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평마을 언덕에 우뚝 자리 잡은 민주현의 별서 화순의 임대정 원림

[조경명사특강]이재근 교수의 ‘한국의 별서’ 19회
라펜트l이재근 교수l기사입력2014-07-18


玆邱前臨逈野, 南臨深谷, 東北連山, 地勢斬截, 陟高四望軒豁. 且有茂林叢竹環列左右, 爽籟淸風生於其間, 盍構小榭 以爲消暑之計乎?

“이 언덕은 앞으로 먼 들이 펼쳐지고 남쪽으로 깊은 골짜기가 이어진다. 동북으로 산이 겹겹이 이어지고 지세가 가파르니 높이 올라 사방을 바라보면 확 트여 보인다. 또한 우거진 숲과 대나무 숲이 좌우로 둘러 펼쳐져 있어 상쾌한 소리와 맑은 바람이 그사이로 흘러나오니 어찌 작은 정자를 얽어서 더위를 식힐 계획을 세우지 아니 하랴.”
-민주현(閔冑顯)의 임대정기(1862)-


임대정외원도(김영환.2014): 임대정 외원의 영역은 천봉산(609m)아래 대곡천과 봉정산 아래 소계곡이 모여 사평천을 이루고 좌측의 동복천과 합하여 주암호까지 이르는 주변 지역을 말한다임대정 주변 사평마을은 정감록에서 어려운일이 일어나도 만인이 능히 살만한 곳이라고 하였던 곳이다.


임대정의 봄2(강충세.2013)

임대정은 조선중기의 문신 고반 남언기(考槃 南彦紀: 1534~?)가 조성한 수륜대(垂綸臺)에 1862년 사애 민주현(沙厓 閔胄顯:1808-1882)이 벼슬을 버리고 전원으로 돌아와 조성한 별서이다. 전남 화순군 남면 사평마을에 위치한다. 초기에는 단칸 건물 초가로 지어졌고, 1922년 기와로 중건하여 정면 3칸, 측면 2칸의 팔작지붕으로 현재의 모습을 갖추었다. 여기에서 내려다보면 서쪽의 넓은 들판과 산록의 정경, 그리고 사평천과 연못의 수경이 한눈에 들어온다. 그래서 일찍이 정감록에도 “이곳은 아무리 어려운 시절이라 해도 만 사람이 능히 살만한 곳이다” 라고 했다.


임대정위치도


임대정의 하지2(강충세.2013)

고반 남언기는 하서 김인후, 퇴계 이황의 문인으로 송강 정철과 교류하였다. 1568년(선조1) 생원이 되고 어린이를 교육시키는 종9품의 동몽교관(童蒙敎官)이 되었다. 그러나 그후 종5품의 빙고 별좌(氷庫別坐)에 임명되었으나 사직하고 동복현(同福縣) 사평촌(沙坪村)으로 은거하였다.

조선후기 이곳에 들어와 남언기의 정원터를 자신의 정원으로 탈바꿈한 사애 민주현(沙厓 閔胄顯: 1808-1882)은 조선 말기의 문신으로, 참판 백의(百燨)의 아들이다. 1836년(헌종2) 향시(鄕試)에 합격한 뒤, 1852년 경과정시(慶科庭試)에 병과(丙科)로 급제하여 벼슬생활을 시작하였고, 성균관전적(成均館典籍)ㆍ형조좌랑(刑曹佐郞)ㆍ사간(司諫) 등을 거쳤다. 그는 조정의 부름을 받아 64세 때 임금에게 경적(經籍)과 사서(史書)를 강론케 한 경연특진관(經筵特進官)을 지냈고 병조참판(兵曹參判)을 거쳐 67세에는 승정원의 정3품인 좌승지(左承旨)를 역임하였다. 그는 조정에 근무할 때 국방과 교화에 대한 정책을 많이 펼쳤던 사람이다. 그러나 만년에는 학문을 강론하면서 후진양성에 전념하였다. 저서로 『사애문집(沙厓文集)』 6권이 전해진다. 사애문집의 시문을 보면 자연현상과 수목에 대한 내용이 많고 취락(醉樂)과 풍류에 관해서도 표현이 수려한 점으로 볼 때 자연을 사랑한 군자였고, 성품이 호방한 풍류객이었다.

화순 임대정 일원에는 37개의 시문이 걸려있다. 편액 현판 3점, 임대정기 1건, 중건 상량기 1건, 중건기문 2건, 제영문 편액 28점, 주련 2점 등이다. 


임대정근경(측면강충세.2010)

임대정의 뒤로는 봉정산, 앞으로는 사평천이 흘러 상사마을은 배산임수의 지형을 이루고 있다. 또한 마을 뒷산을 이루는 봉정산에서부터 상사평에 이르기까지 풍수지리상 학체형국(鶴體形局)을 하고 있다.

