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녹색시선] 조경, 지속가능의 길을 가고 있는가?

진승범 대표(이우환경디자인(주))
라펜트l진승범 대표이사l기사입력2015-10-08
조경, 지속가능의 길을 가고 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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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승범 대표(이우환경디자인(주))


오늘날 대륙과 대륙을 잇고 바다를 건너 장거리 이동을 하는데 가장 유용한 수단은 비행기이다. 비행기의 조종실에는 나침반으로 불리는 방향계를 비롯하여 고도계, 속도계, 연료계 등 일련의 눈금판과 표시기가 장착되어 있다. 이는 조종사로 하여금 경로를 이탈하지 않고 적정한 고도와 속도를 유지하여 예정된 시각에 안전하게 목적지에 도달할 수 있게 하여준다.

1942년 전 세계 빈민구호를 위하여 영국에서 결성된 국제 NGO단체인 옥스팜(Oxfam: Oxford Committee for Famine Relief)의 선임연구원인 케이트 로워스(Kate Raworth)는 「2013 지구환경보고서(STATE OF THE WORLD 2013:Is Sustainability Still Possible?)」를 통해 최근 수십 년 동안 한 나라의 경제성장에 관한 지표로서 국내총생산(GDP:Gross Domestic Product)에 주어진 과도한 관심을 비행기 조종실의 계기판에 빗대어 ‘고도계만 가지고 비행을 시도하는 것과 같았다’고 평가하였다. 이는 비행 중 우리가 올라가고 있는지 내려가고 있는지 여부만 알고, 어디로 향하고 있는지 혹은 그곳까지 도달할 수 있을 만큼 탱크에 연료가 남아 있는지에 대해서는 알지 못하는 것과 같다.

케이트 로워스는 이러한 논리에 따라 경제정책 결정자가 경제의 경로계획을 위해 어떤 것도 참고하거나 이용하지 않는다면 이는 매우 애석한 일이 될 것이라 말한다. GDP에 의존하는 경제개발 정책에서 벗어나, 형평성과 지속가능성을 향한 21세기로의 여행을 안내해줄 더 나은 계기판-생태발자국(Ecological Footprint)을 계산하는 것부터 자연자본을 계량화하는데 이르기까지 환경적 지속가능성을 평가하기 위한 측정기준의 개발 등-을 만들 시기가 바로 지금이라고 힘주어 말하고 있다.

이는 비단 지구환경이나 국가경제에만 해당되는 이야기만은 아니다. 보다 미시적으로 비추어 보면 국가의 산업과 경제를 지탱하는 각 분야 모두에 이 논리의 적용이 가능하다.

이제 우리 조경계로 눈을 돌려보자. 이 땅에 학문과 산업으로서의 ‘조경’이 날갯짓한 지 40년이 넘었다. 그동안 우리는 어떤 계기판을 보고 날아 왔는가에 대한 답은 자명하다. 우리 스스로 지속가능성을 위한 계기판을 외면한 채 내부생산량의 숫자에 일희일비하며 고도계만 바라보았음을 아프게 고백하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그 결과가 오늘 우리에게 건축, 산림 등 인접분야에서 불어오는 작은 외풍에 방향을 잃고 흔들리고, 건설경기 침체의 시기를 만나면 더 이상의 추진력을 발휘하지 못하고 동반 추락하는 ‘조경의 위기’라는 부메랑이 되어 돌아온 것이라 볼 수 있다.

그 산업을 발전시키고 지속적인 비행이 가능케 하는 방향계는 정책이며, 연료계는 법과 제도이다. 또한 지나친 과속성장을 경계하고 안정을 해치는 저성장을 부양하는 속도 조절은 끊임없는 연구와 개발을 통해서만 가능하다. 이것이 지속가능한 조경의 길이다.

지구환경에 심각한 위기가 닥치자 각 국에서 GDP성장의 의미가 퇴색하고 있다. 조경도 위기에 봉착한 지금, 더 나은 계기판을 위해 힘쓰고 노력할 때다. 이제 우린 겨우 작고 미약한 연료통 하나-조경진흥법- 얻었을 뿐이다. 40년 만에 하나 얻은 수확에 취해있을 겨를이 우리에겐 없다. 연료는 많을수록 오래 날 수 있다. 정부부처에 안정되고 올바른 조경정책의 입안과 추진을 위한 노력 또한 게을리 해선 안 될 것이다.

대한민국 조경계는 저력이 있는 집단임을 믿어 의심치 않는다. 짧은 기간 괄목상대할 성장을 이룩하였으며, 위기의 순간마다 끈질기게 일어서는 전통을 선배들로부터 물려받은 우리다. 다시 한 번 공의(公義)를 위해 하나가 되는 조경계가 보고 싶다.

추락하는 비행기에 안에서는 퍼스트 클래스에 앉은 사람과 이코노미 클래스에 앉은 사람의 운명이 다르지 않다. 고도계만 바라보고 갈 것인가, 지속가능성으로 안내해줄 더 나은 계기판을 만들어 날 것인가?

우리의 결단과 실행이 필요한 때다.
_ 진승범 대표이사  ·  이우환경디자인(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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