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제가 바로서야, 조경이 살아난다"

[인터뷰] 진승범 조경사회 법제부회장
라펜트l나창호 기자l기사입력2014-11-05

법, 또 법이었다. 건진법부터 조경면적까지...
많은 전문가들은 근래 벌어진 모든 사태의 핵심은 ‘조경법’ 부재에서 찾고 있다. 그간 조경단체장들도 ‘조경 법제 확립’을 사업 우선순위로 강조해 왔다. 하지만 시행 5개월, 부산의 조경설계사무소 소장의 문제제기로 발견된 건설기술진흥법 속 건설기술용역업은 조경분야의 법제모니터링 시스템을 다시금 들추게 만들었다.


학생들은 미래에 대한 막막함에 고개를 숙였고, 다른 일각에서는 건진법 개정의 실제 파급력은 크지 않을 거라며 이들을 안심시킨다. 과연 그 말이 사실일까? 조경은 안전한 것일까?

라펜트는 진승범 한국조경사회 부회장(법제담당)과 만나 건진법 사태와 조경분야 법제 시스템에 대해 자세히 물었다. 진승범 부회장은 조경분야와 연계된 법과 제도를 검토하는 등 법제분야  최일선에서 활동하는 조경전문가이다.



법이 어렵다는 사람이 많다. 법률용어도 생소하고...
조경분야의 많은 분이 법과 제도를 까다로워하고, 불편해 하시는 거 같다. 사실 본인도 법을 따로 배우지 않았다. 그야말로 조경밖에 공부한 것이 없다. 단지 공직에 있으면서 들추어보았던 경험, 현재 설계사무소를 운영하며 공부한 것이 전부다. 하지만 흐름과 맥락만 알게 되면, 이것만큼 쉽고 분명한 것이 없다. 결국 아는 만큼 보인다는 말이 맞다.


중요한 것은 모두의 관심과 참여이다. 조경이 법률적 근거를 갖고, 제도적 지원을 받기 위해서는 조경법이 속히 만들어져야 한다. 조경인이라면 관심을 갖고 알아야 한다. 법제를 정립한다는 것은 한 두 사람의 능력과 관심만으로 되는 것이 아니다. 보다 더 많은 조경 전공자가 법과 정책에 대해 관심을 갖고 연구를 해야 한다.


우리와 인접한 건축과 토목, 그리고 구조 등의 교수님들은 법과 정책을 잘안다. 조경분야의 법과 제도를 잘 아는 분도 교수님이다. 외람되지만 우리 조경분야의 교수님들이 주도적으로 법과 제도에 대해 논의를 갖고, 연구하며, 정책을 입안해야 한다고 본다. 학회이름으로 정부부처에 직접 건의하고, 정책토론회도 개최해야 한다. 능력보다는 관심의 문제다. 조경분야 미래를 위해 정부 기관과도 싸워주셔야 한다. 그 힘이 우리 교수님들에게 있다.


법이 살아야 산업이 살아나고, 산업이 살아나면, 학계가 활성화된다. 산업적 기반이 없으면 조경학과의 전망도 밝지않다. 이제 교수님들이 앞장서서 나서주실 때이다. 법제 정립의 근거가 되는 실무 자료나 데이터에 관한 것은 산업분야에서 언제든 지원사격해 줄 수 있다.


이번 건진법 사태를 겪으며, 미흡했던 법제 모니터링이 도마 위로 올랐는데.

시행되고 몇 달이 되어서야 모니터링이 되었다는 사실에 대해 질책을 한다면, 그것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다. 개인의 자격보다는 먼저 조경을 공부한 선배된 입장에서 그런 것을 체크 할 수 있는 시스템을 만들지 못한 것은 사실이다. 그런 점에서 가슴이 아프고 미안한 마음이다.

