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답사기] 2016년 하계학술답사를 다녀와서… (2)

이승연 우석대학교 조경토목공학과 대학원 박사과정 수료
라펜트l이승연l기사입력2016-10-14
(사)한국전통조경학회 2016 하계학술답사기


2016년 하계학술답사를 다녀와서… (2)
- 2016. 7. 14 ~ 7. 17. 북경·승덕·당산 -


글_이승연 우석대학교 조경토목공학과 대학원 박사과정 수료



7월 15일 금요일 아침 6시 50분. 버스 안이다. 버스가 3번째 바뀌면서 이제야 좋은 버스가 왔다. 식사하러 차를 타고 출발한다. 오늘의 답사 시작! 비가 귀한 곳에 와서, 비를 맞았으니 복 받으실 거라고 가이드께서 아침인사를 대신한다.

경승고속도로를 타고 승덕으로 가고 있다. 연암 박지원은 말을 타고 이 길을 바쁘게 갔었다. 건륭제를 알현하려. 시간에 못 맞출까 걱정하면서. 급하게 말을 달리는 박지원과 그 일행을 이 길 어디쯤에서 만날 것만 같다. 승덕. 차분하고 조용하고 깨끗한 느낌의 도시다. 벌써 이 도시가 맘에 든다.

11시 소포탈라궁에 도착했다. 버스 안에서도 느낀 거지만 이곳은 놀라울 정도로 시원하다. 북경에서 3시간 달려왔을 뿐인데, 온도계가 8℃ 가까이 내려가 있다. 황제의 피서지였음을 몸으로 느끼게 한다.


피서산장과 외팔묘 (출처: 이승연)

외팔묘는 피서산장 동부와 북부 구릉지대에 있는 사원들로 실제로는 12개지만, 조정에서 파견하여 녹봉을 받는 라마승이 그중 8개 사찰에 거주했기 때문에 외팔묘라 부르게 되었다. 외팔묘는 티베트 불교사원으로 67년에 걸쳐 건설한 건륭성세의 산물이다. 이곳의 건축은 정교하고 심오하며 기풍이 다양해 한족, 몽고족, 티베트족의 문화를 융합한 전형적인 예술작품으로 꼽힌다.

외팔묘 중 하나인 보타종승지묘는 티베트 라싸의 포탈라궁을 모방했기 때문에 소포탈라궁이라는 별칭으로 불린다. 티베트 양식의 사묘를 세운 것은 영토확장 정책을 펼쳤던 건륭제의, 티베트인과 몽골인들에 대한 회유 전략이었다. 문화적 자신감이었을 것이다.

하얀 벽체의 산문과, 유약을 듬뿍 바른 주황색 유리기와의 누정을 지난다. 진한 청색과 금색의 단청이 아름답다. 누정 뒤로 케익 같이 생긴 건축물이 보인다. 붉은색, 옥색, 노란색, 흰색, 검정색의 아름다운 탑을 생일초인양 지붕에 이고 있다. 유리보방이라는 이름의 특이한 문을 지나니, 지금까지 통과한 문들과는 다른 느낌의 공간이 펼쳐진다. 이런 느낌은 바닥포장과 나무 때문인 것 같다. 자연스럽고 공교한 바닥이 무척 아름답다. 회화나무에 槐樹(괴수)라는 설명을 달아 놨다. 북경의 회화나무는 꽃이 활짝 피었었는데 이곳은 봉우리도 아직 채 맺지 않았다.

왼쪽으로 돌아 보타종승지묘의 주 건물군인 대홍태에 이르렀다. 흰색과 적색으로만 칠해진 이 건축물은 외부에서 봤을 때 장식적 요소는 별로 보이지 않는다. 색의 대비와 스케일만이 특별하게 다가온다. 건물 크기에 어울리지 않는 창문들이 뚫려있는데 그게 또 그다지 질서 있어 보이지 않는다. 실제 열리는 창문인지 의심스러운 것도 많다.


오탑문, 아름다운 바닥포장, 대홍태 (출처 : 이승연)


경추봉 (출처 : 이승연)

3층 정도 높이의 흰색 건물을 오르니 형형색색의 깃대 4개가 보인다. 고운 빛깔 손수건에 소원을 담아 하늘에 띄우는 장치인 것이다. 여기까지 오르니 저 옆으로 경추봉이 잘 보인다. 강희제가 이름을 지었다고 한다. 어떻게 저렇게 생겼을까? 저런 모양을 만드는 지질현상이 궁금하다.

적색외벽의 건물을 오른다. 이곳은 실내에 계단이 있는데 사람이 많고 경사가 가팔라 마음을 놓을 수 없다. 어둡고 낡은 계단을 다 오르니 갑자기 환해지면서 생뚱맞게 건물이 또 하나 떡하니 앉아있다. 화려하게 장엄한 만법귀일전이다. 이 전 안에 귀한 석가모니불이 모셔져있다 했는데 공사 중이어서 볼 수 없었다.

