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태의 門]조경 순혈주의의 몰락

권오병 박사의 ‘생태의 문(門)’ 3회
라펜트l권오병 대표이사l기사입력2014-03-26

조경의 현재는 암울하고 조경의 미래는 불안하다. 그래서 오늘 조경인들은 대체로 우울하다. 설계와 시공 물량은 계속 줄고 있고, 인접분야에선 조경시장의 영역을 치고 들어오려는 치밀하고 강력한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조경학과 졸업생들의 취업의 문은 갈수록 좁아지고 있다. 상위에 랭크되어 있던 시공사들의 줄부도 소식에 경악하고, 설계사들은 지난해 몸집을 반으로 줄였는데 금년엔 또 얼마나 줄여야 할지 고민하고 있다.


지난 3월 3일 기념일을 새로 제정한 “조경의 날” 자리도 우울하게 느껴졌다. 이 자리에서 특별강연을 한 양병이 교수의 “조경, 위기인가? 기회인가?”에서도 무거운 분위기가 묻어났다. 그동안 고성장 개발시대의 호시절은 끝났으니, 이제부터는 저성장시대의 패러다임을 받아들일 것을 권고하고 있다.
 
우리는 초중고시절 “한민족은 단일민족이다. 흰옷을 즐겨 입는 배달민족이다.” 이런 이야기를 듣고 자랐다. 이러한 순혈주의 사상의 이면에는 배타적 이기주의를 내포하고 있다. 구한말 대원군의 권력독점의지가 낳은 폐쇄주의적 쇄국정책도 위험한 순혈주의 산물이다. 당시 한반도를 둘러싼 복잡한 국제정세를 직시하고 국가의 운명을 고민하기보다, 내부의 정적들을 숙청하고 자신의 권력기반을 지키기에 급급한 구한말 집권세력이 내세운 치졸한 통치술이었다. 그 결과는 망국과 일제식민지라는 국가적 비극으로 이어졌다. 정치사회학에서 순혈주의는 포용력을 상실한 소수집단이 내부단결을 도모할 때 내세우는 허위의 이데올로기로 보고 있다.


오늘날 모교출신의 교수를 우대하는 대학가의 순혈주의도 한 예가 된다. 2009년의 통계에 의하면 대학별 모교출신의 교원현황이, 서울대 88%, 연세대 76%, 고려대 60%에 달하고 있다. 이는 학문적 다양성을 해치고, 교원의 파벌화를 조장하며, 종당에는 교수사회 도제화의 폐해가 있어 교육부에서 조정하려하고 있으나 현실은 점차 심화되고 있다고 한다.


인류사에 있어서 순혈주의는 인종차별주의로 불리기도 한다. 남아공의 백인우월주의는 만델라가 아파르헤이트를 극복하기까지 수백 년 동안 절대다수의 흑인들에게 끔찍한 고통을 주었고 국가의 발전을 저해하였다. 현대문명사 치욕의 역사인 홀로코스트도 히틀러에 의해 저질러진 배타적 인종주의의 산물이었다. 아리안족 우월주의의가 광적인 독재자 히틀러를 만나서 700만에 달하는 유태인과 장애자, 창녀. 부랑자, 성적소수자에 대한  인종 청소를 자행한 것도 순혈주의의 산물이다. 위험한 배타적 인종주의는 보스니아 내전이나 르완다 종족분쟁, 캄보디아의 킬링필드에 이르기까지 현대정치사에서 계속되고 있는 Genocide(종의 대학살)의 뿌리 깊은 병증으로 나타나고 있다.


인류생태학의 문으로 들어가 보면, 크로마뇽인의 후예인 우리의 DNA에는 잔혹한 순혈주의의 본성이 내재되어 있는지도 모르겠다. 약 10만 년 전부터 중북부유럽에 거주하던 네안데르탈인들은 남부에서 올라온 현생인류의 조상인 크로마뇽인과 마주치면서 3만5천년 전에 멸절하였다. 같은 호모사피엔스였지만 서로 피가 섞이지 않고 한 종이 다른 종을 멸절시킨 사례로 보고 있다.


유럽의 선주민이었던 네안데르탈인은 골격이 장대했고 사냥술이 뛰어나 수렵생활을 했던 중석기시대인이었다. 육식을 주로 했던 그들은 물리적 힘에서 농경과 수렵을 병행했던 크로마뇽인을 압도하였으나, 불과 몇 천 년이라는 짧은 시간 안에 흔적도 없이 멸종되었다. 두개골의 크기도 현대인류보다 크고 따라서 뇌의 용량도 현대인과 맞먹었던 그들은 크로마뇽인과 맞닥뜨렸을 때 어른과 아이의 싸움이었을 텐데 왜 패배하였을까? 패배한 이후에 크로마뇽인과 피가 섞이지 않고 왜 멸절의 길로 갔을까? 