 

그러나 우리도 손을 놓고 있었던 것은 아니다. 한쪽 채널에서는 조경법 제정을 위해 뛰고, 다른 한 쪽에서는 조경이 드러나게 불리한 개정을 위해 달렸다. 변명같지만 건진법의 개정을 미리 알 수 있는 방법이 없었다. 그것이 시행령이고, 그 속에 포함된 별표이기에 사전에 알 수 없었다. 이에 대해선 모두에게 이해를 구하는 부분이다. 법과 제도를 아는 사람이 아니라면 ‘그동안 뭘 했어요’라고 하기 쉽다. 법 제정과 개정과정을 자세히 하는 사람이라면, 조금이나마 이해해 주리라 생각한다. 숨겨놓다가, 일시에 공개된 경우였기 때문이다.

 

비록 늦었지만 이제라도 발견하고 대응해 다행이라고 생각한다. 법부터 관보까지 빠지지 않고 모니터링 할 수 있는 시스템과 조직을 구축하는 것이 필요하다. 그리고 법과 제도에 관심을 갖는 젊은 친구들이 배출되기를 바래본다.

 

조경단체의 법제 대응 시스템은 어떻게 운영되고 있는가?

현재 본인은 (사)한국조경사회 부회장(법제)과 (재)환경조경발전재단에서 외부법제대응 전문위원장직을 맡고 있다. 조경학회에는 법제위원회가 없다. 사회와 재단의 위원 중에는 능력있는 전문가가 많다. 그러나 업과 병행하다보니 이분들의 시간 할애가 쉽지 않은 것이 사실이다.

그래서 본인이 전반적인 외부 법률 대응을 해나가고 있다. 법률검토부터 단체들의 의견서 제출까지 소수의 인원에 의해 돌아가고 있는 쉽지않은 상황이다.


비록 조경학회에서도 몇몇 교수님들이 적극적으로 의견을 달아주시는 등 도움을 주고 있지만, 장기적으로 조경학회 내부에서도 법제담당 집행이사 직책은 반드시 있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무엇보다 현재 국회에 계류중인 조경진흥법 통과가 시급하다. 제정안에는 ‘조경진흥센터’의 설립근거가 명시돼 있다. 생업에 종사하며 단체일을 하는 것이 아니라 오로지 정책만을 생산할 수 있는 조직을 ‘조경진흥센터’를 통해 갖출 수 있다. 센터는 그것 하나만 충실하게 수행해도 조경분야로서는 큰 울타리가 된다. 다른 것은 몰라도 조경법제만큼은 산학을 망라해 전문인력을 배치하고 시스템을 마련해야 한다.  조경진흥법 제정에 힘을 모아야 한다.


내년부터 (사)한국조경사회 수석부회장직을 맡게되는데, 조경분야 내부적 결집, 인접분야와의 교류가 중요한 숙제로 떠오르고 있다.

내년에 조경사회 집행부가 바뀐다. 업계가 살아나야 조직이 활성화되는데, 업계가 어렵다보니 단체 운용이 쉽지 않다. 현재는 회장님 이하 모든 구성원들의 희생에 의해 돌아가는 구조로 많은 애로가 있다. 하지만 어려울 때일수록 뭉쳐야 한다. 내년부터 조경사회는 설계, 시공, 자재 이 모든 업계를 아우를 수 있는 조직으로 만들 계획이다. 설계사무소 대표이기 때문에 회장을 하고 수석부회장을 하는 것이 아니다. 설계뿐만 아니라 다른 직군의 종사자 분들도 참여시킴으로써, 공통의 이슈를 갖고 대응 할 수 있도록 단체를 꾸릴 계획이다. 특히 조경분야에서 국제적인 경쟁력을 가진 분야가 자재라고 생각한다. 모든 조경단체가 어우러질 수 있는 협업체계를 구성해 나갈 계획을 차기 회장님과 논의 중이다.


