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의 생활문화와 어울리는 정원찾기, 해답은 조경가 손에”

[인터뷰] 안명준 조경시공연구소 느티 소장
라펜트l전지은 기자l기사입력2016-08-03
지난 6월, 순천에 ‘신선이 노니는 정원’이라는 뜻의 ‘유선원(遊仙園)’이 문을 열었다. 한국적 생활문화공간 발굴 및 확산 시범공간 조성사업의 일환으로 문화체육관광부가 처음 시행한 한국 전통정원이다.

정부주도 하에 정원이 들어서고, 지자체에서는 시민정원사 양성 교육을 제공하고 있다. 사람들의 정원에 대한 갈망이 점점 가시화되고 있다. 

조경계에서는 ‘한국정원’의 정체성에 대한 고민이 이어지고 있다. 안명준 조경시공연구소 느티 소장 또한 고민의 연장선상에 있었다. 그는 “오랜 고민 끝에 찾은 나름의 해답이 ‘유선원’을 통해 드러났다”고 한다. 그에게서 유선원의 비하인드 스토리와 한국정원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어보았다.

안명준 조경시공연구소 느티 소장

유선원의 실무를 맡아 진행하셨습니다. 새로운 현대적 전통정원이 탄생했는데, 소감이 어떤지?

준비하는 과정부터 기본구상, 설계, 일부 시공, 감독, 완공 후 행사까지 일련의 과정들을 전부 직접 해볼 수 있었던 프로젝트였다. 500평(1600㎡) 정도 공간 전체를 처음부터 끝까지 해본 것은 오랜만이다. 유선원 프로젝트를 진행해주시고 기회를 주신 모든 분들에게 감사드린다.

개인적으로도 의미가 있는 것은 그동안 고민해오던 것의 해답을 얻고, 이를 유선원에 실현하고자 했기 때문이다. 우리의 일상적인 정원문화는 일제강점기 이후 완전히 단절됐다. 물론 정원문화가 사라진 것은 아니지만, 일상적인 측면에서의 정원문화는 단절됐다고 볼 수 있다. 이것을 현재에 맞게 되살리기 위한 방안에 대해 고민하고 있었다.

일각에서는 ‘전통’이라고 하면 궁궐정원만을 떠올리며 궁궐정원의 요소들만 갖다놓는다는 지적이 있다. 전통요소들도 전통이며, 일반인들이 전통으로 인식하는 것들도 그러한 요소들이기 때문에 나쁘진 않다고 본다. 그러나 현대에 전통성을 불러온다는 것이 어떤 의미를 가지는가에 대한 고민은 필요하다. 전통 논의에서 핵심이 되어야 하는 것은 ‘일상적인 정원문화를 이러한 현대에 맞게 어떻게 부활시킬 수 있을 것인가’라는 것이다. 형태적인 요소만 좇아가기보다는 내용적인 측면의 고민이 선행되어야 한다.

우리가 정원을 적용하려는 현대의 ‘일상 공간’이라는 것은 사실 우리 문명사상 처음 있는 공간이다. 서울이라는 농공상이 뒤섞인 천만도시를 우리가 언제 경험해보았겠는가. 따라서 전통이든 정원문화든 처음 겪은 도시양태에 새로 자리 잡게 하는 과정 자체도 처음 경험하는 작업인 것이다.

현대도시의 가장 큰 문제점은 공간과 사람의 활동이 완전히 분리되어 있다는 점이다. 이러한 상황에서 정원문화를 어떻게 살려야 할 것이냐에 대한 고민이 있었다. 또 조경이나 정원이 대중예술을 꿈꾼다고 한다면, 정원을 대중예술로서 보여줄 수 있는 방향성에 대한 고민도 있었다.

