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태의 門] 오카방고의 비극

권오병 박사의 ‘생태의 문(門)’ 1회
라펜트l권오병 대표이사l기사입력2014-01-23

권오병 박사의 [생태의 문(門)]

오카방고의 비극

 

글_권오병(아썸 대표, 생태학 박사)

 

모든 강은 바다로 흘러가지만, 오카방고 강은 영원히 바다에 이르지 못하는 강이다.

 

아프리카 남서부의 앙골라 고원에서 시작한 오카방고 강은 나미비아 평원을 지나 보츠와나의 칼라하리 사막까지 1600km를 흐르는 넓고 깊은 강이다. 앙골라 고원의 우기인 1월에 평균 3회 정도 내리는 큰비는 오카방고 강의 상류 1000km를 한 달 정도 걸려 단숨에 내달려 흐르고, 나미비아 평원에서 숨을 고르며 오카방고 삼각주에 이르는 250km를 천천히 4개월간에 걸쳐 흘러간다. 그리고 강은 칼라하리 사막을 만나 1만8000km²에 달하는 광활한 오카방고 습지를 형성한다. 이 도도한 강물은 3%정도는 사막으로 잦아들고, 97%는 증발하여 사라진다.

 

오카방고 강이 처음부터 바다로 흘러가지 못한 것은 아니었다. 원래는 칼라하리 사막(당시에는 칼라하리평원)을 관통한 후 남아프리카 중북부를 뚫고 인도양으로 흘러갔던 3000km가 넘는 긴 강이었다. 그러나 200만 년 전, 아프리카 북동부를 뒤흔든 거대한 지각변동으로 인한 역단층으로 강물이 막혀 오늘날의 오카방고 내륙 델타습지가 만들어진 것이다. 처음에는 거대한 호수였으나 기후변화에 의해 건조지대가 되고, 호수가 증발하여 현재의 내륙습지가 되었다.

 

그래서 오카방고는 칼라하리의 보석이라 불리면서 수많은 생명체들을 보듬고
키워낸 생태계의 보고로 인정되어, 1996년부터 람사르협약에 의해 보호되고 있다. 이곳에는 약 400종의 조류, 95종의 파충류와 양서류, 70종의 어류, 40종의 대형 포유류가 서식하고 있다. 여기에는 코끼리, 기린, 사자, 치타, 물소, 누, 하마, 얼룩말, 임팔라, 몽구스, 악어, 뱀, 플라멩고, 황새, 따오기 등을 비롯해 수많은 생물들이 살고 있다. 수많은 생물학자, 과학자, 사진가, 관광객 등 4만여명이 매년 이곳을 찾고 있다.


오카방고 습지는 아프리카 최대의 동물 종 다양성을 보이고 있으나, 생태학자들은 급격한 지구의 기후변화로 인해, 아프리카 중서부의 차드호처럼(지난 40년간 90%가 사라짐) 머지않은 장래에 지구에서 영원히 사라질 운명임을 예고하고 있다. 연평균 500~600mm 정도였던 강수량이 절반 이하로 줄어들자, 상류에 위치한 나미비아는 300km의 수로를 건설하고 있고 추가로 250km의 수로를 계획하고 있다. 심각한 가뭄으로 물부족 현상에 직면한 앙골라는 댐건설 계획을 추진 중이다. 오카방고가 소재한 보츠와나는 매년 습지면적이 줄어들고 있는 현실에 직면하여 생존을 위한 전쟁이라도 불사할 처지다. 현재는 UN의 중재로 공생을 모색하고 있지만 각국의 생존이 달린 첨예한 갈등으로 쉽게 해결방안이 나올 것 같지 않다.


여기서 잠깐 우리나라 조경분야의 직면한 현실 문제를 오카방고의 비극에 견주어 생각해 보자. 한국조경의 지난 역사 40년은 오카방고 습지가 확장되던 6월부터 8월에 해당된다. 건기 동안 가물어 갈라진 땅에 어느날 갑자기 도도하게 흘러오는 풍부한 강물과 강렬한 햇빛은 순식간에 오카방고를 생명체의 낙원으로 만들었고, 드넓은 습지의 수많은 수로의 어느 한 지점에 한국 조경이 탄생하였다. 때마침 우연히 남들보다 먼저 이곳에 도착했던 1세대 조경업자들은 토지가치의 상승만으로도 큰 부를 거머쥘 수 있었다. 운 좋게 이곳에 이시기에 태어난 임팔라 영양 한 무리가 2세대(70-80학번) 조경가들이라 볼 수 있다. 태생의 운이 따랐던 이 그룹은, 비교적 먹이 걱정 없이 천지에 널린 풀을 뜯어먹고 무럭무럭 자라 몸집을 키워갔다. 무리들 중에 영리하고 힘센 영양들은 남들보다 더 커졌고, 사자나 악어들의 공격에서도 용케 살아남았다. 그들 중 몇몇은 리더그룹이 되어 한껏 자태를 뽐내며 호사를 부렸고 짝짓기에도 성공해 2세를 가슴에 안았다.

