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래포럼] 조경가의 역할을 다시 묻다

서영애 기술사사무소 이수 소장, (재)환경조경나눔연구원 운영위원
라펜트l서영애 대표l기사입력2016-05-17

(재)환경조경나눔연구원 미래포럼

‘조경인이 그리는 미래’ Series No.12


우리시대 아파트 풍경 유감

 : 더불어 사는 삶터의 진정한 회복을 위하여




서영애 기술사사무소 이수 소장

(재)환경조경나눔연구원 운영위원



현재 상태가 이어진다면 조경 분야의 미래가 밝을 것이라고 전망하기는 어렵다. 최근 설계공모 과정과 결과는 이러한 생각에 더 확신을 갖도록 만들었다. 필자가 참여한 세 번의 설계공모 과정과 결과를 토대로 조경의 미래 예측을 어둡게 하는 몇 가지 문제를 제기하고자 한다. 서울시의 2015년 ‘세종대로 역사문화공간 설계공모’와 2016년 ‘남산 예장자락 재생사업 설계공모’, 그리고 평창군청의 2015년 ‘효석문화예술촌 건축설계공모’가 그것이다.

앞의 두 설계공모는 서울의 주요 가로인 세종대로와 대표적인 랜드마크인 남산이라는 대상지의 중요성과 시간적 레이어가 중첩된 역사도시경관이라는 공통점이 있다. 두 장소를 공공공간으로 활성화시킴으로써 도시재생의 구심점이 되도록 만드는 것이 목표였다. 도시 프로젝트인 두 공모와는 달리 효석문화예술촌 건축설계공모는 2018년 평창 동계올림픽을 앞두고 증가하게 될 관광수요를 고려하여 봉평이라는 장소성과 이효석이 가진 문화적 콘텐츠를 극대화하려는 목적이었다.

공모 참가자격은 세종대로 역사문화공간의 경우 국제공모로 국내외 건축사가 포함된 5팀이 공동으로 응모할 수 있었다. 남산예장자락은 건축사 혹은 일정 자격을 갖춘 조경업체 중 한 팀을 포함한 5팀이 공동으로 응모할 수 있었으며 둘 다 대표사의 자격 제한은 없었다.

이 두 공모의 설계 내용상 공통점으로는 상부에 공원이나 광장을, 지하에 건축 프로그램을 담는 것이었다. 겉모습은 조경 프로젝트지만 하부에 들어설 건축 및 구조 공사비가 더 많은 프로젝트였다. 필자는 두 공모에 대표사로 참여해서 모두 가작에 그쳤다. 건축 공사비가 조경 공사비보다 많은 프로젝트에 조경 분야가 대표사로 참여하는 과정은 건축 파트너 구하기부터 쉽지 않았다. 남산 예장자락 공모의 경우 수상한 팀들 중에는 조경 분야와 협업하지 않고 건축 분야 단독으로 참여한 팀이 많았다. 조경 분야와 협업을 했더라도 크레디트를 명시하지 않아서 수상작 명단에 조경가의 이름은 찾을 수 없었다. 서울의 대표적인 오픈 스페이스 프로젝트에 조경이 하도급 업체로 대우받는 현실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까.


세종대로 역사문화공간 설계공모 제출작 ‘Re-public’(기술사사사무소 이수, 나성진, 마디엠지티 건축, 조경민, 한은지) / 남산예장자락 재생사업 설계공모 제출작 ‘서울테라스, 남산시대를 열다’(기술사사무소 이수, 김아연, 국형걸)

효석문화예술촌 건축 설계공모의 사례는 이보다 좀 더 비관적이다. 지침서에는 건축과 조경이 협업해야 하는 조건으로 건축사무소가 대표사가 되어야 한다고 명시하고 있었다. 17,985평방미터의 대지에 외부 공간 계획이 중요한 프로젝트라고 판단되어 건축분야와 설계공모 단계에서부터 동등하게 패널, 보고서, 모형제작 과정을 나누어 진행했다. 건축분야와 논의하여 기존 경관을 최대한 존중하기 위해 대지를 살짝 들어 올려 건축물을 감추는 이른바 대지건축 콘셉트로 설계안을 도출했다. 인위적인 조경시설을 배제하고 봉평을 상징하는 메밀밭을 중심으로 식재계획을 수립했다. 당연히 조경공사비는 축소되었다. 어느 정도 마스터플랜이 확정된 후 전체 공사비 중 건축, 토목, 구조, 전기 등에 비해 조경 공사비가 적어지자 협업하던 건축사는 공사비 요율로 조경설계비 책정을 원했다. 건축과 조경의 구분이 애매해진 대지건축의 콘셉트에서 마스터플랜 계획을 대표사인 건축 분야에서 총괄하겠다는 의도였다.

