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직에서 물러나 심신을 수양코자 했던 매천 박지기(梅川 朴致基)의 남원 퇴수정원림(退修亭園林)

[조경명사특강]이재근 교수의 ‘한국의 별서’ 14회
라펜트l이재근 교수l기사입력2014-06-07


鹿外孤臺晩㭦踪 어지러운 세상 떠나 늙으막에 누대를 지어 의탁하니 
淸流九曲嶽千里 맑은 물은 굽이쳐 흐르고 산은 첩첩산중이라. 
蒼松隔水冷冷韻 푸른 솔은 물에 드리워져 그 운치 은은하게 빛나고 
白石和雲談談容 하얀 바위 돌과 어우러진 구름은 매우 맑은 모습이라네. 
忘世許同群鶴鹿 세상사 잊으려 학과 사슴 벗하나 
存身傀比蟄珪龍 이 몸 숨김은 칩거한 규룡에 비하면 부끄럽구나. 
靜觀認是仙人過 고요히 돌아보니 이곳은 신선이 지나간 곳인지라 
林壑依然道氣濃 숲과 골짜기에는 의연한 도와 기상이 짙게 느껴지누나. 
-매천 박치기(梅川 朴致箕)의 퇴수정 원운 반선대기(伴仙臺記)-


매천별업 각자바위와 퇴수정원경(여름.강충세.2012)

퇴수정원림은 매천 박치기(梅川 朴致箕: 1825-1907)가 퇴임 후 은거하기 위해 1870년 조영한 별서형 누정원림이다. 전북 남원시 산내면 대정리 525-2번지에 소재한다. 박치기는 조선의 토목건축을 관장하던 종3품 선공감(繕工監)의 가감역관(假監役官)을 역임하고, 종2품 가선대부(嘉善大夫) 공조참판(工曺參判)을 지낸 인물이다. 퇴수(退修)란 퇴관(退官)하여 초야에 은거하며 심신을 수양한다는 의미로, 퇴수정원림은 박치기가 퇴관 후 삶의 터로 삼은 장구지소(杖屨之所)이다. 퇴수정원림은 람천을 따라 깨끗한 물과 기암괴석이 펼쳐져있고, 지리산 연봉에 에워싸여 있어 안온한 분위기를 연출하고 있다.

본제(本第)가 위치했을 것으로 추정되는 산내면 대정리 매동마을은 매화를 닮았다고 해 붙여진 이름이다. 해발 420~490m의 표고를 가진 산촌마을로 달성서씨가 처음으로 정착 한 이후 김해김씨, 밀양박씨 등이 들어와 살았다 한다. 매동마을은 퇴수정원림과는 불과 300M 거리에 위치한다.


퇴수정의 외원도(김영환.2014): 퇴수정주변의 본제가 있었을 것으로 추정되는 매동마을과 주변 농경지,
람천, 사당 및 교육시설의 역할을 한 관선재등을 표현했다.

이현우(2011)의 연구에 의하면 매천 박치기는 함양 안의(咸陽 安義)에서 살다가 이곳으로 이주했다고 한다. 매천이 이전에 살던 함양 안의는 매천의 선조인 지족당 박명부(知足堂 朴明傅:1571-1639)가 경영했던 화림계곡 최고의 경승지 농월정(弄月亭)이 있는 곳이다. 현재 남원지역의 대표적 인물지인 운성지(雲城誌)에는 다음과 같이 기록하고 있다.

“정8품 문신인 통사랑(通仕郞) 박치기는 지족당 명부(知足堂 明傅)의 후예요, 참판 명천의 9세손이다. 성품이 온후하고 행실이 결백하였으며 친척간은 물론 형제간에 우애가 깊었다. 어려운 사람을 도와주고 흉년이 들면 많은 혜택을 베풀어서 이곳에 거주하는 사람들이 송덕비를 세워주었다. 박치기는 반선대기(伴仙帶記)를 저술하였는데 자신이 안의(安義)에서 매동(梅洞)으로 이주하였다.”고 하였다.


