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물노트] 경칩 햇살에 '깜짝', 호랑나비 번데기 '겨울 탈출' 시동

이강운의 24절기 생물 노트 <5> 경칩
라펜트l이강운 소장l기사입력2017-03-10
생물학자 이강운의 ‘24절기 생물 노트’<5> 경칩

경칩 햇살에 '깜짝', 호랑나비 번데기 '겨울 탈출' 시동
6개월째 기다린 호랑나비과 나비 번데기, 껍질 속에서 발육 시작
나비에 중요한 생식기와 나비 만들며 껍질 속에서 비상 준비


_이강운 홀로세생태보존연구소 소장
(사)한국환경복원기술학회 부회장



호랑나비의 번데기(왼쪽)와 어른벌레. 온도가 문턱을 넘으며 번데기 속에서 발육이 시작된다.

갑작스러운 기상 변화라면서 한 밤중에 대낮처럼 환하게 밝힌 번개와 큰 천둥소리에 놀란 시민들이 소방안전본부에 걱정하는 문의전화를 걸기도 하지만 옛사람들은 이 무렵에 그 해 첫 번째 천둥이 요란하게 치고, 그 소리를 들은 벌레들이 깜짝 놀라 땅에서 나온다고 생각했다. 오늘은 개구리 입 떨어진 날, 경칩.

봄에 들어선 지 한 달여. 입춘과 우수 그리고 경칩까지, 봄의 전령 3종 세트가 다하니 이제 비로소 봄이다. 널뛰듯 아침, 저녁으로 온도가 오르내려 일교차가 크고 주기적으로 추위와 따뜻함이 반복되면서 사람들의 조급한 마음을 따라주지 못해 꽃을 시샘하는 꽃샘추위라 하지만 늘 그렇듯 그럴 때다. 기온은 날마다 상승하며 마침내 봄으로 향하게 된다. 따스한 정겨움이 느껴지는 계절. 이미 봄은 왔다.  

봄기운이 돋고 초목이 싹트기 시작해 땅을 갈아야 할 이때쯤 농촌은 매우 바쁘다. 동네 주민들은 삼삼오오 모여서 올해 어떤 작물을 심어야 할지 새해 영농 설계하느라 분주하다. 요즘은 곤충과 씨름하느라 산골짜기에서 꼼짝 못해 동네일과는 교류가 적은 편이지만, 이사 온 지 고작 2년 반밖에 안 된 나에게 동네 이장을 맡아 달라는 부탁을 받고 겁도 없이 덜컥 이장을 맡은 게 2000년. 그때는 마을회관에서 열리는 영농회의에서 주민들과 열심히 소통하며 이장으로서 주민들에게 무엇을 해야 하는지 진지하게 고민했다. 

3년 동안 연구소가 아닌 동네 일로 헛발질 한 '잃어버린 40대'로 표현하곤 했는데 다시 생각해보니 나름대로 값진 시기였던 것 같다. 동네 어르신들을 스승으로 모시고 이장 일을 어렵지 않게 수행하면서 머리를 맑게 하는 노동의 가치를 알고 자연의 순리에 맞춰 살아가는 방법을 터득했으니. 세월의 마디를 느끼지 못하고 자연의 변화에 무딘 채 도시내기로 40여 년을 살다가 산속 오지의 이장 일을 하면서 때에 맞춰 사는 방법을 자연스럽게 몸에 익혔다. 


꼬리명주나비의 번데기. 경칩쯤 온도가 13도에 이르면 긴 겨울잠에서 깨어난다.


꼬리명주나비 어른벌레.

봄이 오면 인간 생태계만 바쁜 것이 아니다. 겨우내 얼었던 땅을 뚫고 겨울의 기운을 몰아내는 힘 센 봄이 되면 온도가 오르고 바람이 따뜻해지면서 변온동물인 월동 곤충이 가장 민감하게 반응하며 겨울 탈출을 시작한다. 

월동 형태는 알, 애벌레, 어른벌레 등 다양하지만 호랑나비과 곤충 대부분은 번데기로 월동한다. 화려한 외모와 달리 번데기는 그저 둥그런 몸뚱이로 보이나 몸속에서 어른나비가 갖출 생식기와 날개를 만드는 곤충 생활사에서 가장 극적인 변화가 일어나는 혁명적 시기다. 특별한 방어 전략도 없고 도망할 수도 없어 죽음의 공포로부터 자유롭지 못한 지극히 위험한 방식이지만 대부분의 호랑나비과 곤충들이 선택한 방식이다. 

어른벌레나 애벌레로 월동하는 형태는 온도가 상승하면서 다소나마 움직임을 관찰할 수 있지만 두터운 껍데기에 쌓여있는 번데기는 과연 어떤 반응을 시작할지 자못 궁금했다. 2008년부터 호랑나비과 월동형 번데기를 대상으로 인큐베이터에서 5가지 온도를 적용해 온도 발육 실험을 통한 기후변화 연구를 수행했다. 번데기 안에서 언제 발육을 시작하는지 얼마나 많은 시간이 지나야 나비가 되어 나올지에 대한 대답을 얻었다. 번데기 내부 사정을 알게 됨으로써 기후변화에 따라 언제, 어떻게  발생하는지 패턴 예측이 가능해졌다. 

