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래포럼] 놀이터의 변화가 아이들의 미래를 바꿀 수 있을까?

송영탁 (주)가이아글로벌 상무이사, (재)환경조경나눔연구원 운영위원
라펜트l송영탁l기사입력2016-10-20

(재)환경조경나눔연구원 미래포럼

‘조경인이 그리는 미래’ Series No.17


놀이터의 변화가 아이들의 미래를 바꿀 수 있을까?




송영탁 (주)가이아글로벌 상무이사

(재)환경조경나눔연구원 운영위원 



Post-Playground

‘이미 우리는 Post-Playground의 시기로 접어든 것일지도 모른다’- 잘 알려진 블로그 Playscapes의 운영자 Paige Johnson의 말이다. 한국적 현실에서 Post-Playground라는 단어가 아직 이른 감이 없지 않지만 최근 몇 년간 우리 주변에서 일어나고 있는 놀이터에 대한 태도 변화를 대변하는 단어로 언급해볼 수 있을 것 같다.

Post-Playground는 안전 최우선주의와 대량생산체제의 산물인 규격화된 기존 놀이터로부터의 이탈을 주장하고 있다. 이른바 자연으로의 회귀, 다양성과 가변성의 수용, 위험에 대처하는 자세의 변화들이 Post-Playground의 주요 관심사로 대두되고 있는 것이다. 다소 극단적으로 표현하자면, 기존의 놀이터는 어린이들에게 안전과 규칙에 순응하는 법을 강요함으로써 사회 구성원으로써 피동적으로 순응하는 인간을 만드는 과정에 일조하고 있는 것이다. 그것이 의도된 것이 아니었다고 할지라도 어린이들은 놀이과정에서 주체, 창의, 도전, 혁신 보다는 순응, 회피, 안전, 보수를 자연스럽게 체득하게 되는 것이다. 


<그림 1> 순천시 기적의 놀이터 Ⓒ송영탁                      <그림 2> 서초구 생태놀이터 Ⓒ송영탁 

기적의 놀이터와 어린이놀이시설법

2016년, 그 어느 때보다 놀이터가 시끄럽다. 남쪽의 작은 도시 순천에서 시작된‘기적의 놀이터’가 그 중심에 있다. 수많은 언론과 타시도 자치단체들의 관심과 방문에 담당 공무원들이 몸살을 앓는다는 얘기도 들린다. 정작 놀이터의 주인인 지역주민들과 어린이들은 그 때마다 슬그머니 자리를 비키거나 원치 않는 모델이 돼주어야 하니 마냥 좋지만도 않겠다 싶지만 이미 순천에서는 두 번째 기적의 놀이터 조성사업이 진행 중이며, 당분간 이 프로젝트는 계속 이어질 듯하다. 아마도 다른 지자체장들도 유사한 사업을 서둘러 준비하게 될 것이다.

실상 기존 놀이터를 탈피하고자 하는 노력은 10여 년 전부터 꾸준히 시도되어 왔다. 2000년대로 넘어와 기획된 ‘꺼꾸로 놀이터’로 대표되는‘문화가 있는 놀이터’ 프로젝트가 신호탄이 된 이래 서울시는‘상상놀이터’를 거쳐‘창의놀이터’로 진화하며 지속적으로 놀이터 프로젝트에 관심과 예산을 쏟아오고 있으며, 북유럽국가들의 숲유치원 프로그램을 벤치마킹한‘유아숲체험장’ 조성사업도 맥을 같이 한다고 볼 수 있다. 수년 전부터는 정부차원(환경부)에서도‘생태놀이터’ 사업을 통해 전국에 자연형 놀이터를 조성해오고 있다. 그 밖에도‘Post’를 꿈꾸는 놀이터는 생각 외로 많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올해‘기적의 놀이터’가 유독 주목을 받게 된 이유는 무엇일까? 반면 앞서 시도된 많은 놀이터 프로젝트들이 지속되지 못하고 계속해서 비슷하면서도 다른 대안을 만들어 내는 이유는 무엇일까? 그것은 아마도 기존의‘놀이터 생태계’에서 벗어날 수 없기 때문이 아니었을까? 우리는 좋든 싫든 제도권 사회의 구성원으로서 법과 제도의 틀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는데, 놀이터 역시‘어린이놀이시설 안전관리법(약칭 어린이놀이시설법)’이라는 잘 짜여진 틀에 의해 움직이는 하나의 생태계를 가지고 있다. 2015년 1월 시행된 이 법은 올해 초 개정안이 시행되면서 그 적용범위 및 규정대상에 있어 점차 진화하고 있다. 어린이들이 안전하고 편안하게 놀이기구를 사용할 수 있도록 어린이놀이시설의 설치, 유지 및 보수 등에 관한 기본적인 사항을 정하고, 어린이놀이시설을 담당하는 행정기관의 역할과 책무를 정하여 어린이놀이시설의 효율적인 안전관리 체계를 구축함으로써 어린이놀이시설 이용에 따른 어린이의 안전사고를 미연에 방지하기 위함이라고 밝힌 법의 목적과 내용은 당연히 타당하다. 하지만 법을 해석하고 적용하는 단계에서의 의식수준은 놀이터 생태계를 매우 경직된 상태에 머물게 하고 있는 듯 하다.

