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망점(眺望点)으로서의 승경지(勝景地), 문경의 봉생정(鳳笙亭)

[조경명사특강]이재근의 ‘한국의 별서’ 28회
라펜트l이재근l기사입력2014-09-19


夙聞鳳笙之爲別界 欲翫賞於這裡
每與愚伏之最高弟 常逍遙於其中
厥後亭樹翼然以起於斯 自此地氣燦然有培於昔

일찍이 봉생이 별세계란 소문을 듣고 여기에서 자연을 즐기며
매번 우복 같은 최고의 제자와 더불어 언제나 그 속에서 소요하려고 했네.
그 후 이곳에 날개를 펼친 듯한 정자가 세워지니,
이때부터 이 땅의 기운이 옛날 보다 두 배 더 빛났네.
-문화재청.2009. 전국별서정원 명승자원지정조사P159: 이복(李馥)의 봉생정중건상량문-


봉생정 측면근경(여름강충세.2010)


봉생정 측면근경(겨울강충세. 2011)

봉생정(鳳笙亭)은 경북 문경시 마성면 신현리에 있는 조선중기의 학자 서애 류성룡(西厓 柳成龍: 1542-1607)의 별서이다. 봉생정은 진남교반을 지나 가은읍으로 가는 길옆 마을입구의 산꼭대기에 위치한다. 마을을 돌아 언덕위로 올라가면, 깎아지를 듯한 층암절벽과 울창한 노송 숲이 시선을 사로잡는다. 북에서 남으로 흐르는 조령천(鳥嶺川)과 서에서 동으로 흐르는 영강(穎江)이 합류하여 힘차게 굽이치는 모습은 늠름한 장수의 기상 같다.


봉생정외원도(김영환.2014): 봉생정에서 바라보이는 고모산성,토끼비리,진남교반,조 령천과 영강,삼각봉등을 진경산수화적 기법으로 그렸다.



봉생정에서 본 영강과 삼각봉(여름강충세.2010)

좌측으로는 2세기말 축조 된 군사요충지 고모산성(姑母山城)과 천변의 절벽을 파내고 건설한 길 토끼비리(명승31호)가 보인다. 또한 그 옆으로 이어진 진남교반(鎭南橋畔)은 절벽과 하천, 온갖 꽃나무들로 절경을 이루어 경북 팔경중 제1경이라 부른다.

류성룡은 조선 중기의 학자로, 대제학, 예조판서를 거쳐 영의정을 지냈다. 임진왜란 중에는 선조임금에게 권율(權慄:1537-1599)과 이순신(李舜臣:1545-1598)을 천거하여 그들이 명장(名將)이 되는데 한 몫을 하기도 하였다. 국난극복의 대임을 잘 수행한 것으로 평가되고 학문에도 정통하여 많은 후진을 양성하였다. 저서로는 징비록(懲毖錄)과 서애집(西厓集)이 있고, 안동 병산서원(屛山書院)에 배향되었다.


봉생정 입구에서 본 봉생정전경(여름강충세.2010)

봉생정은 류성룡의 정자옛터 자리에 우복 정경세(愚伏 鄭經世: 1563-1633)가 세웠다. 우복 정경세는 서애의 제자로, 임진왜란 때 의병을 일으켜 공을 세웠고, 경상도 관찰사로 활동하였던 사람이다. 하지만 1592년 임진왜란으로 인해 소실되었고, 이것을 지역 내 여섯 문중(門中)이 합심하여 복원을 추진해 1844년 완성하였다. 그리고 다시 훼손된 것을 근래 문경시의 보조로 크게 복원했다. 진성 이상행(眞城 李相行)이 봉생정의 사적기를, 진사(進士) 이명호(李明浩)가 상량문을 지었고, 현판은 한말의 서예대가인 해사 김성근(海士 金聲根:1835-1919)이 썼다.


봉생정 정면근경(여름강충세.2010)


봉생정에서 본 외원(겨울강충세.2011)

봉생(鳳笙)의 ‘생(笙)’은 원래 관악기로 ‘피리’를 의미한다. ‘봉생(鳳笙)’은 봉황 모습을 닮은 피리라는 뜻으로, 기록에 의하면 주영왕(周靈王: 출생년도 미상 ~BC 545)의 태자인 왕자진(王子晉)이 봉생을 잘 불었는데, 도사부구(道士浮丘)와 함께 피리를 불며 이수(伊水)와 낙수(洛水)를 유람했다는 기록이 있다.(昔王子晋好吹凤笙,招延道士與浮丘同游伊洛之浦) 이 때문에 후대에 봉생은 ‘신선이 부는 피리’라는 의미를 가지게 되었다.