지금 시민들이 정원문화에 열광하는 이유의 중심에는 화려한 꽃과 특이한 형태라는 점이 우선 눈에 띤다. 유럽, 특히 영국정원 양식을 빗댄 정원문화가 일반시민들을 중심으로 해서 퍼지는 현상이 나쁜 것은 아니다. 그러나 그런 정원양식을 우리네 정원문화로 자리 잡게 해야 하는가에 대한 물음은 개인적으로는 오래전부터 가지고 있었다. 유럽식의 정원문화가 자리 잡는 것이 대세라면 이를 지원하는 것이 맞는 것인가, 혹은 아직 발견이 안 됐거나 알려지지 않은 우리만의 특성을 발굴하고 소개해야 하는 것 아닌가 하는 나름의 갈림길이었다.

최근에 이에 대한 결론을 얻었다. 지금의 정원문화가 의미 있긴 하지만 우리 것은 아닌 것 같다는 것과 잊힌 옛것, 우리 것은 분명히 있다는 결론이다. 현대도시는 예전과 완전히 다른 분위기의 도시로 변모했지만 옛것을 발굴해 현대에 맞게 제시하는 것은 우리시대 조경가로서 내 역할 중 하나라는 것이었다. 이 부분은 다른 기회에 소개하기로 하고.

유선원도 그 일환으로 진행이 됐다. 기본설계 이후 유선원 실시설계 단계에서 이 점을 감안하여 보완했다. 공간과 생활양식이 완전히 분리되어 있는 이런 양태 속에서 정원문화가 자리 잡을 수 있도록, ‘전통정원’이 아닌 ‘일상전통’으로 풀어내기 위해 노력했다. 이것이 개인적으로 유선원이 의미 있는 이유다.


유선원에 대한 간략한 스케치 부탁드립니다.

우리시대에 정원문화가 가시화되고 있는데, 유선원을 통해 정원문화의 방향을 어디로 향해야 하느냐를 보여주고 싶었다. 마침 ‘전통’이라는 요소가 해결과제로 주어졌기 때문에 거기에 맞춰서 풀어보려고 했다.

유선원에 가보면 화려한 현대 정원 요소가 없기 때문에 실망할지도 모른다. 그러나 여기엔 이유가 있다.

유선원은 소공원부지이기에 공원에서 필요로 하는 기본 역할을 반영해야 했다. 공원이면서 정원이 되도록 ‘수평적 풍경’을 기본 틀로 해서 전체를 연출하자는 것에 초점을 모았다. 마침 주출입과 부출입 사이 700㎜ 정도의 단차와 새로 놓은 통행로가 기회가 됐다.

실제로 보면 500평정도 되는 면적이 어디에서든 한 눈에 다 들어온다. 담 너머 아파트까지 수평선이 조화를 이루며 자연스럽게 차경을 이룬다. 이걸 위해 원래 있던 대나무도 잘라내고 시야를 다 열었다. ‘자연감시’가 이루어지면서 ‘자동차경’이 된다고나 할까, 수평적 풍경이 압권인 곳이 되었다. 

숨을 곳이 없는 공원이지만 적당히 헛담으로 감추어진 공간도 많아 쓰임도 충분하다. 일부에서는 중층 식재가 너무 약하다는 지적도 있었지만 설계의도가 잘 반영되었다는 반증으로 이해한다.


유선원 수평적 경관 ⓒ안명준

유선원 수평적 지붕선 ⓒ안명준

유선원 조성의 비하인드 스토리를 들려주세요.

대상지에는 일제강점기부터 있던 일식 건물과 한옥이 몇 채 있었다. 한동안 버려져 있다가 그 전체를 묶어 공원으로 재탄생시킨 사례다.

전통초화원을 목표로 설계된 선재동산에는 원래 돌이 수준급으로 쌓여있던 일본식 정원이 있었다. 혹시 나중에라도 활용할 수 있기에 정원 자체를 보존하면서 새로운 형태를 만들고자 했다. 바위만 조금씩 보이고, 나머지는 마운딩과 전통식재로 마무리 했고, 기존 기와도 묻어두어 차후 활용을 기약했다.

또 철거된 건물에 있던 일식기와를 남겨 경계부에 재활용했다. 사실 남겨둔다는 것은 번거롭기도 하고, 새것을 쓰는 게 내구성면에서도 더 낫지만, 현대의 재료를 쓰는 것보다는 기와를 재사용하는 것이 더 낫다고 판단했다. 일식기와는 한식기와와 형태가 달라 몇 차례 재시공하며 직접 식재해야 했지만 말이다.