반면 기적의 놀이터가 기존의 선행된 프로젝트와 다른 점은 놀이터 생태계의 여러 구성원들이 변화에 동의할 수 있도록 시간을 두고 준비한 과정에 있다고 할 수 있다. 사업자인 순천시는 물론이고 지역주민들이 디자이너와 기획과정부터 함께하여 변화에 순응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모두 함께 놀이터에 대한 태도를 바꿔나감으로써 놀이터의 조성 및 운영에 영향을 주고 있기 때문이다. 물론 기적의 놀이터에도 여러 가지 논란의 여지는 있다. 가장 중요한 것은 놀이터 이용자들이 스스로 책임져야 할 부분이 커졌다는 것이다. 그 책임의 범위도 명확하지 않을 뿐만 아니라 기존의 시스템이 제대로 작동하지 않을 수도 있다. 더구나 변화의 과정에 함께하지 못했던 이용자들은 이를 불편해 할 수도 있고, 추후 논란의 불씨가 될 수도 있다. 조성 이후의 과정에 더욱 관심을 가지고 지켜봐야 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놀이터생태계의 미래

어린이놀이시설법에서 안전인증기준을 세부적으로 규정한 부속서의 서문에는 다음과 같은 문구가 눈길을 끈다.

 “안전인증기준에 적합하다는 것은 어린이의 상해 위험을 경감시킬 수 있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으로, 안전사고가 전혀 일어나지 않는다는 것을 보장하는 것은 아니다”

법에서 조차 놀이터는 어느 정도 위험할 수 있으며, 어린이들은 그러한 위험에 대처하는 방법을 놀이과정을 통해 배워야 함을 인정하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작은 사고와 부상에 대처하는 우리의 자세는 아예 부상이 발생하는 원인을 차단하는 방향으로 편향되어 있는 것이 현실이다.

그렇다면 과연 기적의 놀이터는 이름대로 기적을 일으킬 수 있을까? 일단 기존의 놀이터에 Post를 생각하게 만들었다는 점에서 변화의 단초는 제공했다. 놀이터 생태계 변화의 핵심세력인 시민들이 놀이터의 사회적 역할을 공유하고 배워가며 만들어냈다는 점은 일단 긍정적이다. 만약 그들이 놀이터는 위험해야 한다(적절한 위험이 공존해야 한다)는 명제를 제대로 인식하고 그러한 인식이 확산된다면, 비로소 모험이 없는 모험놀이터, 생태가 없는 생태놀이터, 역할이 없는 역할놀이터가 이름값을 할 수 있도록 바뀔 것이기 때문이다. 이러한 놀이터 변화의 중심에는 항상 아이들의 미래를 생각하는 시민들이 있음을 기억해야 한다.

새로운 놀이터의 새로운 조성이 아닌 기존 공간을 잘 활용하기 위한 시도들도 이루어지고 있는데 2015년 서울그린트러스트의 ‘공원놀이 100’프로젝트나 올해 수원시정연구원이 주관한‘우리동네 놀이터 핵꿀잼 프로젝트’, 서울어린이대공원에서 진행되는 ‘2016 놀이엑스포’는 그런 노력들의 일환이다. 이와 같이 놀이터 생태계의 변화는 다양한 방향에서 이미 시작된 것일 지도 모른다. 조경계에서도 이러한 변화를 재빠르게 파악하고 어린이의 미래에 기적을 만들 수 있는 놀이환경조성에 능동적으로 대응할 필요가 있다.


라펜트는 (재)환경조경나눔연구원 미래포럼과 함께 조경의 미래방향을 모색하는 '조경인이 그리는 미래'를 매달 1회씩 게재하고 있습니다.  

 

미래는 현재의 선택과 행동을 통해 향방을 결정할 수 있습니다. 조경의 미래를 함께 고민하는 논의의 장으로서 조경인 모두의 관심과 함께 연재가 이어가기를 기대해봅니다.

 

*11월 필자는 김남춘 교수(단국대학교)입니다.


_ 송영탁  ·  (주)가이아글로벌 상무이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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