잃어버린 도시 속 사이공간

[오피니언] 이훈길 논설주간(ㄱ_studio 대표)
라펜트l이훈길 논설주간l기사입력2014-09-11

잃어버린 도시 속 사이공간


이훈길 대표(ㄱ_studio)


오늘도 어김없이 바쁜 걸음을 재촉한다. 걸을 때 마다 지나치는 건물들이 영화의 프레임처럼 스쳐간다. 영화 필름이 돌아갈 때 그 사이마다 생기는, 하지만 우리가 느낄 수 없는 공극처럼 건물들 사이사이의 공간이 사실은 눈에 들어오지 않는다. 혼잡으로 뒤엉킨 도심 속에서 여전히 비어있는 공간은 존재한다.

도시는 언제나 옛 건물과 새로운 건물, 기성 시가지와 개발지, 아름다운 장면과 추한 장면, 외부와 내부, 부분과 전체가 공존하고 공생하면서 마치 유기체와 같이 성장한다. 일상의 공간 속에서 소소한 행복을 발견하고 즐기기 위해서는 이들의 조화로운 관계가 유지되어야 하고 지속되어야 한다. 기존의 도시와 건축에 생동감을 부여하고 치유하기 위해서는 인식하지 못해 잃어버린 도시 속 사이공간과 같은 버려진 그래서 손길이 필요한 빈 공간을 회복할 필요가 있다.

현대 도시에서는 도시의 밀도와 환경을 조절하기 위한 획일적인 규제에 의해 건물과 건물 사이에 많은 빈 공간들이 만들어지고 있다. 하지만 이 공간들은 사적공간과 공적공간 간의 영역 때문에 적절하게 활용하기 어렵고, 가로에서의 접근이 어려워 공간의 유기적인 관계가 단절되고 있으며, 환경악화와 범죄 등의 부작용을 낳고 있다. 이처럼 오늘날의 도시 속 사이공간은 경계의 공간으로 하나의 기능적 공간으로서가 아니라, 가구(block)와 가구 사이의 가로, 건물과 건물을 배치시킨 결과의 잉여공간으로 인식되고 있으며, 영구적인 그늘로 드리워져 있는 쓸모없는 공간으로 버려지고 있다.


인식하지 못해 잃어버린 건물과 건물의 사이공간 Ⓒ이훈길

이와 비슷하게 도시환경을 쾌적하게 조성하기 위하여 도로에서 건물의 전면 후퇴나 공개공지와 같은 규제에 의하여 형성된 공간은 보행자를 위한 공간으로 사용되기보다는, 주차장으로 이용되거나, 주차를 막기 위한 경계물, 건물 내부 상점들의 광고를 위한 입간판과 같은 장애물의 설치로 보행의 장애가 될 뿐만 아니라 사람들의 접촉이 이루어지는 장소로서의 의미를 잃어버리고 있다.

건물과 건물의 사이공간은 단순히 비어있는 곳이 아니라 건물의 기능들이 서로 부딪치고 있는 곳이다. 기능의 확장과 공간의 전이 등이 가능한 공간이다. 이러한 사이공간(In-between space)은 단절된 도시공간의 중간영역으로서 가능성을 가지고 있다. 따라서 이 공간에 접근성을 부여하고, 나아가 가구(block) 내부 활성화를 도모하여 사람들의 일상적 행위에 어울리는 공간을 형성한다면, 새로운 환경의 도시공간을 조성할 수 있을 것이다.


Paley Park은 고층빌딩 사이에 쉼터로 자리잡고 있다. 공원 안에는 간단한 요리와 샌드위치, 음료를 파는 공간도 있다.

건축물의 사이공간은 건축선과 인접 대지 경계선으로부터 띄어야할 건축물의 최소 이격 거리에 대한 법적 기준에 의해 생성되었다. 건축물 사이공간의 본래의 조성 의도는 보행자들에게 개방되어 반(半) 공공적 휴식공간의 기능을 하는 것이다. 하지만 현재 사이공간은 법적 기준에 명시된 최소 이격 거리에 의한 공간을 형성하는 정도에 그치고 있어서 대부분 그 폭이 1~2m 내외로 매우 협소한 실정이다. 또한, 제대로 관리가 되지 않아서 그 사이에 가설 건축물이 들어서거나 물품적재 공간으로 활용되는 등 사적인 공간(쓰레기 수거장, 지하계단의 입구, 사설 설치물 등)으로 이용되고 있으며, 법적 조경공간에 의한 쓸모없는 나무를 심는 등 거의 버려진 공간으로 남아있게 되어 도시 미관상 가로의 연속성을 해치는 저해 요소로 작용하고 있다. 그러므로 도시조직의 단절을 초래하는 사이공간을 치유하기 위해서는 서로 다른 두 조직의 사이에서 양자를 이어줄 수 있는 공공공간으로서의 가능성을 발견해야한다.


버려진 사이공간을 사람들이 지나다닐 수 있는 보행로와 함께 조경공간을 조성하였다. Ⓒ이훈길

도시 속 사이공간은 대부분 두 벽면이 창이나 입구가 없는 막힌 벽면으로 되어있어 보행자들은 답답함을 느끼게 되고, 빠른 통행을 하게 되며, 내부와의 연계성도 거의 없다. 하지만, 벽면 한쪽에 창이 있거나, 혹은 양쪽이 모두 개방된 경우에는 보행자들의 호기심을 유발하고, 통행의 속도도 보다 느려지며, 공간 간의 연계성이 생겨 길에 활기를 불어넣게 되어 자연스럽게 환경악화나 범죄 등의 문제는 사라질 수 있다.

여유폭을 가진 사이공간인 경우는 1967년 뉴욕에 조성된 Paley Park과 같은 도시 소공원을 조성할 필요도 있다. Paley Park은 건물의 벽면으로 이루어진 사이공간을 도심 소공원화하여 일반 사람들에게 개방한 것이다. 나무가 심어지고 폭포와 벤치가 놓여지면서 이 자투리땅은 혼잡한 거리로부터 조용한 은신처가 되었다.

사이공간을 활용하여 도시공간을 개선할 수 있는 다른 방법으로는 현재 사이공간에 가설되어 있는 폐쇄적인 지하계단이나, 상점/건물 내부의 좁은 계단과 사이공간을 형성하는 벽면 등을 개방하여 공간을 연계시키고, 통행이 많을 경우 공공기능을 갖는 건물 내부에 가로와 연결된 통행 공간을 형성하는 것이다. 혹은 사이공간의 접근을 방해하는 요소들을 제거하고, 건물의 Set-back된 공간과 공개공지와 연계하여 다양한 사회적, 문화적 기능을 담당했던 길의 의미를 회복하여 보행자들이 자유롭게 이용할 수 있는 오픈스페이스로서의 기능을 가지도록 할 필요가 있다.

건물과 건물, 외부와 내부, 사적영역과 공적영역 사이에 존재하는 경계의 공간을 치유하고 도시 안에 단편적으로 존재하는 사이공간에 관계의 의미를 더한다면 유기적인 도시의 다채로운 공간들이 상생의 가치를 가질 수 있다. 공간의 전체와 전체, 부분과 부분의 상호 관계와 그로 인해 형성되는 공간은 유기적으로 연결될 수 있는 공간 체계로써, 외부공간은 물론 내부공간에 이루기까지 질서를 유지 할 것이다.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사이공간과 같은 비어있는 공간과 실제하는 공간이 함께 도우며 존재하는 ‘공존의 의미’일지도 모른다.

글·사진 _ 이훈길 논설주간  ·  ㄱ_studi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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