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선이 사는 백악산 아래 소박한 별서 백석동천(白石洞天)

[조경명사특강]이재근의 ‘한국의 별서’ 29회
라펜트l이재근l기사입력2014-09-26


백석정터와 지당의 봄


雨後自北漢沿溪       비온 뒤 북한산의 계곡물이 내려오면서

看瀑將出洗劍亭       세검정 계류 위에 장쾌한 폭포가 보인다.

見溪上又有一源       계류 상단 위에는 또 하나의 물줄기가 보이는데

高澗細瀑其上         높은 샘 골짜기에서 내리꽂는 폭포수 위에

有許氏茅亭           풀잎으로 만든 허씨의 소박한 정자가 있다.

扁曰看鼎僚不可以無詠 이를 간정료라 하였으니 이에 관해 시로 노래하지 않을 수 없구나.            


-이광려(李匡呂: 1720-1783)의 문집 이참봉집(李參奉集) 중에서-




백석동천 외원도(김영환. 2014)



백석동천 외원도(김영환. 2014)


백석동천(白石洞天)은 종로구 부암동 115,117번지와 산 2,3번지 일대,  홍제천 지류의 상류 부근에 건물지와 지당(池塘), 육각정 터가 위치하고 있는 별서 터이다. 그러나 누가 처음 별서를 조영하였는지는 분명하지 않다. 다만 박규수(朴珪壽: 1807-1876)의 시에 의하면 1820년 당시엔 터만 남아 있었으나 이곳에 있었던 정자의 이름이 백석정(白石亭)이었고 서원 김선(犀園 金鐥:1599-1613)이 지었으며 후에 대원군의 별장터가 된 석경루(石瓊樓: 종로구 신영동149번지) 위에 있었다고 한다. 또한 이곳은 “원래 허진인(許眞人)이 살았던 곳이고, 후에 추사 김정희(秋史 金正喜: 1786-1856)가 매입함으로써 명성을 드높이게 되었다”고 하였다. 박규수는 또 다른 시에서도 백석정을 언급하면서 “세상에 전하기를 허도사가 단약(丹藥)을 만들던 곳이다(白石亭,相傳爲許道士煉丹處)”라고 하였다.


김정희는 자신의 시에서 백석동천 별서에 대해 “하찮은 문자에도 정령이 배었으니(區區文字有精靈), 선인 살던 백석정을 예전에 사들였네(舊買仙人白石亭)”, “백석정은 나의 북서(北墅)를 말한다. 백석정 옛터가 거기에 있다.(謂余北墅, 有古白石亭舊址)”고 언급하였으니, 그가 이 별서의 주인이 되었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김정희는 친구 김유근에게 보낸 서한에서도 “노친께서는 엊그제 잠깐 북서로 나가셔서 며칠 동안 서늘한 바람을 쐬실 생각이었다. 일기가 이와 같으니 산루(山樓)는 도리어 너무 서늘할 염려가 있어 마음이 놓이지 않는다.”고 하였다. 이는 부친 김노경(金魯敬)도 이 별서를 사용하였음을 나타내고 있는 대목이다. 또한 김정희는 백석동천 별서를 읊은 시에서 “백석동천 별서 부근에는 입사천(卄四泉)이라는 물의 근원이 있었다. 입사천 물줄기는 서서히 흘러 석경루(石瓊樓) 앞을 지난다.”고 언급하면서 청나라의 문인 왕평(王苹)의 호가 추사(秋史)이고 또 다른 호가 입사천초당(卄四泉草堂)인데, 김정희 자신의 호가 추사이고 자신의 별서 주변에 입사천이 있음은 우연이 아니라고 이야기하기도 하였다.



백석동천 사랑채와 방지(가을: 강충세.2013)



백석정터와 지당 원경(가을: 강충세.2013.)