퇴수정위에서 본 람천(강충세.2013)


퇴수정위치도2(북쪽 덕유산방향): 산청 천왕봉쪽에서 덕유산쪽으로 본 퇴수정의 위치.
남덕유산아래 퇴수정의 주인 박치기가 살던 함양 화림동계곡의 농월정이 보인다.

그의 아들 취헌 박상철(醉軒 朴相喆)에 대해서는 효자편에 “지극한 효성이 천성에 근본하여 부모의 마음을 기쁘게 해드리는 것에 힘썼다. 일찍이 모친상을 당하여 예를 따르면서도 부친의 마음을 슬프게 할까 두려워하여 슬픈 마음을 다 표현하지 못하였다.” “부친이 학질에 걸렸을 때에는 손가락의 피를 내어 국을 끓여 올리니 쾌차하였다. 그리하여 사람들은 박상철을 하늘이 낸 효자라고 칭찬했다.”고 전하고 있다.

퇴수정 원림의 공간구성은 매천별업(梅川別業) 각자바위, 너른 반석 등을 포함한 퇴수정권역(退修亭圈域)과 사당을 겸한 교육공간이었던 관선재권역(觀仙齋圈域), 람천 계류변에 펼쳐진 계정권역(溪亭圈域)으로 나눌 수 있다.


퇴수정과 람천원경(강충세.2013)


퇴수정의 겨울 근경(강충세.2012)

그 중 퇴수정은 정면3칸, 측면2칸 겹처마 팔작지붕의 장방형(長方形) 정자이다. 12개의 기둥을 세웠는데 위로 올라갈수록 배흘림을 두어 구조적 안정감과 시각적 균형을 이루었다. 장대석기단은 사각 다듬돌 초석 위에 노출시킴으로써 정교한 시공미(施工美)를 나타냄은 물론 고저차(高低差)를 해결하고 있다. 마루에 오르면 계자난간이 삥 둘러쳐져 있고 8면으로 모서리의 각을 따내어 외장이 섬세하다. 가운데는 관념적으로 바람을 막을 수 있는 정도의 방을 하나 두었다. 퇴수정 내부에는 선비들의 시문과 기문이 많이 걸려 있는데, 영가 권도용(永嘉 權道溶)의 기문에는 ‘지리산 일대 가장 아름다운 택승지(宅勝地)에 대를 쌓고 정자를 지었는데, 별경(別景)인 동천세계를 구축하고 은일을 위한 별업(別業)으로 삼으니, 신선경(神仙景)이 펼쳐지누나.’라고 기록하고 있다. 또한 완산 이명상(完山 李明翔)의 퇴수정기에는 “제일 명승처 강 언덕에 축대를 쌓고 가히 은사가 거할만하다 하여 이름 하기를 반선(伴仙)이라 하였다. 세상의 혼탁함을 싫어하면서도 뜻을 같이 하는 사람을 불러 술과 거문고와 바둑으로 여가를 즐겼다. 그런데 그 모습이 보는 이로 하여금 속세의 사람들이 먹고 사는 것처럼 보이지 않고 마치 신선처럼 느껴졌다.”라고 썼다. 이때 퇴수(退修)와 반선(伴仙)은 일맥상통한 용어로, 퇴수정이 속세에 있지만 신선세계로 보다 가까워질 수 있는 곳이라는 의미를 담고 있다.

퇴수정 좌측에 위치한 관선재(觀仙齋)는 정면 4칸, 측면 2칸 규모에 ‘ㅡ’자형 배치로 되어 있는데, 1922년 박치기의 후손들이 건립하였다. 조상을 추모하는 제사를 지내기 위한 것이지만, 평소에는 시서예악(詩書藝樂)을 교육하는 강학 처로 활용된 것으로 보인다.


퇴수정누대근경 (강충세.2012)


관선재전경(겨울) 강충세. 2012

반선대(伴仙臺)에 대해서는 1872년에 쓴 장석영(張錫英)의 기문과 1868년에 쓴 박문재(朴文在)의 반선대기(伴仙臺記)가 남아있다. 장석영의 기문에는 “운성산중 푸른 절벽 청류곡절지에 자리한 반선대는 봉래, 방장, 영주의 3선지대(三仙之臺)이다.”라는 설명이 기술되어있다. 그리고 물가의 바위에 각자된 1862년 박치기의 ‘반선대기‘의 내용은 구지(舊誌)의 내용으로 볼 때 다음과 같다.


