라 할 수 있다.

 



서초구청사 벽천_ 남부순환로변 대지경계선에서 후퇴하여 높이차를 이용한 벽천을 만들어 보행자의 휴식과 가로경관의 증진에 기여하고 있다. 담장을 만들 때 대지내부만 생각하지 않고 가로의 보행자를 배려하는 좋은 예이다.

 

담장을 단순히 개방하는 것을 넘어 친보행자 시설을 설치하는 것이 필요한데 그중의 하나가 보행약자를 배려하는 것이다. 즉 길다란 담장을 따라가다가 잠시라도 쉬었다 갈 수 있도록 벤치나 간이 의자를 설치하는 것이다.

 


보행자에게 배타적인 아파트 담장()_ 담장을 일부구간 후퇴하고 벤치를 놓아 보행자가 쉬어갈 수 있게 배려하면 어떨까? 벤치가 없어서 차량진입 방지용 볼라드에서 쉬고 있는 노인()

 

대지에 여유가 있다면 서울대 미술관과 서초구청사의 벽천과 같이 담장을 후퇴하여 쉴 수 있는 시설을 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이와 같이 담장을 만들 때 배타적으로 내부만 생각하지 않고 가로경관과 보행자의 편의를 배려한다면 더욱 친근하고 살기 좋은 도시가 만들어질 것이다.

 

담장을 개방하여 이웃과 소통하는 아름다운 골목길을 보고 싶다.

보행약자를 배려하는 벤치가 있는 따뜻한 담장을 보고 싶다.

 

연재필자 _ 임승빈 명예교수  ·  서울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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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eungbin@snu.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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