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속으로] 생기가 있는 땅

『조경풍수』 정판성
라펜트l오정학 과장l기사입력2016-02-14

생기가 있는 땅


조경풍수

정판성 지음, 주택문화사 펴냄(2011)

오정학  박사 경기도시공사(ohjhak@daum.net)



퇴계 이황의 이기호발설에서 보듯이 이성과 감성은 상호 의존한다. 호모 사피엔스는 상대적으로 이성이 뛰어났지만 인간의 삶에서 감성 또한 빠뜨릴 순 없다. 동물이 뛰어난 감각기로 위험을 감지하듯이 감성은 본래부터 인류의 자기생존을 위한 심리적 신호였다. 마음이 편하면 심신이 안정되어 에너지 소비를 줄임으로써 생존에 유리하다. 반면 마음이 불편하면 불안과 긴장을 유발시켜 판단력을 흐리게 하고 신체에너지를 소모시키는데 이는 스스로에게 부정적으로 작용한다. 이처럼 감성은 생존과도 연결되는 중요한 요소이다. 그럼에도 데카르트 이후의 근대인들은 이성이야말로 세계를 파악하는 가장 훌륭한 방법으로 여기며 감성의 세계를 종종 무시해왔다. 그러나 상관관계와 인과관계가 실타래처럼 얽혀있는 인간의 삶은 이성적 논리만으로 해석하기 힘들다. 따라서 이성과 감성은 인간생활에서 상보적으로 기능한다고 볼 수 있다. 


조경이나 건축에서도 마찬가지이다. 창의적ㆍ과학적 과정을 거친 설계자의 합리적인 설계안을 감성적으로 뒤엎는 의뢰자들이 때때로 있다. 특히 풍수가의 조언이라며 전혀 풍수스럽지도 않은 얘기를 근거로 내세울 때 설계자는 종종 직업적 회의를 느끼게 된다. 그러나 입장을 바꿔보자. “현재의 계획안으로 가게 되면 가족들이 오래 살지 못한다” 거나 “집안의 재물운이 기운다”는 말을 들으면 찜찜해 지는 것은 사실이다. 이를 단순히  ‘봉건적 사고’로 여긴다면 의뢰자와 영원히 소통되지 못한다. 왜 에쿠스와 제네시스의 광고는 성능보다 ‘성공한 인생’의 이미지 덧칠에 주력할까? 그것은 감성이 이성 못지않게 의사결정과정에 관여하는 숨어있는 본능-욕망-의 표출 경로임을 보여준다. 따라서 의뢰자의 감성관리도 당연히 설계자의 과업 범위임을 알 수 있다. 


그렇지만 풍수의 쓰임새가 의뢰자의 감성관리 정도라면 아쉬운 일이다. 가령 문학에서 신화와 전설이 없다고 생각해보자. 문학적 상상력은 빈곤해지고 소재는 또 얼마나 단순해질까. 문학에서 신화와 전설의 사실성을 굳이 파헤칠 필요가 없듯이, 공간계획에서 풍수의 과학성을 지나치게 따지는 것도 부질없을지 모른다. 풍수의 역사성과 동양사상은 공간의 의미를 풍성하게 하는 매력적인 컨텐츠이다. 현대의 풍수는 엘리아데(M. Eliade)의 평가처럼 “인간과 주변 환경이 가진 생명력 사이의 철학적인 개념”으로 볼 수 있다. 공간을 현상학적으로 접근해 볼 수 있는 이 기막힌 도구의 좀 더 적극적인 활용이 필요하지 않을까?




논산에 있는 조선후기 유학자 명재 윤증(尹拯)의 고택이다. 옥녀탄금형(玉女彈琴形)의 명당으로 알려졌는데 건물 앞의 연못은 풍수지리상 길하다고 하는 서류동입(西流東入)의 명당수 개념이 적용되었다. www.chungnam.net


이러한 연유로 조경에서 풍수는 꾸준히 연구되어 왔다. 그럼에도 조경과 직결된 내용에 대한 체계적이고 종합적인 저술은 찾아보기 쉽지 않다. 동북아의 풍수문헌이 워낙 다양한데다가 서로 상충되기도 하는 것이 하나의 이유일 것이다. 그렇기에 정판성의 <조경풍수>는 그 발간의 목적성이 충분히 인정된다. <조경풍수>는 음양오행설과 구성(九星), 사신사(四神沙) 등의 풍수 기초이론으로 시작해서 읽는 이를 차분히 풍수의 세계로 이끈다. 조경이론에도 상당부분을 할애했다. 기초이론과 정원수 식재이론, 정원설계에 대해 설명한 뒤 여기에 풍수적 이론을 적용시켰다. 저자는 아마도 농학과 원예학에 대한 자신의 교육 이력을 밑절미로 삼아 널찍하게 조경 풍수의 기본원리와 그 적용법을 정리하고 싶었던 것 같다. 


