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태의 門]마야, 잉카, 아즈텍... 그리고 문명의 붕괴

권오병 박사의 ‘생태의 문(門)’ 2회
라펜트l권오병 대표이사l기사입력2014-03-04


2월 초 결혼 30주년 기념으로 남미여행을 21일간 다녀왔다. 젊어서 출장으로 남미의 몇몇 대도시를 방문했었지만 이번엔 아내와 함께 홀가분한 여행이었다.
마야, 아즈텍, 잉카문명을 돌아보며 생태학자로서 새로운 시각으로 중남미 고대문명의 붕괴에 대해 생각할 시간을 갖게 되었다.
 
아메리카 대륙에 현생인류가 들어간 경로는, 마지막 빙하기가 끝날 즈음 유라시아 대륙에서 얼어붙은 베링 해를 건너 알래스카로 들어갔다고 본다. 이들은 북아메리카 대륙을 거쳐서 중남미로 이동한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12000년 전 즈음에 마지막 빙하기의 혹독한 추위에서 당시 전지구상에 흩어져 살고 있던 약 700만 명 정도의 현생인류의 조상들은 거의 대부분 멸절되고, 지금의 아프리카 북동부 Great Rift Valley에 약 2000명 정도의 한 종족만이 살아남았다.

 

인류생태학에서는 이들이 오늘날 우리들의 직계 조상이 된 것으로 보고 있다. 지구상에 유일하게 살아남은 이들은 빙하기가 끝나자 세계 각지로 이동하였고, 이들 중 북쪽으로 이동한 무리가 10000년 전 쯤에 나일 강과 메소포타미아 강에 도착하여 고대 이집트 문명과 메소포타미아 문명을 건설 하였다. 이 곳에서 다시 지중해를 건넌 무리가 유럽인들의 조상이 되었고, 북동쪽으로 이동한 무리 중에 우랄 알타이 산맥을 넘어 몽고 일대에 정착한 무리가 몽골리안의 선조가 되었다. 이들 중 일부가 동북아시아를 거쳐 한반도로 남하하여 우리의 조상이 되었고, 캄차카 반도 쪽으로 북진한 무리들의 일부가 아직 녹지 않은 베링 해를 건너 알래스카에 도달한 것이 약 8000년 전 쯤 이고, 이들이 아메리카 인디오의 혈통이 된 것이다. 6000년 전에 이들은 캐나다를 거쳐 미국의 미시시피 강 하류까지 도달하였고, 5000년 전(BC3000년)에 더욱 남하한 무리들이 멕시코 중부에 도달하여 초기 마야문명을 건설하게 되었다. 이들 중 일부가 파나마를 거쳐서 남미 안데스산맥과 아마존 유역으로 흩어져 남하하여 BC2000년경에 잉카문명의 발상지인 쿠스코와 나스카에 정착하여 고대 잉카문명을 건설하였다. 끝까지 남하한 무리가 남미의 최남단인 파타고니아에 도달한 것이 지금부터 3000년 전인 BC1000년경이었다.

 

수렵과 농경을 병행했던 북미지역에 정착한 인디오들은 온화한 기후와 비옥하고 드넓은 토지 덕분에, 부족 간의 극단적 갈등을 피하며 수천 년 간에 걸쳐 비교적 평화로운 부족사회 형태를 유지할 수 있었다.

반면 중남미 쪽으로 진출한 인디오들은 제한된 산악지대의 토지를 이용하여 옥수수, 콩, 감자 등을 재배하는 밭농사 중심의 농경생활을 하였다. 따라서 이들은 인구증가에 따라 부족국가 형태를 넘어서서, 마야, 잉카, 아즈텍으로 대표되는 통일된 문명권으로 발전할 수 있었다.
 
마야문명은 유카탄 반도일대를 중심으로 BC1000년경에 시작되어 AD300년부터 AD900년까지 황금기를 구가하다가 AD10세기에 이르러서 갑자기 멸망하였다. 아즈텍문명은 마야인의 후예들에 의해 AD1200년경에 지금의 멕시코시티를 중심으로 건설되어 멕시코 전역을 지배했던 제국이었으나, 1521년 스페인 정복자들에게 멸망하였다. 잉카문명은 기원전 1250년경부터 안데스 산맥지역에 부족국가를 형성하여 발전하였다. 그 후 1438년 통일된 잉카제국으로 번성하여 지금의 페루전체와 칠레일부를 통치하다가 1533년 스페인 정복자들에게 멸망하였다.

