밴쿠버 일정의 마지막은 스탠리파크와 함께 했다. 시내에서 바라본 공원은 도시의 끝자락 바닷가 작은 숲으로만 보였지만, 405ha(122만평) 규모로 그 넓이를 가늠하기 힘들 정도로 넓다.
 
원주민 터전이었던 이곳은 과거 무기고로 이용되다가 도시민을 위한 공원으로 돌아왔다. 도시공원이라곤 하지만, 국립공원 같이 울창한 수목으로 채워진 자연공원에 가깝다. 공원을 가로지르는 자동차 도로를 빼고 보면, 원시림의 모습과 닮아있었다.

스텐리파크는 도심에서 20분이면 도달할 수 있다. 바다로 포위된 섬처럼 생긴 외곽으로 이어지는 자전거 행렬이 인상적이었다. 공원 앞 바다에선 수상비행기가 오르고 내리는 모습이 보였으며, 그 옆으로 요트가 한가롭게 정박해 있었다. 그 사이로 조정훈련도 한창이었다.

사실 이 방대한 공원은 우리의 도시공원처럼 정교하게 꾸며지거나, 유지되지 않았다. 자연공원의 집단시설지구와 같이 일부지역에 도시공원 기능을 집중시켰다. 필자는 원생림을 방불케하는 방대한 숲 속 오솔길에서 대부분의 시간을 할애했다.

그 곳의 수목은 이미 노령기에 달해 자연고사 되는 상태에 있었다. 직경이 무려 2~3m 이상되는 초대형 거목들이다. 자동차도로나 산책로 주변의 안전상 문제가 되는 곳의 고사목은 토막내어 숲에서 자연분해 시키고 나머지는 철저하게 그대로 두고있다. 숲의 순환과정을 볼 수 있는 도시공원 환경이 부러웠다. 생명을 연장시키기 위한 외과적 수술이나 지지대 설치도 찾아볼 수 없다. 자연에 모든 것을 맡기는 것이었다. 자연수명을 다한 할아버지 나무의 주변에는 손자나무들이 빼곡히 자라나고 있었다. 인생의 세대교체와 다름없다.

집단시설지구에 해당되는 도시에서 가까운 곳에는 어린이를 위한 놀이터와 동물농장, 수족관, 고급스런 레스토랑, 장미원과 정교하게 가꾸어진 꽃밭과 잔디밭이 있고, 마차투어도 이곳과 가까운 곳에서 출발한다.

거목들은 더글라스와 화백류 등 침엽수이고 관목은 덩굴성 딸기나 딱총나무 마가목이 많이 보였다. 야생화와 초본류도 많았지만 우리나라처럼 다양한 식생은 아니었다.

이곳은 뉴욕의 샌트럴파크 보다 인공적이지 않고 자연상태가 양호했다. 샌프란시스코의 금문공원보다는 접근성이 좋았고 관리가 조직적이었으며 이용율이 높다는 느낌을 받았다. 이들이 바로 100만평이 넘는 현대적 개념의 대규모 도시공원들이다.

총 9시간이나 그곳에 머물렀다. 한적한 오솔길을 따라 홀로 걷다보니 곰이나 사슴이 나타날 것 같았다. 자동차 소음도 전혀 없었다. 가끔씩 들려오는 바다에서 이륙한 관광용 경비행기 소리와 새들의 소리만 들렸을 뿐이다. 하늘만 겨우 보일 정도로 숲이 울창하여 방향도 분별할 수 없었다. 그렇게 하루종일 걸었음에도 피곤함을 느끼지 못했던 것은, 삼림욕의 효과가 아니었나 생각하게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