반복, 점층, 조화와 대비, 대칭, 균형, 비례 등 조경배식에 적용되는 형식미학과 음양이론의 연결은 풍수의 미학적 해석 가능성을 보여준다. 다만 오행이나 사신사 등 다른 요소로 확장되지 못한 채 선언적인 수준에 그쳤다. 또한 형식미학 외의 내용미와 기능미와의 접점은 찾지 못하고 일반론에 머물러 아쉬움을 더했다. 사실 이 책은 복잡하고 어려운 풍수의 기초이론을 잘 요약 정리하여 풍수에 대한 이해를 돕고 있다. 수목 배식과 자연석 배석, 연못 조성과 관련된 풍수 이론도 꽤 소개하고 있다. 반면 소개된 조경 풍수 이론에 대한 근거 제시가 없는 것은 문제점이다. 신뢰성을 떨어뜨리고 있기 때문이다. 풍수는 문헌에 따라 이론이 조금씩 다른 경우도 꽤 있다. 시대적인 차이가 커서 요즘의 관점으로는 도저히 납득되지 않는 경우도 적지 않다. 그럴 때에 그 시공간적 맥락이 제시되면 이해가 한 층 쉬울 수 있다. 그렇지만 상세한 전거가 없이 설계보고서를 보는 듯한 단순 나열식 소개로 일관해 버렸다. 


예를 들면 “풍수적으로 연못 위로 다리를 놓을 경우는 집안 식구들의 의견이 나누어져 불화를 가져 온다(261쪽)”는 주장을 보자. 왜 가정불화를 가져오는지를 추측할 수 있는 아무런 정보도 없이 단순 반복적으로 되풀이 된다. 연못의 다리를 금기시한 전통풍수와 달리 오늘날에는 동선이나 다른 목적 때문에 다리를 놓아야 할 때도 꽤 있다. 따라서 아무리 금기라 하더라도 맹목적으로 따르기보다 해법을 찾아야 하는 부분이다. ‘기의 흐름’에 대한 언급도 마찬가지이다. 생기를 중요시하는 풍수의 특성상 ‘기’를 빠뜨릴 수는 없을 것이다. 다만 왜 기의 흐름이 S자 형태인지 이해를 돕지 않은 채, 기의 흐름을 돕기 위해 구불구불한 동선이 필요하다는 주장은 설득력이 부족하다. 


이처럼 정작 책의 주제인 ‘풍수’에 집중하지 못한 반면 여기저기 배치된 조경 이론들은 읽는 조경가를 당혹스럽게 한다. 풍수와 직결된 것도 아닌 원론적인 내용들이기 때문이다. 정원수의 분류, 정원석의 종류와 형태, 고속도로 조경과 풍수, 정원관리 등이 대표적이다. 이 내용들이 왜 필요할까? 저자는 일반인이나 조경학도, 조경설계 및 시공 기술자들을 독자로 설정하고 있다. 하지만 이러한 내용 구성 때문에 그들에게 활용도는 높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조경공간은 사색과 휴식, 문화적 행위가 많이 이루어진다. 이 활동들은 감성적인 특성이 강하다. 따라서 사람들의 선호도도 이성적인 판단 못지않게 감성적인 부분이 크게 작용할 수 있다. 이러한 측면에서 풍수는 인간의 감성충족도구로써 가치가 크다. 풍수는 기복과 같은 인간의 욕망과 연관되기에 의사결정과정에서 상당한 설득력을 가질 수 있기 때문이다. 풍수는 땅에 대한 다양한 의미부여를 통해 조경공간의 깊이를 한층 더 깊게 해 줄 수 있다. 사용하기에 따라 글로컬 시대의 킬러 컨텐츠가 될 수도 있는 조경풍수에 대한 더 많은 저작을 기대해 본다.

_ 오정학 과장  ·  경기도시공사 사업기술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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