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녹색시선] 우리 시대 풍경 감수성과 조경가의 사명

성종상 논설위원(서울대 환경대학원 교수)
라펜트l성종상 교수l기사입력2016-06-21
우리 시대 풍경 감수성과 조경가의 사명


_성종상 교수(서울대 환경대학원)


십 여 년 전 현상설계로 나온 선유도공원(당시 선유도정수장)에 대해 조사하다가 그 곳이 섬이 아니라 봉우리였다는 사실을 알고는 무척이나 놀랐던 적이 있다. 지금은 사방이 높이 7-8 미터의 콘크리트 옹벽으로 둘러쳐진 섬이지만 예전에는 예쁜 바위산으로 이뤄진 봉우리였다는 것이다. 경치가 얼마나 아름다웠으면 이름조차 선유봉(仙遊峰), 곧 신선들이 와서 놀다 갈만한 곳으로 불렸을까? 당시 겸재 정선이 그린 선유봉도를 처음으로 찾아보고서 필자는 마음이 너무 아팠다. 그렇게나 빼어나게 아름다웠던 곳을 어찌 이런 지경으로 만들어 버릴 수가 있을까? 그곳이 고조선의 '공무도하가'의 연원지라는 역사적 의미까지 알고 나면 안타까운 마음이 더욱 배가된다. 그런 곳을 일제 강점기 때에 토목공사용 석재 생산을 위해 폭파하였다는 사실을 알고는 그 아픈 마음에 일제에 대한 분노가 걷잡을 수가 없이 더해지기도 했다. 하지만 우리 국토산하의 아름다움을 훼손한 것이 그 당시, 일제에 의해서 만이 아니라는 사실을 금세 떠올리지 않을 수가 없었다. 금수강산이라 할 만큼 아름다운 우리 국토가 훼손되기 시작한 것은 지금부터 불과 100년도 채 안 되는 근대 이후부터였고, 그 주체는 일제뿐만 아니라 우리 자신의 책임도 빼놓을 수가 없다. 그런 국토경관에의 몰상식적 훼손 행위가 지금도 여전히 벌어지고 있다는 점에서 문제는 현재진행형이다. 

지금은 자주 가지 못하지만 내 고향에는 십여 년 전에 우회도로라는 것이 생겼다. 불과 300여 미터도 되지 않는 거리에 지서, 면사무소, 중학교 등 공공시설과 약국, 농협, 주유소, 시장통 등 주요 시설들을 모두 끼고 있던 구도로가 혼잡하므로 안전하고 빠르게 지나갈 수 있는 새 길을 만든 것이다. 한데 이 우회도로가 새로 나고 나서부터 고향 사람들은 사뭇 불평이 크다. 우선 그나마 유지되어 오던 시골 도시의 활기가 많이 위축되어 버렸다. 구도로만 있을 때에 비해 지나가는 차량이나 사람 수가 대폭 줄어 버린 탓이다. 그에 더해 우회도로가 하필이면 마을 앞을 가로지르며 지남으로써 크지 않던 마을이 두 동강이 나 버렸다. 게다가 도로가 주변보다 4-5미터는 족히 더 높게 만들어진 탓에 잘라진 건너편 마을이 아예 서로 보이지도 않는다. 예전에는 건너다보이는 마을 사람들이 수화로 혹은 큰 목소리로 서로 간단한 소식이나 안부를 전하곤 했었는데 이제는 그런 소통이 아예 불가능해져 버린 것이다. 그렇게 높여진 도로로 인해 불편해진 게 또 있다. 우회도로라고해도 농경지 한가운데를 가로질러낸 농촌 도로는 단순히 통과 차량만을 위한 도로가 아니라 농로로서도 중요하게 이용되어야 마땅하다. 하지만 주위 농경지보다 높게 조성된 우회도로에서 농지로 들어가기가 적잖게 어렵다. 가뜩이나 노령화된 농촌에서 노인 농부가 경운기나 손수레를 끌고 농지로 들어가려면 여간 조심스럽고 힘든 게 아니다. 결국 우회도로는 살고 있던 이들의 공동체적 삶은 파편화시키고 경관을 단절시키며 일상 삶을 불편하게 한 채 짧은 순간 그 곳을 지나치는 통과차량만을 위한 애꿎은 공간일 뿐인 것이다. 그 곳에 오래 살아온 생명주체들의 삶은 도외시한 채 익숙한 공동체와 풍경을 삭막하게 만드는 우회도로는 전국각지에서 지금 이 순간에도 계속 새로 건설되고 있다.

