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원, 철인을 키우다

[오피니언] 오정학 논설주간(경기도시공사 사업기술처)
라펜트l오정학 논설주간l기사입력2014-08-07
공원, 철인을 키우다

오정학 논설주간(경기도시공사 사업기술처)

7월 초, 수원 광교호수공원에서 진풍경이 벌어졌다. 아침에 수백 명이 호수에서 수영을 하고 있었다. 아니, 왠 수영대회를 바다도 아닌 공원에서? 그런데 물에서 나온 사람들이 허겁지겁 자전거를 타는 게 아닌가. 철인3종 대회였다. 익히 아는 운동이었지만 도시공원에서 시도된 것이 흥미로웠다. 수백 명 참가자가 서로 몸을 부딪치며 물살을 가르는 모습은 장관이었다. 형형색색 자전거의 에어로바를 잡고 질주하는 것도 재미있었다. 정원에 터 잡은 플라톤의 아카데미아와 에피쿠로스 학파가 철인(哲人)을 키우더니, 현대에 와서는 공원이 철인(鐵人)을 양성하나 싶었다. 

이 운동의 역사는 1977년 2월의 하와이로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 미해군 중령 존 콜린스는 동료들과 맥주를 마시고 있었다. 저마다 좋아하는 운동에 대해 이야기꽃을 피웠다. 곧 수영, 사이클, 달리기 중 어떤 것이 가장 강인한지를 놓고 설전이 벌어졌다. 좀체 결론이 나지 않자 그들은 와이키키 해변에서 세 가지를 모두 해 보기로 했다. 그 다음해에 약속대로 14명이 모여 경기를 했고 이것이 철인3종경기(아이언맨 코스)의 시작이다. 그 거리는 대략 한강을 두어 번 왕복 수영한 뒤(3.9km), 자전거로 서울에서 대전까지 가서(180km) 풀코스 마라톤(42.195km)을 뛰는 것과 같다. 제한시간은 17시간. 물론 광교대회는 제한시간 3시간 30분의 단축코스(올림픽 코스)였다. 

먼저 경기는 안전을 위해 수영부터 한다. 착용이 의무화된 슈트가 약간의 부력과 체온유지를 돕는다. 지치면 수면에 쳐진 안전로프를 잡을 수 있다. 즉 위험하지만 통제된 위험이다. 통제된 위험은 언제든 벗어날 수 있기에 즐길 수 있게 한다. 젖 먹던 힘까지 다해 죽기 살기로 헤엄치건만 간간이 보이는 수변 풍경은 너무나 평화로워 호어몽(胡魚夢)의 몽환적 느낌을 준다. 그 다음 차례인 자전거는 도구를 쓴다는 점에서 그나마 낫다. 미리 챙겨둔 먹을거리로 힘을 보충하기도 한다. 주변 경관도 자연스레 눈에 들어온다. 하지만 내리막에선 시속 50~60km나 되니 극도의 긴장으로 시야가 좁아져 주변 경관은 볼 새가 없다. 마지막 순서는 달리기이다. “달리기는 정직하다”는 말이 있다. 기술과 요령보다 오로지 심장과 근육의 힘이다. 이미 지쳤기 때문에 가장 힘든 단계로써 참가자는 비로소 철인의 자격을 시험받는다. 이때 변화감 있는 경관은 심리적으로 도움이 되지만, 곧게 뻗은 길과 단조로운 경관은 주자를 힘들게 한다. 

참가자들은 이 힘든 여정에서 대체 무슨 생각들을 할까? 조오련은 현해탄을 건널 때 속으로 “하나 둘, 하나 둘” 구령을 불렀다 한다. 둘까지만 구령을 한 것은 잡생각을 없애고 정신집중을 하기 위해서였다. 육상선수들은 자세가 바른지 끊임없이 생각하며 달린다.  자세는 곧 효율성의 척도이기 때문이다. 물론 일반인들은 그럴 것까지는 없을 것이다. 다만 완주를 위해 최소한의 목표의식이 있으면 좋다. 속도가 엇비슷한 사람을 따라가는 것도 한 방법이다. 그러다가 그가 지치면 또 다른 대상을 찾는다. 다만 구리빛 피부에 절제된 자세이거나 왜소한 여자는 조심해야 한다. 가볍게 보고 무리하게 접근했다가는 오버 페이스로 결말이 고통스러울 수 있다. 신체조건이 부족한 여자일수록 대개 준비가 많은 법이니, 경쟁자가 아닌 동반자로 삼는 게 좋다. 그들을 뒤따라가다 보면 어느덧 종착점에 다다를 수 있다. 그래서 스포츠는 종종 삶의 축소판이거나 메타포로 여겨진다. 

소득수준 1만 달러 밑에선 볼링, 1만 달러가 넘으면 마라톤, 2만 달러가 넘으면 철인3종, 산악자전거, 암벽등반 등이 대중화된다. 대중스포츠와 소득수준, 여가시간의 관련성을 말해준다. 늘어난 소득과 여가시간을 무기로 좀 더 강한 탈일상성이 추구된다. 최근 공원에 암벽등반장이 부쩍 늘어난 것과 캠핑 붐 또한 같은 맥락에서 이해된다. 스포츠 시설은 그 특성상 공원을 보다 재미있고 활기차게 해 준다. 이제 공원은 단순히 시각적 경관과 휴식 중심의 목가적 장소가 아니다. 이런 경향은 도심보다 주거지역과 가까운 공원에서 특히 두드러진다. 집근처 일상의 공간에 멍석을 깔아버리니 순식간에 축제의 장이 되는 격이다. 