서둘러서 내려가야 한다. 12시 20분까지 집결인데 늦었다. 단체답사라 아이들에게 시간을 자꾸 재촉하게 된다. 나중에 큰 아들에게 들었는데, 자기들은 정상에 있을 때 12시 10분이었다고 했다. 그런데 아빠가 괜찮다고 했단다. 충분히 내려갈 수 있다고. 실제로 정문께의 노점상가에서 우리 일행과 합류했다. 아이들이 나와 다녔다면 덜 즐거웠을 거란 생각이 문득 들었다.

중국에서 식당 밥을 많이 먹어본 건 아니지만, 승덕에서 먹은 점심식사는 그중 가장 훌륭했다. 막 조리한 뜨거운 음식들이 계속해서 날라져 왔다. 가짓수도 많고 하나도 빠짐없이 다 맛있었다. 어젯저녁 호텔방에서 컵라면으로 겨우 허기를 면한 큰 아들도 조금씩 먹기 시작한다. 배부르게 먹고, 식당 앞 노점에서 과일도 사들고 피서산장으로 향했다. 맛있는 음식은 기분을 좋게 한다.

드디어 피서산장이다. 피서산장의 원래 이름은 열하행궁, 강희 42년(1703)에 짓기 시작해 건륭 55년(1790)에 완공되었다. 궁정구, 호수구, 평원구, 산악구 네 부분으로 나눌 수 있다. 정문 앞에 사람들이 정말 많다. 머리에 꽃화관을 쓴 단체관광객들도 심심찮게 보인다. 꽃화관. 어렸을 적 ‘들장미소녀 캔디’에선가 봤던 것 같다. 관광객임을 핑계 삼아 한 번쯤 써 봐도 좋을 텐데.


담박경성전 (출처 : 이승연)

피서산장 역시 궁정구가 맨 앞에 있다. 몇 개의 문을 지나 담박경성전에 이르렀다. 이곳은 황제가 업무를 보던 곳이다. 신하의 하례를 받고 외국사신도 이곳에서 맞았다. 유리기와가 아닌 담백한 회색기와를 사용했고, 화려한 채색도 하지 않았다. 중국황실은 크고 화려한 것을 좋아하는 줄 알았는데 이곳은 전혀 그렇지가 않다. 담박(澹泊)한 건축물이다. 건륭제 칠순잔치 사절단이었던 박명원도 이곳에서 황제를 접견했다. 연암은 정식사절단이 아니었으므로 오지 못했다. 내부관람은 할 수 없었다. 거대한 첩석이 인상적이었던 강희제‧건륭제의 개인 서재인 운산승지를 지나 별궁의 후문인 수운문을 나서면 좌측으로는 산악구가, 우측으로는 호수구가 위치한다.


피서산장에서 본 소포탈라궁 (출처 : 이승연)

신교수께서 주선하여 피서산장 산악구 버스투어를 하기로 했다. 50위안. 미니버스에 오른다. 나무가 빽빽하게 우거진 좁은 산길을 신나게 달린다. 바람이 시원하고, 몸도 마음도 다 시원하다. 푸른색 기둥의 사면운산에 오르니 승덕 시내가 한 눈에 내려다보인다. 피서산장에서 제일 높은 곳이라 한다. 산과 도시가 자연스럽게 어우러져 편안해 보인다. 그 사이 작은 아들은 창틀에 턱하니 팔을 괴고 단잠을 잔다. 피곤도 하겠지.

그물 문양의 높은 성벽을 오르니, 저 아래로 보타종승지묘가 한 눈에 들어온다. 치기스럽게 느껴졌던 붉은색과 흰색의 단순한 직각 건물이 무척 아름다워 깜짝 놀랐다. 이 사원의 아름다운 사진들은 다 여기서 찍은 거였나 보다. 성벽 위로 말을 달릴 수 있게끔 길을 닦았고 황제 경비를 위한 외곽성의 둘레가 10에 달한다고 하니, 황제가 이끌고 왔을 군사의 위세가 짐작이 간다.

버스를 타고 산장궁전으로 이동했다. 궁정구 건축물도 화려하지 않았지만, 이곳은, 뭐랄까, 자연 속으로 건축물이 살짝 스며든 느낌이 정말 안온하다. 영화에서 보면 꼭 이런 곳에 있다가 자객을 맞더라만.