봉생정(鳳笙亭)이 지어진 곳은 서애 류성룡의 처가(전주이씨)가 있던 곳이다. 선생은 서울을 왕래할 때면 이곳에 도착하여 진남의 빼어난 산수에 심취하였다고 한다. 문득 지팡이를 들고 발이 가는대로 자연에서 노닐고 한가한 틈을 타서는 음풍농월(吟諷弄月)로 행로의 피로를 풀었다. 류성룡은 “별세계와 같은 자연 속에 정자를 짓고 제자와 함께 소요하니 땅의 기운이 찬란하게 빛났다.”고 하였다.

봉생정은 사방이 담으로 둘러싸여 있으며, 담장 밖으로는 오죽이 있어 풍치를 살릴 뿐 아니라 주위의 소나무 숲과도 잘 어울린다. 1990년 이원영(李源榮)이 쓴 상량문은 이곳의 풍광을 잘 대변해주고 있다.


봉생정에서 본 외원(여름강충세.2010)


봉생정에서 본 외원(가을강충세.2013)

兒郞偉抛樑東 어여차 들보를 동쪽에 들어 올리니
望裡花山聳碧空 망리화산이 푸른 허공에 솟아있네
淑氣嶺南多此地 맑은 기운의 영남에는 이런 땅이 많아
世家文獻日興隆 집안 대대로 학문이 날로 풍성해졌네.

兒郞偉抛樑西 어여차 들보를 서쪽에 들어 올리니
俗離山色綠萋萋 속리산의 푸른 산색갈이 울창하게 나타나고
仙區處處多奇絶 선경의 곳곳마다 기이한 절경이 이어지니
暇日探遊草路迷 휴일이면 탐방객이 풀밭 길을 헤매며 유람하는구나.

兒郞偉抛樑南 어여차 들보를 남쪽에 들어 올리니
龍淵水色碧如藍 용연의 물색 쪽빛처럼 푸르고
雙溪合處波瀾激 두 계곡이 하나로 합쳐 물결이 부딪히니
及到亭前卽巨潭 정자 앞에 이르러 큰 연못을 이루네.

兒郞偉抛樑北 어여차 들보를 북쪽에 들어 올리니
主屹崔嵬高斗極 주흘산이 우뚝 솟아 북두칠성처럼 높고
佳氣南開巨邑城 상서로운 기운이 남쪽으로 큰 읍성을 여니
繁榮文物長無息 쉴 겨를 없이 문물이 번영하여 나갈 것이로다.


봉생정위치도봉생정주변의 조령산,대야산,청화산으로 연결되는 백두대간과 문경새재선유동구곡용추계곡주암정 등 명소그리고 조령천과 영강금천관평천 등 수계를 그렸다.



봉생정 산수도(김영환.2014): 봉생정에 영향을 주는 어룡산(617m), 오정산(810m), 주 흘산(1,206m), 성주산(715m) 등의 산과 조령천영강 등의 물경관을 진경산수화기법으로 그렸다.


상량문은 또한 봉생정이 “주흘산과 속리산으로 둘러져있고, 용연의 쪽 빛 같은 푸른 물과 계곡이 합류하는 아름다운 곳에 위치하여 영남의 절경을 이루고 있다. 그러나 서애 선생이 인의를 펼치고 천리를 따른 덕택에 그 절경이 더욱 빛나고 영원히 보존될 수 있었다.“고 읊었다. 또 이복(李馥:2002년)은 봉생정중건상량문(鳳笙亭重建上樑文)에서 다음과 같이 썼다.


봉생정 현판

遠而小白 南洛江北 멀리 소백산, 남으로 낙동강 북쪽.
近而華山 後龍淵前 가까이로 화산, 뒤로는 용연 앞.
斯有地界 明麗可以 이 땅은 수려하기로 이름이 높아서
當古人風浴詠歸之地 옛 사람들이 자연 속으로 돌아갈 만한 곳이다.
第又林壑深邃從以爲 누정은 숲이 깊숙하게 우거져 있어서
志士隱居 藏修之墟” 뜻있는 이들이 은거하며 학문할 수 있는 곳이다.

또한 1990년 문경군수 황인성(黃仁星)의 중수기에 의하면, 봉생정이 서애 선생의 도학과 문장을 전수하고 충효 덕업을 함양한 장소였음을 알 수 있다.


