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록위마(指鹿爲馬) 이야기

[오피니언] 고동완 논설주간(경기대학교 관광개발학과 교수)
라펜트l고동완 논설주간l기사입력2014-09-18
지록위마(指鹿爲馬) 이야기

고동완 교수(경기대학교 관광개발학과)

지록위마(指鹿爲馬)는 중국의 고사성어이다. 사마천(司馬遷)의 <사기(史記)>는 중국의 3000년 역사를 기록한 책이다. 여기에는 진나라의 통일과 멸망 과정을 포함하고 있는데, 기원전 시대의 이야기이니 사실 여부는 물론이고 왜곡되고 변형된 부분도 있을 것이다. 춘추전국시대를 통일하고 중국 최초의 황제가 된 진시황(秦始皇)은 기원전 210년 9월에 순행 길에 병을 얻어 객사하는데, 그의 나이 50세였으니 천하를 호령하던 황제의 죽음은 뭔가 허무하다.

아무튼 <사기>에 따르면 죽음을 앞두고 진시황은 북방으로 일종의 유배를 보냈던 태자 부소(扶蘇)에게 황위를 물려준다고 유언했으나, 환관 조고(趙高)와 승상 이사(李斯)가 음모를 꾸며 부소를 자결하게 하고 그를 지지하던 공신들을 살해하여 후궁 소생의 둘째 황자인 호해(胡亥)를 2세 황제로 탄생시켰다. 그리고 조고는 이사를 제거하고 자신이 승상이 된 다음 호해를 마음대로 부린다.

조고는 자신이 황제가 되려고 반란을 꾀했으나 군신들이 자기를 따르게 될지가 염려되었다. 그래서 사람들을 떠보기 위해 사슴을 가져다가 황제 호해에게 바치며, “이것이 말이옵니다.”라고 했다. 그러자 황제는 웃으며 “승상이 실수를 하는구려, 사슴을 보고 말이라고 하다니(원래 사기에는 謂鹿爲馬로 되어 있다).”라고 하자 조고는 다시 “아닙니다. 말이올시다.”라고 답한다.

황제 호해는 좌우에 있는 사신들에게 물었다. 어떤 사람은 잠자코 있고, 어떤 사람은 조고의 편을 들어 말이라고 하고, 혹은 정직하게 사슴이라고 대답하기도 했다. 그러나 조고는 사슴이라고 말한 사람은 나중에 죄를 씌워 죽여 버렸다. 그 뒤로 모든 신하들은 조고가 무서워 그가 하는 일에 다른 의견을 말하지 못했고, 호해는 모든 황권을 조고에게 넘겼다.

그로부터 2년 후 조고는 호해를 죽이고 부소의 아들 자영(子孀)을 3세 황제로 삼았으나 이번에는 조고가 자영에게 주살 당하고 말았다. 그리고 진나라는 진시황제가 죽은 후 4년 만에 유방(劉邦)에게 멸망한다. 

지금은 위록위마(謂鹿爲馬)가 지록위마(指鹿爲馬)로 사용되고 있으며, 윗사람을 농락하여 자신이 권력을 휘두른다는 의미이자 억지를 부림으로써 사실이 아닌 것을 사실로 만들어 강압으로 인정하게 한다는 의미이다.

지록위마 1

현직 판사가 다른 재판부의 판결을 공개적으로 비판하는 사상 초유의 사태가 발생했다. 보도에 의하면 김동진 수원지방법원 성남지원 부장판사가 원세훈 전 국가정보원장의 공직선거법 위반 혐의에 대해 무죄를 선고한 담당 재판부를 정면으로 비판하는 ‘법치주의는 죽었다’는 제목의 글을 법원 내부 게시판에 올렸다.

