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마다의 풍경″ ; 감흥의 시간, 경관과 대화하기 - 2

경공환장: 다시 보는 일상, 느껴 보는 도시
라펜트l안명준 조경비평가l기사입력2016-07-29

"경공환장: 다시 보는 일상, 느껴 보는 도시" 

 Part 2: 04 풍경(scenery) Ⅱ



“저마다의 풍경” ; 감흥의 시간, 경관과 대화하기

 



_안명준 오피니언리더

조경시공연구소 느티 대표│조경비평가




풍경Ⅱ:  “저마다의 풍경”; 감흥의 시간, 경관과 대화하기...

풍경이라는 말은 생각보다 흔하게 쓰인다. 그것은 물리적인 경우도 그렇고 사유나 문화와 같이 개념적인 경우도 그렇다. 다시 말해 실체가 있는 풍경도, 그렇지 않은 풍경도 우리는 흔히 사용한다는 것이다. 생각해보면 풍경이란 말(개념)은 그 위치나 내용을 고정하기가 어려운데, 그러면서도 우리 사이에서 쉽게 통용되니 뭔가 특별한 지위를 가진 것에는 틀림없다. 여기서는 그 중에서 ‘나’로부터 시작되는 풍경에 대해 한 번 짚어보자.



경계와 대화하기; 발견하는 풍경과 설정하는 풍경

현대 사회를 살아가는 우리는 자연의 위력을 쉽게 체감하지 못하고 인공의 환경 속에서 하루를 보내는 경우가 많다. 도시로 경계 지어진 행동의 반경이 일상의 반경이기도 한 것은 대부분 우리들의 모습이기도 하다. 그렇게 시간을 보내다 삶이 무르익으면 우리는 대부분 전원을 찾아 조금은 덜 인공적일 것 같은 환경으로 삶의 자리를 옮기곤 한다.


그러나 요즈음에는 이런 세태에도 변화가 있어 기존의 밀집된 도시에서도 경계 없이 자연과 함께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고자 하는 경우가 많아지고 있다. 자연과 대화할 수 있는 환경이 인공의 경계 속에서 하나둘 힘을 얻고 있는 것이다. 이것은 시대의 변화이고 문화의 전환이라고 하지 않을 수 없다. 


이런 변화는 뭔가 다른 경지를 우리에게 성찰하도록 요청한다. 이 점은 매우 중요한데, 그것은 공동사회와 이익사회의 중간쯤에 놓인 우리의 생활문화가 새로운 첨단을 시험하는 첫 관문에 들어선 것으로 이해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에 대해서는 다른 기회에 다시 설명하도록 하고, 핵심은 동서양 자연관의 차이에서 이러한 성찰의 가치와 지평이 시작된다는 점을 잊지 않는 것이다.


동양 자연관의 핵심이랄 수 있는 점은 삶의 환경을 자연과 인공이라는 두 주인공만으로 압축하지 않았다는 데 있다. 자연과 인공으로 나누는 이분법적 단순화(dualism)가 아니라 전통적으로 자연과 사회라는 보다 포괄적인 경계설정이 그 본질로 함축되어 있는 것이다. 그리고 이것은 하나의 절대법칙으로 자리하지 않고 생활문화 전반으로 그 실체를 분명하게 못 박지 않은 채 저변을 이루게 된다. 철학자의 말대로 ‘기우뚱한 균형’은 그렇게 삶의 기초로서 자리하게 된다. 



담 너머 유선원 풍경


그렇게 우리로부터 담(생활환경) 너머, 자연(경관) 너머는 풍경이 존재하는데, 그것은 다시 크게 두 가지 범주로 감흥의 소통을 담지하게 한다. 먼저, 발견하는 풍경은 내면적이고 참여미학적이다. 그것은 적극적인 참여(engagement)를 부르고 소통을 이끄는 방식이다. 다음, 설정하는 풍경은 외향적이다. 그것은 구축적 합리와 감성적 통리가 경관으로부터 피어나게 한다. 내면에 녹아있는 감성을 먼저 자극하는 풍경이 되게 하는 방식이다. 이 두 가지는 자연과 대화하는 우리(인간, 사회)를 이끌며 물리적 실체가 아닌 감성적 실재로서 ‘우리시대 저마다의 풍경’을 시작되게 한다.



시퀀스적 풍경과 풍경적 시퀀스

풍경이란 결국 우리 주변의 ‘경계’들과 대화하는 한 방식이자 매체(chanel)라고 할 수 있다. 대화는 동적이어서 흐름(flow & follow)을 기본으로 한다. 우리가 흔히 잊곤 하지만 풍경은 그렇게 고정된 풍경(그림)이 아니라 흐름을 내포한 담지체라고 할 수 있다. 흐름으로 보는 풍경은 새로운 생각과 이론을 불러오는데 연결성(sequence)으로 이해하는 것은 그 중요한 한 가지 방식이다. 



장소이자 풍경이었던 전통 삶터


우리는 어딜 가든 주변(파노라믹 경관)을 먼저 살핀다. 상황(situation)을 파악하는 것은 자연에서든 사람 사이(사회)에서든 중요하다. 이것은 풍경이 결국 ‘전체에 대한 통찰’에서 시작된다는 것을 말해주며 풍경을 보기 전에 전체(경관)를 먼저 살펴야(지나야) 한다는 점을 중요하게 지적해 준다. 여기서 전체는 부분들의 합 이상을 이루며, 풍경이 설정되는 것도 이와 관련하여 이해할 수 있음을 잊지 말아야 하며, 앞서 살핀 두 가지 풍경의 범주가 그런 전반적인 관계성과 연관됨을 이해할 수 있어야 한다. 다음의 네 가지는 결론적으로 정원을 통해 풍경을 진화시키고 있는 우리시대 풍경(개념)의 단면을 보여준다.