인류학자들의 연구는 아이러니컬하게도 1대1 승부에서 상대가 되지 않을 정도의 힘의 우위가 원인이 되었음을 밝히고 있다. 혹독한 빙하기의 추위 속에서 맘모스가 멸종한 시기와 비슷한 시기에 네안데르탈인도 멸종한 것을 보면, 계속되는 눈보라 속에서 수렵생활의 주식인 대형동물들이 사라짐으로써 먹이사슬이 끊어져 인구가 크게 감소하였던 것으로 보고 있다. 반면에 따뜻한 기후에서 농경생활과 수렵생활을 병행했던 크로마뇽인은 사냥감이 사라져 갈 때도 곡물을 섭취하면서 생존과 번식을 할 수 있었다. 또 다른 이유로는 네안데르탈인들이 돌과 창을 가지고 있었던데 비해, 작고 날쌘 소형동물을 주식으로 했던 크로마뇽인들은 활을 개발하였다.


이들이 마주쳤을 때를 상상해보자. 수적으로 우세한 크로마뇽인들은 활을 가지고 있고, 수적으로 열세인 덩치 크고 힘센 네안데르탈인들은 창을 가지고 있었다. 무기개발에서 한 수 앞선 종족에게 네안데르탈인은 백전백패 할 수밖에 없었다. 더 중요했던 차이점은 성대발달의 차이였다. 크로마뇽인들은 성대가 발달하여 수천 개의 단어를 사용하여 전략적인 전투를 할 수 있었던 반면에, 상대적으로 성대가 발달하지 못했던 네안데르탈인들은 20개 정도의 사냥에 필요한 단어만을 가지고 있었던 것이다.


또 다른 이유로는 연비의 차이에도 있었다. 덩치가 큰 네안데르탈인은 하루에 4000kcal의 열량이 필요했고, 왜소했던 크로마뇽인은 하루 대사량이 2300kcal에 불과했기 때문에 생존에 유리했다고 본다.


어쨌든 이렇게 하여 종의 전쟁에서 약체였던 크로마뇽인이 승리자가 되었는데, 그들은 왜 네안데르탈인들과 혼혈을 하지 않고 그들을 멸절(Genocide)시켰을까? 왜소했던 크로마뇽인들은 네안데르탈인과 피를 섞고 한 부족이 되는 것이 두려웠으리라. 언제 발생할지 모르는 소집단 내의 폭력에 의해 살해당할까 두려워 그들과 공존할 수 없었던 것이다. 결론적으로 네안데르탈인은 환경에 적응하지 못했고, 운이 없었기에 멸종된 우리의 먼 조상이 되었던 것이다.


현생인류인 크로마뇽인의 DNA에는 이때부터 배타적 순혈주의가 본능적으로 각인된 것이 아닐까? 나와 모습이 다른 인간에 대한 본능적인 거부감 같은 것이 인간본성에 깊이 뿌리내린 건 아닐까 생각한다. 최근에 “노예 12년”이라는 영화를 보면서 불과 150년 전까지 미국사회에서 반인간적인 노에 제도가 있었고, 서구인들이 수억 명의 아프리카 흑인 노예를 사냥하여 가축정도의 대우를 했던 것은, 아마도 우리가 크로마뇽인의 후예이기 때문이 아닐까 생각한다.


오늘날 학교와 직장사회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왕따”문화도 우리의 본성에 내재해 있는 뿌리 깊은 순혈주의의 산물이 아니가 싶다.


필자는 25년 전에 학부에서 조경학을 전공하지 않은 아웃사이더로서 조경분야에 뛰어들게 되었다. 당시만 해도 비교적 호황기의 경제상황에다가 일산, 분당, 평촌, 산본 등 수도권 주변에 4대 신도시가 동시에 개발되는 특수에 힘입어 공사물량은 넘쳐났고, 자재는 품귀현상을 보였고, 인건비는 폭등하였다.


운 좋게 시대를 잘 만났던 셈이다. 종합조경 면허가 11개에서 막 33개로 늘어났던 시절에, 조경학과만 나오면 학경력 기사로 우대를 받을 수 있는 호시절이었다. 조경자재 생산업을 했던 초반 10년 동안은 조경공사물량 폭주의 시대 덕에 정신없이 분주하게 지나갔다. 영업의 일선에서 설계와 시공사들을 접촉하며 수많은 “갑”을 만나면서, 우리업계에 깊게 자리하고 있는 조경 순혈주의의 장벽을 느낄 수 있었다. 물론 개인적으로 따뜻하게 대해주고 격려해준 고마운 사람들도 많았지만, 학회나 사회 등의 공적 모임에서는 늘 아웃사이더였다.