국정원이 2012년 당시 대통령선거에 대하여 불법적인 개입행위를 했던 점들은 객관적으로 낱낱이 드러났고, 삼척동자도 다 아는 자명한 사실임에도 불구하고, 이런 명백한 범죄사실에 대하여 담당 재판부만 “선거개입이 아니다.”라고 결론을 내렸다는 것이다. 이것은 ‘지록위마’의 판결이며, 판결문을 읽으면서 허허 헛웃음이 나왔다고 했다. 그 현직판사는 이번 판결이 기계적이고 도식적인 형식 논리로 국민을 납득시킬 수 있을지 의문을 제기하며, 이것은 궤변이고 사심이 가득한 판결이라고 주장한다.

사실 국정원 댓글사건에 대하여 법원의 판결에 앞서 이미 대다수의 국민은 국민의 이름으로 상식적으로 판결하였을 것이다. 다만 그들은 상식을 모르고 국민을 모르고 있을 뿐이다. 사슴을 보고 말이라 우기면서도 전혀 거리낌이 없을 뿐이다. 그 부장판사는 글은 이렇게 마치고 있다. 논어에 ‘무신불립(無信不立)’이란 말이 있다. 신뢰가 없는 곳에는 국가가 존립할 수 없다는 뜻이다.

지록위마 2

담뱃값이 2000원 인상된다. 정부는 국민건강의 최대 위협요인은 흡연이고, 국민의 건강을 위하여 현재 44%인 남성 흡연율을 2020년까지 29%까지 줄이는 금연정책으로 담뱃값을 인상하겠다고 한다.

OECD 국가와 비교할 때 우리의 흡연율이 대체로 높고 담뱃값이 비교적 싸다는 것은 주지의 사실이다. 또한 담배의 위해성은 잘 알려진 사실이고, 정부는 금연정책으로 국민의 건강을 지킬 의무가 있다.

그런데 담배는 기호물품이자 개인의 취향으로 금연이 쉽지 않고, 고소득층에 비해 서민층의 흡연율이 높은 현실에서 사실상 담뱃값 인상이 부자들보다는 서민들에게 큰 부담이 된다는 것이다.

담뱃값을 2000원 인상하여 4500원이 되면 세금 등은 3318원이 되는데, 정부 관료도 인정한 것처럼 담뱃값 인상은 사실상의 증세이다. 하루에 한 갑을 피는 경우 1년에 120만 원 정도의 세금을 내게 되는데, 이 세금은 4700만 원 연봉자가 내는 근로소득세하고 비슷하고 시가 10억 원짜리의 주택의 재산세하고도 비슷하다.

이번에 담뱃값 인상으로 예상되는 세수입은 2조8천억 원 정도이고, 정부는 주민세와 자동차세 인상 등을 통하여 1조4천억 원 정도를 더 걷겠다고 한다. 이 정도면 흡연율을 줄이고 국민건강을 챙기겠다는 것은 국민에게 억지를 부리고 우롱하고 농락하는 것을 넘어 국민건강을 빙자한 서민경제에 대한 무차별 폭력이자 폭격이다.

노무현 정부는 2005년 8월에 세제개편안을 발표하고 담뱃값을 500원 인상하였다. 당시 한나라당 박근혜 대표는 청와대 회담에서 “소주와 담배는 서민이 애용하는 것 아닌가? 국민이 절망하고 있다”고 했고, 한나라당 이정현 부대변인은 서민을 잡는 정권, 서민을 밟고 간신히 버티는 정권이라는 폭언을 퍼부으며 담뱃값 인상 등 개편 관련 정책에 강력히 반발했다. 500원 인상을 두고 '서민을 밟고 간신히 버티는 정권'이라면서 2000원을 인상하면서 서민 물가에 대해서는 일언반구도 없이 국민건강 만을 내세우는 것은 또 다른 지록위마이며, 후안무치의 극치라 밖에 볼 수 없다.

소설가 이외수는 “국민건강을 위해 담뱃값 올린다는 주장은 용왕님 토끼 간 씹다 어금니 부러지는 소리다.”라고 적었다. 국민건강을 위한다는 정부의 담뱃값 인상 이유를 그대로 믿는 국민이 몇 명이나 될까. 오히려 증세 없는 복지라는 말도 되지 않는 공약에 집착하지 말고, 마음에도 없는 국민건강을 운운하지 말고, 솔직하게 복지정책 등을 위한 예산이 부족하다고 고백해야 한다. 그리고 당당하게 담뱃갑과 주민세 인상을 국민과 솔직하고 진지하게 논의하여야 한다.

