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류봉아래 기암 계류가 빼어난 영동의 ‘한천정사’

[조경명사특강]이재근 교수의 ‘한국의 별서’ 3회
라펜트l이재근 교수l기사입력2014-01-03


 

"사군봉 아래에서 나란히 말을 탄다.

화헌에 봄 왔거늘 아직 아무도 오지 않았구나.

청학에 둥지 비어있고 물수리 새끼 날고 있네.

백양에 길 끊기니 두견새 원망하며 울어댄다.

지금은 유월이 오직 높은 봉우리요,

예전처럼 깨어있는 마음 냉천때문이라.

유적으로는 법존암 아직 남아있고

골짜기 입구에 안개비 용연동을 가리네"

 

使君峯下騎相聯

春入花軒客未還

靑鶴巢空飛乳鵬

白羊行斷怨諦鵑

袛今留月唯高蚰

依舊醒心是冷泉

遺迹法尊尙在

洞門煙雨鎖龍淵

 


조선중기의 문신 신광한(申光漢 1484-1555)이 도승지 임호신(任虎臣 1506-1556)에게 준 한천팔경을 노래한 시다.

"사군봉(使君峯)에서 벗 임호신과 함께 말을 달려 화헌암(花軒巖)에 가보니 봄이 왔고, 청학굴(靑鶴窟)에는 새둥지가 비어있는 채로 물수리 새끼만 날고 있으며 산양벽(山羊壁)은 길이 끊겨 두견새만 울어댄다.

월류봉(月留峯) 높은 봉우리가 눈에 들어와 냉천대(冷泉臺)에 이르니 정신이 번쩍드는구나. 법존암(法尊巖) 유적은 아직 남아있는데, 골짜기에 안개비 내려 용연대(龍淵臺)를 가리네"라는 내용이다.

 

신광한은 또한 "도대체 기암괴석은 어디서부터 여기로 온 것인가? 면면이 기암이요, 걸음마다 이끼로다. 피리소리 들으며 보니 산수가 푸르구나. 알록달록 새들은 어디에서 날아왔다 가는고" 하며 이곳 한천정사 주변이 아름다운 선비의 별천지임을 노래했다.

 


 

한천정사는 우암 송시열(1607-1689) 32세 되던해 들어와 자연을 벗하며 은신하던 별서터이다. 이곳에 도착하면 우선 눈에 들어오는 월류봉아래 6개의 봉우리들과 휘돌아쳐 돌아가는 계류의 한천팔경이 주변경관을 압도한다.

한천팔경(寒泉八景)이란월류 봉(月留峰), ② 냉천 정(冷泉亭), ③ 사군 봉(使君峰), ④ 산양 벽(山羊壁), ⑤화헌 악(花獻嶽), ⑥ 법존 암(法尊巖), ⑦ 청학 굴(靑鶴窟), ⑧ 용연 대(龍淵臺)를 말한다.

 

1경인 월류봉은 6개의 봉우리를 이루고 있다. 월류봉은 아래에서 보는 경관이 아름답다. 그러나 산정상에 올라갔을 때 보이는 계류와 산 자락들은 더없이 파노라믹하게 아름답다.

 



 

2경인 냉천정은 지금은 흔적이 없고 백사장 자락과 잡풀만이 무성하다. 3경인 사군봉은 월류봉 아래 바위산으로 설경이 절경이고 제4경인 화헌악은 봄이면 진달래, 철쭉이 가을이면 단풍으로 물든 모습이 장관이다.

 

5경인 법존 암은 원촌마을에 있는 폐허가 된 절터로 추정되고, 6경인 산양 벽에는 월류 봉의 첫째, 둘째 봉우리 사이로 깎아지른 층암절벽이 둘러쳐져 있다. 7경인 청학굴은 월류봉 중턱에 걸려있는 자연동굴이고, 8경인 용연대는 월류봉 아래 계류가 바위에 부딪치며 소를 이루는 곳이다.(한국교원대 산학협력단.2013.11.21. 고서화고문헌에 의한 명승발굴조사 pp42-53)

 


 

신증 동국여지승람(新增 東國與地勝覽)에 의하면, "황간고을은 층층한 산마루를 의지하고,절벽을 굽어보고 있다. 동남산록 모든 구렁의 물들이 아래로 돌아 꺾이어 서쪽으로 가는데, 세차게 흘러 돌에 부딪치면, 거문고와 비파, 피리 같은 소리가 주야로 끊어지지 않는다. 고을 서쪽 5리쯤 되는 곳에 두어 봉우리가 우뚝 솟아 들여다보고 섰는데, 가운데에는 청학 굴(靑鶴窟)이 있다. 바위 골이 그윽하고 깊으며 연기와 안개가 아득하여, 지나는 사람은 저기는 분명 인간 세상이 아닌 것으로 의심 한다"라고 되어있다.(박은경,1998. 우암 송시열의 조영공간특성과 경관관에 관한 연구.서울시립대대학원)

 

우암 송시열(1607-1689)은 병자호란(1636.12-1637.1)때 인조(1595-1649)가 청나라에 치욕을 당하고, 그의 아들 소현세자(1612-1645)와 봉림대군(1619-1659)이 인질로 끌려가는 것을 보고, 관직을 사퇴하고 황간 냉천리(현재 원촌리)에 내려와 학문과 후진양성에 전념하였던 것으로 보인다.(박해영.2007.우암송시열의 정원유적에 나타난 자연관에 관한 연구 -중부지방을 중심으로-상명대대학원석사논문. p46-50)

 

"물의 골짜기가 많고 깊은 곳"이란 뜻의 황간현(黃澗縣)에 속해 왔던 원촌리(院村里)는 구석기 시대의 고인돌 유적이 있는 유서 깊은 곳이다.

