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진법 사태, 조경 체질개선 필요하다

[기고] 조경계에 바치는 상소문
라펜트l니상가(필명)l기사입력2014-10-24

저는 조경공사업, 종합엔지니어링, 조경식재 및 시설물 공사, 조경기술사사무소 등 다양한 주체에서 두루 근무한 경력을 가진 대한민국 조경기술자입니다.


최근 건설기술진흥법과 관련한 일련의 사태를 경험하며, 평소에 느껴오던 조경분야의 문제점을 총 4가지 주체(업계, 학계, 관계, 기술자)로 나누어 짚어보고자 합니다. 물론 저 역시도 앞으로 제기될 문제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습니다. 분야 전반의 발전을 위한 의견이라 생각해 주시기 바랍니다. 

 


발등에 떨어진 불만 끄고 산 '조경업계'


조경업계의 문제점을 한마디로 정리하자면 제 발등에 떨어진 불만 끄고 살았다는 겁니다.


첫 번째가 업체의 난립을 들 수 있습니다. 1990년대 말에 70여개였던 조경공사업체가 지금은 160여개까지 늘었습니다. 면허내서 한방이면 된다고 생각을 했던 것이죠. 어떤 곳은 허위로 자본을 맞추고 기술자 임대를 자행하고 있습니다. 시장은 레드오션화 되어 저가수주의 승자없는 치킨게임을 하고 있습니다. 멀쩡한 회사도 면허 몇개 내다가 망하는 형국인 것이죠.


2000년대 중반까지, 주택경기부양으로 조경공사물량이 폭증하면서 관급공사의 수백배 시장이 생겼죠. 마이너스 실행으로도 수주만 하면 설계변경으로 다 손익보전한다는 엽기적인 경영마인드를 가지고 수백억 수주를 하는 곳도 나타났습니다. 이러니 업계가 돌아가겠습니까? 잘나가던 몇 회사들은 부도로 사라졌습니다.


원수급자의 횡포도 빼놓을 수 없습니다. 대기업이나 관급공사 수주업체는 상상할 수 없을 정도의 하도급률(식재는 60%대)로 공사비를 깎아 내립니다. 그렇게 견적을 내어버리니 할 수 없는 일이죠. 각종 최첨단 허위문서 기법이 동원돼, 최저 하도급률 82%는 의미없는 숫자로 전락합니다.

토목이나 건축회사는 일정 비율로 하도급을 주니 차라리 낫죠. 하지만 조경회사 원도급 걸리면 '망하지 않는걸 감사해야 한다'는 이야기가 나돌 정도로 사정이 나쁩니다.


회사가 이익을 창출하면, 그것은 직원복지, 조경관련 자산투자(토지,수목 등), 발전기금(조경이익단체 등)에 투자를 해야 합니다. 업계 선순환을 위한 바탕이 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그러지 않는 경우도 보아왔습니다. 개인들이 착복을 하거나 조경 아닌 다른 곳에 투자를 한 것이죠. 그 피해는 고스란히 직원들 몫으로 전가됩니다.


이번 건진법 사태와 관련돼 업계의 책임은 상대적으로 적다고 생각합니다. 산업활동을 통해 먹고 살겠다는 사람에게 누가 돌을 던지겠습니까? 그러나 법개정의 피해는 업계가 가장 큽니다. 이런 사태가 발생하기 전, 업계는 자신들의 보호막이 되어줄 이익단체를 적극적 지원했어야 합니다. 조경분야 양대산맥이라고 할 수 있는 한국조경학회와 한국조경사회를 지원하고 탄탄하게 만들었어야 했는데 말이죠. 



업계일 나몰라라, 학생들은 발동동 '조경학계'


학계에 대해서는 할말이 많습니다. 조경계 여러분야 중 가장 대우받고 혜택을 누린 분들이 대학교수님입니다. 그런 교수님들이지만, 조경분야의 어려움을 같이 느끼고 행동하시는 분이 얼마나 되시는지 궁금합니다. 단순히 '학생들만 잘 가르치면 되고 논문만 잘쓰면 된다'는 식이어선 안됩니다.


먼저 직업실무교육에 대한 관심이 부족합니다. 대학은 학생들의 소양을 기르는 동시에 직업교육까지 할 수 있도록 해야하는데 말이죠.  그런데 최근 대학에서는 조경전문 기술이 아닌 공무원시험에 혈안이 되어있다고 합니다. 현장으로 나오면 보통인부보다 못한 기사들을 쉽게 접할 수 있습니다. 설계회사도 마찬가지 입니다.


대학교수는 사회적으로 명망을 얻을 수 있는 자리입니다. 그런데 업자는 그렇지 않습니다. 항상 약자인 경우가 많고 의견을 제시할 통로가 좁습니다. 교수님들이 조경산업을 위해 소리내고 설득하고 싸워주셔야 합니다. 이번 건진법 사태에서도 목소리를 내는 교수님은 많지 않았습니다. 업계가 살아야 조경의 전망이 밝아지고 학과 지원자도 늘게 됩니다. 학생들의 취업문제까지 걸려있는 문제입니다. 낮은 곳을 살펴주시길 바랍니다.


건진법사태로 업계가 발만 동동 구르고 있습니다. 몇몇 재학생들의 탄식도 보이네요. 선배로서 마음이 아픕니다. 이럴 때 일수록 학계가 나서서 조경업계를 지켜내야 합니다. 의무입니다. 당연히 해야하는 일입니다. 