-“원로”: 담지적 풍경, 움직이는 주인공. 먼저 가있는 감성(viewpoint)

원로는 흔히 사용되는 용어는 아니지만 우리시대에 집중해서 살펴야 할 경관 및 풍경과 관련된 개념어이자 실행개념이다. 원로는 그 자체로 담지적 풍경들의 연속이며, 그러한 연속성의 구성(originality)은 감성을 옮겨가게 한다. 정원은(공원 포함) 이러한 원로들의 마당(field)이며 움직이는 이용자들에게 저마다의 연속성을 스스로 체험하게 한다. 풍경의 시퀀스는 그렇게 형성되며, 이것은 장소를 형성하는 기본이 된다.


-“차경”: 들고나는 관점. 우리시대 정원과 공원의 생산성(productivity)

담 너머 풍경은 주인공이 없이는 안으로 향할 수 없다. 차경이란 결국 주인공을 먼저 상정하는 방식인 것이다. 흔히 우리는 차경하면 일방적 끌어들임을 생각하기 쉽지만 소통과 교류가 없이는 이를 얘기하기 어렵다. 풍경은 그렇게 발생하는 결과중의 하나이자 지향이라고 할 수 있다. 관점을 고정하지 않는다는 점에서 차경은 안팎을 동시에 고려하는 방식이다. 건물과 정원(공원)을 들고나게 하며 우리시대 차경은 풍경(과 관점)을 그렇게 들고나게 한다. 차경은 풍경의 역동성을 그렇게 자극하는 방식이다.


-“의경”: 미리 담은 속마음. 생성적 자연과 생성적 자연관

자연은 아무것도 말해주지 않는다. 경관도 그렇다. 그러나 풍경이 되면서는 달라진다. 말(이야기)하기도 하고 말하게도 한다. 어떤 면에서는 말이 되지 않으면 풍경이 되지 않는다. 그리고 의경은 풍경이 가능할 때에야 나타난다. 의경은 그대로 생성적(Becoming) 방식이어서 말없는 자연을 말하게 하는 핵심이 된다. 풍경의 다음에서야 이루어지는 이것은 그런데 먼저 담긴 것, 미리 담은 것을 함의하기도 한다. 


-“생활”: 멀지 않은 풍경, 일상에서 즐기는 생활기반(life-structure)

다시 말하지만 우리 도시는 우리 인류에게 처음인 환경이다. 처음인 생활이다. 그리고 처음인 풍경이 되고 있다. 본능적 가꾸기는 이런 환경에서 빛을 발하며 우리시대 삶터 변화와 진화의 원동력이 되고 있다. 살펴보면 자연을 즐기려는 여러 욕구의 방향들이 이미 여기저기에서 제각각인데, 그것들은 의미 없고 생각 없는 환경(자연)에 의지를 담아 즐기려는 새로운 생활양식으로까지 발전하고 있다. 우리시대 경관이 인프라라면 풍경은 생활인프라로 성장하고 있다. 공원과 정원에 더한 생활기반으로서의 풍경은 새로운 주인공으로 주목받고 있다.


풍경은 그렇게 연속되거나 연속을 이끌거나, 불연속을 뛰어넘거나 하면서 존재한다. 경관이 풍경으로 전환되는 과정에는 이러한 힘이 작용하지만 경관은 그것과 관계없다. 우리는 이제 우리 도시의 풍경이 그렇게 만들어져 왔음을 이해해야 한다. 또한 우리 도시의 경관이 그러한 과정 없이 다루어져 왔음도. 그렇게 생각한다면 우리는 이런 자문도 가능하다. 우리시대의 경관에는 풍경이 있는가? 우리시대의 경관에는 시퀀스적 풍경이 있는가, 풍경적 시퀀스가 있는가?



생각의 아름다움화, 풍경의 예술화

우리는 흔히 잊지만 아름다움(개념)은 달라지고 변화한다. 시절에 따라, 시대에 따라 변화하는 아름다움이 이 지구를 가만두지 않기도 했다. 풍경은 그 위치가 내면이면서도 그 지향이 자연이이어서 달라지는 아름다움에 따라 우리의 내면을 움직이게도 했다. 이것이 우리가 말하는 풍경 안팎의 문화적 본질이다. 그리고 흔히 잊는 또 하나는 그것의 바탕에 감각을 지원하는 생각(이해)이 흐른다는 점이다.


생각이 담긴 아름다움은 그런 점에서 예술을 지향하고 작품이 되고자 한다. 풍경이 하나의 작품처럼 소통을 기다리며 그림에 담길 수 있었던 것도 이 때문이다. 풍경화는 그렇게 그 시절의 아름다움(생각)과 함께 한 시대를 풍미했던 것이다.



우리 삶터 진화의 현재


그렇다면 우리시대, 우리에게 풍경에는 어떤 아름다움과 어떤 생각이 담겨 있는 것일까? 아니 먼저 그것을 담을 경관을 제대로 이해하고는 있는가? 풍경으로 역동칠 우리 삶터의 경관은 어떤 이론과 어떤 준비를 하고 있는가? 우리시대 경관이란 무엇인가? 풍경을 볼수록 생각이 많아진다. 그리고 많아져야 할 때이다.

글·사진 _ 안명준 조경비평가  ·  
다른기사 보기
inplusgan@gmail.com

네티즌 공감 (0)

의견쓰기

가장많이본뉴스최근주요뉴스

  • 전체
  • 종합일반
  • 동정일정
  • 교육문화예술

인기통합정보

  • 기획연재
  • 설계공모프로젝트
  • 인터뷰취재

커뮤니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