수심사 (출처 : 이승연)


문원사자림 (출처 : 이승연)

기분 좋게 버스투어를 마치고 호수구에 이른다. 저 멀리 수심사(水心榭) 건물군이 보인다. 피서산장의 대표격인 경관이다. 강희제가 명명했고, 건륭 36경 중 제 8경에 해당한다. 호수를 가로지르는 제방 위에 멋들어진 건축물을 올렸다. 인터넷이나 책에서 봤던 사진과는 사뭇 다르지만 그래도 아름답다. 피서산장에 꼭 가보고 싶다고 생각했던 것은, 해가 저물 무렵의 수심사 사진 때문이었는데, 그것은 아름답고도 묘하게 슬퍼 보였다. 다음에 승덕에 오게 되면 피서산장 수심사에서 하루를 꼬박 보내봐야겠다.

수심사 동쪽 호수(은호)에는 연이 한 가득이었는데 몇 송이 꽃이 피어있었다. 조만간 호수 가득 연꽃이 필 것이다. 제방을 건너 오른쪽으로 조금 들어가면 문원사자림이 있다. 강소성 소주의 사자림을 본떠 지었다고 하는데, 돌을 붙여서 태호석처럼 보이게 가산을 쌓았다. 정교한 정원이었다. 물상태가 그렇게 나쁜 건 아니었지만, 훨씬 더 맑은 물이어야 이 정원에 맞을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호수를 왼쪽에 끼고 계속 걷는다. 온통 금칠을 한 배가 호수에 떠다닌다. 물 위에서는 요란하게만 보이는 이 배의 수면 아래 모습은 실제보다 훨씬 예쁘다. 연이 넘어오지 못하도록 그물로 막은 시설도 보인다.

호수구 북동쪽 모서리 향원익청 공간에 이르렀다. 평지를 살짝 파 거친 돌로 장식한 연지를 만들고, 삼면으로 건축물을 둘렀다. 피서산장의 주요 수원인 열하천(熱河泉) 맑은 물을 물레방아로 끌어올려 물을 댔다. 강희 36경 중 제15경 곡수하향(曲水荷香)과 제23경 향원익청(香遠益淸)에 해당하는 공간이다. 사진에 보이는 중층 지붕의 정자가 곡수하향정이다. 함징경(含澄景)이라 쓴 현판이 보인다. 맑은 경치를 머금은 정자라는 뜻이다. 정자 아래 유상곡수거를 만들어 곡수연을 즐겼다. 계속 구부러진 곡선인데도 묘하게 정형적이라는 생각이 든다.


향원익청 공간 (출처 : 이승연)


곡수하향청 (출처 : 이승연)

열하천을 지나 계속 북쪽으로 올라가면 평원구에 위치한 몽고식 이동천막집인 파오(게르)단지가 있다. 강희제는 이곳에서 몽고식 복식을 하고 며칠씩 머물렀다고 한다. 현재는 호텔로 개조하여 관광객을 맞는다고 하는데 공사 중이어서 들어갈 수 없었다. 이곳에서 북쪽으로 더 올라가면 건륭 16년에 창건하여 황실에서 관리하던 불교사원 영우사(永佑寺)가 있다. 거대한 규모의 사원이었으나 중일전쟁으로 완전히 소실되었고 현재는 8면 9층 사리탑만 남아있다. 영우사 산문 앞에서 5시에 집결이다. 아까 산악구 셔틀버스에서 잠든 작은 아들 때문에 일행과 떨어졌던 부자가 조금 늦게 도착했다. 수심사 옆 하호에서 뱃놀이도 하고, 물총싸움도 하고, 볼 것 그렁저렁 다 보고서 처음에 만나기도 했던 동문에서 기다리고 있었단다. 신경이 쓰였던 건지 한참 만에 보는 것처럼 반가웠다. 다시 종아리가 욱신거리고 발바닥은 뜨끈뜨끈하다. 호텔로 고고씽이다.

대학원생 중 두 명의 중국인이 있었던 우리 일행은 저녁을 먹고 호텔 근처 맛집을 찾았다. 그들이 우리에게 먹이고 싶어했던 음식 중 하나인 꼬치구이집이다. 매콤하게 조미한 조개볶음, 다양한 종류의 꼬치구이, 마늘과 버터로 맛을 낸 굴볶음밥, 양념가재구이(광서에서 온 홍파추양은 자기 동네에선 이렇게 작은 가재를 본 적이 없다고 엄청 웃는다.), 양다리 등을 칭다오 맥주와 곁들여 먹었다. 맛있었다. 승덕의 기후도, 음식도, 정말 마음에 든다. 우동 먹으러 도쿄에 다녀오겠다는 농담이 있던데, 나는 꼬치구이 먹으러 승덕에 가고 싶다.

글·사진 _ 이승연  ·  우석대 대학원
다른기사 보기
lafent@naver.com

네티즌 공감 (0)

의견쓰기

가장많이본뉴스최근주요뉴스

  • 전체
  • 종합일반
  • 동정일정
  • 교육문화예술

인기통합정보

  • 기획연재
  • 설계공모프로젝트
  • 인터뷰취재

커뮤니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