‘청학동’은 <정감록>에서 묘사된 이래 고려 때 이인로, 조선의 김종직, 김일손 등 수많은 이들이 애써 찾으려 했던 곳이다. 그 중에서 지리산 삼신봉(三神峰: 1,284m)의 동쪽 기슭 해발고도 800m에 자리 잡고 있는 청학동은 예로부터 천석(泉石)이 아름답고 청학이 서식하는 승경(勝景)의 하나로 꼽혀 온 곳이다. “현대문화의 부조리한 면을 배제하고 인의예지의 인간본성을 수양하여 인간윤리를 실천한다”는 교리에 따라 유교적 전통생활방식을 고수해 오고 있는 일종의 도인촌이다. 섬진강 지류 횡천강을 따라 굽이굽이 50여 리를 돌아가야 다다르는 그곳은 전형적인 동양적 이상경의 입지적 요건을 갖춘, 비경이자 선경이다. 한데 재작년 그 곳에 살고 있는 지인을 만나려 가는 길에 너무 충격적인 광경을 목격했다. 신선이 노닐만한 비경이자 한국 최고의 자연생태지인 지리산 계곡에 무지막지한 토목행위가 아무렇지도 않게 자행되고 있었던 것이다. 강 양측으로 똑 같은 높이와 경사를 유지한 채 석축제방을 새로 쌓으면서 강바닥을 넓게 파헤치고 있었다. 최 상류부로서 물살을 휘몰아치게 했던 강바닥 무수한 바위들은 어디로 갔는지 일부 남겨진 바위와 자갈들이 휑하게 나뒹굴고 있었다. 제방 선형이 인접 농지나 지형을 크게 변형하지 않고 곡선을 유지하고 있는 것이 그나마 다행이긴 했지만 넓은 암반과 너른 소, 그리고 빨리 흐르는 여울이 반복되는 건강한 자연하천의 면모는 아예 상상할 수조차 없게 바꿔놓아 버렸다. 천혜의 강이 지니고 있는 아름다운 풍경이 무자비하게 훼손된 것이다. 그것도 버젓이 행정당국이 발주한 공공사업에 의해... 


지리산 청학동 초입부 하천의 토목공사. 2014년 3월. 한국 최고의 자연생태지 지리산 계곡 하천에도 무지막지한 토목행위가 아무렇지도 않게 자행되었다. 

정도는 다를지 모르나 유사한 일들이 전국 각지에서 자행되고 있다. 수년 전 잠시 들른 설악산 오색약수터 계곡에서도 눈에 거슬리는 풍경을 접한 적이 있다. 약수터 바로 인근에 지나치게 요란한 색깔과 조형요소로 장식한 다리가 새로 들어서 있었던 것이다. 콘크리트 구조의 다리 위에 아치형의 철근을 걸고는 그 사이에 붉고 파란 색칠의 기다란 철판을 여럿 세워 결착시킨 형태였다. 조형미감이란 것이야 주관적이기 마련인 것이니 그 다리와 조형들을 일방적으로 비난하는 것이 적절하지 않을 수도 있겠다. 하지만 빼어난 자연경승지에다 그렇게 과도한 조형요소를 인위적으로 보란 듯이 설치하는 이들의 의도를 정말로 이해하기 어렵다. 콘크리트 구조의 다리 위에 세워진 철판들이 구조와는 아무 상관이 없다는 점은 토목구조 지식이 없는 이라도 쉽게 알 수가 있다. 다리 본체 위에 놓이듯 걸린 아치형 철판도 구조상 크게 중요한 것으로 보이지 않는다고 보면 결국 그것들은 사실상 장식요소로 봐야할 듯하다. 그렇게 한국 최고 수려한 자연계곡 설악산에다 저런 식의 무지막지한 조형물을 설치해도 우리는 아무렇지도 않게 받아들이고 있다. 우리네 감수성이 그러하니 계곡 양안의 획일화된 제방은 아예 문제조차 되지 않는다. 전국 어디에도 없는 오색약수만의 독특한 물맛만큼은 아니더라도 주위에 있는 아름다운 자연 물상들의 특색을 세심하게 읽어내고 그것들에 거스르지 않도록 다리만 살짝 집어넣을 수는 없었던 것일까? 산수간 경승지를 찾아내어 사방이 열린 조마한 정자 하나만 살짝 올려놓고서 그 주위 경관 전체를 함께 즐겼던 우리 고유의 미감과 태도는 도대체 어디로 간 것일까?


설악산 오색약수터 계곡과 다리. 네이버 로드뷰 캡춰. 한국 최고 수려한 자연계곡 설악산에다 저런 식의 무지막지한 조형물을 설치해도 우리는 아무렇지도 않게 받아들이고 있다. 경관에의 무딘 감수성의 산물인 이 같은 조형물은 전국 어디에서나 쉽게 발견된다.