백석동천에 접근하는 방법에는 크게 두 가지가 있다. 하나는 종로구 신영동에서 출발하여 세검정을 지나 상류로 200m정도 가다가 2곡 불암(佛岩)바위에서 우회전하여 주택가 골목길을 따라 올라가는 방법이다. 이쪽은 북악산의 북서록(北西麓) 줄기에 해당되는 곳으로, 이 방향에서 오르면 구곡(九曲)이나 동천(洞天)을 오르는 분위기를 제대로 느낄 수 있다. 한편 창의문 쪽에서 오는 사람들은 살구나무길이나 환기 미술관 쪽으로 접근하는 방법 역시 가능한데, 신선의 경지를 찾아가는 느낌은 떨어지지만 역시 경관은 좋은 길이다.



백석동천 위치도



백석동천계곡의 가을 (강충세. 2013)


이 지역에는 “ㄱ”자형 건물터와 안채로 추정되는 건물지, 500㎡ 규모의 지당(池塘)과 연안에 위치한 육각정 터가 자리하고 있으며, 이들 건물지는 2단의 담장으로 둘러싸여있다. 연못과 건물지는 계단으로 연결되어 있으며 그 양쪽으로는 3단의 화계(花階)가 조성되어있다. 담장은 동쪽 편과 서쪽 편에서 확인되는데, 동쪽의 담장은 약 15m정도가 담의 중앙부에 남아있다. 담장의 축석방법은 1.2m폭의 담장 양쪽에 막돌로 석축을 쌓고 안쪽은 흙으로 뒷 채움 하는 방식을 취하고 있다. 건물이 있었던 서쪽 편 아랫단의 석축은 일제 시대 유입된 견치돌쌓기방법을 사용하고 있어 축성 시기는 오래되지 않은 것으로 보인다.


이외에도 건물지로부터 계곡 상류를 따라 북악쪽으로 약 150m 올라간 지점의 바위에는 백석동천(白石洞天)이라는 해서체의 각자가 남아있다. 백석(白石)은 “흰 바위”라는 뜻으로 중국의 명산인 백석산(白石山)을 비유한 것으로 볼 수 있고 북악의 또 다른 이름인 “백악산(白岳山) 아래에 있는 곳”이란 뜻으로 해석될 수도 있다. 동천(洞天)이란 ”경치가 아름다워 신선들이 사는 동네”라는 의미이니 백석동천이란 “백악산에 위치한 바위가 아름다운 동네”라는 뜻으로 해석된다.



백석동천 각자



백석정터와 지당 근경(가을: 강충세. 2013)


한편 건물지에서 서쪽방향에 위치한 맞은편 봉우리 바위에는 월암(月巖)이라는 각석이 남아있다. 건물지 맞은편으로 약 30m 이격한 산마루에 위치한다. 맞은편 산 능선 바로 밑에 반달모양의 바위가 있고, 이 바위를 직사각형의 편액모양으로 다듬어 해서체로 음각하였다. 월암은 거의 정서(正西) 방향에 위치하고 있어 매달 초승달이 처음으로 떠오르는 곳이다. 백석동천 사랑채 자리에 앉으면 이 바위 위로 초승달이 걸리는 것을 볼 수 있으며 이러한 의미에서 “달을 맞이하는 바위” 즉 “달 바위”라는 뜻이라 할 수 있다. 월암(月巖)은 18세기 백사실의 모습을 묘사한 내용을 담고 있는 유일한 문헌인 이참봉집(李參奉集)의 저자인 전주이씨 덕천군파(德泉君波) 11대손 이광려(李匡呂: 1720~1783)의 호이기도 해서 또한 흥미롭다.



월암 각자


백석동천에 관한 언급은 이광려의 문집인 이참봉집(李參奉集)에서 구체적으로 나타난다.


春臺水石自年年 춘대의 수석은 스스로 해마다 있었지만

始見溪山有別天 이제 처음으로 산 계곡에 별유천지가 있는 것을 보았다네.

探到東源高瀑處 동쪽 근원을 따라 탐승하여 높게 폭포 흐르는 곳에 이르니

山丹花發許亭前 허씨의 정자 앞에는 산단화가 만발하였네.

