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속으로] 실험정신의 쇼몽가든

『쇼몽 가든 페스티벌과 정원 디자인』 권진욱 지음
라펜트l오정학 과장l기사입력2016-10-13
실험정신의 쇼몽가든


쇼몽 가든 페스티벌과 정원 디자인
권진욱 지음, 나무도시 펴냄(2012)
오정학 경기도시공사 과장 (ohjhak@daum.net)



서양정원사에서 프랑스 정원의 족적은 크다. 고전주의가 빚어낸 프랑스의 정형식 정원은 유럽 전역으로 퍼져나갔다. 특히 17세기 보르비콩트와 베르사이유 궁원의 장엄한 규모와 질서체계는 가히 압권이다. 인간 이성이 자연을 줄 세운 궁극의 경지였다. 그 저력은 20세기 끝자락에 나온 라빌레트 공원에서 또다시 확인된다. 라빌레트 공원은 그때까지 도시공원의 교과서였던 센트럴 파크를 단숨에 화석화시킨 채 21세기 공원의 새로운 전형을 제시했다. 

근세 정원과 현대 조경을 모두 휘어잡은 프랑스의 무궁한 창의력은 어디에서 나오는 것일까? 자유·평등·박애정신이 낳은 개방성과 자유분방성을 주목하지 않을 수 없다. 창의력은 다양한 연결력과 융합, 통섭에서 나오며 이는 곧 자유로운 사고의 결과물이다. 프랑스가 갖는 “자유로운 문화적 사고와 철학을 바탕으로 한 예술적 취향”과 “개방적이고 배타적이지 않으며 예술 혹은 디자인을 다루는데 있어 탈영역적이고 선도적인 실험을 주저하지 않는 분위기(18쪽)”에 저자는 무게중심을 두었다. 

쇼몽 가든 페스티벌은 영국의 첼시 플라워 쇼, 네덜란드 튤립 쾨겐호프 가든 쇼와 함께 유럽을 대표한다. 첼시가 100년이 넘는 전통을 자랑하고, 쾨겐호프가 튤립과 구근식물을 중심으로 세계화훼시장을 석권한 원예국가의 위용을 뽐낸다면, 쇼몽은 첨단의 정원디자인을 보여준다. 정원전시회가 많은 유럽에서도 굳이 쇼몽에 주목하는 이유는 바로 이 ‘실험정신’에 있다. 알듯 모를 듯한 상징과 기호체계들, 그리고 그것들이 연출한 낯선 경관들이 가득한 곳이다. 

그렇지만 관찰자에서 벗어나 그 공간속에 들어가면 조금씩 이해의 폭이 넓어지는 묘미가 있다. 매년 제시되는 주제는 이러한 재미에 톡톡히 한 몫 한다. 주제가 있다는 것은 쇼몽의 큰 특징 중 하나이다. 같은 주제를 놓고 여러 문화권의 작가들이 풀어나간 방식들을 비교해 보는 것, 이것이야 말로 쇼몽이 가진 최고의 매력이지 않을까? 시대를 관통하는 이슈는 같을지언정, 그 의미는 문화와 기후, 경제 혹은 역사적 배경에 따라 얼마든지 다를 수 있기 때문이다. ‘7대 죄악(2014)’ ‘오감의 정원(2013)’ ‘육체와 영혼(2011)’ ‘미래의 정원 혹은 적절한 생물다양성 속의 예술(2010)’ ‘정원의 색깔(2009)’ ‘정원에서 나누어가지는 몫(2008)’... 등이 지난 몇 년간 주제였다. 


‘자연 극장’을 찾아간다는 독특한 개념의 2016년도 출품작 ‘대단원을 위한 정원’ ⓒ안지성

‘정원의 기억’을 주제로 한 2006년도 작품을 몇 개 보자. 그 중 하나인 ‘실내의 방’은 정원 속에 정원이 있고, 그 정원 안에 또 다른 정원이 있는 공간구성이다. 꼬리에 꼬리를 무는 듯이 시간을 거슬러 아득한 기억속의 정신적 안식처를 표현했다. 누구나가 가지고 있을 법한 곳, 그리운 고향마을 일수도 있고 가족들과 행복했던 작은 집이었을 수도 있다. ‘그것이 진실이 아니라는 것을 알고 있지만, 그 때 나는 두 살이었다’는 긴 제목의 정원은 또 어떠한가. 정원구성요소를 실제보다 훨씬 크게 하여 마치 두 살짜리 아기 눈으로 바라보는 듯한 경관을 만들어냈다. 기억도 나지 않는 유아기의 기억을 애써 더듬어 보게 한다. 또 다른 작품으로는 ‘모네의 시선’이 있다. 이 정원은 인상주의 화가 모네의 대표작 ‘수련’을 모티프로 했다. ‘수련’은 모네가 말년에 그린 연작(連作)으로 유명한데 이즈음에 그는 시력을 잃어가고 있었다. 따라서 실제 수련을 보기보다는 거의 기억에 기대어 그렸다고 추정해 볼 수 있다. 

한국에서도 2010년에 경기정원문화박람회가 시작되었다. 그 뒤 순천만국제정원박람회(2013)가 열렸고 2015년에는 서울시에서 정원박람회를 연례화 했다. 대중을 위한 본격적인 정원 전시회의 시대가 열린 것이다. 2016년도 박람회 주제는 경기정원문화박람회가 “정원, 우리의 일상으로”, 서울정원박람회는 “정원을 만나면 일상이 자연입니다”였다. 쇼몽의 경우와 달리 어떤 성격의 정원을 보여주는 것인지 특별한 방향성이 느껴지지는 않는다. 다만 두 행사에서 모두 “일상”이란 용어를 쓴 것이 눈에 띈다. 그만큼 한국의 정원은 아직도 일상이 못됨을 말하는 듯하다. 결국 정원이 일반화되지 못한 상태에서 특정한 방향성을 제시하기는 힘든 일이다. 다만, 한국의 주거여건과 여가시간을 고려할 때 유럽과는 다른 형태의 정원 제시가 필요하지 않을까. 이를 위한 맹렬한 실험정신을 한국의 정원박람회에서 볼 수 있으면 좋을 것 같다. 

<쇼몽 가든 페스티벌과 정원디자인>은 그러한 실험정신을 잘 보여주었다. 그에 더해 실험정신애 내재된 디자인 원리를 논하고 디자인을 이루는 조형요소까지 분석했다. 간단히 정리하기 힘든 내용인데도 비교적 간결하게 정리되었다. 아마도 쇼몽에서 공부를 한 저자의 이력과 쇼몽 전시정원 주제의 이전 연구성과물이 밑거름이 된 것 같다. 사실 연구논문을 토대로 한 책자들은 질적 수준은 높지만 대개 읽기가 쉽지 않다. 만연체와 한자 남용, 번역투 문장이 많은 논문식 글쓰기의 폐해 때문이다. 다행히 이 책은 그러한 문제가 별로 없어 저자의 성의와 편집자의 노력을 느낄 수 있다. 이 책이 한국의 정원박람회에서도 왕성한 실험정신을 볼 수 있는 좋은 자극제가 되기를 기대해 본다. 
_ 오정학 과장  ·  경기도시공사 사업기술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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