 

구터에는 은진송씨(恩津宋氏) 재각(齋閣)이 있고, 구터마을 북서쪽 용산면방면으로 약500m 떨어진 밭 가운데에는 고인돌이 보존되고 있으며, 심묘사지(深妙寺趾)터가 서원마을에 남아있다. 사직당 마을의 송천(松川)과 석천(石川)이 만나는 합수머리 지점에는 구석기시대(舊石器時代)의 생활유적(生活遺蹟)인 높이 5~6m, 너비 10m의 커다란 바위도 세워져 있다.

 

한천정사가 위치한 곳은 초강과 석천이 합류하는 지점으로 월류봉과 어우러져 선경(仙境)을 이루는 곳이다. 맞은편으로 월류봉(400m)에 오르면 북동쪽으로 펼쳐진 산세와 고즈녁한 마을풍경, 한반도 처럼 생긴 산악지형과, 구하도(舊河道: 옛하천 2.4km)의 방향성이 뚜렷해 장관을 이룬다.

 




우암 송시열은 황간 원촌(냉천)리의 높은 산과 깊은 물을 사랑하여 은거하면서 일체 시사(時事)를 말하지않고 날마다 사방에서 모여 배우려는 사람들과 성리학을 강론하였으며, 때로는 종일토록 눈을 감은채 책을 마주하였다고 한다.

 

이곳에는 우암이 서거한후 지방유림들에 의해 1717(숙종43) 한천서원(寒泉書院)이 창건되었으며, 1726년에는 영조로부터 한천(寒泉)이라는 사액을 받았다. 그러나 1871(고종8) 대원군의 서원철폐령으로 훼철되었다가 1910년 후학들이 소규모의 한천정사(寒泉精舍)를 다시 건립함으로써, 그나마 옛자취를 찾을 수 있게 되었다.

 

한천정사는 원촌리 서원마을에서부터 약 300m 떨어진 곳에 위치하고 있다. 정사 입구에는 근원직경 100 cm 내외의 느티나무 2그루가 지키고 있으나, 마당 좌우측으로 심겨져있던 은행나무는 고사되어 밑둥만 남아있는 상태이다.

 


 

한천정사 건물자체는 정면 3,측면 2칸의 목조한식팔작 기와집으로 자연석 주초위에 4모기둥을 세우고, 대청마루를 중심으로 양쪽에 방을 들였으며, 전면에는 툇마루를 설치하였고 기둥에는 한천팔경을 글로 새겨 주련을 걸어놓았다.

 

현재 한천정사의 면적은 소규모로 복원되었지만 정사앞의 높은 봉우리들과 계곡은 경관을 즐기며 안빈낙도(安貧樂道) 하기 엔 제격이라 할 수 있다. 전통정원에서 많이 나타나는 외부 경관을 빌리는 차경(借景)을 즐겼을 법하다.

 

이곳은 1986년 한국의 명원백선 연구차, 처음으로 조사 나왔을 때가 생각난다. 황간IC에서 빠져나와 산세수려한 초강천을 지나니 분위기가 이미 선경에 접어든 듯하다. 한천정사입구에 이르러 월류봉을 대하니, 그야말로 "" 소리가 났다. 이때는 한천정사 주변에 음식점도 거의 없었고, 천연그대로의 원시경관이 있을 뿐이어서 실로 꿈인가 생시인가? 했다. 중국의 계림과 황산의 산수를 빌려온 듯 했고 조선의 화가 안견이 그린 "몽유도원도"가 여기가 아닌가 싶었다.

 

그러나 현재 한천정사 주변은 인위적인 시설들이 들어와 관광지화되었다. 정사자체내의 마루는 훼손되고 협문, 방과 창문, 아궁이와 굴뚝등이 관리가 안되고 있음은 물론, 담장내 잡초만 우거져 있어 방문객들을 안타깝게 하고 있다. 편익성을 도모키 위해 천변으로 설치된 노인정성격의 정자와 데크, 울타리는 주변경관을 오히려 크게 해치고 있다. 서측 하천변을 따라 올라가면 사유지로 축대를 쌓아 별장 형 주택과 잔디구장을 만들었고 음식점들이 여럿 생겨났다.

 

그러므로 이와같은 사유지는 과감히 매입하여 옛 경관대로 복원해야 한다. 진입로를 비롯한 주변 경역(景域)에 관한 보다 심도 있는 종합정비계획이 필요하다. 한천정사와 월류봉 경관은 우암 송시열의 별서로서 자연과 철학을 담은 별천지(別天地)임에 틀림없다.

 

1999년 충북 문화재자료로 지정된 한천정사는 은진송씨 종중의 소유로 현재 황간유림회에서 관리하고 있다. 향후 한천정사는 하루빨리 별서로서의 국가 명승으로 지정되어 역사문화 및 자연경관이 같이하는 복합명승으로서의 기능을 다해야 한다.

 


 

 

연재필자 _ 이재근 교수  ·  상명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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