許家燒簏問何年 허씨 집 아궁이에 불을 지핀지 그 얼마나 되었을까?

便卽春臺作洞天 춘대 아주 가까운 곳에 선경을 이루었구나.

不爲沿流分道去 물결을 따라 흐르듯 제갈 길로 나누어 가지 않고

何緣看到此亭前 나는 어떤 인연으로 이 정자 앞에 와서 아름다운 경치를 보게 된 것일까?


이참봉집의 시는 북한산에서 하산하여 도성으로 내려가는 길에 세검정 상류 탕춘대에서 잠시 휴식을 취하던 중 동쪽 계류의 폭포소리가 들려 그 곳을 따라 올라가보니, 아름다운 폭포가 있고 그 위에 간정료(看鼎料)라고 하는 허씨 소유의 작은 정자가 있었다는 내용이다. 그러나 간정료가 띠로 이은 정자라는 것과 함께 불을 지필 수 있는 부뚜막이 갖추어져 있던 집이라는 것으로 볼 때 간정료는 단순히 정자 하나로만 조성된 것이 아니라 기거가 가능한 소규모의 주택을 함께 조성하여 별서로 활용되었을 것으로 판단된다. 하지만 그가 여기서 직접 살았는지에 대해서는 만년의 그의 주거지가 성곽 서대문(西大門)고택에 거주했다는 점 외에 직접 관련된 글이 없어 단언하기 어렵다.



백석정터와 지당의 겨울



북악산 백석동천 주변 유적도( 이재근. 2002)


1967년 서울시 시사편찬위원회에서 간행한 동명연혁고(洞名沿革考)에 의하면 백석동은 백석동천(白石洞天)이라는 글자가 새겨져 있기 때문에 붙여졌으며 부암동을 이루는 자연부락 가운데 하나라고 전하고 있다. 또한 이 기록에는 백석동천 별서가 1830년대 지어진 600여 평의 별장이었으며, 안채는 4량(四樑)의 집이었고 1917년경 집이 한쪽으로 기울어져 대대적인 보수를 하여 1967년경까지 내려오고 있다고 했다. 한편 사랑채는 ㄱ자 5량(五樑)집으로 기둥이 굵고 누마루가 높았으나 1970년경에 허물어졌다고 하였으며 연못의 정자는 한국전쟁 때 없어졌다고 전한다.



백석동천 사랑채와 방지(봄: 강충세.2012)



백석동천 산책로(겨울)


한편 등기부등본 기록에 백사실 별서유적은 경기도 고양군 은평면 부암리에 속해 있고, 1918년까지 산 2,3번지의 소유자는 이인영(李寅榮)으로 확인되었으나 그가 전주이씨 성선군파(聖善君波) 후손이라는 것만 추정될 뿐 정확한 신분은 알 수 없다.


유본예(柳本藝:18세기~19세기)의 한경지략(漢京識略) 명승조(名勝條)에는 다음과 같은 글이 있다. “세검정(洗劍亭)은 창의문 밖 탕춘대 옆에 있다. 돌 위에 정자를 설치했다. 거센 물길이 그 앞을 지나간다. 큰 비로 물이 불어날 때면 도성 사람들이 도성을 나와서 이를 바라보곤 했다. 정자 앞에는 너럭바위가 있는데 물에 달아서 반질반질했다. 여염집의 아이들이 붓을 들고 글씨 연습을 해서 너럭바위 위에는 항상 먹물 흔적이 있다. 이 거센 물길을 따라 위로 거슬러 올라가면 동령폭포(東嶺瀑布)가 있다.” 여기에서 동령(東嶺)이라는 의미는 세검정을 기준으로 동쪽을 의미하는 것이다.



