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하도상가에 꽃은 피는가

[오피니언] 이훈길 논설주간(ㄱ_studio 대표)
라펜트l이훈길 논설주간l기사입력2014-08-01

지하도상가에 꽃은 피는가


이훈길 대표(ㄱ_studio)


올여름에도 어김없이 무더위가 찾아왔다. 비 또한 국지성 호우를 동반하여 우산도 무용지물일 때가 다반사다. 그래서 더위를 참을 수 없거나 비를 피하고 싶을 때마다 지하도상가를 찾는다. 시원한 에어컨 바람과 함께 잠시나마 수많은 자동차와 신호등에서 벗어날 수 있어서 좋다. 손발이 시리고 눈이 오면 노면이 미끄러운 겨울에도 역시 따뜻한 히터의 온기를 느낄 수 있는 지하도상가를 애용한다. 걷다가 지치고 힘들어지면 지하철을 타고 이동하고 싶은 장소로 움직이면 된다. 애써 몬트리올의 지하도시와 비교할 필요는 없다.


1967년 지금의 시청역 부근에 준공된 ‘새서울 지하상가’가 지하도상가의 시초였다. 지금이 2014년이니 47년 동안 시대의 흔적을 그대로 간직하고 있는 모습이다. 처음에는 방공대피시설 및 교통불편을 해결하기 위해 지하보도의 개념으로 조성되었다가 상가로 발전한 장소다. 길, 사람, 지상, 지하를 이어주며 물건이 거래되고 현금이 움직이는 곳이다. 하지만 이만한 정(情)이 있는 곳 또한 바쁘게 돌아가는 일상 속에서는 찾아보기가 힘들다.



우리가 흔히 볼 수 있는 지하도상가(종로2가)의 일상이다. Ⓒ이훈길


지하상업공간은 지하도상가(underground passage shopping center)를 이야기한다. 지하도상가란 도로 등의 지하에 지하보행로와 접하여 설치된 점포가 늘어선 구역을 말한다. 즉, 지하도상가는 불특정 다수인이 이용하는 공중이용시설로서 보도와 상가의 기능을 동시에 수행하는 공간이다.


지하도상가는 일본의 지하가(地下街)라는 용어에서 가져왔다. 이것의 의미는 지하도, 지하주차장, 상가 및 기타 부대시설 등이 일체로 설치되어 정비되는 시가지내 지하공간을 말한다. 여기서 지하도(underground passage)는 사람의 통행을 목적으로 주로 도시의 도로부 지하에 설치한 터널로서, 기후의 영향을 받지 않고 시가지의 자연경관을 해치지 않는다는 의도를 가지고 있다. 따라서 지하도상가는 공공용지인 도로 등의 지하에 설치되는 상점거리로서 공공의 성격이 강한 공간이다.


서울 도심지역의 지상공간은 유휴지가 거의 없다. 높은 땅값으로 인하여 공공시설을 추가로 조성하기도 쉽지 않다. 하지만 지하공간은 옥상과 같은 보이지 않는 공공의 유휴공간이다. 서울시 지하도상가 전체 면적은 149,920㎡로 명동의 6분의 1에 해당할 정도로 넓은 공공공간이다. 지하도상가는 총면적만큼 넓고 다양한 가능성을 가졌다. 29개의 상가, 2,738개 점포로 구성되어 있으며, 보세 의류, 양장, 공예품 재료, 공방, 패션소품 등 상점 수만큼이나 업종도 다양하다. 요즘 지하공간이 많이 생겨남으로 인해 지하도상가 개발에 대한 중요도가 점차 늘어나고 있는 상황이다. 하지만 변화하고 있는 지하도상가에는 조경을 찾아볼 수가 없다.


2012년에 강남터미널 지하도상가는 30년 만에 리모델링했다. 시설이 낙후되고 쇼핑객이 줄어들자 상인들이 점포당 8,000만원을 투자해 개보수에 들어갔다. 어둡고 칙칙했던 상가는 밝은 조명과 가게마다 통일된 디자인의 간판 등으로 깔끔하게 변했다. 총 길이 880m에 626개의 점포가 있는 대규모 지하도상가인데도 쉴 공간조차 거의 없었던 과거의 모습은 사라졌다. 곳곳에 휴게 공간이 생겼고 주말이면 사람들이 모인다.