공원과 스포츠의 결합은 사실상 새로울 것도 없다. 다만, 개인적 차원을 넘어서 얼마나 문화적 차원인가는 주목할 만하다. 미국의 센트럴 파크만 하더라도 달리기, 인라인 등의 이런저런 행사가 잦고, 유명한 뉴욕마라톤 골인지점이 되기도 한다. 스포츠의 역동성은 공간에 활력을 불어넣는다. 스포츠는 신체적 능력을 겨루고 승부를 가르는 특성상 사람을 쉽게 흥분시킨다. 흥분은 열정으로 이어지고, 집합열정은 비로소 문화적 동력이 된다. 개인들이 느끼는 집합열정과 일체감은 사회성의 좋은 접착제이기도 하다. 다 같이 쉽게 어울리고, 일치된 감정은 공동체성 함양에도 그만이다. 이러한 점에 주목하여 상당수 기업에서 스포츠 경영이 펼쳐지기도 한다. 조경계에서도 레인보우 스케이프나 디자인 파크 등의 몇몇 기업이 한창 사세를 키울 때, 경영자가 직접 직원들과 함께 마라톤 대회를 참가하며 조직문화에 신경을 썼다. 

집단적인 열정은 사실 전통적 공동체와 축제가 사라져가는 오늘날에는 이끌어내기 쉽지 않다. 구성원들간 동질성이 줄어들어 공동의 가치영역이 점차 좁아지고 있기 때문이다. 반면 구성원들의 이해관계는 그 다양성만큼이나 다원화되어 모두를 아우르기가 점점 더 힘들어지고 있다. 때문에 뒤르켐은 현대사회에서 집합흥분은 제한된 영역에서만 존재한다고 보았고, 스포츠 열기를 그 중 하나로 꼽았다. 열기, 뜨거움(hot)이란 본질적으로 차가움(cool)으로 대표되는 일상과 대비되는 탈일상의 특성이다. 도시공원의 스포츠 행사가 의미를 갖는 지점이다. 물론 행정적으로 기획되는 온갖 축제나 스포츠 행사를 모두 연결시키고 싶지는 않다. 지나친 행정주의⋅상업주의적 속성들 때문이다. 지역의 온갖 것들을 다 돈벌이 대상으로 환원시켜 버리는 관광의 속성이야 잘 알고 있지만, 최소한의 양식이나 의례는 필요하지 않을까? 그것들이 사라진 자리를 몬도가네와 환경파괴가 자리한 경우는 씁쓸하기 그지없다. 공동체 모두의 건강과 복지와 무관하고 놀이정신도 없는 행사는 하위징아도 문화적 불모의 행사로 평가절하 했었다. 

공동체 구현이 많이 이야기되고 있다. 단순히 개인들의 물리적인 주거시설이 아니라 이웃과 함께 하고 문화가 있는 생활공간이다. 주민참여와 마을만들기 프로젝트 등의 형태를 띠기도 한다. 우리 사회는 여전히 공동주택이 압도적이다. 하지만 더 이상 개인의 공간을 단순히 집적시킨 개미굴일수는 없다. 그러기 위해서는 일상에서 긍정적 상호작용과 공동의 탈일상이 가능해야 하지 않을까? 이런 측면에서 스포츠는 도시공원의 또 다른 문화적 가능성을 보여준다. 앞으로 스포츠 문화는 더 폭넓은 양상을 보일 것으로 점쳐진다. 늘어나는 여가시간을 소비주의에 빠지지 않고, 자율적이고 주체적으로 관리할 수 있는 대안의 하나이다. 그 때문에 스포츠의 종류, 참여계층, 이용공간, 활동시간의 면에서 다양성이 계속 커지고 있다. 

이날, 정오가 되기 전에 행사장은 정리되었다. 이용자들이 몰리는 오후의 공원은 다시 평범한 일상으로 돌아갔다. 일상적 공간은 결코 탈일상을 위해 지루한 일상을 견디어 내야 하는 공간만은 아닐 것이다. 일상 그 자체가 작품이 되는 공간일 때, 일상성과 탈일상성은 대립을 극복하고 유연하게 서로 전유될 수 있는 공간의 가능성을 보여준다. 앞으로도 계속 광교호수공원에서 이 행사를 구경할 수 있으면 좋겠다. 이번에 구경을 한 사람들이 내년에는 용기를 내어 직접 참여할 수도 있을 것이다. 새롭게 시작하는 신도시에서, 지역민들의 관심 속에 좋은 공원문화로 정착하길 기대해 본다. 


수영을 위해 순차적으로 물에 뛰어드는 참가자들. 안전을 위해 물에는 안전로프가 쳐지고 수영슈트를 입으며, 여기저기 안전요원이 배치되어 있다


수영을 마치고 물에서 나오는 참가자들. 편의상 수영슈트 안에 사이클복을 입어 두는데 시간절약을 위해 나오면서 슈트를 벗고 있다 


공기저항을 줄이려고 에어로바를 잡은 참가자. 공기저항은 페달을 밟는 힘의 약70%를 뺏어가므로, 이를 최소화하는 자세가 중요하다


마지막 달리기 코스에서 멋진 곡선주로를 참가자들이 달리고 있다. 구리빛 피부와 군살이 없는 전형적인 철인형 체격이다 

_ 오정학 논설주간  ·  경기도시공사 사업기술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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