동령폭포위 현통사의 가을 (강충세. 2013)



백석동천 위치도


백석정을 중심으로 한 백석동천 지역은 풍광이 빼어나면서도 큰 길에서 벗어나 있는데다가 주변을 흐르는 개울물은 비교적 수량이 많고 맑다. 또 수십 미터 아래로 흐른 뒤 힘차게 떨어져 동령폭포를 이루고 있어 별서를 조성하기에는 아주 좋은 입지조건을 지닌 곳임을 알 수 있다. 별서가 자연계류를 끼고 건축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지당(池塘)을 만들었는데, 이것은 조형자가 자신의 설계개념 설정에 자연을 자기 것으로 하기 위하여 인위적인 힘을 발휘했다는 근거이다. 백석동천 유적은 전통 별서유적의 표본적인 배치구도를 갖추고 있을 뿐만 아니라 수경시설이 확실히 남아있어 조선시대의 별서를 연구하는데 좋은 자료이다.



백석동천계곡의 가을 (강충세. 2013)



백석동천 폭포


종로구청 문화재위원을 하던 시절, 나는 학생들과 매학기 이곳을 답사했다. 언제나 유적이 범상치 않다고 생각되어 서울시 문화재로 지정할 것을 여러 번 건의 하였으나 훼손이 많이 되었다는 이유로 계속 부결이 되었다. 그러나 그 후 2006년 노무현 대통령이 탄핵 당했던 시기에 청와대 뒤쪽에 있던 이곳을 대통령이 산책하다가 문화재청에 전화를 걸어 이것이 무엇인지 알아보라는 지시를 하게 되었다고 한다. 이를 계기로 본인도 참여하게 된 현지조사를 근거로 백석동천은 국가문화재인 사적으로 지정되었다. 그리고 본인이 별서전문가라고 하여 학술조사를 한 내용을 근거로 명승으로 재분류되었다. 뒤늦게나마 백석동천이 국가문화재가 된 것은 다행스런 일이고 명칭이 후에 명승으로 변경된 것도 적절한 조치라 생각된다. 서울시내에서 역사적 사료에 의한 이정도의 숨어있는 명승이 남아있다는 것은 기적과 같은 일이다. 그러나 다음단계는 국가명승에 맞게 적절한 보수가 이루어져야 한다고 생각된다.


안채와 사랑채를 복원하는 건축의 문제는 차치하고라도 허진인(許眞人)이 이곳을 여행했을 때 모정형태의 정자로 본 것이나 1935년 동아일보에 실렸던 사진의 모습을 참고해 볼 때, 백석정은 소박한 형태의 목조 정자로 복원해야 할 것이다.


또한 추사 김정희의 시(詩)에 등장한 입사천(卄四泉)으로 추정되는 우물 샘을 복원하여 연못으로 물이 흘러들어가게 해야 한다. 일본식 축석방식의 대표적인 형태로 쌓여진 견치석쌓기는 이제  장대석과 사고석을 혼합하여 전통방식으로 바꿔주어야 한다. 아울러 이곳 지역에서 동령폭포 주변을 매입하여 폭포 복원을 제대로 이루어야 한다. 동령폭포주변이 정비가 되면 서울 도심지에 설악산의 비룡폭포를 방불케 할 정도의 승경(勝景)이 연출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일련의 계획은 이곳 주변의 이해당사자들과 반대론자들에 의해 저지되고 있다. 최소한의 백석동천 정비계획도 진행을 못하고 있는 실정이다. 하루 빨리 주민 합의가 이루어져 백석동천이 아름다운 명승으로 거듭나게 되기를 기원해본다.


이재근 前 교수의 '자연과 철학을 담은 정원, 한국의 별서'는  문화재청이 운영하는 헤리티지채널의 '명사칼럼'을 통해 기사전문이 연재되고 있습니다. 헤리티지채널은 국민의 문화유산 애호의식을 함양시키기 위한 고품격 콘텐츠를 서비스하는 문화유산 전문 채널입니다. 라펜트 조경뉴스는 이재근 교수의 조경명사특강을 헤리티지채널과 함께 일주일에 한번씩 게재하고 있습니다.



연재필자 _ 이재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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