리모델링한 ‘을지스타몰’이지만 넓고 깨끗해진 길뿐 친근한 조경의 모습은 어디에도 찾아볼 수 없다. Ⓒ이훈길


2013년 비좁은 통행로에 낡은 시설로 쇠퇴의 길을 걸어왔던 서울 을지로 지하도상가도 리모델링을 통하여 ‘을지스타몰(EuljiStar)’로 탈바꿈하였다. 낙후한 시설로 백화점과 대형쇼핑몰에 한없이 밀렸던 을지로 지하도상가는 당시 전체 165개의 점포 중 43개가 비어 공실률이 26%에 이른 데다 그나마 문을 연 곳도 손님이 뜸할 정도로 유명무실해 상권으로서의 가치가 추락하고 있었다. 리모델링을 통하여 전체 상가 보행구간에 밝은 색깔의 바닥재와 간결한 벽체 디자인을 적용해 넓고 깨끗해진 길로 바뀌었으며, 다양한 테마로 구성된 특화구역 덕분으로 긴 통로를 걸으면서 지루해할 틈도 사라졌다.


하지만 두 장소 모두 일반적인 행정편의 위주의 디자인으로 인하여 사람을 배려한 조경디자인은 없다. 자연채광, 선큰 광장, 실내 유수공간, 포켓공원, 빛으로 꾸민 광벽 또는 수벽 등 다양한 공간 활용을 통하여 여러 사람들이 자연스럽게 이용하고 걸어 다니면서 자연을 느낄 수 있도록 디자인하는 조경의 역할이 필요한 부분이다.



뉴욕의 로우라인(Lowline) 지하공원을 상상한 모습이다. Ⓒwww.thelowline.org


도심 한복판을 가로지르는 고가(高架) 철로를 하늘공원으로 바꾼 사례가 있다. 바로 뉴욕의 하이라인(Highline) 공원이다. 하이라인은 길이 1마일(1.6km)의 공원이다. 웨스트 사이드 노선으로 맨해튼의 로어 웨스트 사이드에서 운행되었던 1.45마일(2.33km)의 고가 화물 노선을 꽃과 나무를 심고 벤치를 설치해서 공원으로 재이용한 장소이다.


이러한 뉴욕시는 하이라인의 성공과 더불어 로우라인(Lowline)을 상상하고 있다. 지상의 열차가 운행되다 사용하지 못하게 된 곳을 하이라인으로 변모시켰다면, 지하의 지하철이 운행되다 사용하지 못하게 된 곳을 공원으로 바꾸는 것이 하이라인의 모티브를 따온 로우라인이다.


로우라인은 뉴욕 동쪽에 위치한 맨하튼의 로어 이스트 사이드의 Delancey 거리와 역사적인 트롤리 터미널 지하에 지하공원을 계획하는 아이디어다. 단지 바닥을 깨끗이 바꾸고 상가 간판을 통일하는 것이 재생의 의미는 아닐 것이다. 사람들이 편안하게 즐길 수 있는 지하공간을 재생하고자 지하공원을 조성하고 지하도상가를 세심하게 보살핀다면 뉴욕의 로우라인보다 더 행복한 공간을 상상해 볼 수 있다.


뉴욕과 비슷한 상황에 놓인 철거예정이었던 서울역 고가도로가 하이라인과 같은 선형공원을 조성하겠다고 한다. 서울역 고가도로가 지상공원이 되고, 을지로 지하도상가가 지하공원이 된다면 서울역과 명동을 연결하고 을지로 지하공간까지 연결되는 네트워크가 형성될 것이며, 남산 및 용산 공원과 더불어 종로의 지하공간까지도 연계될 수 있다. 이처럼 ‘High-ground-Low의 Line Park’가 네트워크 된다면 서울을 걸어 다닐 때 수많은 자동차들의 위험에서 벗어나 편안하고 안전하게 걸으면서 서울의 역동적이고 다양한 모습을 경험할 수 있는 공원을 조성할 수 있다.


하이라인과 로우라인 같은 프로젝트는 지역 사회 공간과 개선된 도시 생활을 위해 버려진 공간이나 지하 공간에 활력을 불어넣어 줄 수 있는 방법에 대한 통찰력을 제공한다. 그러므로 획일적이고 보여주기 식의 계획이 아닌, 사람을 배려하고 자연을 고려한 조경디자인이 필요하다. 지하도상가에 꽃이 피지 않는 이유는 지하 어디를 가도 조경이라는 이름의 공간을 찾아볼 수 없기 때문이다. 지하도상가에 꽃이 피어나는 날을 기다려본다.


글·사진 _ 이훈길 논설주간  ·  ㄱ_studi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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