 

그러다 점차 물이 줄어들고 웅덩이가 작아지자, 하루가 다르게 먹잇감이 줄어들기 시작했다. 그들은 줄어드는 먹잇감에 긴장했으나 근소한 경쟁우위 덕에 그럭저럭 견딜만했다. 조금 더 땅이 말라가자 주변의 많은 맹수들이 물을 먹으러 웅덩이를 찾아왔고, 조심스레 물을 먹다가도 천적들의 공격에 희생되기는 일이 벌어졌다. 특히나 물 속에 숨어 있다가 순식간에 덮치는 악어의 공격에는 속수무책으로 당할 수 밖에 없었다. 이제 옆의 물길도 말라버렸고 근처의 웅덩이조차 바닥을 드러내게 되자, 강물의 본류는 어디인지 조차 모르게 멀어져버렸다. 무리 전체가 불안에 떨기 시작했다. 나중에 태어난 어린 새끼들은 더 큰 위험에 노출돼 굶어죽거나 사자 밥이 되었다. 더러 악어의 한 끼 식사가 되기도 했다.


대형 초식동물들 중에 코끼리나 누는 이미 여러 차례 건기의 시련을 경험한 나이많은 리더의 인솔 아래 무리를 지어 어디론가 물을 찾아 이동했다. 풍족한 우기에 태어나 혹독한 건기를 경험하지 못한 이 불행한 임팔라 무리는 지금 어찌할 바를 모르고 우왕좌왕하고 있다.

 

이미 넉넉한 부를 축적한 소수의 조경 1세대들은 업계 현실을 짐짓 모르는체 외면하고 대물림하기에 바쁜 것 같고, 현재 리더그룹에 있는 조경 2세대들은 자기 한 목숨 챙기기에도 벅찬 것 같다. 교수들은 매년 수천 명씩 배출되는 조경학과 졸업생들이 백수가 되거나, 계약직을 전전하는 현실인데도 어떠한 대안도 마련하지 못하는 듯하다(아직은 학과가 폐지되지 않았고, 따라서 당장 직장을 잃을 염려는 없으니까). 각 단체의 장들은 어디로 무리를 이끌고 가야 굶어죽지 않는지 알지 못하니 답답할 심정일 거다. 시대의 패러다임이 어디로 가고 있는지 진작부터 고민하지 못한 걸 후회 하고 있을지나 모르겠다.

 

이제 겨우 건기 시작의 초입에 들어섰고, 아직도 건기는 길게 남았다. 진작 조경이 발 빠르게 생태복원으로 눈을 돌리고 영역을 확장했어야 하는데, 리더그룹의 오판으로 자중지란을 일으켜 생태복원업 면허가 아직까지 해결되지 않은 현실이 못내 안타깝다. 거대한 지구생태계의 변화 앞에서 심각한 물 부족에 시달리는 인접 국가들이 그나마 줄어드는 유입수량 자체도 인위적으로 가져가는 현실에서(토목, 건축, 환경, 임학, 원예, 생물학 분야에서 각각의 무기로 조경과 생태분야의 영역을 잠식해오는 작금의 사태), 잦아드는 내 웅덩이의 물싸움에 급급한 오카방고의 임팔라 무리를 보는 것 같아 마음이 아프다.

 

오카방고의 비극은 지금 이곳에서 진행 중인 우리의 현실과 너무 닮았다.

 

권오병(아썸 대표, 생태학 박사)

 

라펜트에서는 매월 셋째주 목요일마다 권오병 박사(아썸 대표)의  '생태의 문'을 연재합니다.  과거 신문지상에 연재됐던 '생태의 窓'이 생태적 시각(view point)을 통해 세상의 한 단면을 보았다면,  '생태의 문(門)”은 생태적 분별력으로 세상 전체를 통찰한다는 의미를 함축합니다. 본 컬럼은 한국조경신문과 동시에 연재되고 있습니다. 

_ 권오병 대표이사  ·  (주) 아썸
다른기사 보기
peterkwo@naver.com

네티즌 공감 (0)

의견쓰기

가장많이본뉴스최근주요뉴스

  • 전체
  • 종합일반
  • 동정일정
  • 교육문화예술

인기통합정보

  • 기획연재
  • 설계공모프로젝트
  • 인터뷰취재

커뮤니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