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녹색시선] 우리에게 시간은 무한한 것인가?

진승범 논설위원(이우환경디자인(주) 대표)
라펜트l진승범 대표이사l기사입력2016-12-06
우리에게 시간은 무한한 것인가?



글_진승범 대표(이우환경디자인(주))


격동의 한 해가 또 저물어 간다. 세월의 무상함에 젖어 우주(宇宙)의 나이를 헤아려 보니 지금 인류가 소유한(그렇게 믿고 있는) 모든 시간들이 찰나임을 깨닫는다. 학자마다 조금씩의 이견이 있으나 대체로 공인하는 우주의 나이는 137억 년이며, 우리가 발을 딛고 살고 있는 지구행성의 형성은 45억 년 전의 일이다. 지구상에 최초로 생명체가 출현한 것은 지금으로부터 38억 년 전이며(‘생물학’의 시작이다) 인간과 침팬지의 마지막 공통 조상인 ‘유인원(類人猿)’의 탄생은 생명체 출현 후 엄청난 세월이 흐른 뒤인 6백만 년 전이다. 250만 년 전 최초의 석기를 사용한 호모(Homo) 속(屬)이 아프리카에 출현하였고, 동아프리카에서 오늘날 우리와 같은 인간 종인 호모 사피엔스(Homo Sapiens)로 진화하기에 이른 것은 20만 년 전이다. 즉, 인간(사피엔스)의 역사는 아무리 길게 잡아도 20만 년을 넘지 않는다. 사피엔스는 다른 호모 속들을 제압하고 유일한 호모 속으로 살아남아 12,000년 전 농업혁명을 일으켜 동물의 가축화와 식물의 작물화를 이루고 영구 정착생활을 시작하였으며, 인류문명의 급속한 발전의 계기가 되었다고 굳게 믿고 있는 소위 ‘산업혁명’이라 칭하는 사건은 불과 200년 전의 일인 것이다.

그럼 사피엔스는 지난 200년 간 지구에 어떤 흔적을 남겨 왔을까? 이에 관한 몇몇 지표 중 ‘생태발자국(Ecological Footprint) 지수’라는 것이 있다. 생태발자국이란 인간이 지구에서 삶을 영위하기 위해 필요한 의·식·주, 에너지, 시설 등의 생산, 폐기물의 발생과 처리에 들어가는 비용을 개인 단위, 국가 단위, 지구 단위로 나타내는 방식을 말하며 헥타르(ha) 또는 지구의 개수로 수치화하는데, 그 수치가 클수록 지구에 해를 많이 끼친다는 의미이기 때문에 인간이 자연(지구환경)에 남긴 피해 지수로 이해할 수 있다.

세계자연기금(World Wide Fund for Nature, WWF)이 발표한 <2014 지구생명보고서>에 따르면, 지구 생태계가 스스로 회복할 수 있는 생태발자국 한계치는 1인당 1.7ha이다. 그러나 실제 지구의 평균 생태발자국은 2.6ha로 조사되어 한계치를 0.9ha나 초과한 것으로 보고되었다. 우리나라의 경우는 더욱 심각하여 4.41ha의 생태발자국지수를 기록해 평균에 비해 1.7배 높은 수치를 보였다. 바꾸어 말하면, 현재 한국인이 사는 방식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지구가 2.5개 필요하다는 뜻이다. 이 상태로 가면 2050년에는 전 세계 사람들이 평균적으로 지구 3개 정도 규모의 자원을 소비할 것으로 예측되고 있다. 사피엔스의 삶을 위해 3개의 지구가 필요하다는 이야기인데 슬프게도 지구는 하나뿐이다.

<불온한 생태학>의 저자 이브 코셰(Yves Cochet)는 우리에게 ‘내가 지금껏 살아왔던 대로 앞으로도 계속 살아가려면 어느 정도의 지구 자원이 필요할까?’라는 질문을 던지고 있으나 이제는 그런 차원을 넘어 ‘과연 우리(사피엔스)는 지구상에서 생명체로서 얼마나 더 존속할 수 있는가?’를 질문해야 할 때다. 역사학자 유발 노아 하라리(Yuval Noah Harari)는 그의 명저 <사피엔스>에서 ‘아시아의 좀 더 동쪽 지역에는 호모 에렉투스(Homo Erectus)가 살았다. 이들 ‘똑바로 선 사람’은 그 지역에서 2백만 년 가까이 살아남아 가장 오래 지속된 인간 종이 되었다. 우리 사피엔스가 이 기록을 깰 가능성은 희박해 보인다. 호모 사피엔스가 지금부터 1천 년 후에 존재할지 여부도 의심스러운 마당에 2백만 년은 우리와는 동떨어진 시간이다’라고 사피엔스 지속가능성에 비관적인 태도를 보인다. 또한 프랑스의 농업학자이며 1974년 생태주의정당 대선후보이기도 했던 르네 뒤몽(René Dumont)도 ‘만일 우리가 다음 세기까지도 지금과 같은 인구 증가율과 산업 생산율을 유지한다면 인류문명이 붕괴되지 않고 다음 세기가 끝나는 것은 불가능할 것’이라 경고한 바 있다(<생태주의인가, 죽음인가? 선택은 당신 몫이다>).

뻔뻔스럽게도 스스로에게 ‘슬기로운 사람’이라는 이름을 붙인 오만한 사피엔스가 몇 번의 지적혁명(知的革命)을 거듭한다 해도 지구를 하나 더 만들 수는 없음을 우리는 명심하여야 한다. 이것이 생태학과 생태적 사고에 천착해야 하는 분명하고도 명확한 이유인 것이다. 코세의 말을 빌면, 생태학은 전 지구적 사상이며, 돌이킬 수 없는 상황과 예측할 수 없는 미래에 대한 사상이고, 긴급한 현실에 관한 사상이며, 인간의 미래에 관한 지금 이 순간의 사상이기 때문이다.

우리의 미래는 결코 놀라운 신기술에 있지 않다. 하라리의 충고가 유독 큰 울림으로 다가오는 연말이다.

‘유전공학, 인공지능 그리고 나노기술을 이용해 천국을 건설할 수도 있고, 지옥을 만들 수도 있다. 현명한 선택을 한다면 그 혜택은 무한할 것이지만, 어리석은 선택을 한다면 인류의 멸종이라는 비용을 치르게 될 수도 있다. 현명한 선택을 할지의 여부는 우리 모두의 손에 달려 있다.’

_ 진승범 대표이사  ·  이우환경디자인(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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