우리 인간 귀에는 아무 것도 보이지 않고 특별한 소리도 들리지 않지만 곤충은 자신들의 통신수단을 통해 외부 상황을 모니터링하기 시작한다. 천천히, 지속적으로 기온이 올라가면서 나뭇잎에, 나뭇가지에, 줄기에, 땅바닥에 은밀히 붙어있던 번데기에 신호가 전달돼 온도에 맞춰 각자 발육을 시작한다. 


애호랑나비의 번데기.


이른봄에 출현하는 애호랑나비 어른벌레.

발육을 시작하는 발육 임계온도가 12.373℃인 꼬리명주나비 번데기는 엊그제 한낮 기온이 13도를 넘었으니 아마도 외부 온도 변화의 메시지를 얻어 훈훈한 기운을 타고 몸을 움직였을 것이다. 애호랑나비(8.088℃)와 긴꼬리제비나비(7.945℃)와 호랑나비(10.494℃)는 벌써 우수께부터 발육을 시작했다. 일단 발육을 시작하는 문턱만 넘어서면 속도감 있게 진행한다. 혹한의 조건에서 살아남은 번데기가 꿈틀거리는 그 시간 동안 밖에서는 유채꽃이 피고지고, 바람이 불다 멈추기를 반복할 것이다. 



지난 가을 번데기를 만든 후 약 6개월을 기다리며 끊임없는 외부와 교신하며 발육을 시작했고, 차근차근 쌓인 온도(적산온도)가 충분해지면 아름다운 나비로 날아오를 것이다. 매일 매일 쌓아 온 온도뿐만 아니라 번데기에서 나비로 환생할 때쯤이면 기막힌 타이밍으로 애벌레가 먹어야 할 양식인 쥐방울덩굴이나 족도리풀, 산초나무에서 새로 돋은 어린 싹이 그들을 기다리고 있겠지.


모든 생물이 몸을 사리는 한겨울에 부화해 1령 애벌레였던 붉은점모시나비가 80여 일만에 껍질을 벗고 2령으로 컸고 다시 10일 만에 세 번째 애벌레로 성장했다. 몸 양옆으로 띠를 이루던 붉은색 원형 점에 뚜렷하게 노란색 점이 덧대어져 2령 애벌레보다 훨씬 화려해졌다. 머리 크기도 약 1.3mm로 1.5배 컸다. 붉은점모시나비 사육의 일등 공신인 아내가 먹성이 좋아진 3령 애벌레 먹이를 갈아주다가 꿀벌에 쏘였다. 봄을 알리는 벌이라 반가워서 윙윙거리는 꿀벌 소리를 듣고도 ‘설마 쏠까’ 조심하지 않아 목 주위가 퉁퉁 붓는 호된 신고식을 치렀다. 이젠 완전히 봄이다. 



아리스토텔레스의 자연 발생설이 통용되던 중세와 근세만 해도 나비는 날씨가 따뜻해지면 하늘에서 뚝 떨어지듯 나타났다가 가을이면 사라지는 ‘별종’이라 생각했다. 온 힘을 다해 혹한을 견디고 번데기에서 몸을 빼 날개를 다는 고난의 세월을 극복한 후에야 나비가 되는 과정을 전혀 몰랐기 때문에 생긴 오해였다. 온 힘을 다해 무언가를 이루고자 할 때 ‘용을 쓴다’ 라는 말을 자주 사용한다. 사슴 머리에 돋은 녹용을 빼내는 특별한 기술을 빗댄 것에서 유래됐다고 하지만, 곤충학자인 필자가 생각건대 한꺼번에 모아서 내는 큰 힘으로 환골탈태(換骨奪胎)하는 용(蛹: 번데기)의 행동학적 특성을 두고 이르는 것이 아닌가 생각한다. 

어쩌다가 시간이 지나 ‘어쩌다 어른’이 되겠지만 ‘어쩌다 나비’는 없다. 역시 ‘어쩌다 민주주의’도 없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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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글은 한겨레의 동의를 얻어 발췌한 기사이며, 이강운 소장의 주요 약력은 홀로세생태보존연구소 소장 / 한국환경복원기술학회 부회장 / 한국서식지외보전기관협회 회장 / 국립안동대학교 식물의학과 겸임교수 / 저서로는 <한국의 나방 애벌레 도감(Caterpillars of Moths in Korea)>(2015.11 환경부 국립생물자원관), <캐터필러>(2016.11 도서출판 홀로세)가 있다.
이메일 : holoce@hecri.re.kr       
블로그 : http://m.blog.naver.com/holoce58 
글·사진 _ 이강운 소장  ·  (사)홀로세생태보존연구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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