조금씩 성격이 다르긴 하나 다른 사례들도 있다. 작년에 시행된 ‘세종시 도시상징광장 설계공모’는 지상에 비해 지하 구조물 공사비가 더 많은 프로젝트로 공모단계에서 조경 분야가 대표로 진행하다가 계약 단계에서 건축으로 주체가 변경되었다고 한다. 현재 공모가 진행 중인‘노들꿈섬 공간·시설 조성 국제설계공모’의 경우도 조경업체가 대표로 팀을 꾸리는데 어려움을 겪고 있다는 이야기가 들려온다. 오픈 스페이스의 의미가 중요한 프로젝트에서 참여업체 조건에 조경 분야가 명시되지 않거나, 조경공사비의 요율이 낮다고 해서 조경이 소극적으로 참여할 수밖에 없는 현실은 분명히 문제가 있다. 우리는 그동안 크레디트 문제에 관대했고, 설계비, 법 개정 문제에도 점잖게 대응해왔다. 법이나 규제가 느슨하다면 누구나 조경 설계를 할 수 있다. 굳이 용역비를 부담하며 조경 전문가와 협업 하지 않아도 된다.

최근 업역의 구분이 모호한 분야 간 융합의 설계 경향도 이러한 결과를 낳은 원인 중 하나다. 예전과 같이 건물과 외부, 구조와 외피의 구분이 분명할 때와는 달리 어디까지 건물이고 구조체인지 불분명해진 최근의 설계 경향은 공학적 근거가 분명한 토목이나 건축에 비해 유연하게 대응할 수 있는 조경 분야의 설 자리가 점점 줄어들게 한다. 턴키 프로젝트나 경관 심의에는 조경이 아닌 디자인 전문가의 경관 업체가 경관계획을 맡아서 하는 실정이다. 조경이 단독으로 인정받는 부분은 결국 식재 설계로 축소되고 있다. 경관을 고려하여 디자인 방향을 토론하고 전체 배치도를 계획하는 과정에 대해 객관적으로 인정받을 수 있는 근거가 현재는 없다.

이러한 문제에 대해 학계에서는 업계 문제로 치부하고 소극적으로 대처해왔다. 조경 분야에서 본질적인 문제에 대해 학계와 업계를 구분하는 것은 무의미하다. 조경 분야는 순수학문이 아니라 인문학을 포함한 인접분야를 이해하고 실제로 대상지에 적용할 능력을 배양하는 응용학문이기 때문이다. 조경은 도시, 사회, 지리, 문화, 역사, 건축 등의 폭넓은 이해를 필요로 한다. 거꾸로 생각하자면 조경이 할 일을 도시학자, 사회학자, 지리학자, 문화기획자, 역사가, 건축가, 토목 기술자, 하천 전문가, 산림학자, 원예가가 해도 되는 시대가 올 지 모른다. 현실적으로 노력한 대가를 인정받지 못하고, 역할이 축소되는 분야에 누가 비전을 가지고 도전 할 것인가. 앞으로 조경 분야에 지원할 인재는 점점 줄어들 것이다. 이미 이런 현상은 시작되었다. 다음 세대가 ‘안전’하게 조경할 수 있는 토대를 만들기 위해 우리가 노력하지 않는다면 이전 세대가 열어 놓은 새로운 학문과 업역의 문을 우리 스스로 닫는 꼴이 될 것이다. 미래 세대에게 희망을 주기 위하여 새로운 변화에 대응하는 적극적 대안 마련과 실천적 노력이 필요한 시점이다.


라펜트는 (재)환경조경나눔연구원 미래포럼과 함께 조경의 미래방향을 모색하는 '조경인이 그리는 미래'를 매달 1회씩 게재하고 있습니다.  

 

미래는 현재의 선택과 행동을 통해 향방을 결정할 수 있습니다. 조경의 미래를 함께 고민하는 논의의 장으로서 조경인 모두의 관심과 함께 연재가 이어가기를 기대해봅니다.

 

*6월 필자는 신경준 대표(장원조경)입니다.


_ 서영애 대표  ·  기술사사무소 이수
다른기사 보기
lwi2013@naver.com

네티즌 공감 (0)

의견쓰기

가장많이본뉴스최근주요뉴스

  • 전체
  • 종합일반
  • 동정일정
  • 교육문화예술

인기통합정보

  • 기획연재
  • 설계공모프로젝트
  • 인터뷰취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