작년의 세수 부족은 약 8조 원이었고, 올해에는 약 10조 원에 이를 것이라고 한다. 아마 담뱃값과 주민세 인상 등으로 부족한 세수의 반 정도를 충당할 수 있다는 계산인가 보다. 여기에 추가해서 각종 세금 감면제도를 폐지하고 교통범칙금까지 올리면서 부족한 세수를 짜낼 심산이다. 참고로 올해 상반기 교통범칙금으로 612억 원을 걷었는데, 이는 작년과 비교하여 약 50%, 재작년과 비교하여 약 300% 증가한 것이다. 

이명박 정부 5년과 박근혜 정부 2년 간 법인세 감면 등 부자감세로 비게 된 국가 세수는 100조원이 넘는다. 지방교부세 재정은 40조원이 줄었다. 이명박 정부에서 법인세 감세액의 84%는 소득분위 상위 10%의 대기업에게 혜택이 주어졌으며, 특히 상위 1%에 해당하는 거대기업들에게 혜택의 대부분이 귀속되었다는 연구 결과를 주목할 필요가 있다. 

국세청 보고에 의하면 전체 기업의 0.3%에 불과한 재벌 기업이 전체 법인세 감면 혜택의 절반 이상(약 22조 원)을 차지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따라서 지금의 세수 부족은 법인세 원상회복과 부자 감세의 철회 없이는 원천적으로 불가능하다. 서민의 호주머니는 이제 먼지뿐인데 무엇을 더 짜내려는 걸까? 상식으로 보면 참으로 이해가 되지 않는다. 

지록위마 3

규제개혁의 파고가 제법 매섭다. 최근 국토부는 준농림지역 등 녹지·관리지역내 공장의 건폐율을 20%에서 40%로 완화, 그린벨트 내 캠핑장, 야구장 등 생활체육시설 설치 허용, 도로사선제한 폐지, 용적률 인센티브제도 활성화 확산 등을 예고했다.

기업투자를 방해하는 규제를 개혁하여 기업 활동을 활성화하겠다는 깃발 아래에서 각 부처는 경쟁적으로 규제의 대상들을 찾아내고 있다. 여기에는 아파트 내 의무공동시설 설치기준 완화와 조경 의무면적 폐지도 포함되어 있고, 케이블 카 설치도 긍정적으로 접근하고 있고, 산지관광이라는 이름으로 산악지역 내 호텔 등 관광시설이 가능해질 듯 하고, 카지노 시설도 복합리조트라는 이름으로 외국 기업에게 개방하고 있다.

그런데 규제개혁의 대상으로 언급되는 내용을 보면 이들 모두가 정말 개혁되어야 하는 나쁜 규제들인지 의문이 든다. 그렇게 나쁜 규제를 왜 지금까지는 금이야 옥이야 지켜왔는지 이해할 수도 없다.

규제의 사전적 의미는 규칙이나 규정에 의하여 일정한 한도를 정하거나 정한 한도를 넘지 못하게 막는다는 것이다. 규칙이나 규정의 근거는 말할 나위 없이 공공의 가치와 철학이고, 공공성이다. 과즉물탄개(過則勿憚改). 허물이 있으면 고치기를 꺼리지 말라는 논어 학이편의 경구이다. 

하지만 수십 년을 지켜왔던 가치와 철학이 어느 날 갑자기 나쁜 규제로 매도되는 것은 경계할 일이다. 착한 규제를 나쁜 규제라고 억지를 부림으로써 나쁜 규제가 아닌 것을 나쁜 규제로 만들어 강압으로 인정하게 하지는 말아야 한다. 이 국가의 주인은 국민임이고, 국민은 강압의 대상이 아님을 명심할 일이다. 

_ 고동완 논설주간  ·  경기대학교 관광개발학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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