3호선 지하철을 타고 한강을 건너 옥수역에 다다르다 보면 전방 우측으로 달맞이봉이라는 나지막한 봉우리가 있다. 바로 옆의 고층 아파트에 가려 얼핏 잘 안보일 수도 있으나 강 건너 압구정동쪽에서 보면 봉긋한 봉우리의 온전한 모습을 제대로 볼 수가 있다. 해발 80여 미터로 높지는 않으나 한강에 바로 붙어 있어 있는 산 중에 몇 안 되는 남아있는 봉우리여서 인접한 응봉산과 함께 한강을 조망하기에 최적의 명소로 알려져 있기도 하다. 한데 겨울철 그 봉우리를 유심히 보노라면 곳곳에 직선으로 된 단들을 볼 수가 있다. 이십여 년 전에 돌로 낮은 단을 지어서 흙을 쌓고서 나무를 심었던 흔적이다. 봉우리 전체가 하나의 큰 바위로 이뤄진 곳인데 녹화를 하기 위해 사방공학을 하고 개나리를 심었던 것이다. 원래 달맞이봉은 영겁의 세월 동안 한강물에 부딪히고 침식되면서 살아남은 바위산이었다. 말하자면 한강물이 바위봉우리와 만나 휘감아지면서 굽이, 즉 곡을 이루는 현장인 셈이다. 그러고 보면 굽이치는 강물과 우뚝 솟은 바위산이 어우러져 가히 절경을 이루었음직한 명소였던 곳이다. 물과 어우러진 바위는 한국국토경관에서 가장 핵심이 되는, 절경의 기본 도식이지 않은가? 한데도 우리는 그런 바위산이 보기 싫다고 딱딱한 사방공학으로 단을 짓고는 개나리나무를 심었던 것이다. 한국 국토경관미학에 있어서 고유한 특질이라 할 수 있는 물굽이와 바위산이 이루는 절경을 잘 드러내어 주기는커녕 딱딱한 단과 개나리로 뒤덮어버린 것이다. 빼어난 바위봉우리를 온통 개나리로 뒤덮어 버린 몰상식적 행위는 인접한 응봉산에도 그대로 적용되어 있다. 필자는 이를 자신의 개성 있는 얼굴을 싸구려 화장으로 덮어 버린 격이라고 본다. 우리 사회의 맹목적 녹색제일주의를 너머 우리 땅에 대한 진정한 가치 몰인식이라는 슬픈 자화상의 현장이 아닐 수가 없다. 조금만 자세히 들여다보면 이와 유사한 슬픈 자화상의 단편들은 곳곳에 산재해 있다. 아름다운 절경이 너무 많고 좋아서 겸재가 일부로 배로 주유하며 그림으로 그려 내었던 한강변의 명소들을 우리는 지금 거의 존재조차 알 수가 없다는 것은 순전히 근세 이후 우리의 무딘 경관미감 내지 풍경에의 몰가치적 감수성 탓이다. 
 
풍경은 단순한 물리적 환경만은 아니다. 그것은 동시대의 자연관은 물론 심미적 감각과 문화적 취향의 산물이자 역으로 그 토양이기도 하다. 우리 풍경이 삭막하다는 것은 우리의 심미 감각과 문화적 감수성이 그만큼 무디고 삭막해져 있음을 반증한다. 사실 우리는 짧은 현대화 과정을 너무나 힘들게 지나오느라 풍경에는 제대로 신경을 쓰지 못한 채 살아왔다. 그 산물로서 지금 우리 주변의 훼손된 풍경은 이제 역으로 우리네 삶을 더 삭막하고 황량하게 만드는 요인으로 작용하기도 한다. 우리네 삶을 보다 풍요롭고 살만하게 하기 위해서는 이제부터라도 우리 풍경을 세심하게 치유하고 가꿀 필요가 있다. 그것이 문화적 다양성과 다원주의 시대에 장소성과 지역성을 되살려내며 우리 모두를 건강하고 행복하게 하는 지름길일 것이다. 토건시대를 지난 이 시대에 조경가들의 남다른 역할과 사명을 바로 이 지점에서 찾아야 할 것이라고 믿는다. 깊이 있는 생태적 지식과 짙은 미학적 감수성 갖춘 조경가들의 분발이 기대된다.


동호대교에서 본 달맞이봉과 응봉산. 네이버 로드뷰 캡춰. 고층 아파트군과 고가도로로 둘러싸이고 막혀 있지만 자세히 보면 영겁의 세월동안 한강물과 부딪히며 살아남은 바위봉우리임을 알 수가 있다. 물굽이와 어울린 바위봉우리로서 우리 고유의 국토경관적 특질을 잘 간직한 절경이라는 점에서 그냥 개나리로 뒤덮어 두기에는 너무 아까운 현장이다.
글·사진 _ 성종상 교수  ·  서울대학교 환경대학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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