 

이번 남미여행에서 나는 세 곳의 유적을 돌아보면서, 찬란했던 이들 문명이 왜 갑자기 붕괴했을까하는 의문을 가졌다. 왜 그들은 실생활에 꼭 필요하지도 않은 대토목공사를 일으켜 거대한 피라미드를 축조했을까? 거대한 태양의 신전과 달의 신전을 만들고, 거의 날마다 수많은 인간을 희생 제물로 잔인하게 살육했을까? 극성기 때에는 일 년에 5만 명, 10분에 한 명꼴로 산 사람의 심장을 꺼내고 목을 잘라 죽였을까?

 

문명의 붕괴에 대한 인류생태학적 해석은 다음과 같다. 문명의 기초에는 필히 잉여농산물이 생산되어야 한다. 일정한 토지에서 생산되는 식량이 그곳에 사는 인구를 먹이고 남아돌기 시작하면, 지배계급은 권력을 강화하기 위한 수단으로 전쟁이나 대토목공사를 일으킨다. 마야, 잉카, 아즈텍 모두 전성기에는 기후가 좋고 비가 충분히 내려서 옥수수 농사를 년 3모작이상 가능했다.

 

다른 곡물에 비해 단위면적당 수확량이 월등한 옥수수는 급증하는 인구를 부양하고도 충분한 양이 비축되었다. 신성통치를 했던 지배계급은 이때 권력을 더욱 공고히 하기 위한 수단으로 대토목공사를 일으켜 전 국민 동원 체제를 만든다. 수십만 명을 수백 년간에 걸쳐 동원하여 대역사를 진행한다. 그러나 세 문명 모두의 공통점은 멸망시기에 뜻하지 않은 기상이변을 맞이하게 된다.

 

수십 년간에 걸쳐 극한의 가뭄이 들면, 옥수수는 3년 이상 저장이 불가능하기 때문에, 불어난 인구는 수 삼년 내에 아사지경의 굶주림에 빠지게 된다.  이때 지배계급은 선택은 극단적인 공포정치를 함으로써 와해되는 민심을 통제하려 하게 된다. 이는 대규모의 희생제의를 함으로써 부족한 식량에 대한 인위적 개체 수 조절을 할 수 있으니 일거양득인 셈이다. 그러나 이러한 방식도 식량난 해소의 임시방편일 뿐 궁극적 해결은 될 수 없어, 종당에는 사회와 문명 전체의 붕괴로 이어지게 된다. 한반도 넓이의 10배에 달했던 잉카제국이나 아즈텍제국이 단지 몇 백 명 정도의 스페인군에 의해 하루아침에 멸망된 이유가 여기에 있는 것이다. 식량부족과 극단적 공포정치 하에서 이미 사회존립자체가 와해되어 붕괴의 수순을 밟고 있던 차에 외부 침략군이 쳐들어온 것이다. 페루의 쿠스코, 우르밤바, 마추픽추, 홀리아까, 이까, 나스까, 푸카푸카라, 푸노, 티티카카호, 파라카스 등을 여행하면서, 지금은 대부분 아타카마사막으로 변해버린 불모의 땅에서 고난의 삶을 살다간 불행한 잉카인들의 역사에 가슴이 아려왔다.

 

예나 이제나 인간의 본성은 크게 달라지지 않은 것 같다. 인간사회에는 본질적으로 지배자와 피지배자가 있으며, 이는 생태적 존재로서 권력지향의 본능에 기인하는 것이다. 강한 자는 좀 더 강해지려 온갖 수단을 강구하는 것이 본능이며, 상대적 약자는 가혹한 착취의 대상이 된다. 그러나 궁극에는 강자든 약자든 인간은 환경의 재앙을 피할 수 없다. 만약 어떤 이유로 인해 전 지구적 기후변화가 닥쳐서 현재 인류의 30%정도가 굶주림에 처한다면, 현대 문명도 붕괴의 운명을 맞이할 것이다. 이미 세계인구 70억중에 15%정도인 10억이 굶주림에 처해있으니, 언제 이 수치가 두 배로 늘어날지는 누구도 알 수 없다.

 

오늘날 세계의 패권을 좌우하는 강대국도, 철권통치의 독재자도, 무소불위의 부유층도, 궁핍과 가난에 허덕이는 다수의 인간과 마찬가지로 지구환경파괴로 인한 문명의 붕괴 앞에서는 거의 공평하게 멸절할 것이라는 사실을 다시 한 번 되새겨본다.

 

글_권오병(아썸 대표, 생태학 박사)

연재필자 _ 권오병 대표이사  ·  (주) 아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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