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속으로] 워커블 시티

『걸어 다닐 수 있는 도시』 제프 스펙 지음
라펜트l오정학 박사l기사입력2015-07-08

워커블 시티


글_오정학 경기도시공사(ohjhak@daum.net)



22.4%. 서울의 도로율이다. 도쿄, 파리, 런던, 뉴욕 등의 글로벌 도시보다 낮지만 차이는 크지 않다. 차도는 계속 늘어나는데도 여전히 도로는 막힌다. 지금까지는 막히면 뚫었고 밀리면 넓혔다. 하지만 언젠가 한계가 올 것이다. 도시 전체를 도로로 만들고 지하도시에서 살 수는 없기 때문이다. 그럼 도로가 더 막히면 어떻게 해야 할까? 미국의 도시계획가 제프 스펙은 <걸어다닐 수 있는 도시>에서 그럴 때는 오히려 도로를 줄이라고 권한다. 차도를 줄이고 대신 보행로를 만들라는 귀띔이다. 


청계천은 그 대표 사례이다. 과거의 청계천 고가는 무척 혼잡했었다. 항상 차들로 꽉 차 있었고 소음과 매연은 말할 것도 없었다. “세계 최대의 어항”이란 비판도 있고 “하는 김에 좀 제대로 했었더라면” 하는 평가도 많지만, 여름철에 주변 온도를 5도나 낮춘 청계천 복원의 효과는 결코 작지 않다. 소음, 공해, 열섬현상 등의 도시문제가 단번에 개선되었다. 시민들과 관광객들로 주변 상가는 활기차고 인근의 부동산 가치는 급상승했다. 이제 청계천은 도시문제 해결의 새로운 전형으로 국내외에서 이야기된다. 


이전에도 도시 내 보행환경에 대한 강조와 주장은 많았다. 다만 제프 스펙은 시민의 권리라든가 단순한 보행권 차원에 그치지 않는다. 그는 시민의 부와 건강, 도시의 지속가능성에 대한 열쇠가 워커빌리티에 담겨 있다고 주장한다. 많은 시민들이 아침저녁에 운동장, 천변, 도시공원 등에서 “걷기 운동”을 한다. 따로 시간을 내어 운동하는 것도 좋겠으나 일상에서 자연스럽게 하는 “걷기”는 생활건강법이다. 이 때문에 “살기 좋은 도시”를 좌우하는 워커빌리티는 상점, 식당, 커피숍, 공원, 학교를 포함한 아홉 개의 생활편의 시설과의 직선거리로 산출되는 워크 스코어를 통해 평가된다. 일상에서 자연스럽게 걷기를 실천할 수 있는 생활여건인지에 대한 측정이다. 워커빌리티가 좋은 주거지는 인기가 높으며, 실제로 미국에서는 이 워커빌리티와 부동산 가격간의 유의한 상관관계가 보고되고 있다. 반면 블록 크기와 차량 속도는 워커빌리티에 부정적 영향을 미치는 요인으로 지적된다. 


워커빌리티 개념은 도시의 무분별한 확장을 경계한다. 사실 지금까지 확장의 결과로 생기는 교외지대는 승용차 중심의 라이프 스타일을 만들었고, 그것은 곧 도심의 차량 혼잡으로 이어졌다. 결국 거주환경과 보행환경이 모두 악화되는 결과를 초래했다. 늘어나는 출퇴근 시간은 한국의 장시간 노동과 더해져 개인의 자유 시간을 뺏어 갔다. 저녁이 없는 삶의 한 원인으로 볼 수 있다. 이러한 환경에서 도시민들은 고작 휴일을 기다려 걷기를 실천한다. 압축 근대화가 만든 한국의 도심은 화려한 경관과 깔끔한 공공디자인을 갖췄지만, 시각적인 경관에만 치중했을 뿐 보행자를 위한 작동성은 높지 않은 것이 현실이다. 


이를 위해 제프 스펙은 워커빌리티로 가는 10단계를 제시했다. 그 중 도시공간적 차원에서는 ‘용도를 섞어라’ ‘대중교통 시스템을 작동시켜라’ ‘자전거를 환대하라’ ‘공간을 만들라’ ‘나무를 심어라’ ‘친숙하면서 독특한 거리를 만들라’고 조언한다. 용도를 섞으려면 차량 중심의 기존 조닝별 계획에서 과감히 벗어나 보행자 중심으로의 재편이 필요하다. 복합용도지구가 되어야 볼거리가 생겨 보행자가 늘어나고, 보행자와 연관된 가로상업시설이 활성화되어 경제적인 성과를 거두는 데 유리하기 때문이다. 때문에 도시 중심부에 주목하여 그곳의 워커빌리티를 강조하는 그의 목소리는 양적 도시개발에 대한 비판이자 질적인 삶의 갈구로 해석된다. 


워커빌리티는 인구통계학적 변화와 사회경제적인 성장추세와도 연관된다. 많은 선진 사회에서 독신과 노인세대가 날로 늘어나고 있다. 1인 가구 증가는 미국에서 최근 60년 동안의 가장 큰 사회변화현상으로 꼽힐 정도이다. 글로벌 도시들의 1인 가구 비율은 40%선을 넘어서서 50%에 육박하고 있다. 이들에게도 승용차는 여전히 유용하다. 하지만 부부와 자녀로 구성되는 전통적인 가족세대와는 그 활용도가 다를 수밖에 없다. 2차 대전 이후 지속된 자본주의 황금기는 추락한지 오래 되었고, 날로 성장 동력이 떨어져 가는 세계경제는 저성장 시대로의 진입 징후를 보이고 있다. 일본과 미국의 새로운 20대는 과거 세대보다 운전면허증에 대해 관심이 높지 않은 것도 그러한 현상의 하나이다. 따라서 급속히 노령화 되고 있는 우리 사회도 워커빌리티에 대해 좀 더 많은 관심과 실제적 적용이 필요한 것으로 보인다. 


보행자 중심의 『여의도 걷고 싶은 거리』 ⓒLafent
_ 오정학 박사  ·  경기도시공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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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hjhak@daum.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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