퇴수정원림도(김영환.2014): 퇴수정 내원에서 작정자가 신선이 된 모습을 상상도로 그렸다.
매천별업,반선대,야박담등의 각자가 보이고 사슴과 학, 그리고 달이 표현되었다.


퇴수정의 봄 근경(강충세.2014)

“신선과 짝할 수 있는 것일까? 성현이 이에 대해 말한 바 없으며, 만승천지로서도 구할 수 없는 일이다. 참으로 신선이란 말은 황당한 것이다. 그렇다면 신선이란 짝할 수 없는 것일까?
신선이란 산사람(山人)을 말한다. 나는 이에 술을 떠서 객에게 권하기를, “나는 옛적 말하는 신선을 볼 수 없지만, 또한 후인이 나와 그대를 보면 거의 신선이라 말하지 않겠는가?” 객이 웃으면서 대답하지 않기에 나는 이로 인하여 나의 누대에 이름을 삼고 암벽석면에 반선(伴仙)이라 새기고 산중고사(山中古事)를 삼노라.”
-壬戊年(1862년) 중춘(仲春) 매천(梅川) 박치기(朴致箕) 기록함-

이현우(2011) 등의 연구에 의하면 매천 박치기는 이 기문을 통하여 “아름다운 산수에 의하여 세속의 좋은 것 버리고 정신을 수양하여 장수한다면 그것이 곧 신선에 이르는 길임을 천명하고자” 하였다. 또한 반선대 각자는 곧 “본인이 실제로 신선과 같은 생활을 영위하였음을 후세에 전하고 싶다는 염원”을 새긴 것이다.

매천 박치기는 이곳에 1893년 삼선대(三仙臺), 세진대(洗塵臺), 삼청담(三淸潭), 야박담(夜迫潭), 삼서(三嶼), 탁금담(濯錦潭), 반석(盤石), 암굴(巖窟), 석상(石牀), 수확(水確) 등 퇴수정 반선대 10영을 설정하였다. 이는 퇴수정이 만수천 석벽임류(石璧臨流) 계류가에 설치된 삶의 장소로서의 별업원림(別業園林), 신선경(神仙景)의 동천세계(洞天世界)라는 것을 뜻한다. 또한 이곳은 야박(夜泊)하며 시와 술 거문고를 즐길 수 있는 풍류지처(風流之處)라는 장소적 의미를 갖는다.


퇴수정앞 남천의 겨울풍경.

이러한 것들은 곳곳에 쓰인 각자에서 그 의도를 더욱 분명히 알 수 있는데, 대표적인 것으로는 정자 우측의 매천별업(梅川別業)이라는 글씨가 있다. 이는 1922년 후손들이 사당인 관선재를 건립할 때 각자하였을 것으로 추정되며 선조 박치기의 은덕에 대한 추모의 뜻과 효 문화(孝文化)를 실현하고자 했던 의지를 담고 있다. 또한 만수천의 절벽바위에는 반선대(伴仙臺)와 반선대기(伴善臺記)란 각자가 음각되어 있다. 만수천 상류 물속에 있는 바위에는 세상 사람들의 세태를 타일러 조심하라는 의미의 심진암(尋眞巖)이란 각자와, 퇴수정 누마루에서 정면을 조망했을 때 바로 보이는 야박담(夜泊潭)이라는 각자가 있다. 야박담은 물속에 떠있는 것 같은 큰 바위에 새긴 암각으로, ‘어느 늦가을 강가 배위에서의 한밤’이라는 당나라 문인 장계(張繼)의 시 풍교야박(楓橋夜泊)에서 유래된 명칭이다. 이것은 조영자가 주간뿐 아니라 야간에도 물속에 잠긴 바위를 바라보면서 이곳의 경치를 마음껏 즐기고자 한 뜻이 아니었을까? 퇴수정에서 반선대 북측의 돌계단을 내려가면, 너럭바위 위로 곡수거를 판 조탁(彫啄) 흔적이 나타나기도 한다.