봉생정 정자내부에서 본 외원(가을강충세.2013)

且夫先生之有志於結搆勝地者, 欲爲講習之所也. 自玆以往 一鄕多士
遊於斯, 樂於斯, 講磨乎先生之道學文章, 涵養乎先生之忠孝德業

“선생은 승경지에 건물을 지어 강습하는 장소를 만들려는 마음을 가지고 있었다. 이때부터 주변 마을의 많은 선비들이 이곳에 노닐고 즐기면서 선생의 도학과 문장을 전수받고 자신의 학문을 연마하였으며, 선생의 충효와 덕망을 기렸다.”

서애 선생은 처음부터 승경지에 건물을 지어 젊은이들을 가르치려는 뜻을 가지고 있었다. 선생은 봉생정을 “봉생정 언덕의 별천지와 같은 자연 경관 속에서 정자를 짓고 제자들과 소요하려는 생각에서 지어진 것”이라 했고 “절경은 경치만 중요한 것이 아니라 사람의 삶이 묻어나야 경치가 더욱 빛난다.”고도 하였다. 봉생정은 류성룡의 처가가 있던 산언덕 위에 지어졌지만 처가에서 그 유지(有志)를 받지 못해 향내 유림학자(儒林學者)들이 힘을 합해 지은 정자라는 데에도 의의가 있다. 학덕이 높은 사람의 유지에 대해서는 후손이 아니더라도 운영할 수 있었다는 것은 우리에게 시사하는 바가 크다.


봉생정 원경(겨울강충세.2011)

봉생정의 본제(本第)는 신현리에 있는 서애 선생의 처가가 그 역할을 했던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선생이 돌아간 후에는 6문중(門中)의 유림(儒林)들이 모여 공동으로 중건하고 학문과 휴식의 장소로 활용되었음으로 유림 자신의 집들이 본제의 역할을 했을 것으로 보인다. 이것은 어느 한 사람이 정자를 운영한 것이 아니고, 문중들이 공동관리하면서 경영한 협동심 발휘의 표본사례라고 할 수 있다.

봉생정은 문화재보호법상 명승의 지정기준 제2조 “저명한 경관의 전망지점 중 정자, 누 등의 조형물 또는 자연물로 이룩된 조망지로서 마을, 도시, 전통유적 등을 조망할 수 있는 저명한 장소”에 해당된다. 봉생정의 원경(遠景)은 진남 숲의 영강이 반원을 그리며 숲을 감싸 안고 흐르고 있고 이것이 숲 뒤의 삼각암봉과 어우러져 절경을 빚어낸다. 중경(中景)은 문경읍 팔령리에 위치한 신북천과 진안리 조곡천이 조령천으로 합류되는 지점이다. 이들이 조화를 이루어 빚어지는 풍경은 한 폭의 수채화요 드라마다.


봉생정에서 본 영강과 삼각봉(가을강충세. 2013)

봉생점은 조망점으로서의 경관이 우수한 사례이다. 현재까지 조망점이 우수하여 명승으로 지정된 사례가 많지 않기 때문에, 국가 명승으로 지정된다면 명승유형의 확대라는 측면에서도 명승 분야 발전에 기여할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현재 조령에서 진남교반으로 이어지는 주변에는 도로망이 많이 생겼으며, 관광시설들이 들어차서 봉생정의 경치를 많이 망가뜨렸다.

그러나 문명의 이기가 만들어낸 어쩔 수 없는 상황에 우린 넋을 놓고 방관해야만 하는 것일까? 아니다. 현재시점에서라도 명승지정을 통해 더 이상의 개발과 훼손은 막아야 한다. 세부적으로 보면 봉생정 입구의 화장실은 제대로 갖추어진 한옥으로 개조해야 하며, 절벽 위의 소나무 숲에서 바라보는 조망점 주위에는 간소한 형태의 안전시설이 필요하다. 또한 봉생정 입구 우측 담장 주변의 오죽과 살구나무, 처진형의 노송은 너무나 아름답다. 뽕나무, 고염나무등과 함께 절대적인 보존이 필요하다. 그럼으로써 우리 후손들에게 훌륭한 자연유산을 떳떳하게 물려줄 수 있어야 한다.
 
이재근 교수(전)의 '자연과 철학을 담은 정원, 한국의 별서'는  문화재청이 운영하는 헤리티지채널의 '명사칼럼'을 통해 기사전문이 연재되고 있습니다. 헤리티지채널은 국민의 문화유산 애호의식을 함양시키기 위한 고품격 콘텐츠를 서비스하는 문화유산 전문 채널입니다. 라펜트 조경뉴스는 이재근 교수의 조경명사특강을 헤리티지채널과 함께 일주일에 한번씩 게재하고 있습니다.
_ 이재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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