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경Ⅱ_ 현대 조경의 내러티브, “이야기 조경”의 미래

[경공환장] “다시 보는 일상, 느껴 보는 도시” Part 2: 03 조경
라펜트l안명준 조경비평가l기사입력2014-06-13

"경공환장: 다시 보는 일상, 느껴 보는 도시" Part 2: 03 조경


[ 03 조경(landscape architecture)]

현대 조경의 내러티브, “이야기 조경”의 미래

 

안명준 조경비평가


조경Ⅱ:  현대 조경의 내러티브, “이야기 조경”의 미래

 

어떤 분야도 위기 아닌 적이 없었다. 조경의 위기도 그런 측면에서 반복적으로 등장하는 담론이다. 위기 담론은 그러므로 위험에 대한 알람 이상 아무것도 아니며, 충분한 성찰을 부르는 내적 반향의 다름 아니다. 따라서 컴플렉스적 위기론을 벗고 냉철한 비평적 시각으로 언제나 위기인 조경을 타계해야 할 것이다. 이야기 조경은 성찰의 키워드일 뿐만 아니라 새로운 조경 실천의 방향으로도 의미 깊다.

 

‘이미지 조경’(형식)에서 ‘이야기 조경’(내용)으로

 

우리 주변의 도시 경관은 언제나 일상의 이야기들로 채워지며 변신한다. 최근에는 녹색의 푸르름보다 강하게 작용하는 시민들의 이야기 욕구가 조경의 실천 방향을 바꿔줄 중요한 원동력으로 등장하였다. 이러한 변화는 그간 공급자의 측면에서 접근하였던 조경에 수용자의 측면에서 접근해야 한다는 위치 전환의 메시지를 보내오기도 한다. 이것을 조경은 면밀하게 읽고 성찰할 수 있어야 한다. 우리 조경이 일상에 눈 돌릴 때 문화로 작용하는 경관과 조경이 눈 들게 될 것이며, 그러할 때 새로운 조경의 가능성도 현실화 될 수 있을 것이다. 이 점을 아직 개발의 관성 속에 있는 조경에서는 중요하게 여겨야 한다.


 일상(문화) 속의 작은 전문가, 작은 조경가가 요청되고 있다.

 

이야기 조경의 의미 한 가지는 지역주의와 지역성의 맥락이라고 읽을 수 있다는 점이다. 한국 현대 조경이 이미 세계적, 보편적 조경의 맥락을 형성하고 있다는 점에서 이것은 잊혀진 토착적(vernacular) 조경의 재발견을 위한 방법론의 하나로 중요하다.


그것을 실천하기 위한 성찰적 계기가 내러티브이자 내러티브 구조이다. 이것은 간단히 말하자면 이미지 홍수 속의 조경에서 이야기가 풍부한 조경이라는 내용적 전환을 의미한다. 형식주의 사고가 고민되던 모더니즘 시대 조경의 관성을 벗고 보다 이용자에 가까운, 보다 내용적으로 풍부한 조경의 장을 말한다고 할 수 있다. 형식과 내용이라는 낡은 문제의 틀이기는 하지만, 수용적 관점이라는 변증법적 진화가 여기에 담겨있어 이전과는 다르다.


주목할 만한 의미 하나는 개발시대의 설계 사고로는 충분히 담을 수 없었던 내러티브와 내러티브 구조가 새로운 조경에 대한 하나의 단서가 될 수 있다는 것이다. 그것을 모두 밝히며 살필 수는 없지만, 요란한 경관과 차분한 경관이 우리 도시의 일상을 번갈아 채우며 끊임없이 새로운 이야기와 전문가를 요청하고 있다는 점만은 분명하다. 살펴보면 이미지 조경에서 이야기 조경으로의 확장 또는 연장이 이미 도시적, 문화적으로 의미 있게 진행되고 있는 것을 알 수 있다.

 

조경 테크네를 위한 내러티브

 

이야기를 생산하지 못하는 조경은 문화가 되지 못한다. 지난 개발의 시대 조경이 일상 문화로서 자리하지 못한 것도 이와 연관이 깊다. 이제야 정원문화와 같은 문화적 차원의 새로운 방법론을 모색하는 조경의 ‘지금 여기’도 그런 점에서 읽어야 한다. 여기서 말하는 이야기는 조경설계의 모티브가 아니라 한국조경의 미래 방향으로 받아들여야 한다. 또한 이야기는 레토릭이 아니고, 내러티브와 레토릭은 다르다는 점도 이해해야 한다. 그러할 때 향후 조경문화, 공원문화, 정원문화, 경관문화 등을 기대할 수 있을 것이다.