람천내 야박담이 새겨진 암반(강충세.2012)


매천별업 각자바위와 퇴수정원경(겨울.강충세.2012)

퇴수정 원림(退修亭園林)! 그곳은 매천 박치기(梅川 朴致基)가 지족당 박명부(知足堂 朴明傅)의 선조의 정신을 기리며 지리산 자락을 따라 올라가다 찾은 별서이다. 그의 후손들은 다시 그들의 직계 선조 매천 박치기를 기리며 관선재(觀仙齋)도 짓고 매천별업(梅川別業)이란 글씨를 각인해 놓았다.

퇴수정은 함양에서 지리산 뱀사골로 올라가는 람천 계곡 좌측에 위치하고 있다. 매천 박치기는 지족당 박명부가 거처하던 덕유산 자락의 화림동 계곡 농월정(弄月亭)을 떠나 좀 더 큰 산맥인 지리산 자락 람천을 따라 자신의 선계를 찾아 나섰을 것이다. 멀리 지리산 영봉의 웅장함, 가까이는 람천 계곡의 수려함이 이곳을 장구지소(長屨之所)로서 삼은 이유가 되었을 것이다. 북쪽으로는 백운산이 동쪽과 서쪽으로는 소나무군락과 대나무 숲이 조화를 이루며 남쪽으로 낮은 구릉이 넓게 펼쳐지는 마을 매동마을에 터전을 잡고 이곳에서 그리 멀리 떨어져 있지 않은 람천변에 퇴수정 별서를 지었을 것이다. 워낙 신선처럼 살아 당시대 선비들의 흠모의 대상이었던 선조 지족당 박명부의 정신을 기리며 선계를 찾아 나섰을 것이다.


퇴수정주변위치도1(남쪽 천왕봉방향): 남원에서 산청 천왕봉방향으로 본 퇴수정의 위치.
퇴수정 앞을 흐르는 람천은 지리산백무동계곡에서 흐르는 덕전천과 합류하여 남강으로 이어진다.


퇴수정의 봄 원경(강충세.2014)

퇴수정을 중심으로 좌우에는 람천을 따라 울창한 소나무군락이 압권을 이룬다. 느티나무와 단풍나무, 진달래 군락들도 계류가에 늘어져 조화를 이룬다. 인간사에 이러한 선계가 또 있으랴? 그곳은 도시생활에 지친 현대인들에게 어떻게 사는 것이 진정한 삶의 길인지, 때로는 휴식을 취하며 사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 일인지를 깨닫게 해주는 그런 곳이다.

한때 이곳은 그 경관성이 인정되어 KBS 드라마 <사모곡>, <용의 눈물>의 촬영지로도 이용되었다고 한다. 그러나 이런 훌륭한 장소가 지금은 누구 하나 제대로 돌보는 이 없이 방치되어있다. 관선재는 퇴락해 가고 있고, 그 옆에는 사람이 살지 않는 민가 한 채가 빈집으로 쓰러져 있다. 퇴수정도 방을 정비해야 하는 등 보수가 시급한 실정이다. 천변 위로는 도로변에 경관을 해치는 견치석 석축들이 보인다.

이곳은 2000년 전북 문화재자료 165호로 지정되어 관리되고 있다. 그러나 향후에는 국가적인 차원에서의 복원과 관리가 필요할 것으로 보인다. 자료발굴도 그렇고 예산적인 차원에서도 국가차원에서 지원하여 지족당 박명부와 매천 박치기와의 관계, 이주동기, 건물과 정원의 축조 기법 등의 자료를 찾고 보완하여야 한다. 그리하여 진정한 별서로서의 아름다움과 작정의도를 밝힐 수 있기 바란다. 국민을 위한 국민에게 다가가는 자연과 인문이 어우러진 복합 문화유산으로 거듭날 수 있기를 기대해 본다.

연재필자 _ 이재근 교수  ·  상명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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