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속으로] 정서와 장소의 결합

『토포필리아』이푸 투안 지음
라펜트l오정학 박사l기사입력2015-06-18

정서와 장소의 결합


글_오정학 경기도시공사(ohjhak@daum.net)


 

드넓은 초원의 몽고인들은 눈이 매우 좋다. 평균 시력이 무려 3.0이라 한다. 산이나 숲이 없이 탁 트인 주변환경 덕분일 것이다. 이들에게 멀리 볼 수 있는 눈은 환경에 대한 적응의 결과이다. 그것은 가축을 지키거나 스스로의 안전유지에 큰 도움이 된다. 멀리 보고 미리 대처할 수 있기에 초원에서 혼자서도 유목 일을 할 수 있다. 반면 열대 우림의 피그미족들은 눈보다는 귀와 코에 좀 더 많이 의존한다. 나무와 수풀이 빽빽한 밀림에서는 시야 확보가 힘든 반면 보호색을 가진 맹수들은 도처에 숨어있다. 그러한 밀림에서 눈만 믿다가는 위험에 빠지기 십상이다. 피그미족들을 밀림을 떠나 개방지로 데려 가면 당황해한다고 한다. 멀리 있는 소떼를 벌레로 여길 정도로 형편없이 쇠퇴한 원거리 감별력 때문이다. 몽고인과 피그미족 이야기는 환경이 인간의 감각기능에 미치는 지대한 영향을 잘 보여준다. 


이처럼 환경은 감각기능을 통해 인간의 지각에 영향을 미친다. 차별화된 지각은 사물에 대한 태도와 가치체계를 바꾼다. 같은 사람이면서도 지역마다 공간과 경관을 조금씩 다르게 느끼는 이유이다. 어떤 특정한 공간에 대한 이해는 저마다의 개인적인 특성, 집단적인 문화, 자연환경에 따라 달라짐을 알 수 있다. 이-푸 투안(Yi-fu Tuan, 1930~ )의 <토포필리아>는 이러한 환경결정론과 문화결정론 등을 밑절미로 해서 개인적인 차원, 집단적인 차원, 환경적인 차원에서 공간인식의 지역적인 차이점과 공통점을 파헤쳤다. 그동안의 문화인류학적 성과를 바탕으로 했지만 그의 시각은 상당히 객관적⋅다원적이다. 중국에서 태어나 호주와 필리핀에서 초등교육을 영국에서 고등교육을 거친 뒤 미국에서 박사학위를 받고 정착한 데서 오는 교차문화적 시각을 뚜렷이 보여주고 있다. 


Yi-Fu Tuan (2012) ⓒ위키피디아


토포필리아(Topophilia)는 정서에 장소를 결합한 투안의 신조어로서 1974년 작이다. 삶의 터전에 대한 사람의 정과 사랑을 뜻하는데 대개 ‘장소애’로 표현된다. 그는 지리학자로서 곳곳의 민족이 살아가는 방식에 호기심을 느꼈고, 여러 인간종을 우호적으로 보고 있다. 공간⋅지리에 대한 모든 개인과 집단의 태도는 나름의 이유가 다 있다는 사고가 행간에 깔려있다. 지각, 태도, 가치, 세계관은 이 책의 핵심 용어이다. “지각은 외부 자극에 대한 감각의 반응이다. 태도는 하나의 문화적 자세로서 세상을 마주 대하며 취하는 입장이다. 태도에는 경험이 녹아있어 가치가 일정하게 조형되었음을 드러낸다. 세계관은 개념화한 경험이다.”


따라서 토포필리아는 사람들마다 다를 수 있다. 누구나 공감하는 최고의 토포필리아는 고향땅이지 않을까? 친숙하고 개인적인 시간이 누적되어 있고, 자기 신체로 감지할 수 있을 만큼의 규모이다. 친숙함은 편안함과 애정을 낳는다. 타인에겐 보잘 것 없는 공간일지라도 개인의 서사가 얽혀 있다면, 그곳은 최고의 토포필리아가 된다. 물론 전파⋅통신매체의 발달로 점차 일원화된 가치관이 지배하는 현대에 와서는, 토포필리아에 대한 편차가 많이 줄어들었을 수 있다. 현대인이 휴가를 보내고픈 전형적인 장소는 각종 매체에서 상품으로 제시되고 있는 시대이다. 


사색의 공간인 정원은 토포필리아로서 얼마만큼의 가치가 있을까? 숲이 위험지대로 인식될 때 정원은 안전한 장소였다. 동서양에서 모두 정원은 현실의 어려움이 극복된, 상징체계로 가득 찬 이상향이었다. 전근대인에게 자연은 상징으로 풍부했고 우주는 다층이었기 때문에, 정원이 상징체계로 채워짐은 당연한 귀결이었을 것이다.


오늘날의 인간은 더 이상 숲이 두렵지 않지만, 도심에서 정원은 그 대체물로 기능할 때가 많다. 삭막한 도시에서 정원은 작은 토포폴리아로서의 가능성을 보여준다. 그러나 달리 보면 정원은 자연의 시뮬라크르로 인식될 만큼 순수한 인공물이다. 과거의 정원은 구성과 형태가 실제 자연의 재현이라기보다 종교적인 상징체계에 더 많이 의존해온 경향이 있었다. “상징은 의미의 보고이다. 의미는 시간을 거치며 축적된 좀 더 깊은 경험에서 나온다.” 정원이야 말로 철저히 개인적 차이와 집단적 문화, 자연환경의 소산임을 알 수 있다. 


자연환경이던 문화환경이던 그것을 구분하고 인지하는 주체는 결국 인간이다. 그럼에도 그 이전의 실증주의 지리학은 객관화와 계량화에 몰두해 왔다. 이 푸 투안은 그에 대한 대안으로서 주관적 판단과 의미 해석이 필요하다는 인본주의적 가치관을 내세웠다. 공간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환경을 이해해야 하고 문화를 이해해야 하며 지역민의 삶을 눈 여겨 보아야 한다. 지역적 맥락에서만 공간의 실체를 파악할 수 있는데 그 속에는 항상 각자의 토포필리아가 있고, 이상향이 존재해 왔다. 그의 프레임은 다층적 해석 가능성을 배제하려는 계량주의 과학을 사뿐히 뛰어넘고, 공간에 대한 다원주의적 해석의 실마리를 던져준다. 



특이한 배치와 내용물의 조합은 대개 문화적 의미가 들어있다. 실증주의적 지리학의 시각으로는 방형의 물과 나무가 있지만, 많은 상징과 기호들이 압축되어 있다. 그것들이 공간의 가치를 풍요롭게 만들고 있다. ⓒ라펜트


_ 오정학 박사  ·  경기도시공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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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hjhak@daum.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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