또한 이야기 조경은 단순히 내러티브만을 담거나 의미하는 것이 아님도 이해해야 한다. 그것은 일상 조경의 확장, 통합이자 수용미학적 연장이다. 따라서 그것은 조경 테크네를 불러오고, 기술의 깊이만이 아니라 기술의 넓이와 위상(가로-세로지르기)을 모두 아우르는 차원 높은 관심을 요청하기도 한다. 이는 단순히 창조적, 창의적 접근이라는 오랜 접근 시각과도 다르다. 그것은 일종의 장인정신이자 명인으로서의 자세이면서 공인으로서의 접근이기도 하다. 이는 문화로서의 조경이 거쳐야 할 통과의례일 수 있다.


그렇다면 조경에서의 이야기와 내러티브는 어떤 것이어야 할까? 그것은 어떻게 현실화 되어야 할까? 그리고 그것은 최종적으로 어디에서 피어나며, 그것을 위해 조경가는 무엇을 해야 하는 것일까? 단서는 테크네가 학-예-술의 본질이었다는 점이며, 여기에서부터 해답은 출발할 수 있다. 우리 조경이 어디에 놓여있는지를 살핀다면 그 해답들은 충분히 개별 사안마다 다르게 해석되고 출현할 수도 있을 것이다. 다만 그것이 이야기 조경이라는 보다 높은 차원의 문화에 봉속하는 일이어야 함을 견지하면서 말이다. 내러티브는 그러한 이야기 조경의 표현된 형태이자 형식이라고 볼 수도 있을 것이다.


요란함이 조경인가? 차분함이 조경인가? 이야기는 어디에도 있다.

 

 

테크네 조경의 이론적 변신 상황

 

랜드스케이프 어바니즘은 하나의 이론이나 실무분야의 흐름으로 완전한 합의를 이루는 상태는 아니다. 그러나 근대조경이 제도화된 이후에 전문분야의 성격과 지향에 관한 새로운 모색이며, 대안적 실천 패러다임을 제시한다는 면에서는 주목할 만한 일이다. 무엇보다도 환경계획 및 설계에 있어 건축, 도시계획, 토목 등의 관련 분야에서 조경 분야의 리더십을 강조한다는 측면에서 큰 의미가 있다. 실제로 랜드스케이프 어바니즘의 이론가나 실천가들은 조경가(Landscape Architect)라는 말과 함께 랜드스케이프 어바니스트(Landscape Urbanist)라는 말을 사용하기도 한다. 랜드스케이프 어바니스트란 프로젝트 후반에 개입하여 녹지를 (다루는) 디자이너의 역할을 넘어서 도시개발, 계획 및 설계의 복합적인 형태를 구상하고 이끄는 데 앞장서는 전문가를 지칭한다.


그런데 랜드스케이프 어바니즘이 아우르는 업역이 사실 경관 형성으로 도시의 개발을 유도하는 공공조경의 오랜 전통에서 기원한다는 견해도 있다. 수잔나 드레이크(Susannah Drake)는 19세기의 옴스테드의 프로젝트의 영역은 도시녹지체계, 국립공원, 캠퍼스, 인프라스트럭처 등의 포괄하고 있었고, 이는 도시 형태의 형성에 큰 역할을 하였다고 지적한다. 그러면서 현재 랜드스케이프 어바니즘을 주창하는 사람들은 옴스테드 조경이 기여한 측면을 소홀히 인식하고 있다고 비판한다. 실제로 목가적 경관의 사례로 비판되고 있는 센트럴파크는 도시 내의 섬과 같이 고립 되었다기 보다는 수많은 접점으로 도시 일상공간과 긴밀한 관계를 맺고 있고, 목가적 전원이라기보다는 그물망 같이 연결된 공원의 동선으로 정교한 보행로 인프라스트럭처로서 공원을 찾는 사람들에게 효율적이면서 색다른 경관을 체험하게 해준다. 이러한 의미에서 조경진은 랜드스케이프 어바니즘은 19세기 파리나 뉴욕 그리고 미국 도시에서 출발하였다고 보는 것이 타당할 것이며, 공공조경이 지니는 적극적인 의미인 경관 형성으로 도시의 개발을 유도하는 것이 오랜 전통이었다고 말한다. 랜드스케이프 어바니즘은 이를 새롭게 각색(!)한 이론과 실천전략이라는 것이다.

 

야기가 담긴 조경은 우리 도시를 아름답게 해준다.

 

테크네 조경이 이루는 변신의 방향이 랜드스케이프 어바니즘이라는 새로운 실천으로 치닫고 있다고 읽을 수 있는 것은 그것이 결국 새로운 내러티브의 창출이라는 전략들로의 전환을 도모하기 때문이다. 랜드스케이프 어바니즘 진영의 전략들이 아직 설계사고(프로세스)를 완전히 뛰어넘지는 못한 것으로 평할 수 있지만, 그러한 태도는 결국 일상 조경을 위한 내러티브의 출발이라는 점에서 의미 있게 읽어둘 수 있겠다. 테크네로서의 조경을 펼쳐 보일 장이 충분하지 않다는 점에서 그들의 향후 실천 방향이 어떠할지 짐작해보는 것도 의미 있을 것이다.

 


글·사진 _ 안명준 조경비평가  ·  서울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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