경직된 '조경단체', 낮은 자세로


우리 기술자들에게도 책임이 큽니다. 가장 큰 책임은 무관심입니다. 지금 건진법사태에 대해서 전혀 모르고 있는 기술자들이 많습니다. 바쁘다고요? 다 바쁩니다. 국토개발의 깃발아래, 아파트 건설로 호황기를 맞아, 미친듯 앞만 보고 달려왔습니다. 이제 그 후폭풍이 불어오고 있습니다. 전 라펜트와 조경신문을 봅니다.


지금 조경업계에서 이탈하는 기술자들이 상당히 많습니다. 다른 분야로 가면 고민도 사라지고 부담도 없어집니다. 이해합니다. 그러나 내가 전공하고 몸담았던 분야에서 끝까지 길을 모색해보는 것도 훌륭한 일입니다. 하나만 묻죠. 당신은 최선을 다했습니까?


조경 언론사들도 운영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고 합니다. 조경기술자의 모임인 한국조경사회에 관심을 갖고 가입하는 사람이 많지 않습니다. 조금의 관심이 이러한 조경언론과 단체에 힘을 실어줄 수 있습니다. 그것은 조경분야의 목소리를 높이는 기초체력이 됩니다.  


모든 선배기술자들께 고합니다. 이제 과거에 연연해선 안됩니다. 어린 후배들을 키워주고 길을 열어주어야 합니다. 특히 조경단체는 회원 개개인의 의견을 낮은자세로 항상 모니터링하고 반영해야 합니다. 제 주변분 다수는 조경분야 단체가 상당히 경직돼 있다고 말합니다. 반성이 필요합니다.



조경공무원, 낮은 곳으로 향해야


마지막 고민 한가지 더 던져봅니다. 공직에 계신(공사,공단직원 포함)분들에 대한 이야기 입니다. 나라 경제가 어렵고 조경또한 극심한 불경기다보니 많은 조경과 학생들의 장래희망도 공무원으로 쏠리고 있습니다. 공무원이 되면 정년이 보장되고 연금도 받습니다. 당연히 인기가 있죠.  교수님이나 실무자 조차도 후배들에게 공무원하라고 한답니다. 그런데 그 말은 참 무책임 합니다. 후배들이 공무원 시험 떨어지면 마지못해 설계하고 시공하라는 말 처럼 들리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조경가가 배출되겠습니까? 적성이나 포부는 무용지물이란 말입니까?


공무원은 왕이 아닙니다. 공무원의 가장 큰 역할은 해당 산업이 활성화되도록 길을 열어주는 것입니다. 복지부동, 위에서 지시한대로 업자 위에 군림하는 집단이 아닙니다. 제가 말단 기사일 때 해당 감독 공무원한테 이런 소리를 들었습니다. "내가 생각하는 장송은 정이품송이니까 그 정도 되는 수형 아니면 반출할테니 알아서 해"라고요.


홍익인간의 사상처럼 공무원의 역할은 널리 세상을 이롭게 하는데 있습니다. 조경업체를 가엽게 여기고 그들의 민원을 자기일처럼 생각해야 합니다. 관련법이나 제도도 항상 모니터링하고 있어야 합니다. 법은 공무원과 가장 친하지 않습니까? 이번 건진법 사태는 누가 만들었습니까? 공무원 아닙니까?


동양은 관(官)에 대한 사상이 자리잡혀 있습니다. 그러나 서양에서의 공무원은 봉사자의 성격이 강합니다. 완벽한 주민참여가 이루어지기 위해서라도 관이 앞장서야 합니다. 변해야 됩니다. 감사대비주의, 상명하복주의를 버려야 합니다. 가장 높은 분 부터 생각을 바꾸고 능력있는 후배공무원들에게 길을 열어주고 기회를 주어야 합니다.


최근에 신문에서 '예수, 길 잃은 양을 말하다'라는 글을 보았습니다. 공무원 사회에 대한 깊은 통찰과 반성, 그리고 바람이 녹아있는 감동적인 글이었습니다. 그런 분이 공직에 있는 한 대한민국 조경의 미래는 밝다고 생각했습니다. 당장 가서 차 한잔 청하고 싶었습니다. 그런데 얼마 안되어 퇴직하셨다고 합니다. 너무도 안타깝고 비통했습니다.


후배들에게 요청합니다. 공무원 지상주의를 버리고 훌륭한 조경가가 된다는 꿈에 도전하십시오. 우리 못난 선배들은 최고의 정원디자이너를 조경분야에서 배출시키지 못했습니다. 생태조경, 도시숲을 환경부와 산림청과 씨름하고 있습니다. 조지 하그리브스나, 피터워커, 제임스코너 처럼 건축가나 도시계획가 조차 함부로 무시못하는 이름있는, 시대를 이끌어가는 조경가가 되시기를 바랍니다.

 

평소 고민했던 사항을 급하게 적어내는 바람에 부족한 점이 많습니다. 저는 일개 조경기술자이지만 앞으로 눈과 귀를 열어, 조경분야 발전을 위해 끝까지 동참하겠습니다. 반대의견은 라펜트 토론방을 통해 남겨주시기 바랍니다. 감사합니다.


*이 글은 기고자의 요청에 따라 실명을 사용하지 않습니다. 

_ 니상가(필명)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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