방지의 입수구는 선암사 삼탕을 모티브로 했다. 선암사의 삼탕은 서로 다른 4개의 돌확을 대나무로 연결해 물을 흘려보내는 형태가 일품이다. 4개의 돌확 중 처음에 위치한 상탕 물은 찻물과 제수물에 쓰이고, 중탕은 밥 짓는 물, 삼탕은 씻는 물, 맨 아래 말탕은 허드렛물로 쓰인다. 유선원의 삼탕은 음수대 역할을 하면서 방지로 흘러 떨어지게 해 입수구 역할도 한다.

돌확 사이에 물이 흐를 수 있는 대롱도 대나무를 직접 깎아 만들었다. 물이 떨어질 때 물이 마디의 돌출부에 부딪혀서 떨어질 수 있도록 재미 요소도 넣었다. 선암사 삼탕의 품격은 아니지만, 이야기들이 담길 수 있도록 노력했다.

헛담 안쪽 쉼터는 땅 밑에 벙커가 있다. 다 무너트릴 수가 없는 상황이어서 데크를 깔고 헛담으로 둘러쳐 쉼터로 만들었다.

정자 쪽 다른 헛담 안쪽은 나름 신경을 썼다. 시적인 풍경이랄까, 포토 스팟이랄까 유선원의 핵심 풍경이 되게 하려고 애썼다. 전통초화와 소나무 정도에서 부담스럽지 않으면서도 인상적인 곳이 되게 하려고 했다. 그런데 의도와는 달리 많이 부족한 모습이다.

전체적으로 저만의 곡선미를 살리려고 노력했는데 흡족하게 구현된 것 같다. 무엇보다, 꿈쩍 않던 뱃살이 준공식 이후 많이 빠져있어 나름 의미 깊은 작업이기도 했다.


유선원 헛담 풍경 ⓒ안명준

조경계에서 ‘한국정원’의 정체성에 대한 고민이 이어지고 있습니다. 대표님이 생각하시는 한국정원 고유의 속성이 있다면?

도시숲 관련해서 풍속화를 소재로 논문을 쓴 적이 있다. 풍속화를 공부하며 느낀 전통정원문화의 핵심은, 공간과 사람들의 활동이 같이 묶여 있다는 점이다. 이것을 먼저 읽지 않으면 정원문화가 이해되지 않는다. 그런데 현대도시는 공간과 활동이 분리되어 있기 때문에 장소성을 논하는 것 자체가 힘들다.

그간 전통조경에 노력하신 선배 조경가들의 작품에서 발견한 특징이 있다. 그중 하나가 ‘동적인 시퀀스’다. ‘풍경의 시퀀스’와 ‘연결성’은 그간 조경계가 주목하지 않은 주제라고 본다. 이 연결성의 특징을 조경적으로 이름 붙이면 ‘원로’ 정도가 될 것이다.

전통정원에는 궁궐정원처럼 화려하게 드러나는 형태나 신선사상 같은 사상적 측면도 있지만, 일상의 측면에서 정원문화라고 한다면 저 앞산부터 내 발 앞까지 이어지는 풍경의 연속성, 또는 역동성 자체가 핵심이었다. 이는 한국정원 고유의 특징으로 다시 지적되어야 할 측면이라고 생각한다. 형태나 요소 중심이기보다 요소 사이의 연관관계를 먼저 봤다는 측면이 중요하다. 

유선원도 이 점을 중요하게 생각했다. 바로 앞부터 저 멀리까지 다 보이는 한 눈의 풍경이지만 안으로 들어가 보면 여러 갈래의 길이 보인다. 전체를 읽고 부분과 세부에서 움직임을 찾을 수 있게 한 것이다. 방해요소를 두지 않고, 수목도 외곽으로 배치했다. 단순히 차경으로 연결되는 것이 아니다. 현장에 가보면 나름 고민한 흔적을 볼 수 있을 것이다.


