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학으로 소요하는 정원 <정원展>

국립현대미술관 서울관 개관 1주년 기념전
라펜트l나창호 기자l기사입력2014-11-14

국립현대미술관 서울관(관장 직무대리 윤남순)은 2015년 4월 26일(일)까지 미술관 소장품을 중심으로 ‘서울관 개관 1주년 기념전 <정원>전’을 개최한다.

<정원>전은 회화, 사진, 공예, 조소, 미디어 등 다양한 분야의 작품을 4개의 주제로 엮어 관람객이 전시공간을 실제 정원처럼 느끼고 체험할 수 있도록 구성된다.

첫 번째 ‘만남’의 공간에서는 다양한 작가들의 작품을 통해 삶의 여정에서 겪게 되는 다채로운 경험과 마주하게 된다.


두 번째 ‘쉼’에서는 소나무와 폭포 등을 다룬 흑백의 작품들을 통해 번잡했던 일상을 내려놓고, 폐 깊숙이 맑은 공기를 들이마시는 것 같은 시간을 갖게 된다. 이 전시의 하이라이트인 ‘문답(問答)’에 이르면 높이 12m에 달하는 거대한 18세기 통도사 석가여래 괘불(보물 1350호)이 21세기에 제작된 미국작가 빌 비올라의 장엄한 영상작업들과 한 공간에서 서로 마주보며 전시된다. 이 공간에서 문답은 순차적인 조명에 의해 마치 한쪽이 질문을 던지고 사라지면 다른 한 쪽이 답하며 나타나는 형태로 진행된다. 관람객은 작품 간 일어나는 문답에 동참하며 이내 자기 내면의 질문과도 직면하게 된다.


전시의 마지막 공간인 ‘소요유(逍遙遊)’는 요셉보이스와 백남준 등 국내외 작가들의 1950년대부터 최근까지의 작품들을 아우른다. 어떠한 공통분모로도 수렴되기 어려운 다양한 작품 속에서 관람객은 작가들의 무한한 상상력과 감성을 자유롭게 넘나들며 노니는 것과 같은 경험을 하게 된다.

이번 전시는 도심 속 열린 문화공간을 지향하는 ‘정원’으로서의 국립현대미술관 서울관을 알리고 국내외 작가들의 과거, 현재의 작품을 함께 전시함으로써 한국현대미술의 현 위치를 객관적으로 조명할 수 있는 계기가 될 것으로 기대를 모은다.


맞이하다.
정원전은 로비 벽 윗 부분에 걸려있는 바다를 배경으로 펼쳐지는 울창한 초록빛 숲의 마중으로 시작된다.


김보희, <그 날들>, 2011~2014


만남

‘만남’의 영역에서 관람객은 삶의 여정에서 겪게 되는 다채로운, 심지어 현란하기까지 한 우리의 경험을 반영하는 작품들을 만나게 된다. 생명과 사랑이 넘치는 환희와 기쁨이 있는 반면, 우울하고 광기로 가득 찬 모습들, 그리고 전쟁과 죽음에 이르는 상처의 기억에도 직면하게 된다.


이두식, <환희>, 1988


쉼 Pause
자연을 경험함으로써 얻을 수 있는 맑은 생명력을 그림을 통해 대신 얻고자 했던 바로 이 이유로 인해 북송대 화단의 주류는 인물화에서 산수화로 바뀌게 된다.

현란한 색채와 감정들의 폭주가 끝나는 지점에서 만나게 되는 ‘쉼’의 공간은 장엄한 폭포 아래 펼쳐지는 울창한 흑백의 숲을 통해 번잡했던 호흡을 내려놓고 폐 깊숙이 맑은 공기를 들이마시는 것 같은 환기의 경험을 제공한다. 이미지와 정보가 넘쳐나는 시대, 어쩌면 우리는 이제 산수화를 즐겼던 옛 사람들처럼 그림을 통해 우리의 긴장을 내려놓고 쉬게 하는 자연의 기(氣)를 담아내고 있는 작품이 필요한 것인지도 모른다.


이재삼, <달빛>, 2013


문답  Dialogue
숲을 지나 들어가는 어두운 공간에서, 18세기의 조선의 괘불과 21세기 미국의 미디어 작가의 작품이 서로 마주보며 공존하고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더 많은 사람들이 법회에 참석할 수 있도록 마련된 야외의식에서 사용되는 ‘거는 불상’인 괘불은 전 세계 단 세 나라, 티벳, 몽고 그리고 한국만이 가지고 있는 매우 희귀한 문화유산이다. 이 공간에 등장하는 괘불은 석가모니로 알려져 있다. 꽃을 들고 있는 장면은 ‘염화시중 (拈華示衆)’ 이라는 유명한 일화를 배경으로 한다. 석가모니가 영취산에서 설법 중 하늘에서 꽃비가 내렸는데, 석가모니가 떨어진 연꽃 한 송이를 사람들에게 말없이 들어보였을 때 가섭만이 그 뜻을 알고 미소 지었다는 이야기의 한 장면을 담고 있다.


거대한 괘불과 함께 제시되는 미디어 영상은 켈트족의 전설인 ‘트리스탄과 이졸데’를 바탕으로 만든 바그너의 오페라를 위해 제작된 빌 비올라의  <트리스탄의 승천>과 <불의 여인>이다. ‘트리스탄 프로젝트’의 일환으로 만들어진 이 작품들은 고속촬영기법에 의한 시간의 지연과 웅장한 사운드를 이용한 미디어 작품들로 숭고함과 장엄함을 느낄 수 있다.


이 작품들은 한 공간에 있으나 순차적인 조명으로 인해 동시에 드러나지는 않는다. 마치 한 쪽이 질문을 던지고 사라지면, 다른 한 쪽이 답하기 위해 등장하듯이. 문답은 작품들 간에만 이루어지지 않는다. '정원'을 관람하는 사람들 또한 이 문답에 동참하며 자신의 내면의 질문과 직면하게 될 것이다. 


빌비올라, <트리스탄의 승천>, 2005


소요유(逍遙遊)  Walk
소요유는 얽매임 없이 여유로운 것을 의미하는 ‘소요하다’와 ‘유(遊)’를 한 단어로 결합한 장자에 의해 만들어진 개념이다. 영혼의 정화와 정신의 해방, 도의 체득을 함께 아우르는 이 유희는 장자미학의 중요한 요소이다.

 

'정원'의 출구를 향하는 ‘천원지방(天員地方)’의 연못의 형태를 닮은 전시의 마지막 영역은 MMCA 소장품 명품선으로 준비되었다. <우리는 혁명이다>라고 외치는 요셉보이스의 작품과 오랜 벗을 상징하는 로봇을 타고 청산으로 유유히 날아가는 서은애 작가의 유괘한 상상이 펼쳐지는 작품들이, 서사를 거부한 단색화 작품들과 한 공간에 공존하며 가운데 둥근 섬을 차지하고 있는 “예술은 사기다”라고 말했던 백남준의 작품들을 바라보고 있다.

 

_ 나창호 기자  ·  라펜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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