산림청 같이 우리와 관련있는 조직과도 이해하고, 타협하고 합의점을 찾도록 하겠다. 정원이나 도시숲 처럼 예산은 있지만 자체인력으로 어려움을 겪는 사업의 경우, 충분히 도움을 줄 수 있다. 국토부, 문체부, 문화재청, 산림청, 환경부 등과 상생하며 할 수 있는 일들을 찾아나가며 업역을 늘리는데 힘을 기울일 것이다. 단 우리끼리 잔치하는 소모성 행사는 지양하고자 한다. 어려울 때일수록, 단체에 대한 지속적인 관심이 업계에 힘이 된다.


한편에서는 이번 건진법 사태로 ‘법과 캠퍼스의 거리가 멀지 않더라’는 공감대가 생겼다.
이번 일이 터지고, 확산속도가 상당했다. 여기에는 라펜트의 역할이 컸다. 우리 사무실의 젊은 친구들도 신문보다 라펜트를 즐겨본다. 조경과 학생들도 라펜트를 보고 교수님들에게 질문한다는 이야기도 들었다. 교수님들이 국토부 담당사무관에게 전화를 걸어 사실을 확인하는 고리가 라펜트에서 시작된 것이다.


인터넷 언론을 통해 요즘에는 학생들이 교수보다 정보습득이 빠르다. 그러나 만약 라펜트가 없었으면, 지금까지 학생들은 건진법 사태 자체를 모르고 있었을 것이며, 교수에게 묻지도 않았을 것이다. 교수님들이 국토부 사무관을 찾아 통화하는 고리도 생기지 않았을 것이다. 몇사람만 심각하게 생각하는 상황이 벌어질 수 있었다는 말이다.
IT에 익숙한 시대, 그 세대에 걸맞는 언론의 필요성에 대해 다시금 생각했다.


일부에서는 개정된 건진법에 대해 ‘엔지니어링법도 있고, 기술사법도 있고, 조경관련 자격도 있는데...’라며 언론에 보도된 내용처럼 그럴 수 없다는 반응도 있었다. ‘설마 조경을 죽이겠나? 지켜보자’라는 안이한 생각도 있었다. 그러나 이번 건진법 사태는 이러한 비상식적인 일이 상식적인 일처럼 일어났다는 점에서 그 심각성이 컸었다. 그래서 많은 의견 전달이 사태를 진정시키는 큰 힘이 됐다. 


조경의 위기라고 한다. 학생들은 무엇을 준비해야할까?

사실은 이 문제를 가지고 학생들을 불안하고, 혼란하게 한 책임은 우리 기성세대에 있다. 무슨 수를 써서든 먼저 공부를 한 우리 선배들이 미래 세대를 위해 죽을 힘을 다해 기틀을 바로 잡아주어야 한다. 물론 눈에는 보이지 않지만 사명감을 갖고 땀흘리는 기성세대도 많다.


학생들은 ‘조경설계업이 없어진다더라’ 그런데 휩쓸리지 말길 바란다. 그렇게 될 때까지 기성세대가 내버려두지 않는다. 이런 걱정으로 현재 자기가 할 공부를 등한히 하는 우를 범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젊은 세대는 윗 세대를 믿고 스스로 능력을 기르는 수 밖에 없다.


앞으로는 설계, 재료, 시공뿐만 아니라, 정책이나 법까지 관심을 가져주길 바란다. 사실 본인도 학창시절에는 조경가면 도시공원법만 보면 됐지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이제는 그러지 말고, 폭넓게 건축, 토목, 산림, 인접분야에 대한 법과 제도를 관심을 가져주어야 한다. 상대를 알아야 협상을 하고 대응도 할 수 있기 때문이다. 모르고 무조건 잘못됐다고 말하면 안된다.

 

우리가 내부적인 역량을 기른다면, 이들 분야와 머리를 맞대고 제도나 설계에 대해 협업을 하거나, 토론을 할 때, ‘내가 생각하지 못했던 솔루션을 조경가가 제시해 주는 구나’라는 생각이 들 수 있게끔 힘을 키워야 한다. 