정원디자인 아카데미, 한평정원 페스티벌 등 정원문화 활성화에 많은 노력을 하고 계신 줄로 압니다. 정원이 나가야 할 방향은?

정원이 나가야 할 방향은 지금 우리 생활문화와 어울리는 방식을 찾는 것일 테다. 그 해답은 전문분야인 조경이 내놔야 한다고 본다. 새로운 생활패턴에 맞는 한국정원의 방향, 즐길 수 있는 모델을 꾸준히 보여줘야 한다. 시대는 점차 정원을 즐기려는 문화를 만들고 있다. 시민정원사 모임도 생기고, 행정에서도 시민정원사 교육을 지원하는 등 정원에 대한 수요는 점점 늘어나고 있다. 조경계는 분명히 노하우가 있지만 잘 보여주지 못하는 아쉬움이 많았다. 이런 방향성에 대한 논의들이 계속 된다면 해답을 찾을 수 있을 것이다.

지금 일어나고 있는 정원문화나 정원관련 활동의 핵심은 자연에 대한 일상적 욕구에 있다. 캠핑, 둘레길 붐이 갑자기 일어난 것도 다 같은 선상에 있다고 본다. 우리는 시민들이 요구하는 자연에 대한 욕구를 읽어야 한다. 각자의 위치에서 제대로 지원할 수 있는 방향을 고민한다면 우리가 처음 경험하는 메트로폴리탄, 새로운 도시 형태에 맞는 새로운 정원문화를 창출할 수 있다. 이는 결국 조경 활성화이며, 도시를 살리는 길이고, 분리된 공간과 활동을 다시 연결하는 일이다. 

정원디자인아카데미는 ‘정원을 만드는 것’ 중심으로 초기 프로그램을 개편했다. 정원문화의 방향 설정에 대한 생각이 있었기 때문이다. 단절된 정원문화도 되살려야겠지만 새로운 정원문화도 만들어야 한다. 적은 금액으로도 훌륭한 정원을 만들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고 싶었다. 노하우가 많은 조경가들이 작은 정원이어도 일상적으로 즐길 수 있는 정원문화를 보여주셨으면 좋겠다.

한평정원 페스티벌에서도 이런 측면으로 준비하고 있다. 작가부 같은 경우는 완전한 일상이다. 대상지 자체가 일상공간에 있다. 아마도 국내에서 정상급 작가들이 공모를 통해 생활공간에 정원을 만드는 경우는 이번이 처음이 아닌가 한다. 따로 구별하지 않은 도심권에 들어서는 작가 정원이 잘 정착되길 바란다. 많은 관심을 가져주셨으면 한다.


조경인에게 하고 싶은 말은? 

자연과 인간을 구분 짓는 것이 서양적 시각이라면, 동양적 시각은 자연과 사회로 구분한다. 사람을 객체로 보지 않고, 사람을 모여 있는 사회로 본다는 것이다. 이러한 동양적 시각이 조경에서 강조가 된다면 좋지 않을까 생각해본다.

사회가 완전히 무너지다 보니 자연도 같이 무너져버리는 시대가 됐는데, 다행스럽게도 우리 문화는 자연을 계속 찾는다. 선진국에서도 60, 70년대 비슷한 상황이 있었지만 아예 깔아뭉개고 다 덮어버렸던 시기를 거쳤다. 80년대에서야 ‘사람들끼리 잘 어울릴 수 있는 도시’를 꿈꾸게 되었다. 농촌사회에서 도시사회로 넘어가는 단계가 있다면 서구는 끝까지 갔다가 회귀하려 했다. 농촌과 자연이 그렇게 반복적으로 해답이 되었었다. 근대 건축만 보더라도 선진이라는 말이 얼마나 허구인가도 싶다.

우리도 이제 성찰해야 하는 시대가 됐다. 해외사례를 가지고 우리를 해석하려 하지 말고, 우리 스스로를 보는 눈이 필요하다. 조경가에게는 그런 눈이 있다. 태생적으로 그렇다고 생각한다.


유선원 항공사진 ⓒ안명준
_ 전지은 기자  ·  라펜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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