임대정 원림은 지형에 따라 대상부(臺上部)와 대하부(臺下部)로 나누어진다. 대상부에는 언덕의 정자를 포함하여 북쪽으로 작은 방지원도(方池圓島, 7×6m)가 조성되어있다. 임대정의 좌측으로는 가이즈까 향나무가 둘러싸고 있다. 대상부의 북쪽에는 대나무 숲이 우거져 있고 서쪽에는 은행나무와 느티나무가 심어져 있다. 방지원도는 음양오행과 천원지방(天圓地方)사상에 의한 것이다.

연못의 물가에는 육면체의 돌이 있는데 동면에 피향지(披香池), 서면에는 읍청당(挹淸塘), 전면에 기임석(跂臨石) 임술춘(壬戌春)이라고 음각되어 있다. ‘피향지’의 ‘피향(披香)’은 연꽃 향기가 멀리 흩어진다는 뜻이며, ‘읍청당’의 ‘읍청(挹淸)’은 연꽃 향기를 붙잡아 당긴다는 뜻이다. 중국 송나라의 학자 주돈이(周敦頤, 1017∼1073)의 ‘애련설(愛蓮說)’ 가운데 나오는 구절인 ‘연꽃 향기는 멀리 갈수록 더욱 맑아진다’라는 의미의 ‘향원익청(香遠益淸 ) 구절에서 차용한 것으로 보인다.


임대정상지(여름)


임대정의 상지

‘사애선생장구지소(沙厓先生杖屨之所)’ 암각문은 사애 민주현에 대한 추모에서 후손들이 만든 표석(標石)이다. 장구(杖屨)란 지팡이와 신을 말하는데, 이름난 사람이 머무른 자취가 있는 곳이란 뜻이다. 이는 조영 60여년 후 손자 대에 이르러 중건할 때 표기한 것으로, 선조 민주현의 사상과 덕행(德行)을 본받겠다는 다짐의 표현으로 보인다.

대상부와 대하부는 계단으로 이어진다. 대하부는 남쪽 골짜기에서 흘러 내려오는 물이 유입되어 반월형(半月形) 연못으로 조성되어 있다. 이 연못은 다시 상지(上池)와 하지(下池)로 구분되는데 두 개의 연못사이의 둑에는 약 1m의 단차를 두어 물을 흘러 보내는 유도관이 설치되어 있다. 「임대정중건기」에서는 대하부를 ‘앞에는 낭떠러지 언덕에 임박하고, 언덕 끝에 위아래 연못이 있는데 넓이가 각각 십무(十畝)이고 연꽃이 덮여있다. 붉은 꽃과 하얀 연근이 거리를 두고 서로 비추고 있다.’라고 표현하고 있다.


임대정의 봄1(강충세.2010)


임대정의 하지(강충세.2013)

대하부의 섬은 신선사상에서 비롯된 봉래, 방장, 영주의 세 섬을 만드는 삼신산(三神山)의 구성으로 이루어져 있다. 남쪽에 위치한 상지에는 2개의 원도, 서쪽에 위치한 하지에는 1개의 원도가 있어 총 3개의 섬이 1조를 이루고 있다. 이 섬에는 모두 배롱나무와 괴석이 배치되어 있으며, 시문에서 알 수 있듯이 상지에는 하얀 연잎의 백련(白蓮), 하지에는 붉은 향기를 입은 홍련(紅蓮)이 자라고 있다. 


임대정의 하지1(강충세.2013)

그리고 임대정은 아래와 같은 주요 특징이 나타난다.

1. 대청에 걸려있는 10개의 시문 해석을 해 본 결과 자연예찬, 유가사상, 선현칭송, 풍류, 도가사상을 많이 나타낸 것으로 보인다. 대부분의 시문에서는 속세를 탈피하고 은자를 꿈꾸며 유유자적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후대에 지어진 시문에서는 벼슬을 버리고 낙향하여 임대정을 건립한 민주현을 칭송하는 내용이 많다.

2. 임대정의 경관구성요소에서는 산, 물, 연못이 가장 많이 등장하였다. 의미요소로 자연요소 중 산(山)은 산봉우리의 형태를 포함하여 가장 많이 나오고, 강ㆍ시냇가ㆍ시냇물 등 물(水)을 표현한 것이 다음으로 나타나고 , 샘ㆍ못 등 연못(池)은 그 다음 순서로 산, 물, 연못이 경관요소로 많이 등장함을 알 수 있다.

3. 임대정(臨對亭)이란 이름은 송나라 주돈이의 ‘아침 내내 물가에서 여산을 바라보며 지낸다’라는 의미의 ‘종조임수대여산(終朝臨水對廬山: )’라는 시구에서 유래되었다. 임대정은 봉정산과 마주하고 사평천과 인접해 있음으로 자연스럽게 산과 물이 주요 경관구성요소로 등장한다. 