조경은 기술이고 과학이면서, 사람을 위한, 삶을 위한 인간의 문화를 삶을 위한 공간을 만드는 것이다. 인문학적 베이스 없이는 기계적인 공간을 만드는 것 밖에 못한다. 이제 조경가도 인문학적 소양이 필요하다.

전공책만 보지말고, 시, 철학서, 에세이 등을 통해 풍부한 소양과 감성을 쌓아놓아야 휴머니즘이 우러나온 조경설계가 나온다고 본다. 지금까지 조경가들은 그런 점을 등한히 했다. 그래서 대중과 호흡을 못했던 것이다. 그동안 건축동네에서 제일 부러웠던 점이 하나 있다. 인문학적 소양이 높은 건축가들이 많다는 것이다. 건축을 베이스로 그것을 전공하지 않은 사람이 읽어도 재미있고 관심이 가는 흥미로운 이런 책들이 건축분야에서 많이 나오고 있다.


왜 우리 조경가는 이런 사람이 없을까? 조경가가 쓴 책을 일반인이 왜 보지 않는 것일까? 항상 생각해왔다. ‘아파트 단지에도 스토리가 있습니다. 모르셨죠? 나무하나에도 이런 의미가 담겨 있습니다.’ 이렇게 알려주려면 인문학적인 소양이 있어야 한다. 그것이 대중과 가까워지는 길이다.

기술자이면서 인문학도가 되는 길은 쉽지 않다. 그러나 진정한 조경가가 되기위해 갖추어야 할 덕목이다.


언젠가 조경인 중에서 베스트셀러 작가가 나오는 날이 있기를 기대해본다.


명확히 방향을 잡아주는 사람이 없어 불안해하는 조경학도가 많았다. 소통이 필요하지 않을까?

설계업을 주로 하고 있면서, 겸임교수로 강의를 나가고 있다. 실질적으로 학생들이 기성세대와 대화하는 자리가 없는 것은 사실이다. 절실히 필요하다.


그래서 조경사회에서는 소통의 물꼬를 트기 위해 지난해 ‘나는 설계한다. 고로 나는 존재한다’ 시리즈로 설계리뷰를 진행해 보았다. 대가들의 설계 뒷이야기를 들을 수 있는 소중한 시간이었다. 학생들로서도 큰 도움이 되었으리라 생각한다. 앞으로 이런 소통의 자리가 많이 마련되어야 한다. 하지만 업계의 힘만으로는 쉽지않다. 학회에서도 학생들의 소통을 위해 편안히 참여할 수 있는 이런 자리에 대한 지원을 해 주어야 한다.


그게 어렵다면 라펜트 같은 언론사가 주도를 해도 좋다. 토론 이슈가 생기면, 학생과 실무자, 교수님이 나란히 앉아서 대담과 토론 문화를 만들 수 있는 기획 프로그램이 많았으면 좋겠다.


마지막으로 하고 싶은 말은?
지금까지도 어려운 여건 속에서 조경의 위상을 높이고 발전하시키기 위해 많은 분들이 앞서오셨다. 이제는 작은 이해관계를 떠나, 산학관이 한대 묶이는데 힘을 모아야 한다. 업과 학이 쌍두마차 체계로 각자의 장점을 살려야 한다. 너는 너고, 나는 나, 이게 아니다.

 
서로 하나가 되어 이를 중심으로 산학이 손을 잡고 공통의 이슈를 가지고, 조경을 위해서, 조경의 이름으로 하나가 되어서 나가는 업계와 학계가 되길 감히 소망 해 본다. 조경의 울타리 안에서 조경의 이름으로 한 세상을 살아가는 조경계 소시민의 바람으로 들어주었길 바란다. 조경, 잘 된다고, 잘 될거라고 믿는다.

글·사진 _ 나창호 기자  ·  라펜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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