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녹색시선] 이 공원은 누가 만들었나요?

주신하 논설위원(서울여대 원예생명조경학과 교수)
라펜트l주신하 교수l기사입력2016-08-25
이 공원은 누가 만들었나요?


_주신하 교수(서울여대 원예생명조경학과)


올 여름은 정말 덥습니다. 낮에는 폭염, 밤에도 열대야. 정말 더위의 끝을 보여주는 것 같습니다. 기록적인 더위로 알려진 1994년보다 더 극심한 더위라고 하더군요. 체온에 육박하는 기온 발표를 들으면 정말 답답합니다. 그런데 도시의 더위는 사실 기상청 발표보다 더 덥지요. 콘크리트와 아스팔트로 뒤덮인 도심의 기온은 공식 발표된 온도보다 7~8도는 더 높다고 하니 요즘 같은 날은 아마 40도는 훌쩍 넘을 것 같습니다.

그래도 도시에 공원이 있다는 건 큰 다행이 아닐 수 없습니다. 그늘이 주는 시원함과 함께 녹색이 주는 안정감까지, 그야말로 공원은 도시에서 없어서는 안 될 오아시스입니다. 아름다운 꽃이 있는 봄이나 풍성한 단풍을 즐길 수 있는 가을 못지않게 더위를 식혀 줄 수 있는 여름밤의 공원도 매력적입니다.

문득 궁금해 졌습니다. 공원을 찾고 즐기는 이 많은 사람들 중에 정작 공원을 누가 만들었는지 아는 사람은 얼마나 될까? ‘이 공원은 누가 만들었나요?’라는 간단한 질문에 대답할 수 있는 사람이 많지 않다면 왠지 좀 섭섭할 것만 같습니다. 


새롭게 단장한 경의선 숲길의 모습. 그늘이 주는 시원함과 함께 녹색이 주는 안정감까지, 그야말로 공원은 도시에서 없어서는 안 될 오아시스이다. Ⓒ주신하

동대문 디자인 플라자. 서울에 불시착한 우주선이라는 비아냥을 받기도 했지만 유명 건축가 ‘자하 하디드’라는 브랜드를 가지고 있는 건축물이지요. 경동교회나 지금은 갤러리가 된 공간사옥 같은 김수근의 작품도 제법 많이 알려진 건축물입니다. 건축물은 공원이나 외부공간에 비해서 설계자에 대한 인지도가 꽤 있는 편이지요. 교량에도 자세히 살펴보면 작긴 하지만 준공표지판이 붙어 있는 걸 볼 수 있는데, 여기에는 시공자는 물론이고 설계자와 감리자까지 적혀 있습니다. 아마도 혹시라도 있을지 모르는 안전사고에 대한 책임을 명확하게 하려는 조치인 것 같습니다만, 그렇다 하더라도 설계, 시공, 감리자를 분명히 밝히는 제도는 부럽기만 합니다. 물론 공원도 설계자나 시공자를 밝히는 경우도 있긴 합니다. 공사할 때 현장 상황판에서 말이지요.

80년대 실시한 금융실명제는 참 논란이 많았던 것 같습니다. 비정상적인 금융거래를 바로 잡기 위한 조치였음에도 불구하고, 당시에 만연한 차명계좌, 비자금이 필요했던 사람들의 저항도 상당했던 것으로 기억합니다. 지금이야 통장을 다른 사람 명의로 개설하는 건 상상하기 힘들지만 당시에는 본인확인 없이도 계좌를 만드는 게 가능했었으니까요. 하여간 금융실명제 도입은 우리 경제구조를 건전하게 만드는데 기여한 것은 틀림없습니다. 정책을 기획하고 추진하는 정부 내에서도 정책실명제를 실시하고 있더군요. 금융실명제나 정책실명제 모두 역할과 책임에 대한 소재를 분명히 한다는 점에서 매우 긍정적인 기여가 있다고 하겠습니다.

공원실명제, 혹은 조경실명제를 도입하는 건 어떨까 하는 생각을 해 봅니다. 다른 실명제처럼 업계 내부적으로는 업무에 대한 책임을 분명히 하는 효과가 있을 것이고, 부수적으로(저는 이게 더 중요한 효과라고 생각합니다만) 일반 이용자들에게는 많은 사람들이 공원을 만드는데 참여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려주어 조경에 대한 인식을 높일 수 있지 않을까 하는 기대 때문이지요. 공원 입구에 있는 ‘000 공원’ 커다란 글씨 옆에 참여했던 조경인들의 이름이 새겨진 표지판이 있으면 얼마나 좋을까 하는 생각을 해 보곤 합니다. 이게 진정한 조경의 대중화가 아닐까요? 

이런 아이디어를 관련 공무원분과 이야기를 나눈 적이 있습니다. 이야기를 들으시더니 아이디어는 좋은데, 막상 설계자나 시공자의 이름을 적으려면 좀 애매한 부분이 있을 것 같다고 하시더군요. 설계의 경우에는 참여 단계가 복잡하고 참여자 수도 많아서 누구까지를 설계자로 해야 하는지, 또 중간에 설계자가 바뀌는 경우에는 어떻게 해야 하는지, 공사의 경우에는 하도급 업체는 어떻게 표기해야 하는지 등 현실적으로 표기하기 애매한 경우도 많을 거라는 실무적인 의견이었던 것으로 기억합니다. 이야기를 들어 보니 그리 간단한 문제는 아니겠다 싶었습니다.

물론 첫술에 배부를 수는 없겠지요. 크레딧을 표기하는 문제는 좀 복잡하고 애매할지라도 우선은 명확한 부분부터 표기를 시작할 수는 없을까요? 영화 크레딧을 보면 정말 다양한 사람들을 효과적으로 잘 표시하고 있지 않나요? 조경이라고 못할 것도 없을 것 같습니다. 

그래서 작은 제안을 해 봅니다. 우선 공공에서 현상설계로 진행했던 공원부터 크레딧을 정리해 보면 어떨까요? 크레딧 표기하는 방법이 쉽게 정리가 잘 안 된다면 어떻게 하는 것이 좋겠는지에 대해서 공개적인 토론을 거쳐 같이 고민부터 시작하면 어떨까요? 대형 건물 주변의 공개공지도 건축주를 설득해서 참여자를 표기하거나, 혹은 관련 제도를 보완해서 참여자 표기를 의무화하는 방안을 추진하는 건 어떨까요? 또 조경인 스스로가 조경작품에 대한 크레딧 정보를 정리하는 운동을 해 보는 건 어떨까요?

하나씩 해 보시지요. 한 걸음씩 조경의 대중화하기 위한 노력을 지금부터라도 하는 게 중요하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_ 주신하 교수  ·  서울여자대학교 원예생명조경학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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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inhajoo@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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