임대정원경(여름.강충세.2010)

4. 식물에서는 은행나무와 대나무가 가장 많이 나타났다.

자연현상에는 달(月)이 가장 많이 등장하였다. 「임대정중건상량문(臨對亭重建上樑文)」에서 ‘月山寒月照前溪’와 민긍호의 「경차(敬次)」, 「月入新潭澈地心」 등의 시구에서 연못에 비치는 달의 형태가 경관적 요소로 나타났다.

5. 계절별 요소로는 여름이 가장 많이 등장했고, 봄ㆍ가을이 그 다음 나타났다. 이러한 계절별 요소는 임대정에서 봄, 가을에 모임을 가져 예절을 익히고 학문을 강론하는 장소로 사용했기 때문이다.

6. 의미요소로는 민주현이 벼슬에서 물러나 전원에서 시를 논하며 벗과의 즐거움을 노래했으며, 후손들은 높은 관직에 올랐던 조상 민주현에 대한 공경의 마음을 담아 숭상하는 내용이 나타난다. 

그러나 임대정은 그동안 연못과 복원과정에서 몇 가지 문제점이 발견되었다. 이는 향후 복원과정에서 시정되어야 할 사안이다. 

임대정내원도(김영환.2014): 임대정의 내원은 새로 발굴된 옥류정주변과 상지까지 계곡물을 돌아가게 하고 비구로 떨어지게 함으로써별서의 기능을 되살려야 한다.

첫째, 대상부의 연못은 수도로 공급된다. 예산상의 문제로 현재는 수도를 틀지 않아 메말라 있는 상태이다.

둘째, 대하부의 상지와 하지는 입수구와 출수구가 막혀 수량이 부족하고 수질관리가 요구된다. 대하부의 상지는 동남쪽 봉정산에서 흘러내려온 물이 유입되는데, 그 물길은 시멘트로 포장되었고, 중간에 지름 10cm 정도의 유도관을 통해 상지로 연결된다. 그러나 유도관의 폭이 작아 퇴적물이 쌓여있고 물의 유입이 원활하지 않은 상태이다.

셋째, 임대정 원림의 음수대와 보호책으로 심은 향나무가 경관을 해치고 있다. 이는 주변경관을 고려할 때, 제거해야 할 것으로 보인다.


섬진,보성강 수계별서도(김영환.2014): 섬진강은 보성 일림산에서 발원한 보성강과 곡성 압록에서 만나 구례,하동,광양까지 이어진다별서원림에 영향을 주었던 요소들을 나타내기 위해 주요 경관자원과 별서 정자원림의 위치를 표시했다.

임대정. 내가 여기를 처음 찾아갔던 것은 1986년 이었던 것 같다. 그 후로 기회 있을 때마다 이곳을 찾아갔다. 혼자도 가고 학생들을 대동하고도 갔다. 요즘에는 문화재위원으로서 조사 차원에서 여러 차례 이곳을 방문하였고 정비방안에 대한 대안을 제시하기도 하였다. 둔덕위에 반듯한 정자가 있고, 그 앞에 위치한 상지연못, 여기에서 대나무 비구(飛溝)로 연결된 물줄기는 하부쪽으로 폭포형태로 떨어지도록 설치되어야 한다. 계곡에서 내려온 물은 대하부의 상지 연못과 하지연못으로 유입되고 그 옆에 습지로 연결되어 흐르다 사평천과 합류되도록 하여야 한다.

언덕위에서 보면 이곳은 정감록에 나오는 “유수(流水)는 서입동출(西入東出)하고 만인이 살수 있는 곳이라는 의미의 만인가활지지(萬人可活之地)”임이 틀림없으니 거기에 걸맞게 개선되어야 할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임대정이 뒤늦게나마 명승으로 지정되고 복원 기본계획이 세워진 것은 천만다행한 일이다. 고반 남언기가 거닐었던 수륜대와 민주현의 본제가 복원되고 , 비구(飛溝)와 연못등이 정비되어 물길이 멋지게 조성 될 전망이다.

사람냄새가 나는 별서는 무엇보다 물길복원이 제일의 상책이라 생각한다. 소쇄원이 그렇고, 성락원이 그렇고 남간정사, 다산초당, 명옥헌이 또한 그렇다. 봉정산아래 임대정은 높은 둔덕위에서 바라보는 월봉산 봉우리 아래 사평 뜰의 경관으로 인해 느낌이 광활하고 시원하다. 여기에 물길만 복원된다면 임대정은 어느 별서보다도 아름다운 정원이 될 수 있을 것임이 틀림없다. 문헌에 의한 고증과 정교한 시공으로 임대정이 잘 복원되어 국민들의 사랑받는 별서로 변모될 수 있기를 기대해본다. 


임대정원경(강충세.2010)
연재필자 _ 이재근 교수  ·  상명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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