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많은 나비가 우리 정원에 찾아왔으면..."

[서울정원박람회] 황지해 작가
라펜트l나창호 기자l기사입력2015-10-15


12살 소녀는 그림 그리기를 좋아했다. 자기만의 꽃을 그리던 앳된 소녀는 예고없이 닥치 일본군 손에 의해 위안부로 강제로 끌려가 고초를 겪게 되었다. 그녀는 이제 아흔살 할머니가 되었다.


서울정원박람회에서 만날 수 있었던, 초청작가 정원은 위안부 할머니의 정원으로 소개되며, 스포트라이트를 받았다. 황지해 작가의 ‘모퉁이에 비추인 태양’이다.


하지만 황 작가는 이 작품이 위안부 할머니의 정원이 아니라 12살 소녀가 바라본 뜨락의 모습으로 기억해 주길 바란다고 말한다.



작품 조성 중에 만난 황지해 작가


“이제 아흔살이 넘은 위안부 할머니에게 어린시절을 돌려주고 싶었다.”는 그녀는 소쇄원 ‘애양단’을 모티브로 누구에게나 평등한 햇살이 담긴 뜨락을 표현하고자 했다고 한다. 어두웠던 시대의 상처를 치유하고 정의로운 밝은 세상을 희망하는 바람이 담겨있는 것이다.


초화는 특별히 나비가 좋아하는 접시꽃, 물망초, 쑥부쟁이와 우리나라 자생종 중심으로 심어놓았다. 12살 꿈많은 소녀시절 그린 나비처럼 세상에 모든 나비가 이곳으로 모이길 바라는 마음에서 였다.  


오래된 정원처럼 익숙하지만 특별함이 들어있는 그녀만의 디테일도 공간 곳곳에 오롯이 자리했다. 벽 한쪽에는 위안부 할머니들이 직접 그린 그림으로 아트월을 만들었다. 손 때가 묻어있는 빗과 거울, 곰방대는 투명한 플라스틱 수지를 압축해 보존시켜 오래도록 기억하도록 했다.






역사적, 사회적 무게가 실려있는 ‘위안부’를 정원 주제로 삼는다고 하자 황 작가도 처음에는 선뜻 손이 올라가지 않았다.


“예쁘고 사랑스러웠던 그 소녀들의 상처와 아픔을 어떻게 헤아릴 수 있을까요?”

 

2주동안 작업을 구상하며 감정이입을 하는 과정이 고통스러웠다고 술회하는 황지해 작가이다.


그래서 그녀는 작가로서 무엇인가를 설계하기 보다 위안부 할머니를 정원 속에 투영시켜 보여줄 수 있는 부분을 고민했다. 할머니들이 손수 그린 그림과 증언이 때론 직접적으로, 때론 은유적으로 정원을 타고 흐르는 주요 맥락이 됐다.


질곡의 시간을 표현한 20m 굴곡진 담장과 함께 주요 조망점이 되고 있는 바닥 패턴도 그 중 하나이다. 바닥패턴 한 줄은 위안부 할머니 한 분이며, 흰색 화강석은 끌려갈 당시 입고있던 흰색저고리를 나타낸다. 생각없이 걷다보면 놓치기 쉬운 장치도 있다. 폭 3cm의 바닥패턴 사이 스테인레스 위로 위안부 할머니들의 증언이 날 것 그대로 타이핑 되어있었다.


「나가 외로워서 그라는가 꽃도 그리 좋아하거든...... 꽃도 좋아하고. 내가 우짜다 이리 늙었는가 싶으다. 잊어버리면 절대 안된다 - 강순자 할머니」




이 밖에도 할머니들이 그린 그림 속 각각의 나무와 꽃도 정원으로 그대로 가져다 놓았으며 성인남자의 손으로 한뼘남짓한 자그마한 할머니 족적도 벤치 아래에 부조로 설치해 놓았다.


‘나는 꽃을 정말 좋아하는데, 꽃을 받아본 적이 없다’ 는 어느 할머니의 말씀에 가슴이 저렸다는 황 작가는 이 정원에 정말 많은 나비가 찾아왔으면 좋겠다며, 다음세대, 또 다음세대가 기억하고 헌정하는 공간이 되길 바라다고 말했다.  

글·동영상 _ 나창호 기자  ·  라펜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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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h_19@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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