당시에 183종이나 되는 조경분야 신소재를 창출 도입하여 상당한 절대경쟁력을 갖지 않았더라면 오늘날 우리 회사는 생존이 어려웠으리라.

기존의 순수조경분야에서는 순혈주의의 장벽을 넘기 어렵다고 판단하고, 일찌감치 생태복원분야로 눈을 돌렸다. 당시 아무도 가지 않은 새로운 길을 선택하여 험난한 가시밭길을 헤쳐 왔지만, 결과적으로 오늘날의 작은 성취를 하게 된 것에 대해서는 역설적으로 조경 순혈주의의 덕이 아니었나 싶다.


“저 친구 조경학과 출신 아니잖아?” “조경쟁이도 아닌 주제에 동문회는 왜 나와?” “자기가 뭔 조경을 안다고?” 이런 배타적인 시선에 자극을 받아 뒤늦게 조경학 석사를 거쳐 생태학 박사까지 하게 되었으니 오히려 그들에게 감사할 뿐이다. 물론 워낙 새로운 분야의 신기술개발을 해야 하는 현실에서 선행학문이 거의 없어서 할 수 없이 만학을 하게 된 이유도 있었지만, 아웃사이더 대접에 대한 뿌리 깊은 원한(?)도 작용했으리라. 오늘날까지 14년째 대학에서 조경학과 겸임교수나 시간강사로 강의를 해오고 있지만, 아직도 나는 영원한 비주류인 것 같다. 그러나 때로는 주류조경인의 내부적 시각보다 비주류조경인(?)의 외부적 시각에서 우리분야의 현실을 바라보는 시각이 더 총체적이고 정확할 수 있음도 간과해서는 안 될 것이다.


다시 조경 순혈주의의 화두로 돌아가 보자. 지난 40여 년 동안 토목공화국 시대에 태동하여 발전해온 조경계는 계속해서 증가하는 공사물량을 나누어 먹는데 길들여져 있었던 것이 아닐까? 그래서 면허업체가 증가하는 것을 최대한 막고, 타 분야에서 우리업계를 침범하는 것에 조경계가 똘똘 뭉쳐 방어하는 것이 최선이라고 생각하게 된 것은 아닐까? 그래서 인접분야에서 나누어 먹자고 슬그머니 치고 들어올 때, 분노하고 경악하며 허둥대는 건 아닐까?


그동안 우리가 내부단결을 공고히 하고 순혈주의를 잘 지켜내면 조경은 계속 발전할 것이라고 믿었다면 그건 큰 오산이다. 어차피 배달민족 단일민족 사상은 처음부터 잘못된 사상이고, 망국이라는 대가를 치르게 만든 비겁한 현실주의였다. 현대의 인류문화는 다인종 다문화의 혼합이며, 다양성을 인정하는 토대위에 공존 공생의 길을 모색함에 특징이 있다. 배타적 순혈주의는 어디에고 설자리가 없다. 시대의 패러다임은 빠른 속도로 변하고 있다. 순수건축도, 순수토목도, 순수환경도 순수조경도 사라질 것이다. 서로의 영역은 더 큰 그림에서 교차 융합될 것이고, 기술과 개념의 혼합은 새로운 차원의 영역을 만들어 낼 것이다. 시공을 넘어선 사이버 공간이 생겨나고 IT산업의 빠른 발전은 고속정보통신의 시대를 가져와 상상의 세계를 현실의 세계와 통합할 것이다. 급속한 변화와 혼돈의 시대에 조경을 뛰어넘는 상위의 새로 창출되는 분야는 무엇일까?


그것은 아마도 생태복원분야가 될 것이다. 지난 40여 년간 국토개발시대에 토목국가가 한일은 국토에 대한 총체적 난개발이었다. 자연에 대한 무차별적인 착취의 극대화가 가치의 우선이었다면, 앞으로의 시대에는 이미 저질러진 자연의 훼손에 대한 치유가 우리가 해야 할 일일 것이다. 생태복원의 개념은 토목과 건축과 조경보다 상위의 개념으로써, 앞으로 인류가 생존하는 한 치러야할 자연에 대한 인간의 도리이자 빚 갚음이 될 것이기 때문이다.


조경인들이여, 아직도 생태복원이 기존의 조경시장을 빼앗아 갔다고 생각하고 있는가?


 글_권오병(아썸 대표, 생태학 박사)

연재필자 _ 권오병 대표이사  ·  (주) 아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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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eterkwo@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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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것도 모르는 임학 학부생이 본 정황으로는.. 뭔가 순수미술과 디자인의 싸움같은 느낌으로 받아들여 지네요. 생태복원이냐 조경이냐.. 조경으로서 생태복원이 아니었나요?
2014-03-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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